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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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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연재수 :
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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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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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46,637

작성
21.05.1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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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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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글자
8쪽

0. 이 사람은 건드리지 마세요 [2]

DUMMY

데스필드의 유일한 진입로이자 출구.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모든 컨테이너를 개봉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

언제나 사람들이 몰리는 장소는 플레이어나 클랜이 점유하여 건축할 수 있는 거대한 공간이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다분히 의도적이게도, 딱 맞춰 건축을 한다면 출입로를 통제하는 요새 건설이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 서버 빼면 나머지는 전부다 대형클랜이 통제해서 통행료 거두고 컨테이너 깔 때 세금 먹이고 그러죠.”

“그게 우리 서버 이야기였어요?”

“님 한 지 반 년 지났는데 이제 알았어요?”

“넵.”


데스필드 첫 진입을 위해 클랜원들을 기다리던 뉴비는 다른 플레이어에게 들을 사실에 깜짝 놀란다.


“그럼 그 일 한 사람은 아예 접었어요?”

“아뇨, 저기 있네요.”

“진짜요? 저 사람?”


광장 구석에 심어진 덜 익은 복숭아가 매달린 복숭아나무 오브젝트.

그리고 그 밑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남자.

일우였다.


“진짜에요. 저 사람 때문에 여기 요새 작년 초에 날아갔고, 철혈 클랜은 개박살나고.”


CIS의 유명 트레일러 영상, ‘복수’.

땅을 강탈당한 남자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거대한 클랜에 들어가 소유 중인 요새를 무너뜨리고 독점했던 구획을 해방시켰다는 내용의 트레일러.

드라마틱하면서도 허황된 것 같은 이야기지만, 실제로 이 서버에선 벌어진 일이다.

일우가 정말 해낸 이야기고, 그 때문에 데스필드 앞 구획은 서버의 수많은 클랜들이 조금씩 점유한 중립구획이 되었다.


“근데 저 사람 클랜이 왜 없어요?”

“여기 땅 다들 나눠가진 뒤에 세 번째로 큰 클랜이 저 사람을 영입한 뒤에 컨테이너 세금 올려 받으면서 이쪽 다 먹으려고 했거든요?”

“넵.”

“한 달 뒤에 그 클랜도 거의 무너지다시피 했죠. 뜬금없이 클랜장이 날아갔으니까.”

“······.”

“그 뒤론 아무도 안 끌어들여요. 지들 클랜도 박살날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가서 시비털지 마요. 게임 접기 싫으면.”


복수심 하나로 계정 정보를 날리고 아예 맨몸으로 시작해 클랜에 잠입하여, 모든 것을 날려버린 사람.

그게 바로 일우가 벌인 위업이었고,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얻었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지금.

벌인 일로 생긴 각종 소문과 악명, 거기에 이런저런 헛소문 덕분에 일우는 게임 내에서 섣불리 다가설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구석에 있던 이들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다른 이들이 멍하니 앉아있던 일우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뭐함? 데스필드 대기?”

“아까 갔다가 뉴비들한테 통수 쳐 맞았어. 처음부터 끌고 다녔는데 막판에 까더라.”

“그 새끼들 게임 접겠네.”

“내가 뭘 했다고?”

“아저씨 소문 들으면 다 그렇죠. 다음에 봐요.”


일우와 대화를 했던 플레이어의 동행은 그의 행동이 영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다.


“그 사람 안 좋은 소문 엄청 많던데.”

“에이, 냅두면 착해요. 다 저 아저씨 건드렸다 좃되서 그런 거지.”

“일일이 스토킹하면서 클록쓰고 일주일 내내 따라다니면서 퀘할때 타겟 선빵까서 훼방놓고, 호위대상 주변에 전기 깔아서 감전사시키고, 장거리 저격으로 계속 리셋되게 만들고, 아무튼 더럽게 한다던데.”

“그거 철혈이나 제퓨로스 새끼들 신분세탁한게 걸려서 그렇고. 저 아저씬 자기한테 원한 산 놈 아니면 안 건드려요.”

“아까 뉴비들 조졌다면서요.”

“뉴비들이 먼저 깠으니까.”


다른 이들이 일우와 멀어지며 그 이야기를 하는 와중, 광장 구석에 있는 다른 이들도 일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사람, 흥신소에서 일하던 놈이라는 말도 있다니까?”

“아, 아재요······ 시대가 어느 땐데 그런 말 써요?”

“아무튼 막 현실에서 남 뒷조사까지 한단 소리도 있다고. 그러니까 그런 짓이 되지.”

“아 쫌. 누가 게임에 인생을 털어 넣어요? 님임?”

“진짜라니까? 중립지대 된 뒤에 페어리한테 영입당했는데, 한 달 뒤에 딱 클랜장 접속 끊겼잖아. 너도 들었잖아.”

“그거 클장이 입원해서 그런 거고.”

“아니 그러니까. 멀쩡하던 인간이 왜 그렇게 됐겠냐? 어?”


물론 그런 소문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한 이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수고, 굳이 일우의 악명을 고치기 위해 분투할 입장은 아니었다.

안 좋은 소문 중 상당수는 진실이기도 했으니까.

물론 현실의 직업에 대한 것들은 모두 헛소문이다.

엄청난 악명과 약간의 명성을 등에 업은 채, 일우는 조금 전 데스필드에서 있었던 일을 곱씹고 있었다.


“아······ 뉴비들 진짜 다 때탔네. 박백샷 새끼 좀 나가 뒤졌으면 좋겠다.”


블랙 에이전트 플레이에 들어선 뉴비를 가리켜 ‘때탔다’라고 표현하는데, 기존 플레이어들 입장에서 최근 보이는 뉴비들은 그야말로 꼬질꼬질할 정도로 때가 탄 상태였다.

