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살인사건(3)
[5]
“수상한 사람이요?”
“네, 옆에 이 직원이 CCTV 확인을 도와주다 발견한 건데요. 여기 보시면요. 오늘 오전 10시 30분경에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인 90층으로 올라가거든요? 그런데 몇 시간 뒤에 이 사람이 갑자기 1층 로비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1층까지 내려왔다는 거죠. 왜 그랬을까요?”
“이상하긴 하네요. 90층 입주민은 아니고요?” 고 형사가 말했다.
“예, 90층 입주민이 아닌 것은 명확해 보입니다.”
“정확히 얼마 만에 다시 1층 CCTV에 잡힌 겁니까?” 무 형사가 물었다.
“어디 보자··· 아, 12시쯤이니까, 한 시간 삼십 분 만에 다시 화면에 잡힌 거네요.”
“한 시간 삼십 분이라···. 피해자를 살해한 뒤, 80층 계단을 걸어 내려오고도 남았을 시간이긴 하네요. 일단 이 사람도 용의 선상에 올려놓죠?” 김 형사가 팀장을 보며 말했다.
이윽고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무 형사가 직원을 보며 말했다.
“그럼, 앞서 말씀하신 외부인 네 명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직원이 형사들에게 CCTV 영상을 보여주며 말했다.
“아, 네. 어, 일단, 네 사람 중에 가장 먼저 80층에 간 건 이 빨간 모자를 쓴 택배기사 분이셨어요. 오전 11시쯤이었고요. 작은 상자 서너 개를 손에 쥐고 85층에 내리신 뒤에 곧바로 다시 탑승해서 80층에 내렸고요. 그리고는 약 15분쯤 뒤에 67층에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80층에서도 바로 다시 탄 게 아니고요? 왜 그랬지···?” 최 형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어서 다시 무 형사가 말했다.
“13층에 걸쳐 세 개의 택배 상자를 배달하는 데 걸린 시간이 15분이라···. 그리고요?”
“그다음은 퀵 배달 기사분이요. 오전 11시 30분였고, 약 10분 정도 있다가 다시 80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셨어요.”
“10분이나 있었다고요?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김 형사가 말했다.
“그리고요?” 다시 무 형사가 물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12시 20분에 헬멧을 쓰고 있는 배달 기사분이 80층에 내리셨고, 12시 25분에 다시 탑승하셨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의 모양을 보아하니 배달음식인 것 같고요.”
“배달 기사 5분···. 그리고 마지막은요?”
“마지막은 오후 13시경인데요. 노란색 유니폼을 입으신 택배기사분이 80층에 내리시고, 약 10분 정도 있다가 다시 탑승하셨어요. 이분은 빈손으로 내리시고 빈손으로 탑승하셨어요. 유니폼이 택배회사 거라서 택배기사님인 거라 생각했고요.”
“그래요? 택배기사인데 빈손이었다··· 흠, 일단 알겠습니다. 관리소 측에서는 이곳으로 배송하러 오는 두 택배회사 기사분들 한번 확인부터 좀 해주세요.” 팀장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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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보안실에서 나온 형사들은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일단 다들 의견을 한번 내보자고.” 팀장이 말했다.
“저는 확실히 90층에 올라간 지 한 시간 반이나 지난 후에야 1층에서 목격된 검정 모자 그 사람이 가장 수상해 보여요. 날씨에 비해 과하게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던 것도 좀 의심스럽고요.” 김 형사가 말했다.
“저는 퀵 배달 기사도 좀 의심스럽습니다. 10분이나 있을 이유가 뭐가 있죠?” 최 형사가 말했다.
“아, 노란색 유니폼 택배기사도 수상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도 10분이나 있다 갔잖아요. 게다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고.” 김 형사가 말했다.
“그래. 그 사람이 진짜 수상하긴 해.” 팀장이 말했다.
“그런데 헬멧 쓴 배달 기사는 다시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음식을 들고 있지 않았잖습니까? 음식을 전달했다는 뜻인데, 그럼 그때까지는 제이크 밀러가 살아있었다는 거 아닐까요?” 무 형사가 말했다.
