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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Winterer 님의 서재입니다.

새벽의 시, 얼음의 용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완결

LWinterer
작품등록일 :
2019.07.01 19:36
최근연재일 :
2019.12.10 12:46
연재수 :
17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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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47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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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2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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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1쪽

14장-약속約束 (4)

DUMMY

생각지도 못한 순간 한동안 잊고있던 추억이 떠올라 감상에 젖는, 그 단순한 즐거움이 조금씩 어긋난다.

유쾌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눅진거리는 불쾌감으로 변해 버렸다.

고약한 일이다.

'······칼로스가 보고 있어. 표정관리 해야지······.'

하지만 티엘은 세수라도 하듯 얼굴을 가볍게 문지르며 자연스레 얼굴을 숨겼다.

그리고, 손바닥 뒤로 숨은 채 이 곳으로 오던 길에 칼로스와 나눈 말장난이나 노인과의 실랑이처럼 유쾌했던 기억에 집중했다.

즐겁고, 유쾌하게.

잃은 것에 매달린들 되돌아오지는 않는다.

걱정을 나눈다고 한들, 가벼워지긴 커녕 전염병처럼 퍼지기만 할 뿐이다.

그렇다면 웃자.

한 사람이라도, 더 웃을 수 있을 동안에.

"우선 이거 받게나."

다행히 때마침 돌아온 노인이 티엘의 눈앞으로 가느다란 띠로 둘둘 묶어놓은 커다란 깃털뭉치를 탁 내려놓았다.

주의를 기울일 것을 찾은 티엘은 재빨리 무표정한 얼굴을 뒤집어쓰며 깃털 한 장을 살짝 뽑아들었다.

뿌리부분에 은을 씌워둔 깃털은 길이만 해도 티엘의 팔뚝과 비슷할 정도로 큼직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장식으로만 보이는 이 깃털의 진가는 중앙의 단단한 깃대 부분에 미세하게 새겨진 주문식이다.

간단한 주문을 기록해두었다, 마력을 흘려보내거나 직접 충격을 가해 파손시키는 것으로 발동시켜 주는 일종의 주문서.

이런 주문서는 기본적으로 양피지에서부터 시작해, 보다 고급품은 마물에게서 얻은 마력을 머금은 소재를 이용해 만들어진다.

깃털 형태의 주문서는 그 중에서도 비행종 마물의 깃털을 이용하기에 하늘이나 바람 속성의 마력을 담을 때 더 유리했다.

물론 티엘과 계약한 생령 가운데는 해당하는 속성을 지닌 녀석이 없다. 이 주문서는 도약주문을 담기 위해 구입하려는 것이었다.

선풍의 질주는 간단한데다가 쓰기도 편한 주문이지만, 티엘 개인의 '감'에 의존하는 고유주문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줘도 사용할 수가 없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쓰기 위해서는 다소 불편하더라도 이렇게 주문서를 만들 수밖에 없다.

시험삼아 마력을 불어넣어 무리없이 주문이 기록되는 것까지 확인한 티엘은 이미 큼직하게 꾸려진 포장지 사이에 깃털들을 조심스레 쑤셔넣었다.

하지만 추가로 주문한 것 가운데, 노인이 꺼내놓은 것은 그 한 가지 뿐이었다.

주문서는 어디까지나 보험용으로 사 두는 것 뿐, 더 중요한 것은 은신계의 영장이다.

티엘은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는 노인을 보며 다시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은신계 주문은요?"

"없어. 육선급부터는 돈이 있어도 구해지는게 아니라는거 알잖나."

"그럼 그보다 조금 못하더라도 좋으니까 한 번 더 찾아봐주세요."

노인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도 다시 사다리를 끌어당겼다.

그러나 노인이 인상을 쓰며 이곳 저곳-바닥에 숨겨진 상자만 두 자릿수를 넘는 듯 했다-을 한참이나 뒤진 후에도 끝내 별 소득은 없는 듯 했다.

큼지막한 가죽 갑옷 두 벌과 양피지 두루마리 세 장을 가져온 노인은 티엘 앞에 물건들을 좍 늘어놓으며 땀을 훔쳤다.

"영장은 사선급 두 개, 주문서는 이선급 세 장. 이게 전부야. 오선을 넘는 물건은 지금부터 구해보더라도 일, 이 년 내로 끝날거란 보장이 없고."

