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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사판 공사판

인연살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구선달
작품등록일 :
2012.09.01 22:09
최근연재일 :
2016.07.08 02:27
연재수 :
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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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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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2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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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3

DUMMY

분잡한 도시도 어둠이 내리면 시골과 다르지 않다. 어지간한 상점은 대개 문을 닫고, 술집과 매춘부들의 시간이 이어진다. 호객이랍시고 지나가던 남자들을 막 붙잡고는, 뿌리치려 했다간 그 자리에서 비명을 빽빽 질러대는 여자들, 아예 멋대로 누군가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여자들.

좋은 추억담이 생기긴 어려운 골목길에서 한 소녀가 걸었다. 사각형으로 깊게 파인 목선의 검은 드레스. 긴 검은 생머리가 파란 눈동자 옆에서 찰랑거렸다. 엉망진창인 매춘부들의 생떼에 시달리던 몇몇 남자들이 그녀의 그림자에 눈길을 뺏겼지만, 그들이 뭔가 시도해보기도 전에 그녀는 유령 같은 걸음걸이로 멀어졌다.

그녀는 북부인들의 거주구에 섰다. 40명은 쉴 수 있을 듯한 커다란 숙소에 그녀의 시선이 박혔다. 그곳은 이미 요새였다. 쓰러진 마차와 밀가루포대로 방벽을 만들었고, 곳곳에 중무장한 병사가 보초를 섰다. 입구에는 언제든지 끌어다 놓을 수 있는 바퀴 달린 목책, 그리고 자포가 장전된 경포까지 놓여졌다.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렇게까지 무언가를 경계하던 모습은 볼 수 없었으니까. 특히 당장 칼부림이라도 벌일 것처럼 쩌렁쩌렁 터져 나오는 고함들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빌어먹을 용병! 그게 내 탓이오? 일당백이란 명성이 아깝소!"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이 화답했다.

"마녀의 가마솥에서 살아나오는 건 내가 댁보다 전문가다! 내 병대를 어떻게 움직이든 상관하지마!"

"멋대로 처박혀서는 꼼짝도 않으려는 용병을 누가 신뢰한단 거요! 내 지시대로 행동하시오!"

"고용주는 일선에서 좀 빠져!"

역시 정정하네. 셀레스테는 미소를 지었다. 저 북새통에 끼어들까?

그녀는 자신의 뒤로 누군가 걸어오는 것을 알아챘다. 고개를 돌려보니 다섯 인간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제일 앞에는 초롱불을 든 소년이, 그 뒤에 한 금발소녀가 있었다. 나머지는 금발소녀의 호위병이었다. 그들은 고함소리를 듣자마자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의 목적지를 짐작한 셀레스테는 어둠 속으로 슬쩍 비켜섰다. 자, 이제 어떡할래? 묘하게도, 그들은 셀레스테와 반대방향에 섰다. 셀레스테는 갈색머리의 중년 남자가 씩씩거리며 빌의 숙소를 뛰쳐나올 때에야 그 이유를 알아챘다. 그들은 저 남자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문제의 남자가 보이지 않을 때쯤이야 금발소녀의 일행은 빌의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셀레스테는 눈웃음을 치며 조용히 다음 순간을 기다렸다. 금발이 사라지고 상황을 살필 수 있을 때를.

예상보다는 빨리 찾아왔다.





*

아실리 에소테리아가 난생 처음 미친 빌을 보고 느낀 점은, 무섭다는 생각뿐이었다. 사슬갑옷과 투구까지 착용하고 눈을 빛내는 노병. 수염이 무성해서 광대뼈 부근을 빼면 살갗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검은 개가죽망토와 세로줄무늬바지는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무엇보다 무시무시한 것은, 자루까지 쇠로 만들어진 이상한 양손도끼.

"오밤중에 조카와 외숙부가 쌍으로 사람을 짜증나게 만드는군."

100명의 수적을 지휘하여 한 도시에 도전한 자. 그런 식으로 알던 것보다 더 심각한 분위기다. 촛불 하나가 간신히 몰아낸 어둠 속에서 북부 용병은 전혀 난폭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도끼를 양손으로 붙든 채 아실리 에소테리아를 노려보기만 했다. 아실리는 그게 더 무서웠다. 빌의 몰아서 쉬는 숨결 하나하나에 그녀는 바짝 긴장했다.

