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연재수 :
136 회
조회수 :
358,716
추천수 :
9,781
글자수 :
946,637

작성
21.05.17 13:27
조회
7,098
추천
133
글자
12쪽

1. 어서오세요 용사님들. 너는 빼고. [3]

DUMMY

장비창을 빤히 바라보던 일우는 뭔가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


“혹시 메이지 카모 사용되나?”

[카모퓰라쥬, ‘블랙 옵스 택틱스’ 액티베이트.]


디바이스가 응답하자 일우의 몸을 뒤덮는 망토가 나타났다.

카모퓰라쥬 스킬은 매복이나 은폐 시 사용하는 스킬로, 한 발만 맞아도 풀려나는 클로킹과는 달리 피해를 입어도 움직이기 전까진 그대로 유지가 된다.

거기에 스킬 특화 중 한가지인 ‘블랙 옵스 택틱스’는 사용자의 신원을 제 3의 인물로 위장하는 용도로 쓰인다.

CIS에서 블랙 에이전트들이 주로 쓰이는 스킬로, 외형을 보면 판타지 세계의 망토차림의 마법사같이 보이기 때문에 게임 내에선 ‘메이지 카모’라는 별명이 붙어있었다.


“좋아, 이정도면 여기서도 대충 먹히겠지. 문제는 장비인데······.”


외형과 신원을 은폐한다고 해도 무기들이 문제였다.

FPS 게임인 CIS의 무기들은 하나같이 총들이고, 인벤토리에 있는 예비 장비나 잡다한 아이템들 역시 모조리 총화기다.

한참 장비를 살펴보던 일우는 권총을 꺼내들었다.


“······그나마 작은 게 덜 튀겠지. 당분간 이거만 쓰자.”

[알림, 500미터 내 교전 상황 감지. 민간인 포함.]

“진짜 정상작동을 하긴 하나보네. 원래 기능에도 충실하고······ 민간인?”


CIS에서 플레이어는 정부의 특수요원이고, 무너진 사회를 복구하기 위해 갖은 임무를 수행한다. 그 임무 중에는 민간인 구호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지금은 게임이 아닌 다른 세계이며, 일우가 딱히 구해줄 필요는 없는 이들이다.


“뭐 여긴 CIS가 아니니 퀘스트 한다고 구해줄 필요가 없긴 하지만······.”


일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권총 부속품인 소음기를 꺼내 권총에 장착시켰다.


“민간인 구해서 엮는 것부터 시작해보자고. 근데 왜 장탄수가 이래? 무한탄창이 아니잖아?”

[부무장 잔탄 158발.]

“권총은 원래 총알 무한이잖아?”

[주 보급 경로 사용 불가. 재보급 불가능.]

“돌아버리겠네 진짜······.”

[경고, 민간인 피해 확인. 피해 유형, 납치 시도.]


탄환 보급이 불가능하단 사실에 투덜거릴 여유는 없었다. 확인된 민간인을 어떻게든 이용하려면 그 쪽이 살아있는 동안 구해내야 했다.

판타지 세계라면 분명 몬스터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있을 것이다.


“총알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가자!”

[현재 목표 재설정, 민간인 구호.]

일우는 눈앞에 나타난 표식지점을 향해 달려 나갔다.


***


소녀는 공포와 두려움에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 싫어······ 다가오지 마······.”

“크르르르륵······.”

“캬우!”


발치에 나뒹구는 바구니에는 버섯들이 쏟아져 있었다. 아무래도 소녀는 버섯을 채집하다 봉변을 당한 모양이었다.

고블린, 모험가들에겐 흔하디 흔한 약체 몬스터이지만 평범한 이들에겐 두려움의 대상.

그들의 일상 곁에서 항상 평화를 위협하는 몬스터.

잔혹하고 비열한 인간형 몬스터이자, 여성을 납치해 겁탈하여 수를 불리는 끔찍한 존재.


“누, 누가 도와줘요······ 제발······!”


