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이판사판 공사판

인연살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구선달
작품등록일 :
2012.09.01 22:09
최근연재일 :
2016.07.08 02:27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349,540
추천수 :
8,515
글자수 :
641,044

작성
11.11.05 21:37
조회
3,332
추천
79
글자
17쪽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12

DUMMY

축축한 감옥 속에서, 두 수적이 마주쳤다. 차이점보단 공통점이 많은 남자들. 그러나 빌은 웃통이 벗겨진 채 왼팔과 목에 형틀이 채워졌고, 창살 안에 있다. 시다크는 완전무장한 자유민으로 창살 밖에 있다. 그 차이는 컸다.

"뭐하냐?"

시다크가 빌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빌은 퉁명스레 대답했다.

"상품대기."

아실리는 풋 웃어버렸다. 그러나 시다크는 웃지 않았다. 대신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걸 유머라고 하는 거냐?"

"내가 언제 자넬 웃겨주겠다 했는가?"

"야, 이 잡놈아. 친구 보자마자 하는 말이 그 따위냐?"

"친구? 친구란 놈이 적에게 물자를 공급해? 내가 그건 아직도 안 잊는다."

"돈 보이면 벌고 봐야지. 너도 내 뒤통수 때린 적 있으면서 뭘 깐깐하게 굴어?"

"그래서 여기 왔냐?"

"그래."

"썩을 놈."

둘의 공방은 유치했다. 진중한 노병들의 대화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재밌는 일이다. 그러나 아실리가 흥미를 잃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빌과 시다크에게 먼저 나가겠다며 정중하게 말하곤, 감옥을 나가버렸다. 둘은 그녀가 나가고도 한참을 티격태격했다. 그들은 틸리가 투덜거릴 때쯤에야 침묵했다.

"다 큰 어른들이 대체 뭐하는 겁니까?"

틸리는 자신의 대장과 그의 쟁쟁한 경쟁자가 이런 품위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둘은 전설적인 노병이었다. 몇몇 북부 불한당들의 우상이기도 했다. 미친 빌, 한 도시에 도전한 정신병자. 흑선 시다크, 대륙 동서남북을 단 하루만에 가로지르는 불가사의한 자. 빌과 함께 다니면서 틸리는 포장된 전설의 진실을 일부 엿볼 수 있었다. 실망한 적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더 냉혹하고, 피비린내 나며, 명석하기 그지 없는 기지도 엿보았다.

때문에 그의 질문은 어디까지나 핀잔에 불과했다. 답변을 원하지 않는. 그러나 빌과 시다크는 침묵을 깨면서 동시에 대답했다.

"야바위."

"예?"

깜짝 놀란 틸리가 반문했다. 그러나 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시다크에게 말했다.

"갔지?"

"이쯤하면 갔지."

그제야 틸리는 빌과 시다크가 일부러 말싸움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꼿꼿이 서 있던 시다크는 그제야 간수 자리에 있던 의자를 빼서 앉았다. 빌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갑옷의 구멍은 왜 뚫었냐?"

시다크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빌을 바라보았다. 그는 옆 방의 틸리와 다른 병사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이 움찔거리는 걸 본 시다크는 한숨을 내쉬곤 답했다.

"귀신늑대에게 물려갔다 왔다."

빌은 경악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귀신늑대?"

"그래."

"그게 왜 자넬 공격해? 아니, 어떻게 살아왔냐? 귀신늑대라는 건 어떻게 알았지?"

"말하는데다 둔갑까지 하는 거대한 늑대라면 귀신늑대 밖에 더 있냐? 괴물늑대는 둘 다 못하니까."

"귀신늑대가 맞냐? 둔갑하는 것도 봤고?"

"봤어."

빌은 신음소릴 흘렸다. 셀레스테의 적극적인 개입은 빌도 그다지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다. 애초에 그녀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빌의 죽음 그 자체에 그냥 만족하거나, 난입해서 자기 몫을 챙기던가. 후자라면 처형대에서만 기회가 올 뿐이다. 그리고 처형대 주변엔 엄청난 규모의 군중과 시 경비대가 있을 것이다. 빌의 병대가 난입할 수도 있다. 혼란을 틈 타 빌만 채어갈 수도 있겠지만, 아실리와 시론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그걸 내버려두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빌은 셀레스테와 아실리의 싸움 속에서 병대와 합류해 탈출할 구상까지 해보았다. 셀레스테는 이 싸움에서 완벽히 따돌려졌다. 그런데 이제 와서 셀레스테가 다시 개입을 시작한 것이다.

