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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웅비의 서재

버스기사의 이세계 슬로우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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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웅비
작품등록일 :
2024.02.01 16:18
최근연재일 :
2024.06.27 19:45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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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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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6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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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4화 진흙탕

DUMMY

34화 진흙탕



“이거, 이거. 안 되겠구만, 비가 너무 쏟아지는데,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가야 하지 않겠나? 안전이 제일 중요하지 않나?”


지부장이 고개를 숙여 하늘을 바라보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처음 출발할 때는 비가 오기는 했지만, 와이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시야 확보가 전혀 되지 않았다.


와이퍼를 가장 빠르게 설정했는데도 불구하고 거칠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막기에는 부족했다.

하늘의 먹구름은 햇빛 한줄기조차 허용하지 않아 마치 새벽처럼 어둡기까지 하니, 주헌으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일단 천천히 가고 있는데... 추후 상황을 보고 위험할 것 같으면 조금 쉬었다 가겠습니다.”


주헌은 저번 졸음운전 사고처럼 욕심을 부리다 사고를 내고 싶진 않았다. 위약금을 물더라도 안전은 가장 중요한 법이었기에 정 안되면 한동안 정차했다가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뭐?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지부장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주헌에게 되물었다. 주헌은 갑자기 지부장이 왜 저러나 이해할 수 없었다.


“예? 조금만 쉬었다가...”


“아니, 그 전에 말일세!”


“천천히요?”

날씨가 좋지 않으면 당연히 천천히 주행하는 게 맞다. 하지만 지부장은 거기에 불만이 있나보다.


“지부장님도 아까 말씀하셨지만, 안전이 제일 중요...”


“아니, 난 그게 아니라 자네는 지금 과속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 천천히 간다고 말하니 이해가 안 되는 거지.”


지부장은 오히려 버스 속도가 빠르다고 느꼈다.

현재 버스 속력은 20km 정도였다. 이세계의 운송수단인 마차의 경우는 보통 시속 7km~ 10km였다. 그러니 지부장과 주헌이 느끼는 천천히의 느낌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예? 오늘은 비가 와서 출발할 때부터 엄청 천천히 가고 있는 건데요?”


비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을 때는 40km는 밟고 가고 있었다. 지금이야 앞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 바로 멈출 수 있도록 서행하는 거고.


“무슨 말인가? 그러면 더 빠른 속도를 낼 수도 있다는 건가?”


지부장은 처음 버스가 출발할 때도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마차보다 빠르고 덜컹거리는 충격도 적고 거기다 의자는 무슨 작업을 했는데 딱딱한 나무 마차에 앉는 것보다 푹신한 것이 편하기 그지 없었다. 고급마차의 쿠션감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엉덩이와 허리를 아파하며 갈 일은 없다는 거다. 그런데 속도를 더 높일 수 있다고 하니 지부장의 머릿속에는 행복한 망상으로 가득해졌다.


“그렇죠. 날씨가 좋으면 지금 속도보다 3배 정도는 가능하죠.”


물론 비상등 스킬이나 상향등 스킬을 이용해 안전을 확보한다면 그 이상의 속도도 가능했다. 하지만 주헌은 굳이 자신의 장점을 모두 밝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모든 일을 잘하면 일이 생길 때마다 일을 맡아 고생하는 게 뻔하다. 괜히 피곤해지기만 한다.


현실에서도 선배 기사들의 부탁을 다 들어주는 생활을 하다가 마지막에 사고가 나기도 했고...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일단 알겠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자네가 잘 판단해서 안전에 심혈을 기울어 주게.”


‘무슨 당연한 말을...’


그때


“크하하하!”


솔람 일행 중 한 사람이 크게 웃었다.


‘어휴... 저 인간들은 불안하지도 않나?’


솔람 일행은 처음에만 조심스러웠을 뿐이지 출발하고 10분도 안 되어 버스에 적응해서는 편하게 수면을 취하거나 아예 옆으로 앉아서 서로 대화하는 등 시끌벅적하게 있었다.


주헌은 악천후에 스트레스를 받아 속이 뒤집히는 상황이었는데 뒤에선 시끄럽게 집중을 방해 하니 짜증이 났다.


하지만 뒤에 타고 있는 솔람 일행은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자기네 할 말하기 바빴다. 욕설은 기본에 농담이랍시고 음담패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야! 비가 오는 날에 마차를 타기는 처음이군.”


“마차가 아니라 버스다. 돌대가리야.”


“커어억....컥...끄억...”


‘어휴 시끄러워.’


