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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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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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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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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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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23화 뜻은 누구나 품을 수 있다

DUMMY

523화 뜻은 누구나 품을 수 있다


“고륜영안공주를 뵙습니다. 저는 영변부 대도호부사 임상백으로, 한양까지 뫼시게 되었습니다.”


임상백에 정중히 인사하니 고급스럽게 단장된 가마의 발이 열리며 고륜영안공주 아이신기오로 비양고가 그 얼굴을 보였다.


그녀는 옆에 붙은 시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듯싶었는데, 살짝 시선을 주고 살핀 그 얼굴을 보면 만주족과는 조금 다르니 아무래도 조선 출신인 모양이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보다 청나라가 나은 법이지. 사욕으로 엄한 짓을 벌이지 않는다면야 어디에 마음을 두건 무엇이 다를까.’


만약 성상께서 자신을 알고 이렇게 쓰지 않았다면 임상백 역시 그러했을지 모르는 노릇이니 그는 시녀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품지 않았다.


하물며 그는 영변부 부사로서 돌아오지 않겠노라고 한 이들도 적게나마 있음을 알고 있었으니 이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쓰는 건 이미 옛적에 한번 행한 일이었다.


“부사의 말을 반깁니다. 그대에게 앞길을 맡기니, 잘 부탁합니다.”

‘음?’


조선 출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시녀가 하는 말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함이 묻어 있었다.


마치 오래도록 조선어로 말하고 들을 일이 없었다고 하는 듯한 반응이니 임상백은 자못 호기심을 느끼면서도 마저 말을 이었다.


“먼저 쉴 곳을 마련하였으니, 부디 이쪽으로 오시지요.”


말과 함께 앞장서면서도 임상백은 슬쩍 곁눈질로 호기심을 드러내었으니, 그는 곧 한 가지 사실을 더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조선인으로 보이던 시녀가 조선어는 다소 서툴렀는데 만주어는 대단히 능숙하다는 점이었다.


‘신기하구나. 대체 누굴까?’


조선 여인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뿐, 그녀가 어디 출신인지 짐작할 단서가 너무 적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하나였으니, 조선어가 서툴지만 그럼에도 만주어는 대단히 능숙한 사람이라는 거였다.


처음에는 그저 정묘년이나 병자년에 일어난 전쟁으로 인해 끌려갔다가 남기를 정한 사람이겠거니 했지만 그 서툰 말들이 그게 아님을 알게 하니 임상백은 호기심에 한참을 골몰하게 되었다.


그러나 딱히 짚이는 것은 없으니, 임상백은 이 일을 고함이 옳은가 아닌가 잠시 고민하였다.


그리고 그 고민의 대답은 금세 정해졌다.


‘이왕에 보내는 일, 조금이라도 상세함이 나을 것이다.’


한번은 청나라 공주가 도착하였다고, 이제 자신이 함께하여 갈 거라고 전해야 한다.


그런 와중에 소견 한 마디나 두 마디 덧붙이는 일이야 어렵지 않았으니 임상백은 속에 조선인 시녀에 대한 사항을 잘 담아두었다.



***



“조선 음식도 제법 괜찮네.”

“음식은 그렇습니다.”


밤이 늦어 숙소에 든 비양고의 말에 시녀는 무뚝뚝하게 대답하고는 슬쩍 시간을 살폈다.


그리고는 고민하는 듯하더니 그녀는 곧장 고개를 조아리며 비양고에게 말했다.


“공주님, 이만 잠에 드심이 좋겠습니다. 들으니 이곳에서 한양까지는 그리 멀지 않지만 바로 닿을 거리는 아니라고 합니다.”

“들었다니, 직접 알지는 못하고?”


비양고가 장난스럽게 묻는 말에 시녀는 고개를 숙이며 지금까지 몇 번이고 말했던 말을 다시 말했다.


