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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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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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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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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46,637

작성
21.05.18 11:0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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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 여기 연금술사 님 등장 [1]

DUMMY

한 남자가 있었다.

한 때 촉망받았던 연금술사였지만 그의 엄청난 재능과 놀라운 식견, 허를 찌르는 통찰력을 알아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미치광이 취급을 받는 법이고, 그렇게 남자는 광인이 되었다.

남자는 세속의 시선을 이해했다. 그만큼 똑똑했으니까.

그래서 엔베리스 산맥에 칩거하여 연구에 돌입했다.

어느 순간, 대륙의 모든 이들이 그의 위대함을 깨달을 정도의 엄청난 결과물.

오직 그것만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질 때까지.


“알겠냐, 꼬맹아? 네가 도움을 받은 사람은 그만큼 대단하고 엄청난데다, 기발하고, 재치했고, 지혜롭고, 현명한데다, 어, 그리고······.”

“그리고?”

“······뭐 아무튼 그렇다고 치자.”


한껏 장황한 설명을 늘여놓으며 엘라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의 정신을 이리저리 흔들어댄 일우는 팔짱을 끼며 투덜댔다.


“중요한 건 이 몸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거니까.”

“거긴 대륙의 서쪽 끝자락이잖아요. 거기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에요?”

“그걸 이해하려면 최소한 공간학과 차원단층이론, 거기에 공명반응 정도는 알아둬야 해. 셋 중에 하나라도 아는 게 있니?”

“어······ 없는데요.”

“그럼 사고로 여기까지 날아왔다고 치자. 골치 아픈 건 싫잖아? 난 아픈 상처 들쑤셔지기 싫고.”

“예에······.”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순박한 소녀에게 일우가 하는 말들은 모두 머리가 홱홱 돌아가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일우도 모르지만, 디바이스가 수집한 정보 중 그럴싸한 걸 대충 말한 것이다.


“자······ 아무튼 여기가 어디라고 했지? 카옌? 카우엔?”

“카이옌이요.”

“아, 그래, 뭐······ 모올라아, 이런 동네 와본 적이 있어야지. 오늘 처음 와보네.”

“정말 여길 처음 와 보신다구요?”

“꼬마야, 너 폴리덴카 왕국 가 봤니?”

“아뇨.”

“거 봐. 너도 못 가본 곳 있잖아.”


대륙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왕국의 위치를 뻔뻔스레 언급한 일우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윽.”

“아무튼 간에! 내 연구소는 보나마나 박살이 났을 거고, 돌아가는데 한 세월 걸릴 거고! 지금 가봤자 건질 것도 없고! 지금 당장 돌아갈 여비도 없으니······ 머물러야겠네.”

“얼마나요?”

“얼마나 머물지 알아낼 정도까지. 그······ 모험가? 용병? 요즘에도 그런 것들 있나? 아무튼 그런 거라도 해야겠다. 조금 전에 너 구해준 거 봐선 나름 괜찮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근데 모험가는 뭐 어떻게 되나 몰라.”

“모험가가 되려면 길드에서 신분증을 발급하면 돼요.”

“잘 아네. 혹시 직원이니? 부모님이 거기서 일해?”

“상식이잖아요. 그런 것도 몰라요?”

“너 혹시 회복의 숨결 만들 줄 아니?”

“······모르는데요.”

“연금술사들한텐 상식인데? 거 봐, 너도 상식 모르네.”


말도 안 되는 억지논리를 펼쳐대며 일우는 엘라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뭔가 대화는 통하지만 머리는 살짝 이상한, 그렇지만 자신을 도와준 고마운 사람으로.

그렇게 차근차근 이미지를 쌓아가며 걸어 나가던 두 사람은 도시의 외각을 두르는 장벽과 마주했다.

그리고 엘라는 안전한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체감했다는 듯 경비병들을 향해 두 팔을 흔들었다.


“아저씨이이---!”

“······저거 누구야. 엘라 꼬맹이? 버섯 따러 간다더니 바구니는 어디로 갔대.”

“곁에 뭐야? 사람······ 수상쩍게 새겼네. 혹시 납치당해서 구해달라는 신호 아냐?”


