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연재수 :
136 회
조회수 :
358,746
추천수 :
9,781
글자수 :
946,637

작성
21.05.20 11:00
조회
5,702
추천
124
글자
12쪽

2. 여기 연금술사 님 등장 [4]

DUMMY

아무런 지식도 없는 일우였지만, 스카웃 덕에 의뢰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


[로마조, 다년생 약용식물. 회복 계열의 의약품 제조의 기초 소재로 활용되는 식물. 가공법에 따라 특정 약효의 효용성을 증가시킴.]

“일단 허접한 연금술사 사칭꾼에서 그럭저럭 모양은 내는 연금술사 짓은 가능하겠네. 이거 좀 뽑아다 바치면 대충 할 줄은 아는 놈이다 싶겠지.”


탐색으로 찾아낸 로마조를 캐낸 일우는 문득 떠올랐다는 듯 중얼거렸다.


“······CIS 전투스킬이 작동한 거 봐선, 생활스킬도 되는 거 아냐? 크래프팅 메뉴.”

[인접 설비 감지되지 않음. 제조 환경, 제한적.]

“소재가 없어서 못하겠네. 재료를 무슨 수로······ 잠깐, 이 동네 조합식도 모르니 재료 구해도 못 만들잖아?”

[조합식, 현재 보유 재료, 조합식 검색 중. 완료.]

“아, 조합식을 불러올 수도 있구나. 근데 조합은 안 되네.”

[소재 불충족.]

“······하긴, 진짜 세계라면 유리병도 없는데 약병에 든 치료약같은 걸 어떻게 만들겠니.”


여기가 게임이 아닌 다른 세계라는 걸 새삼 깨달은 일우는 그 말을 중얼거리다, 이내 다른 것을 떠올렸다.


“어, 잠깐만? 혹시 성분 추출만 해도 되지 않아?”

[성분 추출 레시피 확인. 사용 불가.]

“안되네.”

[필요 시설 불충족.]

“어? 되나?”

[해당 레시피 사용 가능 설비 기록 조회. ‘길드 건물’ 내부.]

“좋아. 그러면 돌아가서 되나 안 되나 한 번 시험을 해 보자고.”


약초를 챙겨든 일우는 곧바로 길드 건물로 돌아가 주머니를 내밀었다.


“옛다, 여기 너희들이 원하던 바로 그 약초. 요새는 로마조라고 부르는 그거.”

“기초적인 약학 지식은 가지고 있나보네요.”

“아니면 운이 좋거나.”


세리카와 길드마스터의 냉담한 반응에 일우는 왠지 욱하는 기분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이건 길드 쪽의 자격을 충족한 사람을 다시 한 번 가지고 시험을 하는 것이다. 불만이 있거나 마음에 안 들면 그냥 결격사유를 대며 떨어뜨리면 그만이다.

일우는 미간을 구기며 세리카 쪽을 향해 얼굴을 들이댔다.


“그쪽이 연금술 좀 하는 아가씬가? 응? 날 갖고 한번 간보려고 하는 쪽이 그쪽이야?”

“윽!”

“연금술사라면 있겠지? 개인 실험실이나 제조대.”

“이, 있습니다만······ 그게 무슨 상관이죠?”

“못 믿을 것 같으니 응용법도 보여주지. 연금술사 짓거리를 하는지, 연금술사 님인지.”


윽박지르듯 말하는 일우의 태도에 세리카는 움찔거리면서 길드마스터를 돌아보았고, 턱짓을 본 세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길드의 제조소에 들어선 일우는 연금술 작업대 앞에 섰다.


[인접 설비 유형, 생화학 처리 가공장치. 설비 수준, 평범.]

“생각보다 썩 괜찮은 장비는 없지만······ 뭐, 내 거 아니니까.”

“으윽.”


일우는 그렇게 중얼거린 뒤 양 손을 들어올렸다.


