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존댓말, 존칭 없습니다. 어른과 아이에 대한 구분도 모호한 세상, 위계가 흐릿한 기원전 4만년으로 안내합니다.
#6
“올간! 너 여기서 뭐하고 있니?”
남무는 올간이 혼자서 몰래 동굴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수상쩍어 쫓아왔다.
에흘린도 곁에 있다가 함께 들어왔다.
“어? 엄마!”
올간은 동굴 깊숙히 마련된 저장고로 막 들어가는 찰나였다.
올간은 뒤에서 들려오는 남무의 목소리에 황급히 돌아서며 대답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남무가 저장고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섰다.
“아···그냥 고기 손질하는데 칼이 깨졌지 뭐야. 그래서···”
“칼이 깨졌는데 그게 저장고랑 무슨 상관이야?”
남무 옆에 서 있던 에흘린이 올간을 흘겨보며 말했다.
“너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게냐?”
남무는 의심의 눈초리로 올간이 가로 막고 있는 뒤편을 살폈다.
“별거 아냐. 엄마, 누나는 좀 나가라고 하면 안돼?”
“내가 널 모르겠니? 뭘 또 숨기고 있는거냐?”
아직 날이 훤해서인지 동굴 안은 완전한 어둠에 쌓이기엔 역부족이었다.
동굴 입구를 비추는 빛이 저장고까지 스미기엔 충분히 밝았다.
가녀린 체구의 사람이 눕혀져 있었다.
“누구니?”
“아···그게···뭐라고 할까···내 짝!···이 될 사람?”
남무는 아들의 난데없는 대답에 어이가 없었다.
“뭐라고?”
“아 그게, 얘가 숲 속에 쓰러져 있더라고. 위험할 거 같아서”
“어···그러셔? 근데 왜 동굴에 이렇게 꽁꽁 묶어뒀을까?”
남무는 아들을 슬쩍 비꼬았다.
이제 짝을 만나 초야를 치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나이가 됐다.
그래도 이런 식은 곤란했다.
“어디 한번 보자. 얼마나 참한 아가씨길래 이렇게 보쌈해 왔어? 이 근처에 다른 씨족이 산다는 얘기는 못 들어본 것 같은데?”
“엄마, 사실대로 말할께. 그게···맞아, 슬쩍해 온 거. 근데, 하나 더 있어.”
“뭔데?”
“일단 누나 좀 내보내면 안될까?”
남무는 누워 있는 아이의 체구를 보고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다.
“누나가 왜 신경 쓰여? 별꼴이네. 에흘린, 넌 나가서 조용히 에가랑 하오마를 불러와라”
에흘린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올간을 보고는 동굴 밖으로 나갔다.
“누나를 내보내 달라고 했지. 거기에 왜 에가누나, 하오마누나까지 다 부르는거야?”
“저 애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돌려보내 줘야지. 엄마는 저 애를 우리 씨족에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데 어쩌지?”
남무는 엄마한테 숱하게 들었다.
엄마 자신이 아빠에게 납치당한 전적이 있어 힘든 시절이 있었다고 시도 때도 없이 말했다.
엄마는 아빠가 없을 때면 늘 흉봤다.
그리고 어느날 아빠가 죽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사냥하다가 부상당한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사라진 날 엔리케도 죽었다.
남무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이었다.
#7
“작은 머리 인간의 여자애는 절대 안된다!”
남무는 단호했다.
“엄마, 그건 말이 안되지.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할머니를 욕하는 것밖에 더 되냐고!”
올간은 도무지 엄마의 고집이 이해가 안됐다.
“너는 늬 할아버지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몰라서 그래.”
큰 머리 인간, 현대를 사는 우리는 그들을 네안데르탈인이라 부른다.
그들의 뇌는 우리보다 조금 더 컸고, 희미한 빛만으로도 충분히 잘 볼 수 있을 만큼 시력이 뛰어났으며, 몸은 훨씬 근육질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의 무리는 대체로 작았다.
오십 명을 넘지 않았다는 것이 통설이다.
혈연관계 또한 비교적 단촐했을 것이다.
올간, 남무가 속한 큰 머리 인간 씨족은 한 명 이외의 다른 짝을 두지 않았다.
평생 단 한 명과 짝을 이루는 풍습을 가진 씨족이었다.
큰 머리 인간들은 다른 씨족들도 대체로 그랬다.
성인이 되면 여자들은 무리에 남고, 남자들 중 일부는 무리를 떠났다.
스스로 짝을 찾아 떠난 경우다.
그리고 드물지만 쫓겨난 경우도 있었다.
“할머니는 엄마와 달라. 그리고 엄마는 그 애가 누군지 안다.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남무는 엄마가 자신들 외에 작은 머리 인간들 사이에서 딸을 낳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엄마에게서 들은 것이 아니라 엄마처럼 납치당한 다른 여자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저 아이는 왠지 눈에 익었다.
“네?”
“쉬~ㅅ!”
