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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웅비의 서재

버스기사의 이세계 슬로우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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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웅비
작품등록일 :
2024.02.01 16:18
최근연재일 :
2024.06.13 19:45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9,576
추천수 :
295
글자수 :
529,225

작성
24.03.08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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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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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3쪽

36화 일복 터진 호구

DUMMY

36화 일복 터진 호구


주헌은 네브린에 있는 동안 이상하게도 바빴다.


타란에서 네브린으로 운행하는 긴급 의뢰건을 마무리했기에 별다른 일이 없어야 정상이었건만...


처음에는 악천우 속 긴장감 넘치는 장거리 운행에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런데 엘로가 시간이 지날 때마다 한숨을 푹푹 쉬어대며 ‘재고가 남았네...’ ‘저걸 언제 다 팔지?’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이세계에 처음 도착한 후부터 도움을 받기도 했고 계속 같이 지내온 친구이자 가족이라 봐도 무방한 엘로였기에 주헌은 결국 쉬지 않고 엘로를 도와주기로 했다.


그리지와 타란에서의 장사수완은 좋았으니 이제 30퍼센트 정도 남은 재고 정도야 금방 처리할 것이라 지레짐작했는데...


네브린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인구 100명도 안 되는 그리지와 인구 1,000명 급의 타란과는 달리 온갖 도시 사람들이 도로공사 일을 하러 오기도 했고, 장사를 하러 먼 도시에서 온 이들도 많았다.


이게 무슨 상관이냐고?


아무래도 인구가 많아질수록 수인 혐오자들과 경쟁자가 많다는 거다.


가뜩이나 수인 혐오가 넘쳐나는데, 네브린 도로공사에 수인 노예들이 동원되고 있어, 수인을 인간 아랫것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엘로와 같이 좌판을 펴면, ‘누구 마음대로 여기서 장사하나?’라며 다른 상인들이 눈치를 주거나, 손님이 끊기니 다른 곳에 가라며 직접적으로 혐오를 드러내는 이들이 천지였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네브린은 그리지와 타란에 비해 너무 가혹했다.


결국 주헌과 엘로는 좌판 장사를 접었다.


좌판 장사로 한 4개 정도 겨우 팔았나?


그것도 철판을 깔고 할인에 서비스를 동반하여 판매된 것이었다. 그런데 물건을 산 이들마저 수인 물건을 샀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핀잔을 듣는 상황이라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숙박비도 간당간당한 수준의 수익을 내고 하루 종일 또 우울해하며 자책하는 엘로를 보면서 주헌은 자신이 주로 하는 일이 아님에도 엘로를 도와주고 싶어 밤새 마케팅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그건 바로 시선부터 끌어보자는 것이었다.


일단 주헌은 엘로와 함께 원단 상인을 찾아가 그리 비싸지 않은 리넨 원단을 샀다.


그리고 리넨 원단에 검은색 잉크로 커다랗게 글씨를 써 버스 양옆에 걸어두었다.


리넨에 쓴 글자는

‘선착순 초특가 할인! 상단주님이 미쳤어요!’였다.


그렇게 눈길을 끌 만한 현수막을 달아 버스로 하루 종일 네브린을 돌아다니고, 마지막으로 네브린 역참 앞에 정차하며 좌판을 폈다.


역참의 마구간지기가 엘로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긴 했지만, 주헌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인 타란 지부장이 있었다.


타란 지부장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뭐? 네브린 사람들이 거참 못돼 처먹었네.”라며 자신의 일인 것처럼 같이 화를 내주고는 곧장 어딘가로 향했다. 얼마후 돌아온 지부장은 역참 자리에서 장사하는 것을 허락받았다며 마음 편히 장사하라고 했다.


네브린 지부장과 타란 지부장은 꽤 친한 사이라나?


어쨌든 그렇게 역참 앞에서 좌판을 펴는데...


눈치를 살살보던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하나둘 다가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여성이었는데 나이대로 봤을 때는 부인들인 것 같았다.


할인이라는 단어는 집안 생활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부인들의 마음이 끌리기 쉬웠다.


부인들은 물건들을 보자마자, 눈에 불을 켜고 품질을 확인하더니 모두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거나 티는 안 내지만 계속 쳐다보면서 살까말까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수인인 엘로가 있는 것이 신경 쓰여 과감히 물건을 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거기서는 결심을 확고하게 해줄 한마디만 더 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지금부터 추가 행사 시작합니다! 같은 물건 2개 구매 시 하나를 공짜로 드리겠습니다. 2개 가격으로 3개를 가져갈 수 있는 기회! 단, 다섯 분께만 드리겠습니다.”


이른바 선착순 투 플러스 원 행사.


물론 하나를 살 때의 할인가가 아닌 정가로 판매.

대신에 물건을 하나 더 주면서 판매자 입장에서는 손해가 덜하고, 구매자 입장에서는 이득인 것 같은 느낌을 크게 줄 수 있는 거다.