“뭐 입구에 놓여있거나 그러진 않았던 거지?” 팀장이 물었다.
“예, 그런 건 못 본 거 같은데요.” 김 형사가 대답했다.
“일단 80층에 갔던 네 사람의 얘기를 꼭 들어봐야겠네요. 그래야 누가 마지막으로 제이크 밀러와 직접 대면했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무 형사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고 형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런데··· 음, 사실 나는 우리 아파트 주민이 그런 짓을 했다고 믿고 싶지 않지만, 범행을 하고도 가장 눈에 띄지 않을 만한 사람은 같은 동에 사는 사람들이지 않겠어? 제이크 밀러의 일거수일투족을 가까이서 확인할 수도 있었을 거고. 엘리베이터를 타더라도 본인 층에서 타는 거라면 아무도 의심을 하지 않을 테니, 증거를 없애러 나가는 것도 쉬울 거고 말이야.” 고 형사가 말했다.
“··· 우리 아파트요···?” 김 형사가 말했다.
“아니, 고 형사, 잠깐만. 우리 아파트 주민? 그게 무슨 말이야?” 팀장이 물었다.
“아, 말씀 안 드렸었나.”
“뭘?!”
“제가 여기 A동에 삽니다.”
“뭐?! 여기? 지금 이 아파트?? 교류 3구역에 있는 이 삐까뻔쩍한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에 니가 산다고??”
팀장도 처음 알았다는 듯이 정말로 깜짝 놀라며 말했다.
고 형사는 그런 팀장의 표정과는 너무나도 상반되는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그 사실이 이렇게까지 놀랄 일이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눈빛으로 고 형사를 말없이 쳐다보고 있을 때, 그들 중 가장 충격이 덜한 듯한 무 형사가 먼저 말했다.
“그럼요, 고 형사님. 오며 가며 입주민 사이에서 원한이 쌓였을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차 시비 뭐 이런 것일 수도 있을까요?”
“여긴 60층부터는 한 층에 3세대씩 있지만, 그 아래는 각 층이 더 많은 세대들로 구성되어 있어. 한 동에 꽤 많은 세대가 살고 있지. 그래서 주차 자리 문제로 시비가 자주 발생하긴 해. 경차나 친환경차 전용 자리에 다른 차들이 주차한다든지, 아니면 아래층에 자리에 있음에도 위층 복도에 그냥 세워버린다든지 하는. 그것 말고는 사실 오며 가며 입주민들끼리 부딪힐 일이 잘 없어. 엘리베이터도 총 4대나 있으니 같은 엘리베이터를 탈 일이 잘 없고 말이야.”
“층간소음은 어떻습니까?”
“일반적인 아파트보다는 낫긴 하지만, 입주민 커뮤니티를 보면 여기도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집들이 좀 있는 것 같아.”
“그래, 요즘 층간소음 난리잖아. 저기, 직원분! 그 8001호와 관련해서 층간소음 민원이 발생한 적 있습니까?” 팀장이 멀리 있던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은 잠시 민원 내용들을 확인해보더니 층간소음 관련 민원은 들어온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럼 옆집들이랑 문제가 생겼던 적은요?” 김 형사가 물었다.
그러자 직원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런 적은 없었다고 대답했다.
[6]
피해자를 처음 발견한 청소업체 직원은 집 안에서 사라진 게 뭔지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남기고 혐의점이 없어 귀가하였고, 이어서 형사들은 주변 세대들을 대상으로 탐문 수사를 펼쳤다.
그러나 평일 낮이었기 때문에 많은 세대가 비어있어 특별한 단서를 얻지 못한 채 다시 사건 현장으로 돌아와 현장 수사를 이어갔다.
그러던 그때, 어느덧 관리사무소로부터 연락을 받은 빨간 모자를 쓴 택배기사와 노란 유니폼을 입은 택배기사가 현장 대원의 안내를 받으며 긴장된 표정으로 형사들을 찾아왔다.
잠시 뒤 형사들은 관리사무소에서 마련해준 빈 회의실로 그들을 따로 불러 신문을 실시하기로 했다.
먼저, 모두가 입을 모아 조금 더 의심스럽다고 했던 노란 유니폼을 입은 택배기사에게 무 형사가 물었다.
