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정말 이상한 사람들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III. 여왕(The Empress)]은 그 어떤 호위도 없이 탑을 올라가고 있었다.
2일쯤 되는 날이었을까 아디나가 궁금해서 물어보자 여왕은 ‘ 당신들이 있는걸요? ‘ 라면서 생긋 웃어주기만 했을 뿐 자세한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뭐.. 생각해보면 이유는 단순할 것이다.
본인이 강하기 때문에 호위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겠지.
이제는 층수 세는 것까지 귀찮아질 정도로 온갖 잡담과 함께 탑을 오른 지 4일째.
곧 있으면 회담이 이루어질 장소가 거의 다 와 간다고 했다.
음.. 안타깝게도..
그런 [III. 여왕(The Empress)]의 말을 아디나가 들을만한 정신은 없었다.
-퍼드득
“ 으에에에...! 으악!! “
거대한 풀잎, 본적도 없는 거대한 꽃,
빛나는 꽃은 물론이고 나무들마저도 형형색색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고 있는 신비한 숲속.
[III. 여왕(The Empress)]이 정말 신기하지만, 함부로 만졌다가는 꽃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고 일러주는 것과 동시에 아디나의 몸통만 한 나방이 아디나를 위협하고 공중으로 날아간다.
“ 풋.. 정말 하나하나 반응이 재밌네요. 아하하! ”
[III. 여왕(The Empress)]마저도 그런 아디나의 모습을 보며 큰소리 내며 웃는다.
아니 어쩌면 [III. 여왕(The Empress)]도 메이저 아르카나와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은 오랜만인지 즐기고 있다고 해야 할까? 재밌어 보이는 느낌이다.
“ 으으.. 놀리지 마세요...! 으악!!! 죽어!! “
이번엔 땅을 기어 다니는 징그러운 벌레에게 갑자기 타오르는 검을 빼 들고 휘두르려 하는 것을 나린이 간신히 틀어막았다.
아래층에서는 거대한 지네를 상대로도 싸웠었던 아디나였지만 아주 적당하게 큰 크기의 벌레들은 징그럽게 느껴졌나 보다.
“ 휴우.. 정말.. 여행길이 심심하지 않은 건 아디나 너 덕분이야.... 그나저나 이렇게 천천히 가도 되는 건가요? 오늘이 회담 날짜 아닌가? “
분명 성을 나와 탑을 오르기 시작할 때 레이브라는 시종에게서 회담 진행일 까지 4일이 남았다고 들었었다.
이런 숲속 한가운데서 메이저 아르카나들끼리 회담을 진행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아직 [III. 여왕(The Empress)]과 아디나, 나린은
에메랄드빛 강에 주저앉아 빛나는 물고기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꽃에 갇혀버린 날개 달린 사슴을 구해준다거나
이렇듯 벌레에 깜짝 놀라는 아디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 후훗. [III. 여왕(The Empress)]이니까 괜찮답니다? “
그렇게 웃으며 한참을 나아가자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아니.. 그 어떤 것도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고 있는 숲속이었기에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싶지만 [III. 여왕(The Empress)]과 아디나, 나린은 숲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거울 앞에 멈춰 섰다.
“ 다 왔습니다. 쿡쿡.. 나린양. ‘ 차원의 거울 ‘ 을 통과하고 나면 곧바로 아디나양의 표정을 보면 재밌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에요? 오호호! “
[III. 여왕(The Empress)]은 부채를 펼치고 입을 가리며 거울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러나 [III. 여왕(The Empress)]의 생각과는 반대로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아디나에게는 충분히 놀라웠다.
“ ...들어갔어..! 우와..! “
“ ..안전한 거겠지? “
잔뜩 겁먹어있는 아디나의 손을 붙잡고.. 나린이 용감하게 한발 들이밀어 본다.