올간은 엄마가 그녀를 안다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저 아이를 안다고? 어떻게? 본 적도 없는 애를 엄마가 무슨 수로 알아?”
올간은 목소리를 낮춰야한다는 사실을 잊었다.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구나, 에흘린, 이 아이 밧줄을 풀어줘. 깨어나면 에가, 하오마와 같이 여자애를 작은 머리 인간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놓고 오너라. 에가! 하오마! 이모가 부탁 좀 할께.”
에흘린은 한심하고, 딱하다는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남무! 그 아인 늑대랑 얘기 할 수 있대, 그 아일 돌려보내는 건 우리에게 위험해.”
세바히쿠가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세바히쿠!”
그의 등장에 남무도 올간도 깜짝 놀랐다.
언제 들어왔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인기척도 없었다.
늑대랑 얘기할 수 있는 게 왜 위험한 것인지, 올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이려 드는 걸 간신히 설득해서 들쳐 메고 왔는데 또 저 소리를 해대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남무는 남편이 죽고 나자 태도가 돌변한 세바히쿠가 영 껄끄러웠다.
그는 남편의 수제자였다.
사냥하고 다른 남자들과 겨루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 아이였다.
그가 변한 것이다. 남무에게 깍듯하던 세바히쿠는 이제 없다.
“에가, 어떻게 된 일이야?”
“올간이 저 계집애에게 빠졌나봐. 에흘린 말로는 혼자 저장고에 들어가고 있었대.”
“왜 그랬냐?”
세바히쿠는 올간을 지긋이 다그쳤다.
“왜? 데리고 도망이라도 가려고 그랬지!”
엄마나 누나도 맘에 안 들지만, 세바히쿠는 더 싫었다.
애초에 그녀를 사로잡자고 했을 때는 잠자코 있던 그였다.
잡고 나니 죽이자고 덤비는 통에 이미 한 차례 빈정이 상했었다.
“미쳤냐?”
“그럼 형은 쟤를 왜 붙잡자고 했어? 왜? 에가 누나 하나로 부족해?”
기왕 막 나가는 거, 비뚤어지기로 작정을 했다.
“너 돌았구나!”
에가는 세바히쿠의 유일한 약점이다.
왠지 몰라도 에가한테만큼은 설설 긴다.
머리를 굴리는 척 하지만, 천성이 겨루기 밖에 모르는 인간이다.
사람 마음을 읽는 데는 완전 젬병이었다.
“그렇게 위험하면 거기서 죽이지 그랬어. 왜 힘들게 들쳐 메고 오게 했냐고!”
“난 거기서 죽이려고 했어. 말린 건 너고, 들쳐 메고 온 것도 너지.”
“어~ 그러셔? 형은 내가 한 말은 다 믿고, 나 하자는대로 다 하는 사람이구나?!”
“너 이 새끼! 말이면 단 줄 알아!”
남무만 아녔으면 세바히쿠의 주먹이 올간의 얼굴에 떨어질 뻔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무의 존재는 무거웠다.
“세바히쿠, 미안해 내가 대신 사과할께. 올간, 너는 말을 그렇게 밖에 못하지? 정말 실망이다.”
에흘린이 세바히크의 팔을 붙잡았다.
“에흘린, 이모랑 같이 자리 좀 비켜 줄래? 올간 너도 저 계집애 들쳐 메고 나가줬으면 해.”
에가가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올간은 이난나를 들쳐멨다.
동굴엔 적막이 흘렀다.
“세바히쿠, 너 우리 엄마가 죽었다고 나 무시하는 거야?”
알라하는 남무의 언니다.
에가, 하오마 자매의 엄마이기도 했다.
알라하가 쓰러진 후, 엔리케도 알라하도 똑같이 죽었다.
“에가, 그건 오해야.”
세바히쿠는 올간의 말에 환장할 노릇이었다.
동굴 속에선 한참 고성이 오갔다.
- 작가의말
네안데르탈인 주요 등장인물
(네 : 네안데르탈인, 사 : 호모 사피엔스)
올간 : 주인공, 네 75%, 사 25%, 남성, 만 14세
남무 : 올간의 엄마, 네 50%, 사 50%, 여성, 만 35세
세바히쿠 : 에가의 남편, 네 100%, 남성, 만 26세
무치 : 올간의 친구, 네 100%, 남성, 만 14세
에흘린 : 올간의 친누나, 네 75%, 사 25%, 여성, 만 19세
에가 : 알라하의 딸, 올간의 사촌누나, 네 75%, 사 25%, 여성, 만 22세
하오마 : 알라하의 딸, 올간의 사촌누나, 네 75%, 사 25%, 여성, 만 17세
알라하 : 남무의 언니, 네 50%, 사 50%, 여성, 사망
엔리케 : 남무의 남편, 네 100%, 남성, 사망
호모 사피엔스 주요등장 인물
이난나 : 주인공, 호모사피엔스 100%, 여성, 만 13세
서로 다른 무리 사회에서,
충돌이 생기는 대부분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음식과 생식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가 서로 섞이고 대립한 이유도 별 차이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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