“저는 심양에서 태어났습니다. 조선어를 익혀 말하고 들음은 문제가 없지만 이곳은 잘 모릅니다. 그리고 이날까지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자신의 기원인데도?”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당하여 도망하였고, 이후에는 복수하여 끝낸 나라입니다. 이제는 제법 대단하다고 하나 억울함은 어린 시절부터 들었으니, 아마도 공주님께서 절 권하지 않았다면 평생 발을 들이지 않았을 겁니다.”


딱 잘라서 하는 말은 시녀답지 않게 날이 서 있어서 듣는 이로 하여금 거부감을 느낄 법도 하건만 비양고는 오히려 이런 태도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명화야, 너 진짜 좋다.”

“예?”


의도를 알기 어려운 말에 명화라 불린 시녀는 당황하여 모시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주인을 바라보았다.


이에 비양고는 제가 왜 마음에 들어하고 있는지, 어찌하여 그런 말을 했는지 말해주었다.


“청나라 사람이 아니고 조선에 밝아. 그런데 조선에 가까운 것은 아니지. 정말 좋지 않아?”

“······말씀하시는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얼굴로 안색을 흐리니 마음에 든 사람을 위함인가 비양고는 친절하게 말을 건넸다.


“내가 부리는 사람이면 청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렇지?”

“보통은 그렇겠지요. 그리고 저 역시 청나라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조선에서 건너왔지. 그러니까 아마 조선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일본 사람들은 널 조선 사람으로 더 볼 거야.”

“······.”


마음에 들지는 않으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예상한 반응에 비양고는 개의치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아주 좋은 가림막이야. 조선에 실제로 호감은 없지만 조선에 가깝게 보이는 사람. 네가 있음으로 인해 일본 사람들은 내 가치를 더욱 높게, 그리고 어렵게 여기겠지.”

“금방 드러날 겁니다.”

“연락을 네게 맞기고 실제로 오가게 하면 돼. 그리고 가능하면 동래에 가기 전에 네가 조선 사람 한둘과 연을 맺고 주기적으로 연락하면 더 좋고.”

“공주님.”


하기 싫은 일을 넘어 혐오하는 일에 가까운 제안에 시녀는 자리며 처지도 잊고 살짝 목소리를 올렸다.


그러나 비양고는 자신 있었다.


“명화야, 우리 약속했잖아.”

“하아.”


본디 시녀도 아니고 이곳에 올 사람도 아니었던 시녀는 비양고가 은근히 이르는 말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외적으로 두 사람은 공주와 측근 시녀다.


그러나 그 속내를 살피면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릴 동료였다.


“알겠습니다. 사감은 내려놓지요. 아니, 아주 숨기겠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말입니다.”

“에이, 그러면 안 되지. 감추는 게 있으면 사람은 가깝게 안 여긴다고. 게다가 너, 이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민 숙부와 같다며?”

“······그렇게 고귀한 혈통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 사람들은 제가 있는지도 모르겠지요. 한윤 공이라면 몰라도 말입니다.”


딱딱함과 함께 숨길 수 없는 복잡함이 말에서 드러나니 비양고는 안타까움을 담아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명화야, 우리 불쌍한 명화야. 가족이 가족이 아니고 부르기는 딱딱한 것만 가능하니 불쌍하기도 하지. 하지만 괜찮아.”


비양고는 그렇게 말하고는 따스함을 담아서 말을 이었다.


“너와 나는 절대 공주와 시녀라는 밍밍한 말로 끝나지 않을 거니까. 약속했잖니.”

“그것을 믿었기에 멀리 따라갈 생각을 한 겁니다. 하니 이제 저도 옛 앙금은 내려놓고 움직이겠습니다.”


따스함을 받아서 따스함으로 되돌려 준 시녀, 한명화는 각오를 다졌다.


이제 뜻한 바를 시작할 때라고 말이다.



***



비양고와 한명화가 다시금 약조를 확인하고 있을 때 동래에서는 한 여성이 처음 보는 정경에 신기함을 품고 살피고 있었다.


