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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추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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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추리
작품등록일 :
2020.05.22 19:09
최근연재일 :
2020.06.0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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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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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7,996

작성
20.06.0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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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6. 만날 사람

DUMMY

16. 만날 사람



시원은 구석에 앉아서 소머리국밥을 맛있게 한 그릇 뚝딱 먹어치웠다. 어머니 말처럼 할머니의 솜씨는 녹슬지 않고 그대로였다.

서울에서 이런 국밥집을 열면 돈을 긁어모을 수도 있는 맛이었다.

눈에 띄지 않게 구석에 앉아서 최대한 조용히 밥을 먹었지만 시원의 행색은 눈에 안 띌 수가 없었다.

군산댁 할머니는 희한한 물건 구경하듯 시원을 슬쩍 슬쩍 쳐다보았다.

물을 마시던 시원이 그런 할머니와 시선을 대놓고 맞추며 싱긋 웃었다. 그리고 한 마디 던졌다.


“할머니, 우리 어머니 말씀대로 국밥이 맛있네요.”

“모친이 뉘신디?”

“······.”


시원은 빙긋 웃고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려고 지갑을 꺼냈다. 할머니가 일어나 카드계산대 앞으로 돌아가서 서자, 시원은 현금을 냈다.

내면서 손에 들고 있던 작은 봉투를 할머니의 손에 쥐어 주었다.


“어머니께서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국밥이 맛있네요. 이따 오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이것이··· 뭔디?”


시원은 대답 하지 않고 가볍게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갔다. 시원이 나가고 난 다음에 할머니는 봉투를 열고 안을 보았다.

봉두 안에는 삼청동 봉쉐리빵집의 계란카스테라가 들어있었다. 군산댁 할머니가 서울 살 때 가장 좋아하던 것이었다.

할머니는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가 시원을 찾았다. 그러나 금세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시원은 재빨리 가게 뒤 골목으로 들어가 주변 탐색을 시작했다. 죽은 조계식의 보안담당이던 김 실장이 여긴 왜 나타났을까 생각하며 눈은 구석구석 살피며 걸었다.


그때 변장미에게서 문자가 왔다.


[김 실장이 차선주를 찾으러 군산으로 갔다고 합니다. 차선주 모친의 고향이랍니다.]


차선주와 군산댁 할머니가 관련이 있다? 할머니가 차선주를 숨겨주고 있나?

그렇다면 차선주는 살아있다는 뜻이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계속 걷다보니 언덕길에 접어들었다. 시원은 아무 생각 없이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위쪽에 작은 절이 있다는 표시판이 보였기 때문에 구경삼아 걸음을 이어갔다.

늦은 가을바람이 차갑게 불었다.

올라가는 길에 허름한 집들이 보였지만 사람이 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지방은 방치된 빈집이 많다고 들었는데 사실인 것 같았다.


좁은 오솔길을 오르는데 멀리서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그 오토바이 소리는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고 어쩐지 이쪽으로 곧바로 달려오고 있는 듯 했다.


누가 배달을 시켰나? 설마 스님들이 자장면을 시켜먹는 건 아니겠지?


시원은 관심을 접고 계속해서 위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그 시각 군산댁 할머니는 의자에 앉아 멍한 얼굴로 시원이 주고 간 봉투를 보고 있었다. 한 무리 손님들이 다 빠지고 잠시 가게가 한산한 상태였다.

할머니가 그 카스테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미래그룹의 외동딸 나이주.


그 댁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나이주 때문이었다. 오래 전 군산댁이 군산의 해안가에서 작은 민박집을 하고 있을 때, 서울서 촬영 팀이 나타났다. 비도 오고 날씨가 변덕을 부려 군산댁의 민박집에서 일행이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그 때 군산댁의 음식솜씨에 반해 몇 달 뒤 나이주가 다시 나타났다.

과부였던 군산댁은 그렇게 서울로 올라와 나이주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서울에 올라와서야 그 집이 미래그룹 총수의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르르릉! 식당 안의 오래된 다이얼 전화기가 울렸다. 상념 속에서 빠져 나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할머니. 방금 전 다녀갔던 사람입니다. 여기 경치 좋네요. 할머니께 여쭙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어서요. 시간을 좀 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기··· 조용하고 좋네요.

“······. 사모님은 무탈 하신가요?”

- 그럼요. 드라마도 하시고 예능까지 나가시던데요? 에너지가 넘치시죠.

“오후에 점심 장사 마치면··· 전화번호 좀 불러 봐요.”

- 봉투에 명함을 넣어두었습니다. 전화 주십시오.


군산댁은 전화를 끊고 봉투 속의 카스테라를 들어 보았다. 그러자 바닥에 명함이 하나 있었다.



* * *



우주 그룹의 회장실 문이 열리고 봉식이 쭈뼛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불호령이 떨어졌다.


“너 뭐하는 놈이야!”


