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로펌 변호사 실종사건 (26)
그런데 그때,
그렇게 최 형사에게서 점점 더 멀어져 완전히 놓쳐버릴 것만 같았던 남자가 오르막길 끝에서 길을 따라 왼쪽으로 돌더니, 갑자기 제자리에 멈춰 서버렸다.
“뭐, 뭐야··· 쟤 왜 멈추는···”
점점 속도가 느려지던 최 형사는 멀어지던 남자가 느닷없이 멈춰 서는 것을 보자 약간 당황한 듯, 속력을 더 내어 그를 잡지 않기는커녕 되려 똑같이 멈춰 서버렸다.
그리고는 이어서, 본능적으로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듯, 테이저건을 다시 꺼내 들어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잠시 후, 최 형사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남자를 향해 조금씩 발걸음을 떼던 그 순간, 갑자기 남자가 뒷걸음질을 치더니, 이내 뒤를 돌아 왔던 길을 다시 뛰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당황한 듯한 표정의 최 형사는 그런 그를 보고는 침을 꼴깍 삼킨 뒤, 테이저건이 부서질 듯 강하게 그것을 움켜쥐고는 두 다리를 벌리고 제자리에 서서 뛰어 내려오는 남자를 향해 그것을 겨눴다.
남자가 내려오는 길의 끝에는 최 형사가 서 있었고, 그 사이에 남자가 도망갈 수 있는 길은 없었기에, 그는 반드시 남자를 놓치지 않고 한 번에 제압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 뛰어 내려오는 남자의 뒤에서 갑자기 매우 밝은 빛이 나타나더니, 이내 남자가 원래 가려던 길에서 느닷없이 차량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어, 그 차량은 비좁은 코너를 아슬아슬하게 돌아 뛰어 내려오는 남자의 뒤를 따라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이-씨, 저 차 뭐야?!”
밝은 차량의 전조등 때문에 눈이 부셔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최 형사는 손으로 빛을 가리며 앞을 확인하려 노력했지만, 차량이 정면으로 다가왔던 탓에 좀처럼 앞을 잘 볼 수가 없었다.
“하- 이젠 차까지 방해를···”
‘빵---!!!’
그런데 그 순간, 내려오던 차량이 갑자기 경적을 울려대더니, 갑자기 전조등을 완전히 꺼버렸다.
- “최 형사-!! 야!! 최용대!!!”
“뭐, 뭐야······?”
- “야!! 최 형사!! 잡아!!!!”
“··· ··· 티, 팀장님?!!!”
그랬다.
남자를 쫓으며 최 형사를 향해 다가오고 있던 차량은 다름 아닌 강력 3팀 형사들의 차량이었다.
“오우 씨! 자, 잠시만!”
매우 빠르게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남자를 본 최 형사는 순간, 테이저건을 잘못 쐈다간 되려 그를 놓쳐버릴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빠르게 그것을 다시 집어넣은 뒤, 마치 당장이라도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 것 같은 맹수처럼 허리를 살짝 숙이고는 자세를 고쳐잡고 섰다.
“좋아. 넌 절대 여기 못 지나간다.”
이어서,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입을 앙다문 최 형사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점점 근접해오는 남자의 발이 움직이는 방향에 온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어-”
“어어-”
“어어어어어-!!!!!”
“윽-!!!”
“억-”
.
.
“야!! 최 형사!! 최 형사!!!”
[36]
“이거 보세요. 분명 원래 여기 설정에 최근 3개월, 그러니까 90일까지 저장되도록 설정이 되어 있었거든요?? 근데 녹화 영상이 일주일 치 말고는 남아있는 게 없어서 확인해보니까, 이게 이렇게 7일로 변경되어 있었어요-”
부전빌딩 관리실 직원이 컴퓨터 모니터를 가리키며 억울한 표정으로 고 형사와 무 형사를 향해 말했다.
“혹시 누군가 몰래 설정을 변경했거나 영상을 지웠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고 형사의 물음에, 직원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백 퍼센트 그렇다고 확신해요. 그런데 우선, 직원들은 그 설정을 바꿀 이유가 전혀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 보안실 직원들 입장에선 영상이 최대한 많이 남아있어야 혹시 모를 상황이 발생해도 처리하기가 수월하니까요. 가능만 하다면 3개월 지난 것도 보관하고 싶다니까요? 근데 오면서 보셨는진 모르겠지만, 저희는 건물 내부 곳곳에 CCTV가 아주 많아서 영상을 보관하는 거 자체가 큰일이라 그렇게 못하는 거예요. 보안업체 클라우드를 사용한다고 해도 영상을 저장해두는 비용이 상당하거든요.”