경비병들이 수군대며 멀리 보이는 엘라와 일우를 주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우와 엘라는 관문에 도착했다.


“엘라, 곁에 있는 사람은 누구냐?”

“이 아저씨는요······ 그게······.”

“이 꼬맹이가 버섯 따려다 모가지가 따일 뻔한 걸 구해낸 사람.”

“예에?!”

“작달만한 키에 녹색 피부에 댁들이 쓰는 것보다 조금 더 안 좋은 무기를 휘두르는 놈들이었지.”

“고, 고블린이에요! 숲에 고블린이 나타났었어요!”

“그랬나? 고블린이었어? 아, 그랬지. 아무튼 간에, 중요한 건 내가 이 꼬맹이를 구해줬다는 거고, 내가 여길 들어가고 싶다는 거야.”


장황하게 말을 늘여놓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스카웃으로 검색한 정보에 따르면, 스탈리스 대륙에서 신분이 불확실한 자는 벽을 두른 도시에 출입시켜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소녀를 구해줬다는 신뢰를 기반으로 경비병을 설득한 다음, 안으로 들어가서 어떻게든 모험가 신분증을 획득한 뒤, 당당하게 들락거릴 수 있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다.


“······엘라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규칙은 규칙이니, 통행증이나 신분증을 보여주십시오.”


하지만 경비병들은 생각보다 제대로 일을 하는 모양이었다.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친 일우는 짧게 고민한 뒤,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만들어둔 가짜신분의 불안정성을 적극 활용하려는 것이다.


“없어! 하하하하하하······ 하아, 빌어먹을.”

“신분증이 없으시다면 통과시켜드릴 수 없습니다. 특히나 몬스터가 숲에서 출몰했다면 더더욱 안 됩니다.”

“댁한테 내 장황한 이야기를 늘여놓고 싶지만······ 기운 빠져. 꼬마야, 대신 설명해줄래?”

“보, 보내줘요! 이 아저씬 불쌍한 아저씨란 말이에요! 그리고 저도 구해줬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일단 규칙은 규칙이잖니.”

“하지만 이 아저씨는 사고로 가진 거 다 잃고 거지가 된 채로 대륙 서쪽에서 여기까지 날아왔다구요!”

“······그게 뭔 소리래.”

“글쎄다.”


경비병들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에, 엘라는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열심히 알려주었다.

물론 어린 소녀가 이해하는 수준으로, 적당히 비약과 과장, 그리고 왜곡이 들어간 내용으로.


“······그러니까 이 양반, 연금술사 씨는 연구소에서 뭔가 대륙을 위한 엄청난 연구를 했는데······.”

“사악한 마법사가 쳐들어와서 연구소랑 연구 성과 째 날려버렸고······.”

“그것 때문에 대륙 반대편까지 거지꼴로 날아왔다······?”

“예! 맞아요!”

“반은 맞아. 사악한 마법사는 빼고, 나머지는. 사실 나머지도 제대로 설명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치자구.”


경비병들의 표정에서 흔들림을 읽은 일우는 히죽 웃었다.


“자, 어쩔 거야? 만일 못 들여보내주면 난 여기서 연구소로 돌아가 볼게. 연구소 터졌던 그걸 똑같이 하면······ 재수 좋으면 돌아갈지도 몰라.”

“어······ 재수가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카이펜인가 뭔가 하는 이 도시가 한때 그런 이름으로 불렸던 폐허가 될지도 모르지. 어때? 해 볼까?”

“저기, 카이펜이 아니라 카이옌이에요.”

“알 게 뭐야. 폐허 되면 다 잊어지고 사라질 이름인데.”


그 말을 들은 순간, 경비병들은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정말 그런 사연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좀 맛이 간 상태라는 걸.

맛 간 연금술사를 건드려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토, 통과! 애도 구해줬는데 뭐 나쁜 사람이겠습니까?”

“그으렇지이? 어허허허허, 어허허, 어허.”


경비병들은 그 말을 외치며 관문에서 비켜섰고, 일우는 히죽 웃으며 그들을 지나쳤다.