"별 일이 다 있군."

빌은 애써 태연한 척했다. 그러나 시다크는 빌의 평정을 다시 깨뜨렸다.

"걔가 널 죽이고 싶어하더군."

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헝클어졌다. 셀레스테, 시다크. 어디서 공통점을 찾고 어디서 차이점을 찾아야 하는가? 그녀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의 용도는 무엇인가?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인데, 솔직히 말하겠다. 내 힘으로 달아난 게 아니야. 그 잡년이 날 풀어줬지."

"뭐?"

"난 시론과 싸우던 중이었어. 거의 다 이긴 판이었지. 그런데 갑자기 내 등 뒤에서 귀신늑대가 나타났다. 완벽한 기습이었고, 난 걔한테 물려갔다."

"볼만했겠군."

"네놈이 그년의 아가리 속에서 다져지길 신께 기도하마. 여하튼 날 숲 속에 내던져놓고 그게 둔갑을 하더군. 그때 알아차렸어. 대화를 원하는 것을."

틸리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귀신늑대. 락토의 숲에서 처음 본, 신화시대의 잔재.

"너하고 무슨 원수를 진 것 같던데. 협력을 강요하더라고."

"협력? 어떻게?"

"상황 설명은 끝났다. 질문. 너 그년과 대체 무슨 사이냐?"

빌은 잠깐 생각했다. 병대의 절대다수는 귀신늑대의 진실을 모른다. 셀레스테가 귀신늑대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옆 방엔 그의 고참병들과 떠벌리기 좋아하는 틸리가 있다. 함부로 빌과 귀신늑대가 원수 진 사실을 말하면 안 된다. 빌과 셀레스테의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병대가 여러 제약과 곤란에 처한다는 사실을 알면, 병사들은 빌을 신임하지 않을 것이다. 빌은 대부분의 병사들이 아는 내용, 멋대로 상상해서 납득한 내용을 대신 짜맞추었다. 그것은 병대와 귀신늑대의 문제로, 즉 병사들의 문제로 포장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작년 겨울에 락토에서 익인들과 싸운 적 있다. 그때 늑대들도 끼어들었어. 귀신늑대와 다수의 괴물늑대가 그들과 함께 했지."

"그게 왜? 싸움질하다 그년을 불임으로 만들기라도 했어?"

"윗턱에 구멍 하나 뚫었을 뿐이다. 대신 비슷한 짓을 했지."

"뭔데?"

"봄이 되자마자 그 주변의 늑대 놈들을 다 죽여버렸어. 귀신늑대도 괴물늑대도, 이리저리 떠돌던 이방늑대들도 떠나버린 뒤였지."

"다 죽였다고?"

"다. 새끼들까지. 아마도 그 탓일 거야. 그년의 새끼는 아니지만, 그쪽도 체면이란 게 있거든."

시다크는 피식 웃어버렸다.

"알만하군. 사람은 늑대랑 같이 못 살지. 둘 중 하나는 절단이 나야 해. 영역이 겹치거든."

"이젠 나도 좀 묻겠다. 그년이 뭐라든?"

시다크는 악동의 미소를 지었다. 틸리는 빌과 시다크의 차이점을 알아차렸다. 빌은 절대 저렇게 웃지 않는다.

"내가 답해줄 의무가 있던가?"

빌은 음울한 신음소릴 흘렸다. 시다크는 한참을 킬킬 웃었다.

"죽음을 준비하게. 옛 친구. 북부의 왕께선 그대의 삶을 원하나, 나로선 되찾아줄 방법이 없구만."

그 순간 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

셀레스테는 옷을 벗어 어깨에 올려놓은 채 나신으로 숲을 걸었다. 다른 늑대들과 함께.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 폴짝폴짝 뛰면서 북부인의 노랫가락을 콧소리로 흥얼거릴 정도로. 빌이 북부재단을 통해 시론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비명소리의 연속 같았다. 지금 그는 자신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귀신늑대를 조심해라! 그녀가 시다크를 포섭했다! 시다크가 날 빼돌릴 거야! 그리고 그녀가 날 죽이겠지!" 그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빌은 바아보오."