그 원인은 바로 ‘박백샷’.

CIS 전문 스트리머로 전문분야는 PvP, 그것도 뉴비들에게 쉽고 빠르고 편한 약탈의 길을 알려주는 블랙 에이전트 플레이 위주로 방송한다.

CIS 신규 이용자 유입 이벤트에 맞춰 박백샷이 업로드한 ‘고인물 죽창 찌르는 블랙뉴비’ 영상 덕분에, 신규 플레이어 대부분이 고레벨 플레이어를 털어먹는 블랙 에이전트의 길로 들어섰다.


“허접 하나 붙잡고 만든 영상보고 고인물들이 다 그 꼬라지라고 생각하나······.”


물론 그 영상에 나온 건 CIS에서도 극소수인 평화적인 플레이어고, 대부분은 데스필드에서 썩을대로 썩어버린 고인물이었기에 뉴비들을 움직이는 컨테이너 박스 정도로 여길 뿐이다.

기대했던 순수한 뉴비가 아니라 구정물 투성이인 먹잇감인 현실 속에서, 일우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좀······ 뉴비 유입이 되면 뭔가 상쾌하고 순수하고, 아무튼 그런 옛날 같은 정겨움을 느낄 줄 알았더니.”


온라인게임의 흔한 고인물들의 고뇌.

옛날의 그 따스함에 대한 향수.

멋모르는 초보자 시절 다 같이 으쌰으쌰 해내가던 추억은 레벨이 쌓이고 장비가 좋아짐과 반대로 점점 사라진다.

허허벌판에 마련된 폐품을 쌓아 만든 거점은 점점 견고하며 화려한 요새가 되었지만, 반대로 즐거움은 사라져간다.

남은 건 닳을 대로 닳은 고인물과, 뉴비 시절의 감성을 그리워하는 추억 뿐.


“국가 재건을 위해 나서는 신규 요원새끼들이 죄다 레식이 아니면 뻐큐니어야. 씁.”


CIS의 주요 세력인 레이더와 버커니어의 별명을 중얼거리던 일우는 이내 머리를 긁적였다.


“아우, 뉴비들 좀 떠먹여주려다 기분 다 조졌네. 그만해야지.”


CIS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자신에게 다가오려 하지 않으니,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뉴비들은 일우가 바라는 그런 순진한 이가 아니었다.

그렇게 쓴맛만 연거푸 1주일 내내 맛봤다는 것을 깨달으며, 일우는 게임 종료창을 열었다.


[종료 명령 인식. ‘Crisys In State’는 아직 에이전트를 필요로 합니다. 정말 종료하시겠습니까?]

“지랄. 에이전트가 아니라 날강도새끼만 득시글대는데 뭔 에이전트야. 종료.”


일우는 이죽대며 종료 확인을 누른 뒤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침대에서 바라보는 익숙한 천장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눈을 떠도 익숙한 천장이 보이지 않는다.

낯설기 짝이 없는 시커먼 암흑만이 보일 뿐이다.


“종료. 종료라고. 꺼. 끈다니까? 왜 꺼지다 말아?”


주변을 휙휙 둘러보던 일우는 혹시나 연결이 끊긴 상태에서 어두워진 게 아닌가 생각하며 머리를 짚어보았다.

하지만 NDS 컨트롤러가 손에 잡히지 않는 걸 봐선 계속 접속 유지중인 모양이다.


“야이 씨, 이 망겜 진짜. 뉴비 좀 늘었다고 서버 터졌나? 아니, 서버가 터지면 꺼져야지 왜 안 꺼져?”


NDS 접속 상태라는 것을 알리는 우측 상단의 표식도 없고, 게임 인터페이스도 보이지 않는다.


“젠장, 강종 명령어라도 불러들여야 하는데 명령어창도 안 뜨네. 뭔 일이······.”


작가의말

떠먹여주던 뉴비가 통수친 사례는 애석하게도 경험담입니다. 저렇게 드라마틱한건 아니고, 그냥 업어키웠더니 딴데갔다... 뭐 그런 거죠.

그래서 저는 어지간한 게임에선 뉴비는 반쯤 방치합니다. 거친 환경이 뉴비를 강하고 튼튼하고 올바르게 키웁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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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1] +6 21.05.27 4,939 117 14쪽
16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6] +3 21.05.26 5,016 119 15쪽
15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5] +5 21.05.25 5,161 122 14쪽
14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4] +9 21.05.24 5,380 126 16쪽
13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3] +9 21.05.23 5,363 125 15쪽
12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2] +5 21.05.22 5,498 127 15쪽
11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1] +4 21.05.21 5,621 134 14쪽
10 2. 여기 연금술사 님 등장 [4] +7 21.05.20 5,702 124 12쪽
9 2. 여기 연금술사 님 등장 [3] +4 21.05.20 5,924 118 13쪽
8 2. 여기 연금술사 님 등장 [2] +4 21.05.19 6,029 129 10쪽
7 2. 여기 연금술사 님 등장 [1] +5 21.05.18 6,547 120 11쪽
6 1. 어서오세요 용사님들. 너는 빼고. [3] +5 21.05.17 7,099 133 12쪽
5 1. 어서오세요 용사님들. 너는 빼고. [2] +5 21.05.17 7,320 129 11쪽
4 1. 어서오세요 용사님들. 너는 빼고. [1] +22 21.05.17 8,032 127 13쪽
» 0. 이 사람은 건드리지 마세요 [2] +7 21.05.17 9,601 116 8쪽
2 0. 이 사람은 건드리지 마세요 [1] +6 21.05.17 14,918 131 15쪽
1 [프롤로그] +7 21.05.17 17,735 187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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