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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사판 공사판

인연살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구선달
작품등록일 :
2012.09.01 22:09
최근연재일 :
2016.07.08 02:27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349,542
추천수 :
8,515
글자수 :
641,044

작성
11.09.25 19:40
조회
3,727
추천
80
글자
10쪽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2

DUMMY

나무상자에 화약을 채운 다음, 쪼개진 뚜껑을 덮는다. 그리고 뚜껑 사이에 불 붙은 화승을 놔둔 다음 화승 덮개를 덮는다. 그리고 매설한다. 사람이 밟으면 그 순간 뚜껑이 아래로 꺼지면서 불씨가 화약에 떨어진다. 잘 쓰이는 장치도 아니고, 신뢰성도 낮지만 제대로 터지기만 하면 위력적이다.

종말.

죽은 자의 왕이 아주 반갑게 맞이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리 재수 없게 죽나?

빌의 표현은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바보도 있다.

"그래, 미친 빌이 도착했다고?"

도박장의 2층 방. 중년의 끝에 들어선 갈색머리의 남자, 뷔독 에소테리아는 아주 밝게 웃었다. 그의 웃음은 얼굴의 선이 가늘고 수염이 많지 않아서 보는 사람의 기분을 좋지 않게 한다. 비록 양 옆에 꽃 같은 미녀들을 안고 있더라도. 때문에 부하 용병들은 별로 좋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숨기지 않는 대신, 능숙하게 언사를 관리했다.

"빌의 병대는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과연 전력에 보탬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뷔독은 고개를 저었다.

"상관 없어! 그는 미친 빌이야. 도시 하나를 상대로 싸운 괴물이라고. 그 이름값만으로도 그 시건방진 계집애는 꼼짝달싹 못해. 게다가 싸움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부상병이 많은 것도 아니잖아. 좀 있으면 다른 용병들도 속속 도착할 테고."

아실리 에소테리아가 지지층을 결속하고 거래를 중단시키며 민병을 모으고 있다는 정보 따윈 진작에 얻었다. 뷔독 에소테리아는 유능하지는 않을지라도 생각이 없진 않았다. 죽은 자의 왕을 피해 오래 전에야 도망친 그의 누이와 달리, 그는 겨우 반년 전에 이 도시에 왔다. 시에서 발행하는 공채를 매입하지도 않았고 그러기에 시민권도 없다. 도시에 지지기반이 약한 그는 외부 용병들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이 근방에서 고를 수 있는 용병들은 이미 답이 나와 있다.

태양궁의 근위대로 고용될 정도로 명성 높은 산악연맹 용병들.

집안을 떠나 모험과 시합, 명성을 갈망하는 편력기사들.

소금강 건너를 떠도는 동부 경기병들.

이 근방에서 일거리를 찾아 떠돌고 있을 북부 병단들.

최대최악의 사략수적이라는 미친 빌의 무장상선대.

그 중에서도 빌의 무장상선대는 아주 우수한 전력이다. 총과 도끼로 무장한 병사 100명에 선박이 3척이라니, 한 남자가 마음만 먹는다고 쉽게 모을 수 있는 전력이 아니다. 왜 전쟁에 용병이 주역이 되는지 뷔독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고용만 하면 되니까.

"빌은 지금 뭘 하고 있지?"

"숙소를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숙소를?"

고용주를 만나지 않고 숙소부터 잡는다는 말에 뷔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숙소라면 그 자신이 알아봐 줄 수도 있는 문제다. 왜 빌이 만사를 다 제쳐놓고 숙소부터 알아볼까? 그만큼 부상을 입은 병사가 많은 것일까? 뷔독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빌은 텅 비어버린 식당 한복판에서 생각에 잠겼다.

현재 그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신병과 부상병 포함 90명 정도. 지난 전투로 인한 부상 자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겨울 동안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살았으니까. 배를 지킬 사람도 필요하다. 숙소 하나에 90명을 다 집어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병력도 분산해야 한다.

이 도시 인구는 적게 잡아도 1만명이다.

"대장!"

세 병사가 헐레벌떡 식당으로 들어왔다. 빌이 그들에게로 시선을 돌리자마자 보고가 쏟아졌다.