비록 배에서 내림도 가마에 타서 한지라 보는 시야는 좁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곳이 그녀가 살던 곳이 아님을 알기에 충분하니 잠시 상황을 잊고 살피게 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살피고 있었을까, 한 남성이 가마로 다가와서 고개를 숙이고 입을 그녀에게 고했다.


“오키코님, 곧 동래 부사가 와서 인사와 안내를 할 것입니다.”


목소리만 들리나 그 목소리의 주인이 조선에서는 대마도주 평의성이요, 일본에서는 후추 번주 소 요시나리라 이름하는 자임을 어렵지 않게 안 오키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을대로 하세요.”

“알겠습니다.”


요시나리가 멀어지는 것을 느낀 오키코는 살짝 고개를 내밀어서 바깥을 살피고자 했는데, 곁에 있던 시녀들이 놀라서 만류했다.


“위험합니다.”

“함부로 얼굴을 보이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잠시면 된다. 막지 말거라.”


시녀라고 한들 대단한 힘이 있는 이들은 아니었으니 이들은 오키코가 가만히 이르는 한 마디 말에 바로 입을 다물고 물러났다.


이러한 시녀들을 잠시 살핀 그녀는 다시 바깥을 더욱 자세히 살폈다.


“······다른 땅이나 하늘이며 바다는 다를 것이 없구나.”


만감을 담아서 말한 오키코는 지금까지 그녀가 살아온 인생을 그려보았다.


지난 일생이 다사다난하였다는 증명하듯 그녀는 지금까지 여러 이름으로 살았다.


즉위하기 전에는 오키코, 그 후에는 메이쇼, 내려온 이후에는 간에이.


이렇듯 여러 이름을 가졌던 그녀는 이제 도쿠가와 오키코라는 이름으로 나고자란 나라를 떠나 생면부지의 땅에 도착한 셈이니 과연 제 이름이 변하는 것이 여기서 끝일지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잘해나갈 수 있을지 생각하면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에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고 가마가 움직이기 시작하니 오키코는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누구에게도 누를 끼치지 않고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중얼거림과 함께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오키코의 시야에 떠나는 날의 풍경이 펼쳐졌다.


그날 그녀를 배웅하러 온 이는 수없이 많았다.


허나 사람이 있다고 하나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 배웅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며 나머지는 하나 같이 동원된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라고 하는 이에 대해 귀동냥하여 구경하고자 하는 이들이었다.


하여 그녀는 그날은 배웅 받는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했고, 떠나는 날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오키코에게 있어서 그러한 마음이 들게 한 것은 두 번이니, 한번은 에도에서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츠에게 인사를 올릴 때였다.


다른 한번은 교토에 들려서 제게 어려운 자리 넘긴 아비며 사랑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응원하는 어미와 마주하였을 때니, 그 두 번이야말로 그녀에게 있어서 진정한 ‘떠나는 날’이었다.


하여 그녀에게 있어서 배에 오르는 날은 말 그대로 그저 배를 타는 날에 불과했다.


다만 의미가 없지는 않았으니, 그날 막부와 교토에서 보낸 깃발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배가 출발하는 것에 맞추어서 항구에서 높이 오른 깃발, 마치 자신들이 이곳에서 지켜 보고 있다는 듯이 오른 도쿠가와와 천황의 문장을 그려놓은 깃발들은 실로 감흥이 있었다.


더불어서 그저 문장을 그려넣은 것에 그치지 않고 각각 문구를 적어 보내었으니 그 크기로 인해 오키코는 배 위에서도 그것들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재회(再會)와 안온(安穩).


전자는 교토에서, 후자는 막부에서 보낸 것이니 그 뜻하는 바가 다름은 명백하다.


허나 비록 그 뜻을 다를지언정 알기가 어렵지 않음은 물론이고 이유가 어떻건 그들이 그녀를 걱정하고 있음이 느껴지는 말이기도 했다.


덕분에 그날 오키코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한 방울 또르르 흘렸다.