"사선······."

티엘은 어두운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선급 주문서라면 애냐의 마력을 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선급 영장은 조금 낫겠지만, 그래봐야 얇은 천 한 장으로 폭우를 막으려는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일 것이다.

오선급도 충분히 양보한 상황에서 정말 실망스러운 대답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없는 것을 만들어내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티엘은 있는 거라도 사겠다는 듯, 순순히 사선급 영장으로 손을 뻗었다.

"아, 잠깐. 그건 천천히 결정해. 일단 지금 사놓은 물건들을 옮길 생각부터 해야지 않겠어?"

뒤늦게 사들인 물건들의 양을 떠올린 티엘이 떨떠름하게 짐 꾸러미를 살폈다.

무게도 무게지만, 부피가 난감할 정도다.

너무 무리하게 산 것은 아닐까.

두 팔로 꾸러미를 안아들었지만, 안타깝게도 앞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한 손으로 들기에는 바닥에 질질 끌릴 부피고, 등에 짊어지기에는 둥그스름한 모양 때문에 제대로 고정이 안된다.

들쳐 메려고 해도 자루 주둥이가 짧아 어정쩡한 자세가 돼버렸다.

보다못한 칼로스가 한숨을 쉬며 짐을 두고 낑낑대는 티엘을 슬쩍 밀쳐냈다.

"이리 내놔."

"그 눈에 띄는 차림으로 어디까지 따라오려고요?"

"그런 큰 짐을 안고다니는건 눈에 안 들어올 것같아? 이런 데 올 거면 나셀 녀석이라도 데려오지 그랬냐."

칼로스는 큼직하게 부풀어오른 자루를 쑥 들어올렸다.

그의 체격은 티엘과 비교할 바가 못된다. 티엘이 들 때는 바닥에 끌리던 짐도 그의 손에는 훨씬 가볍게 들려있었다.

"그럼 노인장, 다음에 또 봅시다."

"오냐, 가다가 제발 다리나 부러지길 빌어주마!"

생각보다 수입이 많이 줄어든 노인이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지만, 칼로스는 쾌활하게 웃으며 콧노래와 함께 단숨에 사다리를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의 걸음은 얼마 못가 다시 멈추고 말았다.

사디리를 오르는 티엘이 묘하게 꾸물거리고 있던 탓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완전히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티엘은 다락문 위로 올라와서도 여전히 앞을 보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발을 딛었다.

저대로 두었다간 수로에 빠질지도 모를 지경이다.

칼로스는 자신을 그대로 지나치려는 티엘의 뒷목을 확 잡아챘다.

"그대로 걸어가면 넘어진다, 바보야."

"아, 저, 고마워요······."

화들짝 정신을 차린 티엘이 애매하게 웃었다.

"그보다 네 계약령중에 환각령도 있잖아? 올로비스도 마찬가지고. 왜 이제와서 은신계 영장을 찾는거냐?"

티엘은 별의 서를 가리켰다.

"애냐는 아직 어려서 쉽게 들통날거에요. 렐피아도 충분하진 않고요. 가능하다면 주문이 깨지지 않을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여두고 싶으니까요."

사선급이면 그리 약한 것은 아니지만, 고위 마법사를 상대하며 목숨을 맡기기에는 다소 애매하다.

어차피 얼마 못가 깨질 환영이라면 차라리 애냐의 마력을 쓰는 쪽이 부담이라도 덜하다.

굳이 육선이라는,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력을 원한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은 순간, 칼로스의 표정이 미묘한 색을 띠었다.

"······음······. 그럼 조금 불안정하지만, 비슷한 건 있는데. 어쩔래?"

티엘의 눈이 번쩍 뜨였다.

불안정하다는 말이 붙었지만, 육선급에 이르는 은신이 가능하긴 하다는 것인가?

"불안정하다면?"

"만들고 나서 이 주도 못가. 이거야 뭐 금방 쓰면 상관 없지만, 만들다가 빈혈로 쓰러질 수도 있어. 최악의 경우는······, 말 안해도 돼겠지?"

칼로스는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불길한 동작을 보여주었다. 재수없으면 쓰러지는게 아니라 죽는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 덕에, 티엘은 칼로스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혈마법으로 그런 것도 가능한거에요? 그런데 빈혈이라니요?"