"지점장 말이 맞아. 이 동네서 좀 날고 긴다는 놈들은 전부 계집애 편이야. 골목길 노점상마저 우릴 적대해."

"그나마 다행인 건 고용주가 산악연맹 용병까지 고용했다는 건데, 문제는 걔들이 아직 도착하지 못했어. 계집애가 우릴 먼저 칠 거란 이야기가 거지 놈들 사이에서도 돈다고. 잘못하면 우린 다 죽고, 연맹 애들은 도시 안으로 발을 붙이지도 못할 것 같아."

"해가 졌는데 대장간이 하나도 남김 없이 일하고 있어."

마지막이 가장 위험한 신호다. 어떤 직종이든 야간작업은 조합법으로 금지된다. 야간작업은 불을 많이 써야 하기에 화재 위험이 높고, 연료비 때문에 제품가격이 펄쩍 뛰게 한다. 조합법의 규격에 어긋나는 불량품이 몰래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대장간이 밤에 일한다. 그것도 떼로.

"장병기군. 민병대야."

2야드는 족히 될 길이의 장대 끝에 대충 두들겨 붙인 큼직한 쇠붙이. 다루기 쉽고 위력적인지라 민병대의 단골 무장이다. 빌은 골치가 아파졌다. 때마침 시론이 식당으로 돌아오자 빌은 병사들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나가보란 뜻이다.

이제 식당에는 시론과 빌만이 남았다. 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까지 고용주를 후려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동감이긴 한데, 진짜 치진 않겠지?"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빌은 시론을 바라보았다. 시론이 대답하자마자 빌은 도끼를 붙잡고 일어섰다.



*

"아가씨."

집무실 구석에서 울린 소년시종의 목소리. 책상 위에 품위 없이 엎어졌던 아실리 에소테리아는 고개를 들어 시종을 바라보았다.

"왜?"

"그만 주무시죠."

"잠이 와? 미친 빌이 도시에 왔다는데?"

퉁명스러운 대답에 시종은 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대신 조심스럽게 불 붙인 양초를 책상 위에 갖다 놓았다. 불빛에 드러난 서류들은 대개 북부에 관한 것이었다. 위대했던 선왕, 그 후계자, 북부재단, 죽은 자의 왕. 빌에 관한 서류는 없었다. 그는 풍문으로도 충분히 짐작 가는, 평소엔 알 필요도 없는 떠돌이니까.

"그 인간, 왜 다른 동네 다 내버려두고 하필 이 도시로 온 거야?"

"글쎄요."

"정말 진지하게 나랑 싸우려는 걸까?"

"글쎄요."

"설마 파롤의 왕이 원한 건 아니겠지?"

"글쎄요."

시종은 문답 끝에 소녀의 표정을 읽었다. 삐쳤다.

"진지하게 대답해."

"아는 것 없는 한낱 시종이 뭘 어떻게 해요?"

촛불이 흔들렸다. 소리 없는 한숨에 시종도 답답해졌다.

아실리 에소테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종은 그녀가 잠자리에 들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소녀는 의자가 아니라 책상 위로 자리를 바꾸었을 뿐이다. 녹색의 드레스자락을 흔들며 그녀는 활짝 열린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외숙부란 작자가 죽치는 도박장이 있었다.

도시를 망칠 오물덩어리.

아실리는 이 도시가 좋았다. 이곳은 그녀의 어머니가 죽은 자의 왕을 피해 도망쳐온 곳이다. 도시민들은 어머니를 받아들였고, 그녀는 이곳에서 성공했다. 아실리는 여기서 태어나 컸으며 어머니의 유산을 받았다.

뷔독, 그 망나니가 이 모든 것을 망칠 권한은 없다.

이 도시는 아실리의 편이다. 그녀가 시민이니까. 그녀도 이 도시를 편들어야 한다. 시민이니까. 아실리가 쥔 황금 덕에 이래저래 복잡한 이해관계도 얽혀 있다. 때문에 뷔독은 도시와 그녀의 적이 되었다. 그 누구도 뷔독을 편 들면 안 된다. 도시민이라면.

