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연재수 :
136 회
조회수 :
358,748
추천수 :
9,781
글자수 :
946,637

작성
21.05.17 13:17
조회
7,320
추천
129
글자
11쪽

1. 어서오세요 용사님들. 너는 빼고. [2]

DUMMY

싱그러운 신록 사이로 조각조각 보이는 푸른 하늘.

녹색과 갈색, 회색이 번갈아 뒤덮인 바닥에 일우는 드러누워 있었다.


“······썩을 판타지쟁이들. 총게임 무시하네.”


여신 누아즈의 손길로 일우는 추방되었고, 스탈리스 대륙의 낯선 땅 어딘가에 와버렸다.

잠시 심호흡을 하며 스스로를 다스린 일우는 이내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투덜댔다.


“젠장, 아무것도 모르는데 떨군다고 뭐 해결되나? 가진 것도 없구만.”


그 말에 화답하듯, 일우의 곁에 금속 조각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딸그랑, 짤강, 짤락.


허공에서 뱉어내듯 나타난 동전들 위로 작은 쪽지가 팔락거리며 내려앉았다.


-예정에 존재하지 않는 자여, 당신의 모험에 도움이 되고자 작은 선물을 보내드립니다. 지구로 돌아갈 그 날까지 온전히 자유로운 당신의 모험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여신 누아즈.


써진 내용을 확인한 일우는 쪽지를 잡은 뒤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놀리냐? 어?!”


울분을 종이에 풀은 일우는 한숨을 깊게 내쉰 뒤 이 상황을 나름 해석하려 애썼다.


“꿀잼이벤트겠지. 만우절 스크립트 유출이거나. 좋아, 그거면 받아들일만하네. 웃겼어. 음, 웃겼다고.”


하지만 별로 도움 되지 않는 생각이었다.

NDC 사용자는 시선의 우측 상단에 항상 NDC 사용을 확인할 수 있는 표식을 볼 수 있다.

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하기 위한 장치로, 접속 불량이나 연결이 끊어져도 장치를 쓴다면 무조건 나타나는 표식이었다.

그렇기에 일우는 이게 현실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지들끼리만 꿀잼이벤트 하고. 판타지 뉴비같다고 따돌리고. 나쁜 새끼들.”


주저앉은 채 잠시 말문이 막힌 일우는 일단 뭐라도 할 수 있는 걸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스카웃, 로드.”


SCOUT, 일우가 플레이하던 게임 속 인터페이스의.

정식 명칭은 State Computer Outdoor Unit Terminal, ‘국영 연산장치 야외 입력 단말기‘다.

CIS 세계관 설정에서는 국가 소속 요원인 플레이어가 국가의 거대 연산기관의 오퍼레이팅 보조를 맡고 있다.


“······될 리가 있나. 단말기인데.”


단, 단말기인지라 연결이 끊기면 먹통이 되는데, 던전이나 PvP에서 장비교체나 스킬 세팅을 제한하기 위한 설정이었다.

일우는 한숨을 푹 내쉬며 왼손에 시계처럼 생긴 디바이스를 바라보았다.


[접속 불량 : 주 연결망 두절]


“망했네. 이놈의 동전 빼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잖아. 스카웃 꺼지면 장비교체고 인벤토리 확인이고 아무것도 안 되는데. 무기도 수납했으니 못 꺼내고.”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되지 않았다.

일우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세계에 가진 것 없이 내버려졌다.


“돌겠네 진짜······.”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쉰 일우는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무릎을 짚고 일어서며 팔을 휘적거리던 도중, 우연찮게 근처에 있던 나무에 왼팔을 부딪쳤다.


“아우 씨. 이젠 내 몸도 제대로 못 움직이냐.”


부딪친 부분은 디바이스가 채워진 손목이었다. 일우는 무심결에 손목 부분을 주무르려다 디바이스를 건드렸다.

그 때, 디바이스가 반응하듯 신호음을 냈다.


[삐빅.]

“아휴, 이건 꺼야겠다. 이거 뭐 작동도 안 되는데······.”

[주 연결망 단절 상황 확인, 비상 가동 절차 개시. 독립형 비상 프로세서 온라인, 시스템 상태, 대체 네트워크 검색.]

“어?”


갑자기 반응하기 시작한 디바이스에서 스카웃의 음성이 나오자, 일우는 멀거니 디바이스가 채워진 왼손을 얼굴로 가져갔다.


[서브플랜 A, 실패. 사유, 접근 제한 긴급신호 확인. 서브플랜 B, 실패. 사유, 데이터베이스 손상 감지. 서브플랜 C, 성공. 대체 네트워크 상태, 안정적. 인공지능 허용 수준 재설정, 완료.]