"아, 그거야 내 피를 쓰면 상관없는데, 네가 원할때 발동시키기 어려울테니까. 올로비스랑 리아한테는 나중에 따로 해주면 될테고."

"······얼마나 위험한거에요?"

"어지러우면 바로 말해. 나도 어디까지 통제가 될지는 모르니까 최대한 안전하게 가 봐야지. 뭐······, 어지간해선 죽을 일은 없을거야, 아마."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면서 '아마'라는 불확실한 어미가 붙는 이유는 무엇일까.

농담이라 치기에는 상당히 뼈가 있는 말에, 티엘의 차가운 눈초리가 칼로스의 가슴을 찔렀다.

하지만 육선급의 은신주문을, 약간의 피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면 고려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어차피 티엘이 하려는 짓을 르비아가 눈치챈다면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조금이라도 살 확률이 높아지는걸 택하는게 낫지 않을까.

"그럼······. 부탁드릴게요."

결국 티엘의 선택은 칼로스와 카즈리엘을 믿어보는 쪽이었다.

나중에 똑같은 짓을 당할 리아가 난동을 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골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그래도 지금같은 상황에 가장 든든한 것이 이 둘 아니겠는가.

결정이 섰다면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칼로스가 쓰는 마법을 잘 아는 티엘은 즉시 손가락 끝을 칼로 찔렀다. 오히려 망설이지 않는 모습에 칼로스가 약간 놀랐을 정도였다.

"휘유, 독한 녀석."

"이게 누구 때문인데요."

"나 때문인가? 흐음, 그건 조금 미안하구만."

칼로스는 혀를 차면서도 피가 줄줄 흐르는 티엘의 손을 덥썩 움켜쥐었다.

그리고 파드마를 빌릴 때 그랬듯, 그녀의 손을 움직여 자신의 손바닥에 기묘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반쯤 감긴 눈동자. 그리고 그림자에 가려진 달.

마르지도 않는 피는 은닉을 암시하는 상징들을 담은 채 음산하게 번들거렸다.

"지금부터 쪼끔 아플지도 모른다."

순간, 칼로스가 가벼운 경고를 하는 것과 동시에 방울방울 떨어지던 핏방울이 천천히 상처를 비집고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프다기보다는 무언가가 팔 안쪽으로부터 피를 억지로 끄집어내는 듯한 기묘한 감각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상처의 깊이를 무시하고 쏟아지는 피에 흠칫 놀란 티엘이 무심결에 손가락을 빼려 들었다.

하지만 칼로스는 손목이 부러질 정도로 손을 움켜쥐어 티엘을 가로막으며 다시금 손가락을 움직였다.

흘러내린 피는 어느새 손바닥에 가득차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빈혈로 쓰러지는걸로 끝날까······?'

어느새 새하얗게 질려버린 티엘은 겁먹은 눈으로 칼로스의 손바닥에서 넘실거리는 피를 응시했다.

그러나 흘러넘쳐야 할 피는 손의 가장자리까지 차오른 순간 움찔거리며 서서히 한데 엉겨붙기 시작했다.

슬슬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가운데, 마치 핏속에서 무언가 태어나듯 맥동하는 모습까지 눈에 들어오자 점점 견디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무리라고 말할지, 아니면 조금만 더 참아볼지, 쉽게 답할 수 없는 고민이 티엘을 괴롭혔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티엘이 그렇게 생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토록 격렬하게 상처에서 쏟아지던 피가 뚝 멈췄다.

손가락의 상처는 여전히 쭉 찢어진 채 벌어져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그 안쪽으로부터 피가 흘러내리는 일은 없었다.

그동안 칼로스는 녹아내린 밀랍에 인장을 찍어넣듯, 손바닥 위의 핏덩이 위에 무언가를 새롭게 덧그리고 있었다.

이번에 그려넣은 것은 하나의 문자였다.

열세 번째 이사드인 나드.

"혈문자로 그릴 때 이 글자는 반사, 대답, 그리고 메아리를 의미하지."

칼로스의 혼잣말에 대답하듯, 손 위에서 뭉클거리던 핏덩이가 마지막에 새긴 이사드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끈적하던 핏덩이들은 점차 단단한 결정질로 변했다.