셀레스테는 작게 중얼거리곤 혼자서 웃어버렸다. 언제나 한 수 위였던 상대다. 무력으로도 그를 이길 거라고 장담하긴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그를 완벽히 엿 먹였다. 그게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그의 부하인 시론과의 협조한 결과라는 사실은 조금 문제가 있지만.

빌은 편집증적으로 시다크를 의심했다. 그는 시다크가 자신을 엿 먹이기 위해, 자신의 맹세를 준수하기 위해 셀레스테에게 내어줄 것을 확신했다. 이상한 생각이 아니었다. 그 둘은 그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시다크의 본심도 빌의 예상과 별로 다르진 않을 것이다. 서 파롤의 왕, 죽은 자의 왕, 장로회의 비밀재판에 내건 맹세를 깬다? 귀신늑대랑 원수를 지고? 빌을 위해서? 할 리가 없다. 오히려 이 기회에 귀신늑대랑 친해지면 어떨까 하는 망상까지 할 것이다.

시론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난 이번에 시다크도 엿 먹일 거야.

응. 네 구상은 그랬지. 네 뜻대로 따라주겠어. 지금은. 빌은 내 거니까.

숲 밖의 초원에 양들이 나타났다. 염소 몇 마리가 섞인 양의 무리. 양치기와 개들까지. 지그하우스의 재산이었다. 아실리의 재산도 섞여 있을 것이다. 셀레스테는 아실리도 곤란에 처해질 것을 상상해보자 더 즐거워졌다. 그녀의 주변에 늘어선 늑대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자, 여러분. 포식할 시간이야. 명령하는데, 다 죽여버려. 응? 왜 먹지도 않는 걸 죽이냐고? 대꾸하지 마. 그냥 해. 이 저능한 것들아."

대규모 습격. 양치기들은 더 이상 초원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늑대들이 훔쳐갈 양도 줄어들 것이다. 이미 아실리의 청야전술 때문에 농촌들은 죄다 비어버렸다. 굶주린 늑대들은 셀레스테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다. 보다 장기적으로 보자면 손해임에도 불구하고.

"맨날 인간에게서 훔칠 생각만 하지 말고 때로는 사냥도 해봐. 멧돼지 고기도 먹을만 해. 사슴과 토끼도 물론 좋지. 하여튼 도시 주변 것들은 게을러서 문제라니까."

사실 인간에게서 양을 훔치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닌 지라 셀레스테의 말은 어폐가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늑대도 대꾸하지 못했다. 계급이 깡패다. 셀레스테도 사실 대책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고기를 말리거나 소금에 절여서 여기저기 숨겨둘 테니 나중에 냄새 맡고 알아서 찾아가라. 이 저장식품이란 개념도 없는 축생아. 시론의 말이었다. 뭔가 바보 취급 당하긴 했는데,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녀는 옷을 나뭇가지 위로 던졌다. 바람 방향이 아주 좋았다.

"사냥, 시작!"


*

지그하우스는 축제를 벌였다. 축제의 의미를 많은 육식으로 제한한다면, 그렇다. 도시에서는 모든 가축을 도살해버렸다. 양, 닭, 소, 돼지, 염소 할 것 없이 전부 다! 최소한의 암컷들도 남겨두지 않았다. 남은 것은 기병으로 복무하는 부유층이 필사적으로 남긴 극소수의 말뿐이었다. 지하실, 천장, 헛간이 전부 고깃덩어리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때까지 먹었다. 손과 입과 수염을 전부 기름칠하면서. 어쩔 수 없었다. 가축을 먹이는데는 많은 곡식과 풀이 필요하다. 그런데 풀을 먹여야 하는 모든 가축은 더 이상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청야전술의 여파라고요? 괴물늑대가 나타난 게?"

아실리의 목소리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시 참사회의 사람들은 진지했다. 그제야 아실리는 그들이 말하는 괴물늑대가 실은 귀신늑대라는 것, 그녀가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지 등 중요한 정보는 오직 자신만이 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실리는 비명을 지르고 싶어졌다.

"지금 우리 민병대가 하는 짓을 보면 그런 결론이 나옵니다. 숲, 밭, 목장, 마을을 모두 불지르고 비워버렸으니 늑대들 또한 안 굶주리고 배기겠습니까? 그 결과가 도시 밖에서 풀 뜯던 양들의 몰살입니다."

이 멍청아, 지금 문제는 그게 아냐! 아실리는 발언하는 의원에게 뭔가 집어던져버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던질 것이 여의치 않았다. 그리고 진짜 던질 수도 없었다.