소녀는 간절하게 도움을 부르지만, 그 누구도 오진 않을 것이다. 그건 소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평화로운 숲 속에서 나타날 리 없는 몬스터가 출몰했다. 순찰을 도는 이도 없다.

그렇기에 소녀는 직감했다.

끔찍한 소문의 당사자가 자신이 되리라는 것을.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소녀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어버렸다.


“크아우!”


그리고 완벽하게 무력화된 먹잇감을 향해 작은 괴물들이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달려들려 했다.


-퓩! 퓩! 퓩!

“캬각!”

“켁!”

“크겍!”


바람을 가르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고블린 세 마리가 절명했다.

탐스러운 먹잇감에 정신이 팔렸던 고블린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적대 대상 3, 제거. 남은 적대 대상, 8]

“망할, 나무 더럽게 많아서 다 가리네. 여기 나무들 왜 이리 굵어?”

“크갸악!”

-퓩!

“캭!”

“고맙게도 알아서 튀어나오네. 다음 놈?”

“크갸우! 캭가각가!”


갑작스레 등장한 일우를 발견한 고블린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지만, 조잡한 둔기와 날붙이로 무장한 몬스터들은 자동권총의 납탄을 이길 수 없었다.


-퓩! 퓩!

“끄껙!”


차근차근 줄어드는 동료의 수에 당황한 듯한 고블린 중 한 녀석은 재빠르게 소녀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인질을 잡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고블린이 소녀를 붙잡아 내미는 속도는 방아쇠 한 번 당기는 것보다 느렸다.


“께헥!”

“거 잔대가리 쓰려고 하긴. 일단 이걸로 끝······.”

“캬악!”

“아이, 망할! 한 놈 더 있었잖아!”


용케 한 녀석이 사각을 노리고 일우에게 근접하는 것까지 성공했다. 둔기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고블린을 발견한 일우는 곧바로 권총 그립으로 고블린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빠각!


그립으로 머리를 후려 맞은 고블린은 그대로 절명했다.

정확히는, 머리통이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자신이 공격했지만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자, 일우는 황당한 표정으로 머리통이 날아간 고블린 시체와 자신의 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뭐야. 지금 거 뭐였어. 머리를 내려찍었는데 왜 머리통이 날아가?”

[데미지 로그. 마지막 적대 대상에게 가해진 물리 피해, 145k]

“그래, 뭐 내 부무장 DPS가 400k정도 뜨긴 하니까 근접공격 데미지도 대충 그 정도긴 한데······ 여기서 안 통하잖아?”

[적대 대상 HP, 418. 피격 부위 HP, 126]

“······뭐?”

[적대 대상의 마지막 공격 판정, 부위 파괴 조건 충족.]


스탈리스 엔진 기반 NDC 게임들은 적대 대상의 HP를 실시간으로 보여주지 않으며, 쓰러뜨린 뒤 조사를 통해 적의 HP를 확인할 수 있다.

현실감을 높여주는 것과 플레이어들의 정보 편의의 타협점에서 마련된 장치였다.

하지만 그건 게임 이야기고, 여긴 스탈리스 대륙이다. 다른 세계이지만 현실이다.


“아니, 그거야 게임 이야기고 여긴 대륙이잖······ 아, 그래. 게임엔진이 여기 기준으로 만들었다고 했지? 그럼 그 규칙도 통하는 거고?”

[정확함.]

“그래, 오버데미지로 부위파괴 판정이 났다 쳐. 근데 그 데미지는 뭐야? 아예 0 붙는 수가 다르잖아?”

[검색 완료. 사용자의 신체적 능력 CIS와 동일. 현 세계에 병합 및 재보정, 없음.]

“재보정이 없어? 그냥 CIS에서 들어가는 숫자 그대로라고?”

[긍정.]


스탈리스 엔진을 사용한 다른 판타지 게임은 이 대륙의 기준에 맞춰 수치가 자동적으로 조절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CIS는 그 다른 게임과 캐릭터 호환이 되지 않는 별개의 게임이지만, 엔진 자체는 동일하다.