마치 수면에 발을 담그듯 거울이 울려 퍼지지만 들어가는 데 있어서 무언가 지나쳤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 크하하하하하!! “
“ 읏..! 깜짝이야.. “
거울을 통과하자마자 들린 것은 어느 한 남자의 아주 호쾌한 웃음소리였다.
주위에 네 명의 여자가 거의 헐벗은 채로 안겨있는,
겉보기만 해도 접근하기 싫은 분위기를 폴폴 풍기는 남자였다.
“ 그래. 이렇게 늦게 와야 [III. 여왕(The Empress)]답지! 갑자기 일찍 오면 그것이야말로 의심해야 할거였어! 크하하하하!!! “
“ 후훗. [VIII. 힘(Strength)] 당신도 천한 여자들을 끼고 있는 건 여전하군요. 그래도 다음 생에 남자로 태어난다면 당신처럼 살아보고 싶긴 하네요. “
[VIII. 힘(Strength)]의 주위에 있던 여자들이 자신들을 천한 여자라고 부른 [III. 여왕(The Empress)]을 잠깐 째려보았지만 금세 시선을 거뒀다.
“ 크흐흐흐흐! 그러는 네 녀석도 주위에 여자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는가? 웬일인지 모르겠군그래! 나에게 바치려고 데려온 건가? 마음에 드는데 말이야! “
순간 아디나와 나린이 [VIII. 힘(Strength)]을 째려본다.
시선을 금방 거둬버린 저 여자들과는 다르게 나린이 발끈해서 한마디 하려고 하자 [III. 여왕(The Empress)]이 먼저 선수를 친다.
“ 어머? 제 시종에게 그런 무례한 발언은 쉽게 넘어갈 수 없습니다만? “
“ 확실히.. [III. 여왕(The Empress)]이 다른 인물들을 데리고 나타난 건 처음이군. “
그때 한쪽에서 수많은 신도를 이끌고 어느 한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신도...
한눈에 보자마자 신도라고 느껴졌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 어머. [V. 교황(The Hierophant)]. 오랜만에 뵙는군요. 잘 지내셨는지요? “
여왕이 공손히 인사를 건네자 [V. 교황(The Hierophant)]의 신도들이 뒤에서 조금 더 깊게 고개를 숙였다가 돌아온다.
“ [III. 여왕(The Empress)]다운것은 좋기는 하지만 이 자리는 바쁜 사람들만 모인 자리일세. 바로 시작하는 게 어떻겠는가? “
“ 후훗. 좋지요. “
[III. 여왕(The Empress)]은 여전히 부채를 펼친 채로 예쁘게 인사하고서는 [VIII. 힘(Strength)]이 앉아있는 곳과는 제일 먼 자리에 가서 앉았다.
아디나와 나린은 어떻게 할까 살짝 망설이고서는 지금은 시종으로서 참여한 것이기에 [III. 여왕(The Empress)]의 뒤에 서 있기로 한다.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III. 여왕(The Empress)]과 [VIII. 힘(Strength)] 두 사람뿐이지만 주위에서, 그리고 2층에도, 여러 사람이 이곳을 주목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보았던 숲처럼 각자 자신만의 개성을 또렷이 나타내려는 듯이 이 한가운데 놓인 수많은 의자에는 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 흐아아암... 조금 빨리 해줘... 난 이제 곧 일하러 가야 한단 말이야아... “
“ 으앗..! “
갑자기 머리 위에서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깜짝 놀란 아디나가 짧게 소리 낸다.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아디나에게 쏠린다.
아니.. 아디나의 머리 위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디나의 머리 위에는.. 초승달 모양의 무언가가 떠다니고 있었으며, 그 안에서 어느 한 작은 꼬마가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III. 여왕(The Empress)]도 놀란 듯이 고개를 돌려 아디나의 머리 위를 바라본다.
“ 세상에.. 당신이 이곳에 와줄 줄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죠. [XVIII. 달(The moon)]. 당신의 짝꿍은 오지 않았나요? “
“ 우웅... 응... 걔는 바쁘니까... 나두 이제 곧 달을 띄워야 해.. 하음... “
너무나도 졸려 보이는 이 아이를 [VIII. 힘(Strength)]이 바라보며 크게 웃는다.