동시에 조 회장이 들고 있던 서류철이 비장하게 날아가 봉식이 이마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봉식은 서둘러 흩어진 서류들을 주워 책상에 올려놓고 고개를 푹 숙였다.


“허 의원 딸을 그렇게 따돌리고 간 데가 술집이냐?”

“아버지··· 그 여자 싫습니다. 제가 왜 그런 여자랑···.”


다시 그 서류철이 봉식의 얼굴로 날아갔다. 이번엔 펼쳐지지 않고 비수처럼 날아가 이마를 팍 찍었다.


“아버지··· 싫은 결혼을 어떻게 합니까? 정략결혼도 아니고. 큰 형은 연애결혼 받아 주셨으면서.”

“그래서? 지금 연애하는 여자라도 있다는 거냐?”

“아니요.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하여튼 그 여자는 싫습니다. 못 생긴 게 잘난 척만 오지게··· 재수 없다고요.”


조 회장은 봉식의 멍든 얼굴을 보자 뚜껑이 열렸다. 술집에서 싸움질까지 하고 다니는 아들의 모습은 인내심의 경계를 허물어뜨렸다.


“너. 그 결혼 안 하면 해고야. 집에서도 나가. 나가서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

“아버지!”

“여러 말 할 것 없어. 나가.”

“아버지! 비즈니스 호텔 체인 사업 저 주시기로 하셨잖아요.”

“내가 언제?”

“계식이가 없으니까 저한테 넘기신다고···.”

“그 사업은 계식이가 기획한 거고 검토 중이야.”

“그 기획서 다 봤고요. 세부 사항도 제가 팀을 짜서 하면···.”


조 회장은 손을 들어 봉식의 말을 막았다.


“필요 없어. 이미 내가 다 진행하고 있어. 나가. 내일부터 출근 안 해도 돼.”


봉식은 쫓겨나듯 회장실을 나왔다. 안 그래도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인데 아버지까지 저러시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에잇! 시발! 되는 일이 없어! 다 그 새끼 때문이야!”


봉식은 자기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 때도 그랬다.

시원과 얽히면 되는 일이 없었다. 아주 오래도록 재수 없었다.

봉식이 가장 싫어하는 패배감을 선명하게 안겨주며, 해소되지 않는 분노감까지 덤으로···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죽여 버리고 싶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손에 잡히는 것은 죄다 집어 던졌다. 꽃병이 날아가고, 책장의 책들이 날개를 푸드득 거리며 공중에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사무실이 아수라장 전쟁터가 되고 있는 데··· 비서실의 왕 비서는 손톱정리에 푹 빠져 있었다.


“왕 비서! 왕 비서!”


왕 비서는 부르는 소리가 들려도 계속 손톱 손질을 하며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그러다 봉식이 문짝에 뭔가를 던져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왕 비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문을 벌컥 열었다.


“왜요?”

“부르면 바로 튀어 와야지. 개 썅! 너까지 나 무시하냐? 콜라 가져 와.”


그럴 줄 알고 왕 비서는 손에 이렇게 커도 되나 싶을 정도로 큰 컵을 들고 있었다. 물론 얼음과 콜라가 한 가득 들어있는 것으로다가.


“여기 있어요.”


봉식은 컵을 받자마자 걸신들린 거지처럼 벌컥벌컥 들이켰다. 속이 천불이 나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아무리 때려 부셔도 화풀이가 되지 않았다. 속만 더 답답하고 머리만 더 복잡해졌다.


“그 새끼를 어떻게 죽이지? 죽여야 되는데··· 안 죽이면··· 내가 열 받아서···.”


봉식이 혼잣말을 하는데 왕 비서는 손가락으로 코를 후비며 말했다.


“참나.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다 눈 흘기는 격이네. 엄한 데다 화풀이는?”

“뭐? 니가 지금 죽고 싶어 환장을 했지?”

“그렇잖아요. 그 검사님이 뭔 상관이래요? 상무님은 국회의원인가 뭔가 그 딸이랑 적당히 데이트나 해주면 되는데 그걸 안 하니까 이 난리죠?”

“이게 미쳤나. 결혼이 장난인 줄 알아?”

“에이··· 당장 결혼 하래나? 시간 질질 끌다가 그 쪽에서 질려서 떨어지게 만들면 되는 거지. 뭘 그렇게 고지식하게.”


듣고 보니 일견 일리가 있다. 저 비서 년은 솔깃한 말을 항상 싸가지 없이 한다.


봉식이 발광을 멈추었다. 그리고 뭔가 생각하는 눈치였다.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로 심오하게도 생각한다.


“흠. 그럼 여기 좀 치워 놔. 나 사우나에 있을 테니까. 한 시간 뒤에 백화점에 갈 거야.”