잘 연마한 보석처럼 깨끗한 각을 가진 불투명한 붉은 돌이었다.

그러나 막 불에서 꺼낸 주홍빛의 유리반죽이 식으며 투명하게 변해가듯, 바람과 함께 천천히 맑은 빛을 띠던 돌은 마침내 루비처럼 투명한 붉은빛을 머금은 채 은은한 빛을 흩뿌렸다.

가운데로 조금 전의 이사드가 불길처럼 번득이는,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 한 작은 돌.

하지만 어딘지 불길한 느낌을 주는 그 돌은, 동시에 혼을 빨아들일 듯 매혹적인 빛을 발하고 있었다.

"혈정석이야. 마정석이랑 비슷한거지. 뭐, 증발하거나 그런 건 없지만, 수명이 다 돼면 바로 깨져버릴거야."

톡, 하고 티엘의 손 위로 혈정석이 떨어졌다.

손 안에 들어온 혈정석은 마치 심장박동을 하듯, 일정한 주기를 두고 그 빛을 더하거나 줄여갔다.

옅은 피비린내가 느껴지는 착각이 들었지만, 루비를 닮은 돌에서는 더이상 혈향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돌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온기는 착각이 아니었다.

칼로스의 체온으로 데워져서일까, 아니면 그 돌을 이룬 티엘의 피에 남아있던 열 때문일까.

어느쪽이든, 조금은 소름 끼치는 물건이다.

"마력이나 피가 닿으면 바로 발동할거야. 발동하는 주문은 '모래먼지의 그림자'. 잠깐동안 네 존재를 완전히 덮어줄거다. 어지간한 환각령보다 효과는 좋을거야. 대신 유효시간이 지나면 흔적이 좀 강하게 남으니까 주의하고."

티엘은 자신의 피로 만들어진 돌을 손 안에서 가볍게 굴렸다.

"주문글자라는걸 실제로 볼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칼로스도 혈문자 외에는 사용하지 못하는거죠?"

"아, 뭐, 그렇지. 내가 고대 주문글자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쓰는것도 아니고, 단순히 혈속성을 타고난 덕분에 그나마도 대여섯 개 정도라도 쓸 수 있는거니까. 그러니 정작 원하는 물건도 못 찾고 이러고 있는거지만."

'원하는 물건?'

조금 전, 칼로스를 본 노인이 가장 먼저 꺼냈던 말이 떠올랐다.

칼로스 정도의 마법사라면 돈 몇푼 모으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현세에 몇 있지 않은 혈마법사이니 연구 목적으로라도 상당한 금액을 낼 사람은 많을 터.

그런 칼로스가 구하지 못하는 물건이란 무엇일까.

호기심이 생긴 티엘은 지나가는 말처럼 가볍게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찾는 물건이 있어요?"

"아, 뭐. 그런게 있지. 흠흠. 별 쓸데는 없는, 그 뭐랄까. 나한테만 의미가 있는 물건이랄까."

"그렇게까지 당황할 정도면 쓸데없진 않은 것 같은데요."

"그으······. 하여간 간단히 말하자면 특별한 영장이야. 그 이상은 말하기 껄끄러우니 대답 안할테다."

적잖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던 칼로스는 갑자기 성큼성큼 큰 폭으로 걸음을 옮기며 슬쩍 거리를 벌렸다.

보폭부터 차이가 적지 않아 평범하게 걷더라도 티엘이 뒤쳐지는 판에, 저렇게 걸음을 재촉하면 티엘로서는 중간중간 달음박질을 치지 않고서는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칼로스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묵묵히 걸음만 내딛었다.

뭔가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일까.

티엘은 묵묵히 속도를 높여 겨우 칼로스를 따라잡았다.

다행히 그는 뭔가 생각에 잠긴 것으로만 보였을 뿐, 화가 났다거나 기분이 상한 기색은 없었다.

'그래도 이 이상 물어보는건 실례겠지.'

남이 보기엔 별거 아닌 일이라도 본인에게는 별로 입에 담고 싶지 않은 화제일 수 있다.

게다가 조금 뒤늦은 후회였지만, 오늘 유난히 칼로스에게 짓궂게 대한 것도 미안한 일이다.

"칼로스? 칼로스."

"응? 응, 어, 미안. 잠시 딴 생각 좀 하느라······."