"그럼 뷔독과는 이미 계약하신 것이죠?"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빌은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그렇다. 겨우 그걸 확인하려고 이 밤중에 왔나?"

"아뇨. 볼일이 하나 더 있죠."

"뭔가?"

"계약해지를 바랍니다만."

빌의 눈이 꿈틀거렸다.

"농담하나?"

아실리는 용기를 냈다. 그녀는 황금의 딸이다.

"덧붙여서, 가능하면 저와 계약해주셨으면 합니다."

일순간 위압감이 사라졌다. 빌의 표정이 멍청해졌기 때문이었다. 주변의 다른 병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실리는 자신이 뭔가 잘못 말했나 싶었지만, 미리 생각해둔 말들을 기어이 쏟아냈다.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겠습니다."

"합당? 얼어 죽을."

투덜거린 것은 화상자국이 인상적인 거구의 용병 마누크였다.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방으로 돌아가버렸다. 자다가 깬다는, 북부 장로로서는 최악의 사건을 겪은 게드 장로도 전혀 고운 말을 쓰지 않았다.

"황금의 딸은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라는 점에서 요조숙녀랑 똑같다더니 그 말이 진실이군. 젠장. 난 들어가서 잔다. 한번만 더 북부 장로를 깨우는 놈이 있으면 장로회에 맹세코 대가리를 깨놓을 테니 알아서들 해."

게드 장로도 일어서자, 아실리 에소테리아는 황급히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녀를 제외한 모두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표정이었다. 그녀에겐 다행히도 빌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고용주를 배신하는 용병사업자는 없다. 개개인이 탈영해 편을 바꾼다면 몰라도."

"아, 그런 문제였나요? 그건 이미 예상한 바죠."

아실리가 어느 정도 안심했다는 표정을 짓자 빌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이에 회담을 기웃거리던 틸리가 끼어들었다.

"어, 혹시나 해서 묻습니다. 상상 이상의 액수를 부르겠다던가, 우리 개개인을 돈으로 깡그리 매수해버리겠다는 생각이신지?"

"네."

아주 간단하게 튀어나온 대답에 주변은 소란스러워졌다. 병사들이 전부 발작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빌은 입을 쩍 벌렸다. 그는 잠시 후에야 왼손을 들어올리는 것으로 병사들을 제지한 다음 표정을 수습했다.

"아무리 황금의 딸이란 별칭이 있다 해도 그건 좀 어이가 없군. 너는 금 때문에 배신한 용병을 밑에 둘 수 있나?"

아실리 에소테리아는 코웃음을 쳤다.

"이 도시에서 저보다 부유한 사람은 없으니까 상관없어요."

"잘났다. 헌데 남부의 황제도 용병들 규율은 못 산단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절대적인 규율은 없어요. 제 어머니는 검술학교의 배신자들에게서 달아났죠. 그리고 이 도시에서 성공해 아버지 없이 절 낳으셨어요."

"웃기는군."

"북부인으로서 죽은 자의 왕을 편들 생각이라면, 그만둬주세요."

빌은 고개를 저었다.

"죽은 자의 왕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나 또한 그를 편들 이유는 없지."

"약탈자에게서 그런 이야길 듣다니 재미있네요."

"누군가의 죽음은 누군가의 이득이 되지만, 어떤 바보가 그걸 죽은 자의 왕이 드러내는 지지라 말하겠나? 난 회의적이다. 북부의 왕이 탄생한다면 모르지만."

"어머, 짐작 못하셨나요? 왕은 탄생할 거예요. 북부재단의 지지를 받는 西파롤의 왕이라면, 충분하잖아요? 그리고 죽은 자의 왕도 그를 지지하겠죠. 중부를 향한 대반격이 시작될 테고. 즉 북부재단은 돈으로 북부를 사고, 죽은 자의 왕을 매수하는 거예요. 지금 저는 그것보다 작지만 비슷한 사건을 시도할 뿐이죠."

"계집애치곤 날카롭군."

"상인의 감각이라고 해주실 수 없나요?"

"유치한 애새끼가 검을 든 꼴이라고 해줄 순 있다. 북부재단이 죽은 자의 왕에게서 뭘 매수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떠들다니. 돌아가서 금화나 갖고 놀아라."

아실리는 고운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는 빌의 노골적인 빈정거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화가 난다. 황금은 태양궁의 마법사도 굴복시킨다. 그녀는 빌에게 반박하기 위해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나 소년시종이 그녀의 흐름을 끊었다.