주헌은 바로 안내방송을 틀었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 버스 내에서 핸드폰 통화, 또는 대화를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세계로 오기 전,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돌아 버스 안내방송이 추가 됐었다. 비록 이세계에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지만 대화 자제 내용만이라도 알아듣고 입을 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안내방송을 틀었다.


“으악!”


“뭐야! 누구야!”


방송이 들리자마자, 덩치 큰 사내 중 몇은 자리에 없는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며 비명을 질러댔고, 몇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검집에 손을 가져가고는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일어나시지 말라니까요!”


주헌은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며 다시금 안내방송 하나를 틀었다.


-승객 여러분의 안전을 위하여 차량 이동 중에는 자리에 앉아 계시길 바라며, 서 계실 때는 손잡이를 꼭 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저기다!”

“아니야! 저쪽이야!”


“귓구멍이 막혔냐? 뒤쪽에서 들렸잖아!”


서 있던 남자들은 각자 자신과 가까운 스피커를 가리키며 서로의 주장이 맞다고 말다툼까지 했다.


“이건 안내방송이라는 겁니다. 위험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발 좀 앉으시라고요! 다치고 제 탓하지 마시고!”


주헌은 평소답지 않은 거친 목소리를 내며 덩치 큰 사내들을 호통쳤다. 주헌보다 나이도 많고 덩치도 크고 근육질에 험악한 얼굴의 사내들이었지만, 나이나 예의, 존중보단 규칙이 중요하다.


버스는 다수의 사람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이고 기사는 버스를 책임지는 책임자이기에 승객 보호 의무가 있다. 사고 유발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단호하게 처리해야 한다.


주헌의 호통에 일어났던 남자들이 멋쩍어하더니, 조신하게 자리에 앉았다.


주헌은 백미러를 째려보며 그들이 잘 앉았는가 한 번 더 확인하고는 다시 눈길을 전방으로 돌렸다.


덜컹-


“어우!”


주헌은 갑자기 주저 앉았다가 올라오는 버스에 핸들을 놓칠뻔했다. 다행히 두 손을 꽉 쥐고 있었기에 핸들을 놓치진 않았는데.


버스가 이상하다.


버스 바퀴가 계속 헛도는 소리만 들리고 힘차게 앞으로 가지 못하고 앞뒤로 진동하다 말았다.


“아이 씨!”


상황 확인을 위해 사이드미러로 뒷바퀴 쪽을 확인했지만, 거친 빗줄기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창문을 열고 사이드미러를 흰 장갑으로 닦으며 다시 바퀴 쪽을 확인하는데, 진흙탕에 절반쯤 빠진 뒷바퀴가 보였다.


우우웅!


푸드드득.



바퀴가 헛돌면서 진흙 튀기는 소리가 들린다.


“제대로 빠졌네...”


1, 2단 다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구덩이가 깊어지는 것인지 버스가 한쪽으로 기울어 가기만 했다.


“어! 이거 왜 이래!”


뒤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기울어진 버스에 이상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 밖으로 뒷바퀴를 바라보다 얼굴이 홀딱 젖은 주헌은 얼굴을 닦아내며 소리쳤다.


“지금 바퀴가 빠져서요! 금방 빼겠습니다!”


주헌은 다시 폭우 속으로 얼굴을 내밀어 뒷바퀴를 바라보고 엑셀 댔다 뗐다를 반복했다.


그런다고 이미 빠져버린 바퀴가 운좋게 빠질리는 없었다.


“우리가 나설 때구만!”


솔람이 나서서 운전석 쪽으로 가자, 뒤이어 그의 부하들이 고개를 이리저리 젖히며 몸을 풀고는 따라나섰다.


“앉아계세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나무나 돌 같은 걸로 마찰력을 높이거나 바퀴가 닿는 면적을 늘리면 충분히...”


“어허! 바퀴가 빠졌다면 들어 올리면 되는 거지. 모험가 생활을 하면서 우린 이런 경험은 수없이 했어. 우리만 믿으라구! 이럴 땐 경험 많은 어른이 해결해야 하는 법이지.”


“아니... 버스에 대해선 제가...”


“됐고 문이나 열라니까!”


버스의 책임자는 기사인데 손님들에게 바퀴를 빼달라는 기사는 이 세상 없다. 그런데 솔람은 너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문이나 열라고 주헌을 타박해 주헌은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다.


주헌이 같이 내리려고 하니 기어코 자신들이 해결하겠다며 앉아있으라고 했다.


솔람과 그의 부하들이 폭우가 쏟아지는 바깥으로 나갔다.


주헌은 그들이 도대체 어떻게 하려나 싶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는데...


“자 하나둘 하면 드는 거다!”


‘맙소사...’


정말 단순한 방식이었다.


진짜 버스를 들어 올릴 생각인 것 같다.