고민하던 부인들은 바로 구매를 결정했고, 연달아 구매해 가는 부인들을 보며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었다.


아직 재고는 25% 정도 남은 상태.


그때 주헌은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이제 수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한마디 이후 딱히 구매할 생각도 없던 이들마저 달려들며 힘겨웠던 재고와의 싸움은 끝나게 되었다.



***



“으아! 이제 좀 제대로 쉬겠네.”


기지개를 켠 주헌이 방에서 엘로를 슬쩍 바라봤다.


“히힛! 뭘 사가야 하지? 흐헤헤~”


엘로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돈주머니를 가슴팍에 껴안고는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렇게 좋냐?”


“우히히힛! 흐헤헤!”


‘그래... 니가 좋으면 됐지. 이제 좀 자볼까.’


쿵 쿵 쿵 쿵.


여관 마룻바닥을 빠르게 디디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 설마 아니겠지.’


그 소리는 점점 주헌과 엘로가 있는 여관방과 가까워지더니 이내 발소리는 멈추고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쾅쾅쾅!


“성주헌 마부 여기 있나?”


낮잠이나 한숨 자려고 했던 주헌은 엘로를 쳐다보며 조용히하라는 제스처를 취하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썼다.


목소리의 정체가 누군지는 뻔히 알았지만, 장사로 피곤해진 상태라 손끝 하나 움직이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쾅쾅쾅!


쾅쾅쾅!


시끄럽게 문을 두드리는 통에 잠자는 건 이미 물 건너간 일이고, 그렇게 즐거워하던 엘로가 불안에 떨며 주헌의 옷자락을 당기니, 주헌은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 씨!’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타란 지부장.


“안녕하세요...”


“휴, 다행이군. 나는 자네가 다른 곳으로 간 줄 알았다네.”


잡설을 하는 지부장...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니 딱 봐도 무언가 부탁을 하려는 것 같았다.


“아, 그러셨군요. 저는 잘 있습니다. 그럼, 이만.”


주헌은 이미 계약서에 있는 긴급 의뢰 1건을 완료한 상황이었고 엘로를 도와주며 피곤한 상황이었기에 긴급 의뢰가 하나 더 있더라도 벌금 5골드를 내고 쉴 생각이었다. 그래서 거부할 생각으로 대충 얼버무리며 문을 닫으려는데...


타란 지부장이 발을 집어넣으며 문을 닫지 못하게 만들었다.


주헌은 지부장의 발을 자신의 발로 툭툭 밀어내며 문을 강하게 닫으려하고, 지부장은 손까지 집어넣어 문을 열려고 하고, 두 사람의 힘겨루기가 한동안 이뤄지다가 지부장의 체력에 못 미친 주헌이 패배하며 문은 화들짝 열려버렸다.


“휴우... 날씨가 덥구만. 자네도 좀 앉게”


손부채질하며 허락도 없이 방안으로 들어온 지부장은 의자에 앉더니 주헌에게 손짓하며 앉는 걸 권했다.


“긴급 의뢰 건이라면 거부하겠습니다. 벌금은 엘로가 내줄거예요. 5골드죠?”


주헌이 자연스럽게 엘로를 가리키며 말하자마자, 엘로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5골드요? 안 돼요! 그냥 하세요. 5골드가 무슨 푼돈인 줄 알아요? 절대 안 돼!”


엘로는 주헌과 공용으로 쓰던 돈주머니까지 서랍에서 꺼내서는 가방에 집어넣곤 뒤로 숨겼다.


“저 친구는 안 된다는데?”


지부장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웃음을 참는 듯하더니, 주헌 모르게 엘로에게 엄지척을 날려보냈다.


주헌은 앞으로 벌어질 일이 어떤 건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자신이 하게 될 거란 생각에 수척해진 얼굴로 마른세수하며 엘로를 도와준 것을 후회했다.


“하아... 긴급 의뢰인가요?”


“어휴! 내가 염치가 있지, 다들 기피하는 긴급 의뢰를 자네에게 연달아 시키겠어?”


이건 희소식이었다.


주헌의 수척해진 얼굴은 마치 건강해진 사람처럼 해맑게 변했다.


“긴급 의뢰는 아니고 말이야! 부모님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네브린 쪽에서 지원이 필요한 모양이야.”


주헌은 그 얘기를 듣자마자 다시 죽상이 됐다.


부모님의 날이란 타이칸 제국의 공휴일로 현실 세계의 어버이날과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부모님의 날이 하루가 아닌 일주일이라는 거다.


“아, 그렇군요. 세상에... 저런...”


“...”


주헌은 대충 얼버무리고는 무시하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무조건 ‘예예.’거리면서 하겠다고 했겠지만, 이제 아는 사람도 없고 월급쟁이도 아니고, 하는 만큼 버는 이세계에서 굳이 맡아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부장이 알아서 눈치를 채고 자리를 떠나주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자네가 한번 나서보는 게 어떻겠나?”


주헌은 결국 듣기 싫었던 한마디를 듣고 말았다.