"바쁜 일 있으면 먼저 가보셔도 돼요. 나가는 길이라면 혼자서도 찾을 수 있으니까요."

티엘은 짐은 다시 돌려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아니, 그럴 거 없어. 별로 무겁지도 않고."

불쑥 내밀어진 손길이 티엘의 머리칼을 흐트러뜨렸다.

일부러 머리를 헝클어뜨리려는 듯한 짓궂은 손놀림이었다.

"뭐, 그래도 호의는 받아들여야지. 짐은 나중에 여관에 갖다 둘테니까, 너도 좀 홀가분하게 돌아다니다가 오라고."

쾌활한 목소리를 남긴 채 몸을 돌린 칼로스는 순식간에 멀어져 자취를 감추었다.

그 뒷모습을 잠시 말없이 지켜보던 티엘도 이내 조금 무거워진 발걸음을 돌려 수로의 가장자리로 뛰쳐올랐다.

어림짐작이긴 하지만 들어온 입구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복잡하게 얽힌 수로를 단순히 어림짐작으로 돌파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마력을 조금 아껴보려 기억나는 대로 몇 굽이를 이동한 티엘은 잠시 후 눈 앞을 가로막는 돌격자에 허탈하게 웃고말았다.

슈니엘이 있으니 길을 아주 잃어버릴 일은 없겠지만, 나름 의욕적으로 움직이자마자 막혀버리니 기가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티엘은 조금만 더 돌아다녀볼지, 아니면 현실을 직시하고 슈니엘을 부를지 고민하며 벽을 만지작거렸다.

-도움이 필요한가?

그 때 갑자기 귓가로 작은 속삭임이 들렸다.

티엘은 아무도 없는 공간을 슬쩍 바라보았다.

"이렇게 떨어져있어도 괜찮은거에요?"

-어느 바보가 끌고온 사람을 버려두고 사라졌으니, 계약자로서 나라도 책임을 져야겠지.

있다는 기척은 잡아낼 수 없지만, 티엘의 주위에는 영체 상태의 카즈리엘이 맴돌고 있었다.

가볍게 슈니엘의 마력을 일으키자 희미하게나마 카즈리엘의 흔적이 느껴졌다.

-로셀 중심가로 데려다주면 되겠지?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맡겨 줘. 자, 이쪽으로.

보이지 않는 상대가 '이쪽'이라고 말하니 기분이 묘하다.

목소리에도 방향성이 없어, 생령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이상은 제대로 방향을 인도한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카즈리엘이 어떤 방향을 말하려 하는지는 막연하게 이해가 된다.

슈니엘의 마력으로 무언가를 찾을 때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감각이었기에 적응하기는 조금 어려웠지만, 적어도 길을 헤맬 것 같지는 않았다.

다행히 카즈리엘은 지하수로의 구조를 손바닥처럼 잘 알고있는지 매우 간단명료하게 길을 설명해주었다.

잠깐 걸은 것 같은데도 피부에 느껴지는 습기나 기온으로 제법 지표에 가까워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곧 카즈리엘도 다시 칼로스에게 돌아가겠구나.'

점점 건조해지는 공기를 느낀 티엘이 무심결에 그렇게 떠올리 때 쯤이었다.

-칼로스 쪽은 걱정할 것 없어.

별다른 잡담 없이 안내만 하던 카즈리엘이 갑자기 툭 내뱉듯이 말했다.

-솔직히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나로서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분명 개인적인 이유에서 나오는 반응이지.

조금 전, 칼로스에게 무엇을 찾는지 물어보았을 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역시 제가 무례했네요."

-그렇지는 않아.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칼로스 개인이 아니라, 칼로스와 나 사이의 관계 때문이니까.

생령의 웃음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유쾌하다기보다는 어딘지 쓴 맛이 묻어나는 조소였다.

-알텐 파르스. 혹은 여왕의 심장. 혹시라도 들어본 적이 있어?

웃음이 잦아든 뒤, 문득 카즈리엘은 티엘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을 입에 담았다.

"알텐 파르스?"

티엘은 낯선 이름을 되새기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텐 파르스는 고대 이피안 어로 풀어쓰면 '열쇳돌(Key Storn)' 정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티엘이 아는 한 일반적으로 사용된 표현은 아니며, 그렇다고 특정한 고유명사라고 하기에도 너무나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심장'이라는 또다른 이름에서 연상되는 것은 한 가지 있었다.