하지만 미친 빌이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뷔독은 외부의 용병들을 고용하는 한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겠단 뜻을 보여줬다.

내분.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아실리를 지지한다 한들, 황금의 딸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이 아예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어떤 계기로든 불씨가 붙으면 도시가 위험해진다. 아실리는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녀는 도시를 버릴 수가 없었다.

비록 그녀의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에 버림 받았다 해도.

‘괜찮아. 내 상대는 죽은 자의 왕이 아니야. 뷔독과 그 용병들이지.’

아실리는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혐오감을 애써 달랬다.

"계십니까?"

문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아실리와 시종은 고개를 돌렸다. 늙은 집사의 목소리다. 아실리는 즉각 대답했다.

"무슨 일이지?"

"뷔독이 빌과 크게 언쟁을 벌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듣자니, 분위기가 꽤 험악해진 모양입니다."

아실리는 번개 같이 책상에서 뛰어내렸다. 그녀는 문을 벌컥 열어서는 놀란 얼굴의 집사에게 캐물었다.

"왜? 얼마나 크게 싸운 거지? 보고하러 올 정도면 정말 크게 싸운 거야?"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보수라던가 앞으로의 계획이라던가 그런 일 때문에 싸웠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면 계약이 파탄 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차!"

계약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아실리는 이마를 짚었다. 멍청하게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빌이 아직 뷔독과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경우를. 가능성은 낮지만, 뷔독과 싸웠다는 이야기는 그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높여준다. 설령 빌과 뷔독이 계약했더라도, 조건이 맞지 않아 크게 싸웠다면 뷔독에게서 돌아설 수도 있다.

간단하잖아. 적을 동지로 만드는 것쯤은.

"당장 채비를 갖춰! 빌을 만나러 가겠다!"

"바, 밤인데요? 게다가 그는 거칠고 사나운 용병이에요. 아가씨가 설득할 수 있을 인종이 아닌데."

소년시종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만류하자, 황금의 딸은 쾌활하게 외쳤다.

"그딴 건 상관 없어!"


작가의말

사실 모델이 된 14~15세기엔 지뢰가 없지만.(먼산)
동양에는 비슷한 게 종종 있었지요. 뭐, 어쨌든 서술된 구조의 것은 그닥 좋은 지뢰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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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인연살해 3부: 미친 빌과 졸업논문 - 서막 +12 11.12.03 3,262 84 10쪽
35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종막 +17 11.11.26 3,325 94 7쪽
34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14 +13 11.11.19 3,256 90 20쪽
33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13 +12 11.11.12 3,277 86 16쪽
32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12 +7 11.11.05 3,333 79 17쪽
31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11 +11 11.10.09 3,406 98 19쪽
30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10 +8 11.10.01 3,476 91 26쪽
29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9 +8 11.09.25 3,576 84 19쪽
28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8 (복구 완료!) +3 11.09.25 3,368 77 12쪽
27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7 +1 11.09.25 3,330 73 18쪽
26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6 +2 11.09.25 3,517 78 22쪽
25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5 +3 11.09.25 3,447 80 16쪽
24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4 +5 11.09.25 3,615 86 12쪽
23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3 +3 11.09.25 3,881 91 27쪽
»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2 +3 11.09.25 3,728 80 10쪽
21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1 +3 11.09.25 4,237 85 12쪽
20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서막 +4 11.09.25 4,103 86 5쪽
19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종막 +14 11.09.25 4,055 98 13쪽
18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7 +3 11.09.25 3,716 92 6쪽
17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6 +3 11.09.25 4,175 79 17쪽
16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5 +7 11.09.25 3,770 100 20쪽
15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4 +5 11.09.25 4,638 79 17쪽
14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3 +4 11.09.25 4,064 84 17쪽
13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2 +6 11.09.25 5,103 96 15쪽
12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1 +6 11.09.25 4,264 106 12쪽
11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0 +8 11.09.25 4,442 99 11쪽
10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9 +5 11.09.25 4,491 102 22쪽
9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8 +6 11.09.25 4,571 116 13쪽
8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7 +4 11.09.25 5,046 113 23쪽
7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6 +8 11.09.20 5,041 12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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