아마 그날 곁에 있던 시녀들이 재빨리 시야를 가리웠기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이상한 소문이 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일본에는 그녀가 팔려가는 것은 아닌가 할 것이고, 청나라에는 그녀가 이 일을 달갑지 않게 여기니 체면을 상하게 하였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조선도 중간에서 돕는 와중에 이상하게 여겨 사정을 묻고자 할지 모른다는 걸 고려하면 확실히 그때 눈물을 보이지 않게 한 시녀들은 훌륭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 되었다.”


바깥 살피던 것을 멈춘 오키코는 이내에 시녀들을 보니, 그녀들은 공가 출신이라고 하나 한없이 방계에 가까운 이들이라 얼굴이며 이름도 이날까지 여전히 어색하기만 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래서야 곤란할 것이니, 그녀는 사근한 말투로 물었다.


“이제 조선을 지나 청나라에 갈 것이다. 가는 길에 보고 싶은 것이나 먹고 싶은 것은,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은 딱히 없느냐?”

“소녀들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오키코님을 계속 모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역만리에 와서 오키코와 멀어지면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르는지라 여기는 모양인지 그녀들은 두려움을 품고 대답했다.


이러한 모습에 오키코는 안타까움을 느꼈으니, 그녀는 비록 보잘것없는 자신이지만 이들을 위해 작은 힘 정도는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 청나라에 온 일본인들이 있다고 했지. 제법 공훈을 세웠다고 하니 이들과 맺어지도록 주선하여보자.’


그렇게 작은 선물을 구상하며 이동하기 시작하니, 오키코를 비롯한 일본 사람들은 천천히 북상하여 철원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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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3 542화 후일을 준비하는 사람들 +3 24.04.03 150 15 11쪽
542 541화 원로 +1 24.04.02 162 15 12쪽
541 540화 세 경쟁자 +2 24.04.01 161 14 14쪽
540 539화 목패 협약 +4 24.03.31 157 15 16쪽
539 538화 감추는 재미 +2 24.03.30 163 16 12쪽
538 537화 모두가 아는 비밀 +2 24.03.29 153 14 13쪽
537 536화 승부에서 이기는 방법 +4 24.03.28 152 15 12쪽
536 535화 알고도 모른 척하긴 어렵다 +2 24.03.27 155 14 12쪽
535 534화 미룸은 미정이 아니다 +3 24.03.26 165 14 12쪽
534 533화 허황된 이야기 +2 24.03.25 157 14 16쪽
533 532화 덕은 풍성함이 전부가 아니다 +2 24.03.24 167 12 12쪽
532 531화 소망은 성장한다 +4 24.03.23 170 15 15쪽
531 530화 한가함 뒤에 다가오는 것 +2 24.03.22 159 13 12쪽
530 529화 신부 교환 +2 24.03.21 180 14 13쪽
529 528화 어려운 관계 +3 24.03.20 182 13 11쪽
528 527화 친하면 조금이라도 돌아본다 +1 24.03.19 169 15 13쪽
527 526화 연약한 사람 +6 24.03.18 165 18 12쪽
526 525화 물려받은 천성 +1 24.03.17 168 13 12쪽
525 524화 인정받지 못한 아이 +1 24.03.16 193 15 12쪽
» 523화 뜻은 누구나 품을 수 있다 +2 24.03.15 159 16 13쪽
523 522화 병졸과 역관 +4 24.03.14 169 19 12쪽
522 521화 오는 사람, 가는 사람 +3 24.03.13 178 14 13쪽
521 520화 용기 있는 말 +4 24.03.12 178 16 17쪽
520 519화 정통성 +4 24.03.11 185 19 13쪽
519 518화 그대는 옳다 +3 24.03.10 178 14 11쪽
518 517화 거울 같은 사람 +3 24.03.09 180 14 12쪽
517 516화 우선하여 해결할 일 +2 24.03.08 192 17 13쪽
516 515화 맞수 +3 24.03.07 183 17 14쪽
515 514화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7 24.03.06 187 16 13쪽
514 513화 소리는 사람을 모은다 +2 24.03.05 189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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