티엘은 손을 들어올려 가슴을 덮었다.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이 고동은 생령에게는 본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오랜 세월 마력으로 육신을 짜올려 그 형태와 기능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생령이 아니라면 차갑고 단단한 하나의 심장석이 생령의 중심이 된다.

심장이자 돌.

생명의 원천과 생명 없는 무기물.

그 상반된 이름을 짊어진 모순이라면 응당 심장석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카즈리엘은 티엘이 무엇을 떠올렸는지 눈치챈 듯 다시 한번 잔잔한 웃음소리로 무언의 대답에 긍정을 표했다.

-생령이 마법사와 계약을 하는 이유는 물론 다양하지.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서야. 이건 너도 잘 알고 있겠지.

티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령은 성장이 멈출 때까지 길고 긴 성장통에 시달린다.

끝없이 외부의 마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타는 듯한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본능적으로 육신을 완성하기 위해 몸부림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육신을 조금이라도 빨리 만들어내기 위해 피와 살을 삼켜버린 생령은 순수한 마력으로 몸을 구성하는데 실패하고 이성을 빼앗긴 마령으로 전락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많은 생령들은 인간과의 계약을 선택한다.

마법사로부터 일정량의 마력을 주기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성장의 고통을 억누르는 것이다.

이는 흑마법사라면 누구나 잘 알고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바로 혈속성의 생령들.

혈속성을 타고난 마법사가 아니면 계약조차 할 수 없다.

다른 생령들과는 달리, 오로지 같은 혈속성의 마력이 아니고서는 그 갈증을 달랠 수 없기에.

그러나 혈정령이든, 혈마법사든, 태어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공교롭게도 혈정령은 마력에 대한 갈증과 허기가 다른 생령의 몇 배 이상으로 강렬하기까지 하니, 카즈리엘처럼 대정령에 이르는 혈정령은 하나 하나가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대정령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내 육신은 성장이 끝나지 않았어. 덕분에 이 갈증은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아. 솔직히 말해 칼로스와 계약하기 전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을만큼.

씁쓸한 목소리가 귓가에 사무쳤다.

채워지지 않는, 그리고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는 지독한 갈증.

차라리 수천 년을 쌓아온 지성따위 내던져버리고 타는 듯한 목을 적시고 싶다는 애타는 갈망을 짊어진다는 것은, 과연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일까.

"그렇다면, 칼로스가 계약을 유지할 수 없게된다면······."

-맞아. 칼로스가 살아있는 동안 내 성장이 끝날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 그리고 칼로스가 사라지면, 또다른 계약자를 만나게 될 때 까지 수백 년은 홀로 지내야지. 그래서 그 녀석은 고위 혈정령의 심장으로 만든 '여왕의 심장'을 찾는거야.

그제서야 티엘은 칼로스가 어째서 여왕의 심장을 찾아 헤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혈정령의 심장석이라면, 짧은 시간 무리하게 마력을 뽑아내지 않는 한 영원히 혈마력을 생성한다.

칼로스를 잃은 후에는 또다시 홀로 이 세계를 떠돌아야 할 카즈리엘의, 그 애타는 갈증을 달래줄 수 있는 유일한 물건.

-누가 누굴 걱정하는지, 정말 한심하지 않아? 게다가 그걸 부끄러워 할 필요가 대체 어디 있다는 건지······. 역시 인간이란 이해하기 어려워.

짐짓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쉬는 듯한 어투와는 달리, 목소리에서는 잔잔한 애정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친구처럼, 간혹 연인처럼, 칼로스와 카즈리엘의 관계는 단순히 '계약'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가까웠다.

자신은 어떨까.

계약한 생령들을 위해 저렇게까지 헌신할 수 있을까.

하지만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날카롭게 눈을 찌르는 빛에 사고가 멈췄다.

아직은 먼 거리였지만, 직선으로 쭉 뻗은 수로의 끄트머리에 밝은 햇빛이 걸려있었다.

어느새 수로가 끝난 것이었다.

-안내는 여기까지 해주면 되겠지?

티엘은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칼로스에게는······.

"모르는 걸로 해둘게요."