"그냥 늑대 떼였다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러나 괴물늑대가 지휘하는 늑대 떼는 아주 큰 문제입니다. 그 괴물늑대의 무리가 지나가던 놈들이 아니라, 아예 이 주변을 휩쓸고 지나가려는 속셈인 것은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이제 우린 괴물늑대가 상단의 행렬을 습격하는 광경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시다크!"

아실리가 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시다크를 불렀다. 속기사를 포함한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참사회를 구경하던 북부 불한당은 크게 하품을 하더니 말했다.

"왜?"

"명령합니다! 당장 뛰쳐 나가서 늑대들을 잡으세요!"

하이 소프라노의 명령에 시다크는 코웃음을 쳤다.

"싫어."

"네?"

"싫다고. 아니, 무리야. 내 병력은 시론을 추격하는데도 빠듯해."

"당신은 흑선 시다크잖아요! 이디아 대륙의 동서남북을 단 하루만에 주파하는, 전무후무한 최고속의 사략수적!"

"기업비밀이라 그 비결은 말 못해주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리고 사람 잡는 용병을 왜 늑대 사냥에 써?"

"못할 건 없잖아요?"

"야, 이 머저리야. 사람 추적하는 것과 늑대 추적하는 건 아예 분류가 다르잖아. 내 배에는 사냥꾼 출신 없어."

"오만 불한당들 다 데리고 다니면서 사냥꾼 출신이 하나도 없어요?"

"산지기 출신은 있지만. 방법이 있긴 해."

"뭔데요?"

"키체커를 데려와."

"네?"

"늑대 몇 다스가 몰려다녀도 키체커만 있으면 이길 수 있어. 늑대 쫓아다니는데는 도가 튼 놈이거든. 서부해안선 최고의 사냥꾼이었지."

아실리는 복음을 들은 빈민처럼 환호했다.

"우리가 필요한 인재네요! 그가 어디 있죠?"

"내가 듣기론, 지그하우스 시에 왔다더군."

"더 잘 되었군요! 당장 불러오세요!"

"근데 안 올 걸."

"왜요?"

시다크는 그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근엄하게 말했다.

"빌의 병대 소속이거든. 아주 충직하고 독하지."

그제야 아실리는 도시 속을 숨어 돌아다니던 저격병이 키체커라는 이름의 사냥꾼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시다크가 자신을 놀렸단 사실도. 참사회가 낮은 웃음소리로 덮히자 아실리의 얼굴은 사과처럼 빨개졌다. 그 저격병이 절대 투항하지 않으리란 것쯤은 누구나 알았다.

"다, 다른 사냥꾼을……."

"괴물늑대가 낀 것을 알고도 동참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환영하지. 찾아봐. 근데 시간낭비가 될 것 같다. 최고가 아니라면 길잡이 노릇 밖에 못할 텐데, 우리가 쫓아가면 이미 저 멀리 도망가기 일쑤란 말이야. 병대는 늑대 무리를 쫓는데 적합하지 않아. 방어하는 입장이라면 몰라도. 예나 지금이나 괴물늑대를 잡는 방법은 몇 안 돼. 반격을 먹이거나, 비수처럼 뛰어난 사냥꾼을 쓰는 거지."

아실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력에 있어서 그녀는 비전문가였다. 시다크는 부하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출항준비가 슬슬 끝났겠군. 난 이만 일어서지. 조언 하나 하겠는데, 그냥 고집을 포기해."

그게 결정타였다.


*

며칠 뒤 아실리는 벌레 씹은 얼굴로 빌을 찾았다. 빌도 똑같이 벌레 씹은 표정을 했다. 둘이 동시에 엿 먹었다는 사실에서 어떤 공감대가 샘솟지는 않았다.

"시다크는 약아빠진 놈이지. 정말 사냥꾼 출신이 없진 않을 거야. 그 녀석의 부하는 네가 본 것보다 많다. 귀신늑대를 추격하기가 싫어서 발을 빼는 거야."

"역시 거짓말이군요! 그 빌어먹을 불한당!"

"그런데 얼마나 물을 데가 없길래 나한테 질문하냐?"

"상관 마세요. 그나저나 가뜩이나 요구하는 건 더럽게 많은 놈이 감히 수작을……."

"뭘 요구했더냐?"