“그렇군요. 혹시 설정을 변경했을 것으로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다면요?”
“글쎄요··· 우리 보안실 직원들은 모두 오랫동안 가족 같이 일해온 사이거든요? 제 허락 없이 그럴 행동을 할 만한 사람은 단연코 없어요. 만약 누군가 설정을 변경했거나 영상을 지웠다면, 분명 외부 사람일 거라 생각해요.”
“외부 사람이라··· 외부 사람이 보안실에 몰래 접근했을 가능성도 있긴 한가요?”
“··· 저희 스케줄만 안다면···”
“스케줄이요?”
“그게 사실··· 특정 시간대엔 사람이 없기도 하거든요.”
“이 큰 건물 보안실에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시간이 있다고요?” 무 형사가 직원의 대답에 놀라며 되물었다.
그러자, 직원은 시선을 피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런 보안실 근무 패턴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겠군요···” 고 형사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아, 그럼 혹시, 이 907호는 어떤 업장인지 확인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무 형사가 박지우가 교류역 물품보관함에 넣어둔 가방 속에서 발견한 명함을 직원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907호요? 잠시만요··· ··· ··· 아, 여기 있네요. 어··· 근데 어떤 업장인지는 나와 있지 않고요. 업체 이름이랑 핸드폰 번호만 있어요.” 직원이 컴퓨터로 정보를 조회한 뒤 형사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KNK? 처음 들어보는데···”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본 후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는 고 형사에 이어, 무 형사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니 말했다.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교류시와 관련된 KNK라는 업체는 검색이 안 됩니다.”
“근데, 우리 건물이 10층까지는 크기가 작은 호실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보통 규모가 작은 회사 사무실이나 개인 오피스들이 많이 들어와 있긴 하거든요? 검색이 안 되는 작은 업체일 수도 있긴 할 거예요.” 직원이 말했다.
“아, 그렇군요. 흠···”
“제가 일단 이 핸드폰 번호로 한번 연락을 해볼까요?” 직원이 모니터 화면에 떠 있는 907호 전화번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은 형사들이 박지우의 가방에서 발견한 명함에 적혀 있던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아뇨. 그 번호로는 이미 저희가 연락을 해봤습니다. 없는 번호더군요.” 고 형사가 말했다.
“아, 그래요···?”
“그럼, 남아있는 영상으로 최근 일주일 동안 907호를 방문한 사람이 있는지는 확인해주실 수 있는 거죠?” 무 형사가 직원을 향해 물었다.
“네, 그럼요. 바로 확인해드릴까요?”
“예, 최대한 빠르게 좀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저희는 907호에 한번 다녀와 볼게요.”
[37]
부전빌딩 907호로 찾아간 고 형사와 무 형사는 굳게 잠겨 있는 문을 확인한 뒤, 해당 호실 주변을 한참 동안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곳에서 그들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벨이라도 한번 눌러보겠습니다.” 답답한 듯한 표정의 무 형사가 말을 한 뒤, 사무실 문 옆에 있는 초인종을 눌렀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처럼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고 형사가 꼭두새벽이라 마찬가지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다른 사무실들을 둘러본 후, 무 형사를 보며 말했다.
“혹시 명함에 무슨 다른 정보는 없지?”
“예, 전혀요. 그냥 핸드폰 번호랑 교류 5구역 교류빌딩 907호라는 말밖에는···” 고 형사의 말에, 무 형사가 다시 한번 명함을 꺼내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이상하네. 박지우 씨가 넣어둔 가방에 이곳 주소가 적힌 명함이 들어있었고, 박지우 씨가 가방을 물품보관함에 넣기 바로 전에 시간을 보냈던 곳이 바로 여기 부전빌딩인 걸 보면, 무슨 관련이 있는 게 분명해 보이는데···”
“게다가 CCTV가 지워져 있다는 것도 수상하죠.”
“그러니까. ··· 저 직원이 한 말은 다 사실인 거 같지?”
“예.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걸 분명 확인했습니다. 누군가 CCTV에 손을 댄 게 확실해요.”
“확인을 해?”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거 같았습니다. 표정을 보면요···”
“아, 그래. 분명 직원도 영상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알고 꽤 놀란 눈치였어.”
“흠··· 혹시 뭐, 907호가 아니고 사실 709호거나 그런 거 아닐까요? 이 명함에 우리가 모르는 무슨 암호 같은 게 있을 수도 있잖습니까.”
“그런 건가··· 어쨌든 907호 안을 한번 확인해보고 싶은데···”
고 형사가 팔짱을 끼며 한숨을 푹 내쉬던 그 순간, 갑자기 그의 핸드폰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어?! A팀에서 연락 온 거 아닙니까?!” 그 소리를 들은 무 형사가 눈이 커지며 소리치듯 말했다.