“거 친절한 경비병들이군. 타이옌이라고 했지? 여기 사람들이 친절해서 마음에 드네.”

“카이옌이라니까요.”


엘라가 볼멘소리로 투덜거렸지만, 그녀가 모르는 게 있었다.

일우는 카이옌이라는 지명을 확실히 알고 있었고, 일일이 잘못 대답하는 건 의도적인 행동이라는 걸.


“천재와 광인의 공통점은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 거란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천재는 보잘것없는 이름 따위 기억할 필요가 없고, 광인은 이름 기억할 정신머리가 없지! 핫하하!”

“······.”


다시 한 번 ‘굉장히 똑똑하지만 정말 위험해 보이는 연금술사’라는 이미지를 꼬마와 경비병에게 각인시킨 일우는 도시 중앙 광장에 도달했다.

엘라의 손은 가장 거대한 건물을 가리켰다.


“여기가 길드에요.”

“딱 보기에도 뭔가 길드! 스러움이 느껴지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만.”

“으에······.”


헛소리 같은 일우의 감상평에 엘라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뻥이야. 뭐 그런 말에 일일이 반응하니?”

“아저씨 정말 이상해보여요.”

“잘 봤어. 이상한 거 맞아.”


일우는 그 말을 하며 엘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친절한 안내 고맙고, 내 소개도 해달라고 하고 싶지만······ 뭐, 너도 오늘 고생 많았을 테니 가서 쉬려무나?”

“아, 아······ 예. 그럴게요.”


그 말을 듣자, 엘라는 뒤늦게 자신이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정말 위험한 순간에 처했다는 것과, 일우와 동행하면서 그 점을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었다는 것.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리면 그 감정은 더욱 우러나기 마련이다. 이건 일우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에헤이! 인상 펴! 웃으라고 살려준 거지 그러라고 살려준 게 아냐.”

“그, 그렇죠? 에헤헤헤.”


엘라는 헬쭉 웃으며 거리 저편으로 걸어가다, 이내 몸을 돌려 손을 흔들었다.


“혹시라도 지낼 곳이 필요하면 ‘송어방울’을 찾아주세요!”

“싫어. 안 찾아갈 거야!”


일우의 대꾸에 엘라는 히죽 웃은 뒤 그대로 가버렸다. 아무래도 이번 농담은 제대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엘라의 등을 바라보던 일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송어방울? 거 이름 희한하네.”

[검색 결과, 카이옌 시 상업지구에 위치한 주점 겸 숙박업소.]

“쟤가 주인 딸내미였다는 편한 전개 따윈 없으리라 생각하고, 묵을 곳은 나중에 고민하자구.”


소녀를 떠나보낸 일우는 이곳에 온 목적을 되새기며 고개를 돌렸다.


“중요한 건 여기니까.”


길드. 일우가 이 세계에서 활동하는 동안 쓸 신분을 확보할 장소.

위험에 빠진 소녀를 구해주고 그 소녀와 동행하며 경비병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낯선 세계에 내팽겨진 방랑자가 아닌 확실한 정체성을.

그렇기에 여기서 확실하게 못 박아야 했다.

여신이 꼬드겨 이 세계로 오게 된 네 명, 그들이 소문을 듣더라도 일우일 줄은 상상도 못할 모습을.


“푼돈 몇 푼 쥐여 주고 쫓아낸 잉여가 설마 반쯤 정신 나간 연금술사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은 못 할 거 아냐.”

[답변 보류.]

“네 대답은 필요 없어. 내가 그러겠다는데 뭐 어쩔 거야?!”


일우는 성큼성큼 길드 건물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작가의말

저 위장은 ‘연금술사는 보통 정상이 아니다’, 라는 주인공의 편협한 결과물입니다.

근데 보통 연금술사 캐릭터는 정상적인 사람은 없잖습니까. 고로 약간 맛이 간 게 정상이고, 따라서 주인공은 매우 정상적인 연금술사를 연기하는 거....인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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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기 연금술사 님 등장 [1] +5 21.05.18 6,548 12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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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7 21.05.17 17,735 187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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