-후후후후······. 그 바보도 빨리 포기해줬으면 좋겠지만 말이지.

카즈리엘은 대정령이다.

따라서 그녀를 위한 열쇳돌 역시 그에 걸맞는 강력한 것이어야 한다.

아마도 그녀와 동급, 즉 대정령급의 심장을 깎은 것.

그러나 혈속성의 대정령을 하나 더 찾는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확률을 뚫어야만 하는지를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약없는 기다림에 매달리는 것을 어리석다고 할 수는 없었다.

티엘 역시도 그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기적이라는것은, 그처럼 불가능하다는걸 알면서도 달려드는 바보들이 일으키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카즈리엘의 웃음소리가 점점 희미해졌다.

다시 칼로스에게도 되돌아가는 것이리라.

티엘은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고개숙여 감사를 표한 뒤 햇살 아래로 걸어나왔다.



* * *



꽤 오랜 시간 어둠에 익어있던 눈은, 그토록 바라던 빛 속으로 나오자 오히려 아무것도 볼 수 없을 만큼 괴로워했다.

티엘은 눈물까지 맺히려는 것을 꾹 참으며 손차양과 함께 가늘게 뜬 눈을 들어올렸다.

포근한 햇살에 안긴 채 가까스로 실눈을 뜨자 사람들이 오가는 중심가가 보였다.

티엘은 옷에 흙탕물이나 이끼가 묻지 않았는지 살펴본 뒤 수로 위로 올라갔다.

아직 모이기로 한 시간까지는 꽤 여유가 남아있었다.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조금 아까웠고, 그렇다고 목적 없이 막연히 거리를 돌아다니자니 조금 애매한 기분이다.

그냥 관광하는 셈 치고 좀 더 거리를 돌아다녀볼까 싶었지만 애초에 목적없는 여행이라는 것에 익숙치 않은 티엘에겐 '돌아다니기 위해 돌아다닌다'는 그 행동 자체가 상당히 낯설게 다가왔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여유를 즐길 줄 모르는 팍팍한 성격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하필 중대사를 앞두고 여유시간이 생겼다는 점에서 운이 없는 것이기도 했다.

여관으로 돌아가 마음 편히 쉬려고 해도 긴장감 때문에 제대로 휴식을 취하기가 어려울테니, 여러모로 티엘에겐 익숙치 않은 일이다.

잠시 고민한 티엘은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좀 더 걸어다니는 것을 선택했다.

제국의 권위가 대공들에게 기울어있다고 해도, 일단은 대륙 최강국의 심장이다.

대공녀로 지내던 어린 시절에도 제도에는 와 본적이 없으니, 뭐라도 눈요기 할 거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셀?"

정처없이 한가한 걸음을 주체하지 못하던 티엘에게 뜻밖의 구원자가 나타났다.

어떤 가게의 입구 근처에 선 채 등을 돌리고 있는데다, 음유시인 특유의 녹색 옷 대신 순례자들이 걸치는 암회색의 우중충하고 거친 로브를 두르고 있었지만, 만에 하나라도 착각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직 티엘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나셀은 뭔가에 푹 빠진 듯, 거의 몸을 움직이지 않은 채로 그 자리에 목석처럼 굳어져 있었다.

뭘 보길래 저렇게 열중하는 것일까 싶어 조금 두리번거리자 익숙한 물건이 가득 나열된 선반이 눈에 들어왔다.

가죽으로 겉을 둘러싼, 납작하고 넓은 육면체.

책이었다.

그 가게는 다름아닌 서점이었던 것이다.

조용한 발걸음으로 가게에 들어선 티엘은 조금 놀라워하며 가까운 책장에서 책 한 권을 뽑아 펼쳐보았다.

책은 비싼 물건이다. 비사야에서 마력을 이용한 인쇄기계가 만들어진 것도 극히 최근의 일이었고, 아직까지 널리 쓰이는 것도 아니라 일부 영역에서 시험적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책은 필사본을 엮어 만드는 사치품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서점은 제도라는 이름에 걸맞게도 그 얼마 안되는 인쇄기 보유자와 인연이 있는 듯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하나 없이 깨끗하게 인쇄된 활자가 제법 근사했다.

게다가 각각의 책장은 저마다 특정한 영역의 책들을 한데 묶어둔 상태였다.