“부무장 발사는 부위파괴가 안 터지고 근접공격에서만 발동되니, 이게 맞겠네.”


이 낯선 세계에 떨어지고 한 가지 걱정은 덜게 되었지만, 오히려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좋아, 어디서 죽을 걱정 안 해도 되겠네. 내 HP가 대충 900K니까. PVP 기준이라면 3.6M이고.”

[현재 플레이어 HP 총량, 913,521.]

“일일이 다 말하지 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 스펙대로라는 걸 그 여신이 알게 되면 가만히 내버려 두겠어? 자기가 건드리지도 못한다고 다 불기까지 했는데.”

[추론 완료. 여신의 행동 목적 상 에이전트의 활동 제제 가능성, 극도로 높음. 예상 대응, 감금 혹은 무력화.]

“······정체 숨기고 돌아다녀야 할 이유가 더 늘었네.”


한숨을 깊게 내쉰 일우는 쓰러져 있는 소녀를 내려다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밑밥 다 깔려있는 세계니 말이 안 통할 리는 없고, 없어도 통역은 뭐 대충 되겠지.”

[임무 완료. 신원 은폐를 위해 현장 이탈을 권장함.]

“아니, 이 녀석을 활용할 거야.”


스카웃의 권고를 거부한 일우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어디 안 들키고 들어가려면 이런 애가 필요해. 예전에 철혈 그 새끼들한테 끼어 들어갈 때도 일부러 그것들 눈에 보이는 데서 뉴비인 척 했으니까.”


소녀를 괜히 구한 게 아니다. 근방에 마을이 있다면 분명 신원이 불분명한 자신을 걸러낼 가능성이 있다.

처음부터 자신의 족적을 남기게 되면 훗날 추적당하거나 정체를 들킬 위험성이 커진다. 그래서 일우는 CIS에서 복수를 위해 아예 자신의 캐릭터를 없애버렸다.


“그러니 얠 구해준 사람이라는 배경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쌓아 나가야지. 나라는 걸 절대 못 알아차리게. 근데 여기선 뉴비인 척 하는 건 안 되니 다른 뭔가가 필요한데······.”

[추천 위장 신분. 떠돌이 모험가.]


전형적인 서사의 주인공의 배경을 스카웃이 추천하자, 일우는 손을 내저었다.


“그건 안 돼.”

[에이전트의 신분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

“그거야 날 아는 놈이 없을 때나 통하는 이야기지.”


여신에게 쫓겨나기 전 상황을 봐선, 선택받은 네 명은 이런 전개의 소설이나 만화를 통해 대충 흐름을 알고 있었다.

물론 일우도 알고 있었고, 이런 상황이라면 일우가 고를만한 선택지는 뻔했다.


“떠돌이? 그런데 뭔가 희한한 무기를 쓴다? 그럼 바로 들켜. 수상쩍은 놈이 나도는 소문이 들리면 그 녀석들도 알겠지.”


빠르게 그 말을 중얼거린 일우는 대안을 고민했다.

그리고 일우의 고민은 길게 흘러가지 않았다.


“반대로 말이야, 대놓고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괴상한 녀석이 있다면 어떨까.”

[의미 불명.]

“정체를 숨기는 게 아니라, 대놓고 난 이런 놈이라고 나불대는 쪽이라면? 아예 괴팍한 쪽이라면 어때?”

[신원 노출도, 높음. 정보 유출 가능성, 극히 높음.]

“그래, 물론 그렇겠지. 이것만 없으면 말이야.”


디바이스의 말에 일우는 뒤집어 쓴 망토를 손으로 짚었다.


“카모퓰라쥬가 걔들한테도 먹힌다면 날 절대 못 알아봐. 어쩌면 눈앞에서 대놓고 남인 척 연기해도 모르겠지.”

[사고회로 계산 중, 계산 완료. 작전 성공 가능성, 91.4%]

“나머지 8.6%는 뭐 때문인데?”