“ 큭큭..! 오늘의 달은 늦게 뜨겠구만 그래! 그래도 엄청난 일 아닌가? 항상 메이저 아르카나들의 일에 관심 없던 녀석 중에 한 명이 이곳에 왔으니 말이야! “
[VIII. 힘(Strength)]의 말대로다.
지금의 메이저 아르카나들은 서로 간에 사이가 좋지 않다.
언제 어디서 누군가가 공격해서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배신할지도 모른다.
그 첫 희생양이 자신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III. 여왕(The Empress)]도 지금의 회담에 모두가 참석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 ‘ 탑의 균형 ‘ 그 자체인 메이저 아르카나들 중에 [XVIII. 달(The moon)]이 참여할 줄 상상도 못 했었다.
“ 음.. 그런데 왜 하필 제 시종의 머리 위에 계신 건가요? “
“ 웅..?.. “
[XVIII. 달(The moon)]은 천천히.. 자신이 누워있는 달을 기울인다.
그리고 마치 [XII. 매달린 사람(The Hanged Man)]처럼 달에 거꾸로 매달려 아디나를 바라본다.
“ ..나도 몰라.. 그냥 여기가 편하네... “
그리고는 손을 뻗더니 아디나의 등에 업혀버린다.
“ 으엑..?! “
가볍다.
아니.. 분명 등에 업혔지만 아무것도 업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 ...조금 불쾌한 냄새가 나. 넌.. 나와 동류? “
무슨 말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아디나는 메이저 아르카나를 가지고 있냐는 말처럼 들리는 바람에 살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 에.. 그.. 그건 무슨 말씀이실까요...? “
“ 뭐.. 상관없어.. 얼른 시작해줘.. 안 그러면 여기서 잠들.. 지도.. “
아디나는 살며시 눈을 [III. 여왕(The Empress)]에게 돌려보지만..
[III. 여왕(The Empress)]은 도와줄 마음이 없나 보다.
“ 뭐.. 제 시종이니까 특별하기는 하지요. [XVIII. 달(The moon)]께서 탐내는 것도 이해한답니다. “
말은 이렇게 해도 [III. 여왕(The Empress)]은 이해하지 못한다.
[0. 광대(The fool)]를 소유하고 있는 나린에게 달라붙었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시종들과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아디나는 [III. 여왕(The Empress)]이 보기에 새하얀 외모 말고는 딱히 눈에 띄는 구석이 없었다.
“ 얼른 떨어지세요 [XVIII. 달(The moon)]. “
이번에는 2층에서 울려 퍼지는 근엄한 목소리에 아디나는 깜짝 놀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 자리의 모두가, 아디나의 등에서 눈을 감고 있던 [XVIII. 달(The moon)]마저도 바라본다.
[III. 여왕(The Empress)]은 2층의 인물을 확인하고는 부채 뒤에서 조용히 웃었다.
그래..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저 사람이 없어서는 진행이 안 된다.
“ 어머. 메이저 아르카나들이 모이는 걸 극도로 싫어하시는 당신께서 이 자리에 나오실 줄 몰랐는데요. [XX. 심판(Judgement)]. “
“ 싫어하기 때문에 나온 겁니다. 당신들께서 과거의 죄를 다시 한번 반복할지도 모르니까요. “
과거.
메이저 아르카나를 죽이고, 힘의 균형을 깨뜨린
[X. 운명의 수레바퀴(Wheel of Fortune)]가 저지른 대재앙을 말하는 것이다.
[XX. 심판(Judgement)]도 지금의 베티르가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수준이기는 했다.
물론 그를 막아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다만 [XX. 심판(Judgement)]이 걱정하는 부분은 다른 부분이다.
베티르를 막기 위해 메이저 아르카나들이 모인다.