눈탱이 밤탱이 몰골로 백화점엘 가시겠단다. 왕 비서는 봉식이 나간 뒤 사무실 바닥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 * *



시원은 언덕 꼭대기에 있는 작은 절에서 바닷가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절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시원하게 보이는 풍경과 아기자기 소담스럽게 꾸며 놓은 절은 썩 마음에 들었다.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한가하게 풍경만 흔들리고 있었다.


풍경이 물고기 모양이군··· 군산은 박대구이를 먹어야 하는데.


박대 생각을 하며 침을 꿀꺽 삼키는데 옆에 허연 덩어리가 와서 스윽 기댄다. 무심결에 돌아보다 조금 놀랐다.


“기척을 해야지. 녀석.”


소머리만한 얼굴을 들이대며 혓바닥을 내밀고 거대한 엉덩이를 흔들고 있는 것은 하얀 개였다.


이렇게 큰 개를 풀어두면 위험하지 않나? 보기에 순해 보이기는 하지만···.


시원의 걱정과 달리 하얀 개는 사람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았다. 연신 꼬리를 흔들며 하얀 앞발로 시원의 허벅지를 두드려 쓰다듬어 달라는 시늉을 하였다.

시원은 녀석의 성화에 못 이겨 돌계단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때 도일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도일. 왜?”

- 나 지금 군산에 도착했다. 어디냐 지금?

“여기? 군산집이라는 식당 근처의 절인데··· 너 안 바쁘냐?”

- 요즘 시간 여유 있어. 그래서 하루 휴가 냈다. 수진이 새끼가 가보라고 생난리를 치고.

“그래. 같이 박대구이 먹자.”


전화를 끊고 먼 하늘을 보았다. 오늘은 하늘이 맑고 구름 한 점 없었다. 조금 그렇게 앉아서 하얀 개를 쓰다듬고 있으려니 덩··· 덩··· 하고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절의 점심 공양 시간인 모양이었다.


한편 절 아래 있는 군산댁 할머니는 점심 장사를 시작해서 식당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김 실장 떨거지들도 다시 안 오나 싶었는데 어디선가 점심까지 먹고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식당에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군산댁 할머니는 바쁘게 일하면서도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차선주가 어디론가 잘 떠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건달 놈들이 지키고 있어도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이윽고 군산댁 할머니가 얼추 점심 장사를 마치고 가게는 다시 적막 속에 잠겼다. 할머니는 서둘러 가게 문을 닫았다.

할머니가 가게 문을 닫자 앞에 진을 치고 있던 김 실장과 건달들은 손바닥을 털면서 시비를 걸었다.


“욕쟁이 할망구? 어디 가시나?”

“알아 뭐해. 썩을 놈들. 비켜.”


할머니는 그놈들이 줄줄이 따라오는 것도 아랑곳 않고 시원을 만나기 위해 언덕 위에 있는 절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원의 명함을 보니 검사였다. 무지렁이 노인이었지만 검사가 무엇인지는 알았다. 저런 양아치 놈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존재가 아닌가.

할머니는 허리를 펴고 당당하게 걸어갔다.


그 때 언덕 위에서 시원이 전화를 받으며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어. 그래. 도일아. 그 식당 뒷길이 있는데 두 갈래 길이야. 오른 쪽으로 올라와. 내가 내려갈 테니까 중간에서 만나.”


도일은 시원이 말하는 언덕 아랫길 입구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위쪽을 향해 언덕길을 올랐다.

인적 드물고 빛바랜 낡은 지붕들 사이로 여기 저기 쪼개진 시멘트 길이 하얗게 반짝거렸다. 걸어가는 동안 사람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개 짖는 소리조차 없는 것으로 보아 빈집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때 뒤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발소리가 들려왔다.

절에 올라가는 사람이 자신만은 아닌 모양이다 생각하고 서둘러 걸었다.

한참을 그렇게 걸었을까? 어느 순간 확 트인 언덕배기 중간 쯤 다다랐을 때, 저 위에서 손짓하는 시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일아! 여기. 위에 절이 있어.”

“그래. 근데 절에서 뭐해?”

“만날 사람이 있··· 어!!”


그때 시원의 얼굴에 오묘한 표정이 나타났다. 동시에 도일도 고개를 돌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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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만날 사람 20.06.04 28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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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 친절한 왕 비서 +1 20.05.30 59 2 12쪽
10 10. 보물 찾기 20.05.29 3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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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 뜨거운 피 20.05.27 49 3 11쪽
7 7. 죽음의 동기 20.05.26 54 2 12쪽
6 6. 의심이 취미 20.05.25 45 3 13쪽
5 5. 어두운 창고의 추억 20.05.24 62 4 13쪽
4 4. 봉식이 동생 계식이 +2 20.05.23 66 4 14쪽
3 3. 단순한 건 재미없지. +1 20.05.22 92 3 15쪽
2 2. 선수 모집 20.05.22 105 6 13쪽
1 1. 죽음을 부르는 검사 20.05.22 153 1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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