"알아서 뭐하게요? 곧 죽을 어르신."

시 참사회는 빌의 처형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것이 빌의 병대를 와해시키고 모든 사태를 끝장낼 것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빌은 북부의 왕을 대비할 카드가 아니었다. 갖고 있기엔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할 카드였다. 그리고 아실리는 끝내 고집을 꺾었다. 빌의 공개처형이 결정된 것이었다. 그 날짜는 빌과 시론에게도 빠르게 전파되었다. 방법은 참수형. 목은 높이 내걸고, 남은 몸뚱이는 분노한 군중에게 던져버릴 것이라고 했다. 빌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내가 그 날 죽을지 안 죽을지는 두고 보도록 해라."

"흥. 시론과 저격병의 난입 말이죠? 마음껏 숨어들어오라 하세요.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라고요. 그리고 귀신늑대는 아예 발을 들여놓지 못할 테고."

"내 병대보다 귀신늑대가 더 무서운가 보구나."

"막을 방법이 더 간단한 것뿐이에요. 이것 봐요. 제가 화가들에게 의뢰한 그림이에요. 어때요?"

아실리는 여러 종이들을 빌의 눈 앞에서 흔들어보였다. 흐릿한 불빛 아래에서도 빌은 그것들을 알아보았다. 최신의 기법을 이용해 그린 그림. 셀레스테를 제법 닮은 여인의 초상들이었다. 빌은 틸리네 방을 곁눈질했다. 초상화들은 빌의 바로 눈 앞에서 흔들렸다. 틸리가 볼 수는 없다.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그녀의 초상화냐?"

"귀신늑대가 숨어들어올 방법은 둔갑뿐이죠? 그리고 전 그녀의 모습을 알죠. 간단한 해답이죠?"

빌은 납득했다.

"젠장."

그의 반응은 아실리를 어느 정도 만족시켰다.

"유감이네요."

그녀는 약간의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리고 승리감을 얻기 위해 덧붙였다.

"저번에 들려준 이야기, 그대로 돌려줄게요. 태양궁에서의 죽음이란 이야기더군요. 그거, 아무래도 당신에게 더 어울려요."

빌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작가의말

세계관에 엘프를 넣을까 말까. 그건 언제나 고민되지만.
안 넣을래요. 음.

반전이랍시고 몇 개 준비하긴 했는데 사전에 떡밥을 충분히 뿌리는 것이 안 되었어요. 젠장! 이래서 글은 오래 묵혔다가 거진 다 완성해놓고 연재해야 한다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인연살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6 인연살해 3부: 미친 빌과 졸업논문 - 서막 +12 11.12.03 3,262 84 10쪽
35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종막 +17 11.11.26 3,325 94 7쪽
34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14 +13 11.11.19 3,256 90 20쪽
33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13 +12 11.11.12 3,277 86 16쪽
»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12 +7 11.11.05 3,333 79 17쪽
31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11 +11 11.10.09 3,406 98 19쪽
30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10 +8 11.10.01 3,476 91 26쪽
29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9 +8 11.09.25 3,575 84 19쪽
28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8 (복구 완료!) +3 11.09.25 3,368 77 12쪽
27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7 +1 11.09.25 3,330 73 18쪽
26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6 +2 11.09.25 3,517 78 22쪽
25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5 +3 11.09.25 3,447 80 16쪽
24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4 +5 11.09.25 3,615 86 12쪽
23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3 +3 11.09.25 3,881 91 27쪽
22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2 +3 11.09.25 3,727 80 10쪽
21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1 +3 11.09.25 4,237 85 12쪽
20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서막 +4 11.09.25 4,103 86 5쪽
19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종막 +14 11.09.25 4,055 98 13쪽
18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7 +3 11.09.25 3,716 92 6쪽
17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6 +3 11.09.25 4,175 79 17쪽
16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5 +7 11.09.25 3,770 100 20쪽
15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4 +5 11.09.25 4,638 79 17쪽
14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3 +4 11.09.25 4,064 84 17쪽
13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2 +6 11.09.25 5,103 96 15쪽
12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1 +6 11.09.25 4,264 106 12쪽
11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0 +8 11.09.25 4,442 99 11쪽
10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9 +5 11.09.25 4,491 102 22쪽
9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8 +6 11.09.25 4,571 116 13쪽
8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7 +4 11.09.25 5,046 113 23쪽
7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6 +8 11.09.20 5,041 126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