“뭐야? 돌아가? 이게 뭔 일이래?”

[대체 네트워크, 매직 스트림 접속 완료. 작동 안정화를 위한 데이터 로딩 개시.]

“근데 이게 뭔 소리야? 아까 부딪쳐서 고장 났나?”


일우는 그 말을 중얼거리며 디바이스를 조금 전처럼 나무에 몇 번 가볍게 쳤다.


[경고, 비상 작동 절차 중 물리적 충돌 확인. 사용자는 SCOUT의 안정적인 작동 환경을 확보하십시오.]

“아, 가만히 있을게.”


경고를 들은 일우는 팔을 멈추고 디바이스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알림, 상위 네트워크 발견. 주 네트워크로 재설정······ 오류, 상위 네트워크, 접속 불가. 사유, 보안등급 요건 불충족.]

“상위 네트워크? 보안?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매직 스트림 어쩌고 하던데······ 근데 네트워크가 여기도 있다고?”

[연결된 네트워크와의 최적화 완료. SCOUT, 온라인.]


디바이스가 정상작동이 된다는 메시지를 보내자, 일우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디바이스를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 진짜 되나?”

[SCOUT, 명령 대기 중.]

“지역 정보.”

[현 위치. 스탈리스 대륙, 왕국 세론, 카이엔 행정구역, 가장 가까운 도시 지역, 3.1km]

“안전구역까지 뜨는 거 봐선 돌아가는 건 맞나보네.”


디바이스의 기초 기능인 지역 정보 불러오기가 된다는 걸 확인한 일우는 조금 전 언급된 매직 스트림 네트워크를 떠올렸다.

네트워크가 있다면, 정보를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다.


“정보, 스탈리스 대륙.”

[게임 ’Crisys In State’의 개발 엔진인 ‘스탈리스 엔진’의 명칭이 유래된 지역. 대륙 넓이······.]

“그만. 텍스트로.”


그 말에 응하듯, 디바이스는 곧바로 장문의 문서를 허공의 스크린에 띄웠다.

엄청난 양의 텍스트를 꾸준히 읽은 일우는 현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했다.


“좋아, 여긴 다 망해가는 세계인데 뭔지 모를 위협이 있어. 그걸 막자니 여기 힘으론 딸리니까, 남의 힘으로 해결하려 한 거네. 그 수단이 NDC였고, 이걸 지구의 어떤 놈에게 아이디어를 잡아넣어서 열나게 만들어서······ 낚인 거네.”


일우는 다시 엉덩이를 바닥에 걸친 뒤 연이어 스탈리스 대륙에 대한 정보들을 불러와 읽어갔다.

한참을 읽은 일우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스탈리스 엔진 통합 세계관이랑 판박이잖아? 한 바다 위에 각자 대륙들 있는 거.”

[긍정. 스탈리스 엔진의 목적, 스탈리스 대륙의 정보 습득 과정을 포함함.]

“어쩐지. 다른 게임들끼리 캐릭터 데이터 공유가 가능하다고 한게 그것 때문이구나. 어차피 원본이 같으니까. CIS 빼고.”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엔진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계략이니, 스탈리스 엔진이 전용 서버를 필요해서 그렇다니 하는 낭설이 있었지만 진실은 하나였다.

이곳에 보낼 사람을 선정하고 사전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모든 게임이 상호 호환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일우가 플레이하는 CIS만 빼고.

턱을 괴고 그 생각에 빠져있던 일우는 문득 디바이스가 언급한 네트워크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상위 네트워크가 있다는 건, 이것보다 더 많은 정보가 있을 거 아냐?”

[긍정.]

“어쩌면 그 신인지 뭔지 하는 망할 양반이랑 비슷한 힘을 쓰는 통로일 수도 있고.”

[정보 검색 중, 완료. 에이전트의 추측, 가능성 높음.]

“······만일 그 네트워크 접속 권한을 어떻게 해서든지 얻으면, 여기서 빠져나가는 수단도 찾겠지?”

[사고회로 계산중. 완료. 사용자의 가설, 일치.]


자신의 중얼거림에 답을 하는 디바이스의 행동에 일우는 순간 멈칫했다.

원래 디바이스는 인터페이스 관리와 퀘스트 스크립트 출력, 거기에 상태 메시지 출력 기능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시스템은 아니었다.


“넌 근데 왜 자꾸 대답하냐? 원래 이런 기능 없잖아?”

[서브플랜 C, 대체 네트워크 기반 적극적 에이전트 서포트 기능 활성화.]

