러시안 룰렛 (2)
[3]
이번에는 형사들이 사망한 D와 함께 있던 네 명을 한 자리에 불러 러시안룰렛이라는 게임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 더욱 자세히 캐묻고 있다.
“다들 술에 많이 취해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것 때문에 내기를 시작하게 된 것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납니다.” B가 다른 세 명을 쳐다보며 말했다.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누가 먼저 내기를 제안한 것인지는 기억이 안 나요. 근데 뭐, 이상할 거 없는 자연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A가 말했다.
“그래. 리볼버 그 권총만 안 나왔으면 뭐, 딱히 이상할 건 없었어. 술자리에서는 내기를 많이 하니까. 내가 아까 말했던 대로 D가 먼저 게임을 제안했을 거야 아마.”
E의 말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탄이 아니었으니까 러시안룰렛을 한다는 거에 대해서는 뭐 딱히 두려울 건 없었습니다. 내기 금액이 워낙 커서 문제였지.” C가 말했다.
“금액이 어느 정도였습니까?” 김 형사가 물었다.
“우리가 먹은 술값에다가, 또 뭐였지? 태블릿?” E가 다른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처음에는 술값만 걸었는데, 다들 본인은 절대 걸리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에 차서 점점 더 크게 걸었습니다. 개인 당 최신형 핸드폰에다가 태블릿까지···” B가 말했다.
“그러면 금액이 꽤 큰 거 같은데요. 핸드폰과 태블릿은 누가 먼저 말씀하신 건가요?” 무 형사가 물었다.
“핸드폰 얘기는 내가 꺼냈습니다.” A가 대답했다.
“태블릿은 D가 말했어. 내가 기억해.” E가 말했다.
“아무도 내기에 반대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서로 더 걸자고 나섰습니다. 경쟁적으로 말이죠. 그래서 누가 무슨 내기를 걸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탄이 어떻게 들어있었는지는 밝혀내셨습니까?” C가 형사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아직입니다. 실탄 얘기가 나왔으니 모든 분들에게 묻겠습니다. 사망한 D 씨가 평소에도 총기를 소지하고 다녔습니까?” 고 형사가 물었다.
“경비인가 보안인가 아무튼 그런 회사에서 일했으니까 가지고 다녔을 수도 있지. 자네도 하나씩들 갖고 있잖아.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닌데?” E가 말했다.
“다들 은퇴하셨으니 지금 민간인 신분으로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건 특별히 이상한 상황이 맞습니다. D 씨가 경비나 보안 실무자로 일하셨습니까?”
“아니지. 나이가 있는데. 아마 상임고문인가? 그랬을 거야.”
“그렇다면 총기를 소지하고 다니는 게 더 이상하군요. 다른 분들은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고 형사의 질문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이윽고 무 형사가 물었다.
“그렇다면 러시안룰렛 게임의 순서는 어떻게 정했습니까?”
4명이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던 중에 B가 나서서 말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정했습니다. 이기는 한 사람이 순서를 정해주는 것으로 했고요. 제가 이겨서 제가 순서를 정했습니다.”
“순서가 어떻게 됐습니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가 먼저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냥 특별한 이유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순서를 정했습니다. 두 번째는 E, 세 번째는 D, 그리고 네 번째는 A, 마지막은 C였습니다.”
“그럼 세 번째인 D 씨 차례에서 발포가 된 거군요. 그렇다면 A 씨와 C 씨는 총기를 만진 적이 없습니까?” 고 형사가 물었다.
“만졌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총이라.” C가 답했다.
“마찬가집니다.” A가 말했다.
“A 씨는 아까 저에게 하신 말씀도 있으시고, 경호업체에 재직 중이라고 하셨으니 총기를 자주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무 형사가 물었다.
“아- 뭐, 평소에 보던 거랑 같은 기종은 아니라서. 크흠. 그리고 말했듯이 나는 실무진이 아니라 부사장입니다. 회사 내규로 정해진 이유 때문에 이따금씩 사격을 할 뿐이지, 뭐 구체적으로 총기를 다루거나 하지는 않아요.”
A의 말에 이번엔 최 형사가 물었다.