“그럼 어디 한번······ 솜씨를 좀 보여줄까. 뭘 해볼 수 있을지 한번 보자고.”

[조합식 확인.]

“흐음, 일단 성분부터 정제해볼까.”

[성분 정제, 개시.]


일우의 명령어를 인식한 스카웃이 작동하자, 일우의 손은 저절로 움직여졌다.

잠시 뒤, 설비 위에 놓인 약그릇에는 분리 정제된 색색의 가루들이 쌓였다.


[성분 정제, 성공적. 회복 강화인자, 저항력 강화인자, 해열. 진통인자 확보.]

“대체 무슨 수로······.”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던 세리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말을 중얼댔지만, 일우는 보란 듯이 대꾸했다.


“이거야말로 연금술사의 기술이지. 아----주 기초적인 기술. 숨쉬기 수준이지. 못하면 죽어야지. 암.”

“······세리카, 자네 의견은 어떤가?”

“이, 일단······ 저건 제가 알기론 정제기술이긴 합니다. 다만······.”

“다만?”

“저런 방식은······.”

“아, 아? 옆에서 자꾸 떠들면 혼쭐을 내줄테다? 응? 어디 연금술사 님께서 연금술을 하시는데 떠들어? 어?”


진짜 연금술사인 세리카가 무어라 말을 꺼내려던 걸 윽박지르기로 틀어막은 일우는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도록 손을 움직였다.


“좋아. 이걸로도 연금술사인걸 못 알아보나본데, 재료도 있으니 회복제라도 만들어줘 봐야겠군. 핫챠! 간다!”

[제작 결과물, 외상회복제. 등급, 낮음.]

“쨘! 어머나? 약이 나왔네? 아이고, 연금술사도 아닌 사람이 약을 만들어 버렸네에?”


무슨 방법인지는 모르지만 일우는 두 사람의 눈앞에서 이리저리 손을 움직여 훌륭한 약을 만들어냈다.

더 이상 연금술사라고 주장하는 걸 반박할 증거가 없자, 세리카나 길드마스터 모두 입을 다물었다.

의기양양하게 회복약을 흔들어 보인 일우는 이내 미간을 좁혔다.


“아? 혹시 의심하니? 이게 회복약이 아니라 사기 치는 거라고?”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만······ .”

“좋아! 이러면 되겠군!”


일우는 그렇게 말한 뒤, 작업대 위에 놓인 나이프를 집어 들어 자신의 손바닥에 날을 가져갔다.


“지, 지금 뭐 하시는 건가요?”

“약효를 보기 위한 제일 빠른 방법이 뭔 줄 아니?”


화들짝 놀라는 세리카에게 히죽 웃어준 일우는 나이프로 자신의 손바닥을 그었다.


“써보는 거야.”


말릴 틈도 없이 자신의 손바닥을 나이프로 그은 일우는 곧바로 회복약을 손바닥에 쏟았고, 얕은 상처는 회복약으로 씻어버리듯 나아버렸다.

멀쩡해진 손바닥을 드러내 보인 일우는 히죽 웃었다.


“자, 이 정도 보여줬으면 연금술사라는 명함 달 만 하지? 어때?”

“······.”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확실히 실력은 있는 사람이에요. 약초에서 두 가지 이상의 성분을 분리 정제하는 건 중급 이상에서나 볼 수 있는 실력이니까.”


세리카가 어렵사리 말을 꺼내자, 길드마스터는 일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일우가 기대한 대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신을 더 믿기 어렵군.”

“아니 왜? 보여줬잖아? 연금술사라니까?”

“대놓고 눈앞에서 그런 인체실험을 하는 사람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지?”

“내 손 내가 그었는데 뭐.”

“이번엔 자기 몸이지만, 다음엔 남의 몸에 해를 입히고 효능을 보여줄 수도 있겠지.”

“그럼? 치료약 효능을 뭘로 증명해?”

“우리에게 맡기면, 환자에게 줬겠지.”