상관이 저런 얘기를 한다면 그냥 ‘네가 해’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긴급 의뢰는 아니라고 하셨으니 혹시 안 해도 되는...”


“자네가 꼭 맡아줬으면 좋겠네. 솔직히 타란 지부가 네브린 지부랑 비교하면 정말 코딱지만 하지 않나... 타란 지부는 역참관리로도 벅차서 적자와 흑자를 왔다갔다 한다네... 그래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실정이야. 이런 말하기는 뭐하지만 부모님의 날 같은 큰 기념일이 아니면 타란지부는 적자를 면치 못하네... 내가 돈을 밝히는 걸로 보일 테지만... 타란 지부 폐지 얘기도 나오는 통에 자네가 나타나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네... 흑...”


“역시 해야겠죠. 예... 해야죠.”


지부장이 양손을 잡고 절절히 애원하는 통에... 주헌은 결국 한발 물러서고 말았다.


“어떤 일을 하면 되는 거죠?”


눈물을 훔치던 지부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적극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날에는 귀성길에 오르는 이들이 많아, 그래서 이맘때가 되면 타란 지부에서도 네브린으로 총동원된다네 물론 부모님의 날에 쉬고 싶다는 마부들을 내가 강요할 순 없지만, 대부분의 마부들은 1년 목돈을 벌 수 있는 이때 다들 네브린으로 지원을 나간다네, 자네도 거기에 동참해 주면 되고.”


지원을 나가는 거야 피곤하지만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주헌의 스킬 내비게이션은 지역을 방문해야지만 경로가 등록된다. 그렇기에 가보지 못한 곳이면 길잡이 없이는 갈 수 없었다.


“지원 나가는 거야 괜찮은데... 제가 그리지하고 타란 밖에는 알지 못해서...”


짝!


주헌은 자신없게 말했지만, 왜인지 지부장은 손뼉을 치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구만! 생각해 보니 자네가 그리지 출신이었지?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주헌은 분위기가 싸함을 느꼈다.


“나는 타란과 네브린만 운행해주길 원했는데 그리지 쪽도 길을 안다고 하니 그쪽 루트도 자네가 맡아주면 되겠어.”


‘아오. 멍청이! 괜한 말을 꺼냈네.’


주헌은 자진해서 일을 더 만든 자신을 자책했다.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다. 휴식시간이라도 보장받아야지.’


“그... 휴식시간은 보장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맑은 날이야 시야도 넓고 땅도 미끄럽지 않으니, 네브린에서 타란까지 1~2시간, 그리지까지는 3~4시간이면 가겠지만, 비가 오는 날은 시간이 배로 걸립니다. 그러니 맑은 날은 왕복 1회, 비나 눈이 오는 상황이면 편도 1회 운행만 하는 걸로 해주셔야 합니다. 이게 다 안전을 위해서 그런 거니 양해...”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왕복이라고, 또 비가 오는 날도 운행을 하겠다고?”


“... 예...”


주헌의 눈동자는 지진이 일어난 듯 거칠게 흔들렸다.


“혹시 자네가 말한 왕복이 네브린, 타란, 그리지를 들렸다가 다시 네브린으로 돌아오는 걸 말한 거 맞나?”


지부장은 흥분했는지 호흡이 가빠졌다.


“예...”


“세상에! 나는 하루는 네브린에서 타란으로 또 하루는 타란에서 그리지로 이런 식으로 부탁하려고 했네만, 이렇게 자진해서 희생하다니! 고맙네. 정말 고마워! 자네는 우리 지부의 자랑이야!”


지부장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주헌은 자기가 일을 더 늘린 호구가 되어버린 셈이었고.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진웅비 입니다.


오늘도 제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드백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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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7화 무료 시식하고 가세요! 24.04.20 53 1 13쪽
56 56화 투자를 받다 24.04.18 63 0 12쪽
55 55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24.04.17 58 0 11쪽
54 54화 네브린 남작의 시찰(2) 24.04.15 59 1 12쪽
53 53화 네브린 남작의 시찰 24.04.14 61 1 13쪽
52 52화 헤일로의 사정 24.04.13 64 2 12쪽
51 51화 매표소를 만들어요 24.04.11 73 1 12쪽
50 50화 파격적인 조건 (2) 24.04.10 73 1 12쪽
49 49화 파격적인 조건 24.04.08 75 1 14쪽
48 48화 그리지를 집어삼킨 산사태 24.04.07 81 0 13쪽
47 47화 몸소 보여주는 게 답 (2) 24.04.06 81 1 12쪽
46 46화 몸소 보여주는 게 답 24.04.04 82 1 12쪽
45 45화 일꾼을 데려오겠습니다 24.04.03 79 1 13쪽
44 44화 내 집 마련(2) 24.04.01 79 2 12쪽
43 43화 내 집 마련 +1 24.03.16 104 3 11쪽
42 42화 장인 +2 24.03.15 90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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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주문 예약 24.03.11 102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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