“하지만 경호업체 부사장 자리에 있으시니 마음만 먹으면 총기나 실탄을 손에 넣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회사 규모도 상당한 것으로 아는데, 그만큼 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무기들도 많을 테고, 하나쯤 사라지더라도 모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평소 D 씨랑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진술도 있었고요. 맞죠?” 김 형사가 가세해 물었다.
“아니, 이봐요들. 그건 너무 억측 아닙니까?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현직을 떠난 지 오래되었다고는 하지만, 요즘 후배들은 일을 이런 식으로 합니까? 그리고,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걸 이야기하는 거면, 내가 D를 해할 게 아니라 D가 나를 어떻게 했겠지요! 그 진술을 했다는 인간이 D가 요즘 나에 대해 얼마나 시기하고 질투했었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안 했습니까?!”
A가 붉어진 얼굴로 나머지 세 명의 동기들을 쳐다보며 씩씩대며 말했다.
그때,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고 형사가 나서며 말을 꺼냈다.
“아까는 분명 D 씨와 사이가 좋았고 원만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니, 그건···”
“아마 여러 가지 정황상 오해받을 수 있으니까 A가 그렇게 이야기 한 것일 겁니다, 형사님.” 선뜻 답을 하지 못하는 A를 대신해 B가 말했다.
이어서 E가 허리에 양손을 얹은 채 짝다리를 짚고 서서 형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쓰읍- 나는 암만 봐도 실수였거나 아니면 본인이 일부러 그런 거 같애. 우리가 D한테 그럴 정도의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다들 다른 일을 하지만, 우리도 한때는 경찰이었어- 그걸 잊으면 안 돼. 그냥 경찰도 아니야. 다들 한 자리씩 했었다고. 감히 누가 우리 앞에서 이런 일을 벌여? 안 그래? 그리고, 내 와이프는 아직 현직에 있다고. 그걸 다 아는데 그런다고? 말이 안 돼. 우리 데리고 이럴 시간에 그쪽으로 수사 방향을 잡는 게 나을 거야. 김 팀장,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그래, 나는 여전히 실수였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처음부터 총을 가져오고 또 거기에 화약을 뺀 실탄을 넣고, 그리고 첫 순서인 A에게 전해준 것도 다 D니까. 실수가 아니라면 현재로선 스스로가 그랬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사실이야.” A가 말했다.
“근데 분명히 탄에서 화약을 다 빼내는 걸 봤는데··· 어떻게 했지···” C가 뭔가 찜찜한 듯 턱을 쓸어 만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때,
밖이 한동안 요란하더니, 이내 형사들이 모인 방으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
.
“겨, 경무과장님!”
김 팀장이 방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누군지 인식하자마자 버선발로 뛰쳐나가 그를 맞이했다.
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교류경찰서 경무과장 박정화 경정이었다.
그녀는 평균 이상의 큰 키에 짧은 머리 스타일을 한, 차갑고 날카로운 인상의 소유자였다.
“아직이에요?!”
그녀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김 팀장에게 물었다.
“예, 과장님. 아직 수사 중입니다···”
그녀가 이번에는 그곳에 있던 자신의 남편 E를 날카롭게 쏘아보며 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정말 무슨 일인지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E를 꾸짖는 듯한 물음이었다.
“몰라 나도! 그냥 실수로 자기가 쏜 거 같애! 당신이 생각해 봐. 우리가 그랬겠어?! 다들 경찰 고위직 출신인데?!”
E가 억울하다는 듯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는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이윽고 눈치를 보던 팀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과장님. 수사가 끝나면 제가···”
“수사할 게 뭐가 더 있어요?! 정말 이 사람들이 죽였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 참, 이게 도대체 무슨 난리야? 그래서, 지금까지 수사 상황을 보고 팀장이 내린 결론은 뭐예요?!”
“아직 결론을 내리긴 이릅니다. 이제야 겨우 진술을 다 확인했습니다.” 무 형사가 갑자기 팀장을 대신해 나서며 대답했다.
3팀 팀원들은 그런 그를 보며 많이 놀란 듯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윽고 박 과장이 무 형사를 보며 말했다.