“······뭔 소린지 모르겠으니까, 그냥 마법의 네트워크로 인공지능이 향상되었다고 칠게.”

[에이전트의 추측, 일치.]

“진짜?!”


헛소리마냥 내뱉은 말에 긍정하자, 일우는 화들짝 놀라면서 이내 받아들였다.


“······그래, 뭐 여긴 판타지 세계니까. 판타지스럽게 뭔가가 되겠지. 판타지는 대충 그렇게 돌아가니까. 아, 이건 대꾸하라고 한 말 아니니까 하지 마. 혼잣말이다.”

[에이전트, 사회적 교류 단절 상태. 정신 안정 필요성, 높음. 소통 필요.]

“시끄러워. 난 그냥 외롭고 쓸쓸한 거니까. 거기다 따돌림도 당했고. 빌어먹을.”


디바이스에게 한 소리 퍼부어준 일우는 이를 바득 간 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옛날 생각나네. 뜬금없이 쫓겨난 것도 그렇고, 덩그러니 남은 것도 그렇고. 아주 개 같은 기억이 떠올랐어.”


일우는 그렇게 중얼대다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그 새끼들 죄다 조져버렸지.”


누아즈와 다른 네 명의 판타지쟁이들이 알 리 없겠지만, 일우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은 자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성공했다.

당하면 갚는다.

그게 뭐가 되었든, 방법이 있다면 긴 시간을 들여서라도 해내고 만다.

그들은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을 건드리고 말았다.


“이 상황에서 그 놈들 가장 엿먹여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지시사항 불이행.]

“다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지? 하, 그렇겐 못하지.”


거기까지 중얼거린 일우는 주먹을 쥔 오른손을 왼손바닥에 꽂으며 으르렁댔다.


“탈출이다. 이 썩을 놈의 세계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서, 스스로 빠져나가주마.”

[확인. 비상 가동절차, 에이전트 최우선목표 재설정 완료.]

“하는 김에, 날 따돌린 놈들도 가만 안 내버려둘 테다. 감히 날 무시해? 응?”

[부가목표 설정 완료.]


조금 전까지 아무런 희망도 없었지만, 일우에겐 이제 무엇보다 중요한 자산이 생겼다. 자신에게 익숙한 디바이스와 정보.

이제 필요한 건 행동이었다.


“지금이야 방치하겠지만 내가 또 움직인다고 훼방 놓을지도 모르지. 특히나 나 따돌린 네 놈. 그러니······.”


일우는 곧바로 장비창을 열어 자신의 복장을 확인했고, 판타지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밀리터리 스타일을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세계관 안 맞는 복장이랑 장비부터 어떻게 해야 해.”


작가의말

판타지 세계에 왔으니 첨단 하이테크기기도 판타지스럽게 뭔가 할 수 있는 겁니다.

아니라구요? 판타지 세계 가보셨습니까? 어쩌면 우리가 판타지 세계로 떨어지면 애*워치가 막 초인공지능 슈우퍼 시리가 될수도 있고, 기가*니가 진짜 초 슈퍼 울트라 램프의 요정으로 진화할수도 있습니다.

아니라구요? 아니면 별 수 없구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난 당하고는 못 살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1] +6 21.05.27 4,939 117 14쪽
16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6] +3 21.05.26 5,016 119 15쪽
15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5] +5 21.05.25 5,161 122 14쪽
14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4] +9 21.05.24 5,380 126 16쪽
13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3] +9 21.05.23 5,363 125 15쪽
12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2] +5 21.05.22 5,498 127 15쪽
11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1] +4 21.05.21 5,621 134 14쪽
10 2. 여기 연금술사 님 등장 [4] +7 21.05.20 5,703 124 12쪽
9 2. 여기 연금술사 님 등장 [3] +4 21.05.20 5,924 118 13쪽
8 2. 여기 연금술사 님 등장 [2] +4 21.05.19 6,029 129 10쪽
7 2. 여기 연금술사 님 등장 [1] +5 21.05.18 6,548 120 11쪽
6 1. 어서오세요 용사님들. 너는 빼고. [3] +5 21.05.17 7,099 133 12쪽
» 1. 어서오세요 용사님들. 너는 빼고. [2] +5 21.05.17 7,321 129 11쪽
4 1. 어서오세요 용사님들. 너는 빼고. [1] +22 21.05.17 8,032 127 13쪽
3 0. 이 사람은 건드리지 마세요 [2] +7 21.05.17 9,601 116 8쪽
2 0. 이 사람은 건드리지 마세요 [1] +6 21.05.17 14,918 131 15쪽
1 [프롤로그] +7 21.05.17 17,736 187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