[유의미한 변수 요인 21. 대표 요인, 에이전트의 현 무장 상황, 카모퓰라쥬 스킬 무효화, ‘보조 목적 대상’의 혼돈성.]

“그 정도가 위험이라면 감수할 수 있어. 위장만 잘 고르면 되니까. 문제는 뭘 해야 좋냐는 건데······.”


일우는 자신의 위장 신분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급적 CIS의 스킬을 그대로 써도 아무도 의심 안하는 배경으로.


“불 뿜는 마법의 작대기랑 뻥뻥 터지는 구슬 던지는 게 어울리는 직업은······.”

[네트워크 검색 중. 검색 완료. 연금술사 계통 직업군.]


디바이스의 말을 들은 일우는 권총을 든 오른손을 허공에 까딱였다.


“그거야. 도구를 막 써도 그러려니 하고, 살짝 미친 척 행동해도 그럴 만하고, 어디 구석에 처박혀서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았어도 이해가 되겠지. 혼자 연구하는 놈은 반쯤 미치광이일 수도 있으니까.”


초대받지 않은데다 자신에게 불친절한 대륙, 스탈리스에서 활동하기 위한 모습이 정해졌다.

연금술사.

불 쏘는 막대기를 휘두르며 가끔 뭔가 터지는 것도 던져대는 반쯤 정신 나간 사람.


“그래, 이거면 내가 이런 데 뚝 떨어진 배경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어. 남은 건 대충 전문적인 이야기가 올 때 둘러댈 지식인데······.”

[네트워크 내 연금술사 관련 정보, 수집 개시.]


일우의 고민은 어렵지 않게 해결되었다.


“좋아, 그럼 대충 배경 정하고······ 이 꼬마 깨워서 시작해 보자구.”


일우는 눈앞에서 계속 소리를 지르고 난리법석을 부리는 와중에도 꾸준하게 기절하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작가의말

판타지 세계에서 추방이나 막 외면당한 사람은 숨어다녀야 하는 건 일종의 정석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앞을 가로막는 빌런 중에 그 ‘이세계 진입 전문가’비슷한 놈이 있으니, 주인공은 대놓고 과시전략으로 갑니다.


와! 뻥뻥쾅쾅! 익스플로전! 데인저러스틱 불꽃놀음! 환금성물품 양산해서 지역경제 대파멸! 킬링 개스 살포! 미인증 힐링포쎤 무허가 막제조! 


뭐 그런걸 할 예정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난 당하고는 못 살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1] +6 21.05.27 4,939 117 14쪽
16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6] +3 21.05.26 5,016 119 15쪽
15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5] +5 21.05.25 5,160 122 14쪽
14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4] +9 21.05.24 5,380 126 16쪽
13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3] +9 21.05.23 5,363 125 15쪽
12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2] +5 21.05.22 5,498 127 15쪽
11 3. 사과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1] +4 21.05.21 5,621 134 14쪽
10 2. 여기 연금술사 님 등장 [4] +7 21.05.20 5,702 124 12쪽
9 2. 여기 연금술사 님 등장 [3] +4 21.05.20 5,924 118 13쪽
8 2. 여기 연금술사 님 등장 [2] +4 21.05.19 6,029 129 10쪽
7 2. 여기 연금술사 님 등장 [1] +5 21.05.18 6,547 120 11쪽
» 1. 어서오세요 용사님들. 너는 빼고. [3] +5 21.05.17 7,099 133 12쪽
5 1. 어서오세요 용사님들. 너는 빼고. [2] +5 21.05.17 7,320 129 11쪽
4 1. 어서오세요 용사님들. 너는 빼고. [1] +22 21.05.17 8,032 127 13쪽
3 0. 이 사람은 건드리지 마세요 [2] +7 21.05.17 9,600 116 8쪽
2 0. 이 사람은 건드리지 마세요 [1] +6 21.05.17 14,918 131 15쪽
1 [프롤로그] +7 21.05.17 17,734 187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