“아-! 무연우 형사. 아버지 무치백 치안감님은 잘 계시지?”
“예??”
무 형사는 그에게 돌아온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말에 순간 벙찌고 말았다.
“잠깐만, 얘가 치백이 아들이야?!”
옆에 있던 E도 덩달아 무 형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에 더해 다른 사람들도 모두 무 형사를 바라보았다.
알고 보니, 무연우의 아버지 무치백 치안감은 현장에 있던 전 경찰 간부들과 모두 친분이 있는 경찰대 후배였던 것이다.
이어서 박 과장이 무 형사를 보며 말했다.
“요즘 열심히 한다더니 의욕이 보기 좋아. 얼굴도 이전보다 훨씬 좋아 보이고. 근데 말이야, 자네 계급이면은 보통 이럴 때는 가만히 숨죽이고 있으면서 선배들 말씀에 끼어들지 않는 게 일반적이거든. 그렇죠, 김 팀장?!”
“아, 아, 예, 죄송합니다. 과장님.”
팀장이 무 형사에게 연신 뒤로 물러나라는 고갯짓을 하며 대답했다.
“그래서, 대답은 해야죠?” 박 과장이 팀장을 보며 말했다.
“예?! 어떤···”
전 경찰 고위직 출신인 남자 4명에 더해 현 직장 상사까지 등장하자, 다소 정신이 없어 보이는 김 팀장이다.
“지금까지의 수사 상황을 보고 팀장이 내린 결론이 뭐냐고요!!” 박 과장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소리쳤다.
마치 사자처럼 포효하는 듯한 박 과장의 외침에 이미 차가워질 대로 차가워진 방 안의 공기는 더욱 싸늘해졌다.
그때, 사람들의 뒤에 가려져 있던 고 형사가 헛기침을 하며 그들 앞으로 몇 걸음 나와서는 말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이제 겨우 몇 시간 지났습니다. 섣불리 결론을 내리는 것도 많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겠습니까. 더군다나 전 경찰 고위 간부들이 연루된 사건이니 말입니다. 잘 마무리된 후에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차분한 태도로 나긋하게 말하는 고 형사의 말에 박 과장은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는 말했다.
“그래요. 한번 잘 마무리해보세요, 고지석 경위. 아, 그리고. 서장님보다 저에게 먼저 보고하세요.”
.
.
말을 마친 박정화 경무과장이 밖으로 나간 뒤에야 비로소 강력 3팀 형사들은 긴장이 조금 풀린 듯했다.
그때, 정적을 깨고 A가 말을 꺼냈다.
“근데, 그러고 보니 아까 술자리에서 D가 며칠 전에 C랑 만났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 둘이 사이도 별로 안 좋으면서 무슨 일이야?”
A의 말에 E가 C를 바라보며 물었다.
C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다소 당황한 듯하다가도 이내 곧바로 목을 가다듬고는 안경을 쓱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아- 별일은 아니고. 투자에 관해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잠깐 만났어.”
“실례지만 어떤 투자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김 팀장이 C를 보며 물었다.
“이 사건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혹시 관련이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투자가 잘못되어서 원한이 생겼을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리고 방금 E 씨 말씀에 따르면 평소 D 씨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요?”
“제가 처음 진술할 때도 말씀드렸잖습니까. 다들 몇 번씩 다투기도 했지만, 사이가 그렇게 좋을 것도, 안 좋을 것도 없다고. 그리고 투자 얘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전에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말한 투자에 대해 조금 더 상세히 설명해준다고 해서 만났고, 그 설명을 들었을 뿐입니다. 원한다면 언제 어디서 만났는지 알려드리죠.”
C는 이따금씩 흥분하는 듯하다가도 침착하게 말을 마쳤다.
“그럼 다른 분들도 이 투자에 관해 모두 알고 계십니까?”
팀장의 질문에 나머지 세 명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투자를 하신 분이 있으십니까?”
이번에는 세 명이 모두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이 모습을 본 C가 돌연 흥분하여 삿대질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야 인마! 니들도 투자했잖아! D가 다 얘기했어! 야! A랑 B! 니들 왜 지금 여기서 거짓말을 하냐?!!”
.
.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