그 말에 일우는 혀를 찬 뒤 손을 내저었다.


“알 게 뭐람. 난 보여줬고, 너희들이 안 믿어도 난 연금술사인건 변함없어. 고로 난 연금술사 확정!”

“······.”

“자빠져서 무릎 까진 거로 엉엉 울 것 같은 꼬맹이들아, 잘 있어라! 핫하!”


당당하게 길드 건물에서 나온 일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너무 오버했나.”

[대상 설득 실패. 사유, 과도한 역할몰입.]

“아냐, 원래 잡은 노선이 또라이 연금술사니까 이게 정상이야. 혹시라도 나중에 여신이나 다른 떨거지들이 추적할 때를 생각하면 이게 맞아.”

[사고회로 계산 중. 계산 불가능.]

“게임판타지 같은 데에서 정체가 밝히면 곤란한 캐릭터는 보통 정체를 숨기지, 사방팔방에 ‘나는 맛이 갔다!’ 라고 대놓고 드러내진 않거든.”


추적에서 피해야 할 주요 대상, 그 네 명의 판타지 게이머들은 어느 정도 이런 흐름의 전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고로 그 정석에서 피하려면, 약간의 트러블은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걸 깔아둬야 나중에 실수로 여기 세계관이랑 살짝 안 맞는 행동을 해도 다들 그러려니 넘어갈 걸. 아, 쟤는 또라이니까 저럴 수도 있겠네.”

[사고회로 재계산 완료. 가능성, 높음.]

“좋아, 그럼 또라이 된 김에······ 다른 것도 더 실험해보자.”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면 후회하기보다 대안이나 향후의 전략을 짜는 게 낫다.

그 생각을 하며 일우는 광장에서 공방 거리에 들어선 뒤, 용광로가 보이는 건물로 들어섰다.


“이봐! 여기 설비 빌리는데 얼마면 돼?”


공방의 장인은 벽면 한쪽을 가리켰고, 거기엔 시설 이용료가 적혀있었다.

여신이 던져준 푼돈으론 어림도 없는 가격이었다.


“······돈 벌고 다시 올게.”


다시 길드로 돌아온 일우는 곧바로 접수원 넬리를 향해 얼굴을 디밀었다.


“으윽!”

“치료약 납품 의뢰 전부 내놔! 외상, 내상, 감기약, 진통제, 해열제, 가리지 말고 싹 다!”

“예?”

“아, 탈모약 같은 건 빼고. 부모님한테 물려받은 본성을 뜯어고치는 건 안 되지. 암!”

“이, 일단 접수는 의뢰게시판에서 확인하고 가능한 것을 모아서 저에게······.”

“아, 거 더럽게 까탈스럽네. 그냥 하지.”


구시렁대며 의뢰 게시판으로 향한 일우는 의뢰를 찾기 위해 둘러보았지만, 모든 의뢰는 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뭐야, 왜 조건이 다 안 돼. 색맹인가?”

“초급 치료약 의뢰는 신참들을 위한 의뢰니까요.”


어느 새 등 뒤에 선 세리카의 말에 일우는 눈을 마주쳤다.


“여기 있는 신참이 자격이 안 되는데?”

“그렇게 잘났다는 걸 보여줘 놓고 초짜들 일에 손을 대시려는 겁니까?”

“좋아! 까짓 거 다른 거······도 안되잖아?”

“당신을 신뢰할 수 없다는 마스터의 지시로 당분간 토벌 의뢰를 맡으실 순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일우는 볼썽사나운 표정으로 2층 난간에서 팔짱을 낀 길드마스터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모험가 길드의 신분증을 획득하는 게 목적이었고, 신분증이 있는 이상 굳이 의뢰를 맡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대놓고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골탕 먹이려는 저놈의 길드마스터의 태도는 결코 넘어갈 수 없었다.


“좋아, 그러면 난 뭔 짓을 해서 그놈의 신뢰를 쌓아야 하지? 응? 춤이라도 춰 드려? 어?”