티엘이 뽑은 책은 우연찮게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가정요리'였다.

가죽 장정에 따로 제목을 써두진 않았으니 의도적으로 고른 책은 아니다.

하지만 하필이면 자기 취향의 책을 뽑았다는 점에서 어딘지 속내를 들킨 기분이 든 티엘은 피식 웃으며 책을 원래 자리에 꽂아두었다.

'나셀이 있는 쪽은······. 후훗, 그러면 그렇지.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리 없겠지?'

나셀이 선 책장은 소설이나 각지의 전승, 설화 등을 모아둔 책이 가득했다.

발소리를 죽여 나셀에게 다가간 티엘은 나셀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 자신이 온 것을 알렸다.

"어라? 티엘? 여긴 어떻게 왔어?"

"응, 필요한 물건은 다 샀거든. 그러다 우연히 너 보고 왔지."

약재상은 두 사람이 있는 서점에서 꽤 멀리 떨어져있었다.

작전 준비를 위해 시약을 만들 재료를 사러 간다던 티엘을, 이런 평범한 서점에서 마주할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그 티엘도 지금은 넘쳐나는 것이 시간이다.

'동지'를 찾았다는 것을 깨달은 티엘은 빙그레 웃으며 나셀의 정면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뜻밖에도 나셀은 조금 당황하며 책을 덮었다.

티엘의 눈에 장난기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무슨 책을 읽고 있었길래 그렇게 당황하는거야. 내가 보면 안됄 내용이라도 있어?"

"어느 흑마법사가 시체를 이어붙여 되살리려 했다는 이야기. 묘사가 굉장히 생생한데, 한동안 고기는 못먹게 됄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보고 싶다면 말리진 않을게."

"······그건 싫은데."

"현명한 생각이야."

나셀은 쓰게 웃으며 덮어버린 책을 가지런히 꽂혀있던 책들 위에 얹어놓았다.

가게 주인이 본다면 미간을 찌푸릴지도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가게 반대쪽에서 팔려나간 책들의 빈 자리를 다시 채워놓느라 바쁜 상태였다.

나셀의 표정이 마치 나쁜 장난을 성공시킨 악동같았다.

남자란 나이가 들어도 어린애같은 면이 남는다더니, 나셀도 마찬가지인 것일까.

"모이는 시간은 저물녘이었지? 서로 시간도 남는데, 좀 쉬어갈까? 너도 살 물건은 다 샀다고 했고."

"후후, 사실 그렇게 말해주길 기다렸어."

"다행이네. 거절당했으면 상처받았을거야."

그런 걱정을 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쾌활한 목소리가 한 발 먼저 가게 밖을 향했다.

킥킥 웃은 티엘은 한 박자 늦게 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눈에 스친 것은 나셀이 서있던 반대편의 책장이었다.

아니, 사실 책장이 두 개씩 마주보며 복도를 이루고 있었으니 나셀이 서있던 또다른 책장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듬성듬성 비어있던 이야기 항목의 책장과는 달리, 그 맞은편의 책장은 거의 손을 타지 않은 듯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단 한 자리, 한 권의 책이 빠진 듯한 딱 하나의 자리를 제외하고서는.

막 스쳐지나가려던 티엘의 시선이 책장의 상단으로 향했다.

꿈, 그리고 기억.

마치 티엘을 노리듯 열을 맞춰 선 책들은, 잊어버린 기억에 관한 책들이었다.

'잊어버린······, 그리고 잃어버린 기억······.'

나셀이 보던 책은, 정말로 어느 흑마법사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 맞은편의 비어있는 자리에서 꺼낸 책이었을까.

밖에서 기다리며 자신을 보고 있는 나셀이 있었기에, 티엘은 일부러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무심하게 책장을 지나쳤다.

무심결에 들어올린 손이 머리결을 쓸어내렸다.

물론 흰 머리가 드러나진 않는다. 감춰지도록 세심하게 모양을 잡아둔데다, 애냐의 마력으로 얇게 환영을 덮어, 실수로라도 드러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숨긴 머리칼이다.

하지만 아직 주문이 깨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의 모습을 재확인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이 비밀을 들키는 것은, 죽는 것만큼이나 싫은 일이니까.


작가의말

오늘은 영 컨디션이 안좋네요...

감기조심하세요, 여러분 8^8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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