“본인은 몇 시에 무슨 일로 이곳에 오셨던 겁니까?”
“반품 택배를 수거하러 오후 1시에 여기 B동 80층에 갔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시간을 기억하시는 거죠?”
“제가 전화를 건 기록이 있거든요.”
“전화요?”
“네. 반품 택배를 수거하러 간다고 사전에 안내 문자를 두 번이나 보냈는데, 문 앞에도 없고 세대에 벨을 눌러도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아서 전화를 했었습니다. 근데 전화를 몇 통을 하고 벨을 몇 번을 눌러도 아무도 받지를 않더라고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몇 분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그냥 내려왔습니다.”
남자의 말을 들은 고 형사는 무 형사와 눈빛을 한 번 주고받은 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혹시 안에서 핸드폰 벨 소리 같은 게 들리진 않았습니까?”
형사들은 사건 현장에서 제이크 밀러가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핸드폰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아뇨. 인터폰 벨 소리 외에 핸드폰 벨 소리는 들리지 않았어요. 안에서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고요. 그래서 사람이 없나보다 했는데,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줄이야···”
“통화 신호는 가던가요?”
“예, 갔어요. 거절 버튼을 누른 거 같진 않았고요. 그냥 계속 연결음이 이어지다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나왔었죠.”
“그렇군요. 그러고 나서 본인은 뭘 했습니까?”
“내려와서 바로 차에 탔고요. 그리고 고객 핸드폰으로 내일 다시 수거하러 오겠다는 안내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곳으로 배송을 갔고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빈손으로 와서 10분 뒤 빈손으로 간 게 맞는 것 같은데··· 그런데 왜 본인은 회사 차량이 아닌 다른 차를 이용하여 수거하러 갔던 겁니까? 직원들에게 들어보니 원래 본인 택배회사에서 배송하러 오는 차량이 아니었다는데요. 차에 회사와 관련된 아무런 정보도 붙어있지 않았다고 하고요. 물론 CCTV를 통해서 확인을 했습니다.”
“아, 오해하지 마세요. 저도 당연히 그 회사 직원이 맞습니다. 다만 저는 개인 차량을 이용해서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일이 너무 많을 때 배송을 돕거나, 반품 물건을 주로 회수하는 거죠. 회사에 연락해보시면 다 확인이 가능하십니다. 그리고 제 차량 블랙박스를 확인해보시면 그다음에 제가 어디 갔는지도 확인하실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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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이번에는 빨간 모자를 쓴 택배기사가 형사들과 마주 앉았다.
“본인은 11시경에 이 아파트 B동으로 배송을 가셨죠?”
최 형사가 먼저 나서 그에게 물었다.
“예.”
“그런데 80층부터는 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이동하셨습니까? 85층에서는 곧바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80층으로 가셨잖아요. 그런데 왜 80층부터 67층까지는 계단을 이용하신 거죠?”
“아··· 제가 그랬나요? 음···, 뭐, 별 이유는 없었을 겁니다. 아마 엘리베이터가 잡히지 않았다든지 했겠죠.”
“별 이유는 없었다고요? 보통 엘리베이터를 잡아놓고 일을 하시지 않나요?”
“사람마다 일하는 방식이 다르겠죠.”
“그렇습니까? 그럼 혹시 80층 고객이 택배를 직접 받았습니까?”
“아뇨. 요즘은 무조건 택배를 문 앞에 두고 옵니다. 그리고 오늘 배송 중에 고객에게 직접 택배를 전달한 적은 없고요.”
그런데 그때, 갑자기 형사들이 있는 회의실로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이 다급히 찾아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무 형사가 회의실 문 앞으로 가 그에게 물었다.
“아, 형사님. 바쁘신데 죄송하지만,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어서요.”
“뭡니까?”
“다름이 아니라, 사건이 발생한 80층 8003호에 거주하시는 분 남성분이 방금 저희를 찾아오셨거든요?”
“아, 네. 그런데요?”
“그런데 그분이 어젯밤에 집에 들어가시다가 8001호에서 나오는 사람들과 마주쳤는데, 엄청 심하게 싸우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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