[소셜 퍼포먼스, 댄스 메뉴 로드.]


일우가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에 반응한 스카웃이 CIS의 커뮤니티 메뉴 중 하나인 춤 모션 메뉴를 불러왔고, 일우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움직였다.


“좋아! 신뢰와 친목을 위한 사교에는 춤이 최고지! 댄스!”

“······.”

“워우! 보여? 이봐, 친구들! 여기 새로 등록한 모험가가 있다구? 내 춤 어때? 끝내주지 않아? 어?”


뜬금없이 길드 집회소에서 춤을 춰대는 일우의 모습에 지나가는 다른 모험가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세리카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실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신 분이 그런 볼썽사나운······.”

“아, 그래서 반말에서 그런 애매한 말투로 바뀐 모양이로군? 근데 그러면 뭐해? 미덥지가 못하다는데! 워후! 신나는구만!”

“······.”

“아무튼 난 갈 거야! 못 믿겠다는 길드에서 일거리를 못 구하면 나가는 수밖에 없거든! 잘들 있으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휘파람과 환호, 거기에 몇몇 모험가들의 한심한 눈초리를 동시에 업은 채 일우는 춤을 추며 길드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다.

춤을 멈춘 일우는 팔짱을 끼며 이 상황에 대해 짤막하게 정리했다.


“좋아, 어차피 긴 싸움이 될 거니까 겸사겸사 즐거운 일도 하자고. 오는 시비 안 마다한다. 정면으로 받아주마.”

[추가 목표 설정 중.]

“길드마스터를 골탕 먹이려면 어떤 방식이 좋을까? 물론 내 명성이나 악명 같은 거 없이, 깔끔하게 쟤만 엿 먹는 거.”

[답변 불가. 정보 불충족.]

“······당분간 여기 머무르면서 그놈 골려먹을 방법 찾고, 골려준 다음에 뜨자고. 겸사겸사 상위 네트워크 접속할만한 방법도 찾고.”

[확인. 현재 목표, 정보 수집.]


그렇게 일우의 복수 리스트에 한 사람이 추가되었다.


작가의말

원래 세상살이가 다 그런 겁니다. 잘 하다가 오버해서 조지는 일은 심심찮게 벌어지죠.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지 잘못이라고 생각 안합니다. 원래 극한상황에 내몰린 사람은 좀 이기적인 법이니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난 당하고는 못 살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1] +6 21.05.27 4,939 117 14쪽
16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6] +3 21.05.26 5,016 119 15쪽
15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5] +5 21.05.25 5,161 122 14쪽
14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4] +9 21.05.24 5,380 126 16쪽
13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3] +9 21.05.23 5,363 125 15쪽
12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2] +5 21.05.22 5,498 127 15쪽
11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1] +4 21.05.21 5,621 134 14쪽
» 2. 여기 연금술사 님 등장 [4] +7 21.05.20 5,703 124 12쪽
9 2. 여기 연금술사 님 등장 [3] +4 21.05.20 5,924 118 13쪽
8 2. 여기 연금술사 님 등장 [2] +4 21.05.19 6,029 129 10쪽
7 2. 여기 연금술사 님 등장 [1] +5 21.05.18 6,548 120 11쪽
6 1. 어서오세요 용사님들. 너는 빼고. [3] +5 21.05.17 7,099 133 12쪽
5 1. 어서오세요 용사님들. 너는 빼고. [2] +5 21.05.17 7,320 129 11쪽
4 1. 어서오세요 용사님들. 너는 빼고. [1] +22 21.05.17 8,032 127 13쪽
3 0. 이 사람은 건드리지 마세요 [2] +7 21.05.17 9,601 116 8쪽
2 0. 이 사람은 건드리지 마세요 [1] +6 21.05.17 14,918 131 15쪽
1 [프롤로그] +7 21.05.17 17,735 187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