그러자, 고 형사가 핸드폰을 확인한 후 대답했다.
“아, 아니. 보안실 직원이야.”
.
.
잠시 뒤, 고 형사가 통화를 마치자, 무 형사가 그를 보며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CCTV 확인됐답니까?!”
“아니, 그것 때문에 전화한 게 아니고. 아까 급하게 도와주러 왔던 다른 보안실 직원이 907호와 관련된 자료들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지금 현재는 907호로 등록된 정기주차 차량이 없지만, 약 7개월 전쯤에 아주 잠깐 907호 정기주차 차량으로 등록됐다가 삭제된 차량이 있었다는 걸 확인했대.”
“그래요?? 그게 어떤 단서가 될 수 있을까요?!”
“아직은 알 수 없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뭐든 확보해놓긴 해야겠지. 혹시 알아? 나중에 그 차량 번호가 어디선가 튀어나올지.”
“그건 그렇죠-” 무 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데 그때, 고 형사의 핸드폰 벨이 다시 한번 울려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핸드폰을 확인한 고 형사는 곧장 눈이 커져 있는 무 형사를 보며 고개를 저어 보인 뒤,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잠시 후, 통화를 마친 고 형사가 전과는 달리 약간 높아진 음성으로 말했다.
“교류역인데, 박지우 씨가 물건을 보관하고 간 다음 날 저녁에 얼굴을 가린 누군가가 89번 물품보관함 앞에서 한참 동안 수상하게 서성이다 사라졌대-”
[38]
“야! 최 형사!!! 괜찮아?!!!”
잽싸게 차에서 내린 뒤, 바닥에 나뒹구는 최 형사를 향해 달려온 팀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보며 소리쳤다.
“윽··· 그, 그 자식은요···”
“어?! 아-!”
최 형사의 말에, 팀장은 그제야 자신이 쫓던 남자의 존재를 깨달은 듯, 얼른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 아! 저기 있네! 저 개자식-! 야, 걱정하지 마! 완전히 뻗었어. 기절한 거 같애-”
팀장이 최 형사와 부딪힌 후 저 멀리 바닥에 대자로 뻗은 채 아무런 미동이 없는 남자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 최 형사가 마찬가지로 남자를 확인한 후, 팀장을 보며 물었다.
“근데 김 형사는요?”
“김 형사?? 너 가고 난 다음에 바로 이어서 쫓아갔는데 못 봤어? 걔가 지원 요청하고 바로 따라붙었을 텐데-?”
“전혀 못 봤습니다···”
“그럼 얜 대체 어디 간 거야?!”
“··· 어?! 그럼 그 도주차량 운전자는 어딨습니까??”
“아, 걔는 저기 차에 타고 있어. 걱정하지 마.”
“아- 근데 팀장님은 어떻게 아시고 여길···”
“알긴 어떻게 알아 내가. 그냥 이도훈 구급차 태워 보내고 저 새끼 잡아보려고 온 동네방네 뒤지다가 운 좋게 발견한 거지. 어휴- 저 개자식 저거-” 팀장이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 그 이도훈은요. 이도훈은 어떻게 됐습니까···?!”
“나도 아직 몰라. 너 가고 나서 금방 구급차가 오긴 했는데, 오랫동안 숨도 잘 못 쉴 만큼 목이 졸려 있었던 데다가, 워낙에 급소를 제대로 찔려버려서···”
“그거 골치 아프게 됐네요···”
“그나저나, 이 자식은 대체 정체가 뭐야?!” 팀장이 기절해 있는 정체 모를 남자를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그러게요-. 그 상황에서 그렇게까지 하고 도망쳐야 했다면 분명 뭔가 켕기는 게 있는 놈이겠죠···” 최 형사 역시 남자를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그렇겠지. 하- 박지우 이 사람은 도대체 뭐가 어떻게 엮여있는 거야?! 나, 참-”
“일단은 이 자식 얼른 차에 태우죠, 팀장님. B팀에도 빨리 연락해서 알리고요. 아, 일단 먼저 김 형사한테 연락할게요-”
“그래, 그러자고. 어휴-! 제발 이번엔 이 자식이 뭐라도 좀 제대로 알려줬으면···!”
팀장이 말을 하며 수갑을 꺼내 들던 그 순간, 김 형사에게 연락하기 위해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하던 최 형사가 그를 보며 놀란 듯 말했다.
“어? 팀장님! 고 형사한테서 전화가 많이 와 있는데요?!”
“그래?! 거기도 뭔 일 생긴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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