“저기요! 버스는 들 수 있는 게 아닌...”


“아이, 거참! 우리끼리 마차도 들어봤다니까 그냥 보고나 있어!”


“자, 둘 하면 든다! 하나. 둘! 으이쌰!”


“끄으윽!”


“우와아아악!”


남자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버스는 장정 15명에 의해 약간 움찔거렸지만 17톤 정도 되는 버스가 장정들이 든다고 들려질 리 없었다.


결국 솔람 일행은 작전을 바꿨다.


“큿흠! 쇳덩어리라 그런가 무겁긴 하구만!”


빗에 홀딱 젖어가면서 멋쩍게 말하는 솔람에 주헌은 괜히 미안했다.


“우리가 밀테니까 앞으로 가 봐! 하나. 둘!”


“하나둘!”


모두 한 마음이 되어 ‘하나둘’을 외치고 주헌도 저단 기어로 엑셀을 밟았다 뗐다를 반복했다.



우우웅-


푸드드드득


하지만 미는 작전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주헌은 보다못해 운전석에서 내려 뒤쪽으로 향했다.


솔람 일행의 꼴이 말이 아니다.

그들은 바퀴가 헛돌며 튄 진흙에 샤워라도 한 듯 온몸이 진흙 범벅이었다.


“하아... 제가 한다니까...”


“어휴. 이상하다? 마차는 됐는데 말이지...”


“어푸푸풉 퉷”


솔람은 이럴 리가 없다며 괜히 민망해하고, 부하들 몇은 입 안에 이물질이 들어갔는지 바닥에 가래침을 뱉어냈다.


주헌은 한숨을 내쉬며 주변에서 커다란 돌멩이와 조금 두꺼워 보이는 나뭇가지들을 주워 진흙에 단단히 빠진 바퀴 바로 앞에 차곡차곡 끼워넣었다.


“이러면 아마 될 거예요. 혹시 모르니까 한 번만 더 밀어주세요.”


“그래. 우리만 믿어! 이번엔 성공시켜주지.”


주헌이 다시 운전석에 올랐다.


그리고 창문을 통해 외쳤다.


“미세요!”


“으랴앗!”


“끄아악!”


장정들이 미는 것과 동시에 주헌은 다시 엑셀을 밟았다.


우우웅!


덜컹!


이번엔 돌멩이와 바퀴의 마찰력과 장정들의 힘이 더해져 진흙 구덩이에서 아주 쉽게 빠져나왔다.


“이랴앗! 이게 우리다!”


“우와아!”


“쇳덩어리도 별것 아니네!”


사이드를 바라보니 솔람 일행은 고릴라처럼 가슴을 두드리거나 힘자랑하듯 상완이두근을 강조하는 자세를 취하며 자기들끼리 웃고 있었다.


그들은 한동안 바깥에서 자기들만의 기쁨을 즐기다 버스에 올랐다.


“거봐! 우리가 다 알아서 한다고 했지?”


“역시 남자는 힘이지! 우리 아니었음 평생 갇혀 지냈을 거다.”


솔람과 그 일행들은 버스에 오르면서 허세 가득한 행동을 보였다.


비록 주헌이 커다란 돌과 나뭇가지로 도움을 받긴 했지만, 몸을 더럽혀가며 고생한 그들의 말도 맞는 것으로 하자.


“하하하. 고맙습니다!”


진흙에 더럽혀진 그들의 모습은 허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에 빠진 생쥐 꼴, 거기다 옷과 몸이 더럽혀져 화를 낼 법도 한데 그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서로 힘자랑하며 자리에 앉았다.


“마지막에 내가 힘을 줬더니 버스가 움직이더군 역시 힘은 나인 것 같아!”


“무슨 소리! 마지막 순간에는 내가 더 힘을 줬네!”


“조용, 조용! 너희들은 두 눈으로 보고도 몰라? 내가 밀었지! 벌써 노안이라도 생긴 거냐?”


주헌은 원래 세계에선 볼 수 없었던 그런 유치한... 아니 순박하고 순진한 그들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모든 좌석이 빗물과 진흙으로 더럽혀져 간다.


원래 세계였다면 청소할 생각에 한숨부터 푹푹 쉬거나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겠지만, 뭐 어떤가, 누구 하나 불쾌한 거 없고 서로 즐겁다면 상관없는 거지.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진웅비 입니다.


오늘도 제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드백과 관심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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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53화 네브린 남작의 시찰 24.04.14 6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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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51화 매표소를 만들어요 24.04.11 81 1 12쪽
50 50화 파격적인 조건 (2) 24.04.10 80 1 12쪽
49 49화 파격적인 조건 24.04.08 85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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