그들이 힘을 합치고 난 뒤,
베티르를 저지하고 난 뒤.
과연 이들은 예전처럼 다시 멀어질 수 있을까?
다시 교류하지 않고 각자 살아갈 수 있을까?
이미 힘을 한번 합쳐봤는데 두 번이라고 못할까?
[X. 운명의 수레바퀴(Wheel of Fortune)]의 대재앙이 마지막일 줄 알았지만 이후 베티르가 또 한 번 일을 저질렀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도 이런 일이 또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XX. 심판(Judgement)]은 그것을 우려해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다.
[XVIII. 달(The moon)]은 그런 [XX. 심판(Judgement)]의 얼굴을 바라보고 아디나의 옆모습을 한번 바라본다.
그러더니 다시 눈을 감는다.
“ ..제 말이 말 같지 않으신 건가요? “
-부르르르르....
한순간, 이 회장 전체가 아주 조금씩 떨리기 시작한다.
공기가 무거워진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이 회장이 가루로 변해버릴 것만 같은 긴장감이 감돈다.
[XVIII. 달(The moon)]도 그런 분위기를 느꼈는지 인상을 찌푸린다.
그리고 아디나의 목을 감싸고 있던 오른손을 앞으로 뻗는다.
동시에 [XX. 심판(Judgement)]이 손을 앞으로 뻗는다.
아르카나다.
분명 이 자식들은 이 자리에서 아르카나를 뽑아 들고 싸우려고 한다.
아니.. 자기들끼리 싸워도 되는 거야..?!
둘 중 하나가 죽으면 그거야말로 힘의 균형이 무너지는 일 아냐..?!
이런 사소한 거로 진짜 싸운다고?!
-탁.
자신의 입을 가리고 있던 [III. 여왕(The Empress)]의 부채가 접힌다.
아주 조그마한 소리였지만 이상하게도 귓가에 또렷이 들렸다.
그런 기분은 아디나만 느낀 것이 아닌지 한순간 진동이 멈춘다.
“ 후훗. [XX. 심판(Judgement)]이시여. 걱정하지 마시지요. 제가 사는 곳을 잊었나요? [XII. 매달린 사람(The Hanged Man)]과 가까이 있으니 [XVIII. 달(The moon)]과 손을 잡을 일은 없답니다? “
그 순간 [XVIII. 달(The moon)]이 눈을 뜬다.
“ 그 자식 이야기를 한 번만 더 꺼낸다면 너도 죽여버리겠어. “
.. [XII. 매달린 사람(The Hanged Man)]과 [X. 운명의 수레바퀴(Wheel of Fortune)]는 서로 친해 보였는데..
[XVIII. 달(The moon)]과는 사이가 좋지 않은 걸까.
그래서 아디나에게 불쾌한 냄새가 난다고 한 것일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금방이라도 서로를 죽일듯한 이 분위기 속에서 무슨 회담을 진행한다는 것인지..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만 모아놓은 곳에서 이야기가 진행이나 될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III. 여왕(The Empress)]은 이 모든 말들을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웃어넘기고는 하고 싶은 말만을 한다.
“ 후후 죽이든 말든 마음대로 하시면 그만 아니겠어요? 물론 그 전에. 베티르를 죽여야겠지만요. “
이 회장에 들어서고 나서 처음으로 [III. 여왕(The Empress)]의 입에서 베티르라는 인물이 나왔다.
마치 이것이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된 것마냥 회장 안에 감돌던 살기가 전부 사라진다.
이것이 [III. 여왕(The Empress)]의 힘인지.
아니면 베티르가 또다시 몰고 온 대재앙의 힘인지는 모르겠다.
- 작가의말
아르카나의 한글 명칭은 진행에 맞게 임의로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영문은 타로카드명칭 그대로 적어놓았기 때문에
한글이름과 영문이름에 조금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부분이 불편하시다면..
죄.. 죄송....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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