"빌 대장님. 주제 넘는 짓 같지만 한가지 요청이 있습니다."

"입 다물어!"

아실리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이미 그녀의 인내심은 바닥난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시종 따위가 끼어들어버렸으니 심사가 편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빌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년의 말에 응했다.

"말해라."

"뷔독과의 계약을 그의 철저한 보호로 완수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실리는 놀란 얼굴로 시종을 돌아보았다. 빌은 쓴웃음을 지었다. 승산 없는 싸움이다. 뷔독도 바보가 아니라면 전면전까지 각오하진 않는다. 설령 뷔독이 정말 바보라서, 또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양측이 전면전을 벌이더라도 승산 없는 싸움을 역전시키는데 전력을 다하기는 어렵다. 그런 상황에선 고용주만 보호해내도 용병대로선 대단한 성과다.

"멋진 경고로군. 네가 주인보다 낫다."

"과찬이십니다."

"뷔독이 전면전을 원한다면 나도 장담은 못한다. 고용주는 하늘이니까."

"그땐 이쪽에서 막아 보이겠습니다."

"퍽이나."

빌의 비웃음에 소년시종은 식은땀을 흘렸다. 열세에 처한 뷔독이 선제기습을 한다면 선두는 십중팔구 빌의 병대. 그것도 아실리 에소테리아의 모든 업무능력이 집중된 중심부에 가해진다. 수십의 북부 총병이 기습적으로 움직여도 막아낼까? 후속타가 전부 실패해서 뷔독이 패퇴하더라도, 양손도끼로 내려 찍는 최초의 일격은 치명적이다.

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해봐라. 회담은 끝났다."

"빌 대장, 제 이야기는 아직 안 끝났습니다."

아실리 에소테리아가 마주 일어서며 말했다. 빌은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아주 분한 표정. 그 격한 감정의 근원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회담 상대로는 덜 여문 과일 취급 당한 젊은이의 표정이다.

"당신을 이 시의 경비대장으로 만들어주겠어요!"

다급하고도 터무니 없는 외침이었다. 빌은 고개를 저었다.

"이래 보여도 국왕의 대위다. 왕의 허락 없이는 못해."

"허락할 거예요. 이 도시가 북부의 왕을 지지하게 될 테니까."

"매국선언이냐? 느닷없이 이야기가 커지는군. 아무리 태양궁에서 독립한 자유시라지만 정도가 있다."

"남이사! 그것보다 대답하세요. 경비대장의 직위면 남 부럽지 않을 재산을 쥘 텐데요? 모든 약탈자들의 선망 아닌가요? 황금과 정착은?"

빌은 틸리를 돌아보았다. 갑작스런 시선에 틸리가 당황하는 사이, 빌은 그에게 물었다.

"틸리. 좀 묻자."

"예, 뭡니까?"

"내가 이 시의 경비대장이 된다 치자. 그리고 북부의 왕이 즉위할 때, 이 도시의 성문을 그에게 바친다면 그는 기뻐하겠지?"

"물론이죠."

"그럼 나는 출세하는 건가?"

"나름대로요."

"거기서 끝내면, 너는 만족하겠나?"

그제야 틸리는 미소를 지었다. 장난스러운 대답이 뒤를 이었다.

"절대 아니죠. 이 잘난 제가 미친 빌을 따라다니는 이유는 좀 더 거창하고 재미있어야 한다고요."

빌은 고개를 끄덕이곤 아실리 에소테리아를 돌아보았다.

"그렇다는군."

병사들에게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아실리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제일 크게 웃은 사람은 역시 틸리였다. 빌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사실 난 돈 벌려고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다. 돈 이야기는 집어치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지."

"어, 대장. 아까도 말했지만 전 돈 벌고 출세하고 싶은데요."

"네놈은 저승 가더라도 내가 출세시켜서 죽은 자의 왕 오른편에 놓겠다. 초 치지 마."

틸리의 끼어들기에 빌이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병사들은 다시 폭소를 터뜨렸다. 더 이상 빌이 회담을 진행시키고 싶지 않다는 것만 확인한 아실리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신의 고운 머리카락을 헝클어댔다. 그 꼴을 감상하던 빌은 다시 입을 열었다.

"황금의 딸이라는 별칭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군. 하지만 꼭 그 별칭을 네 정체성으로 삼을 필요는 없을 텐데."

그 순간 아실리의 행동이 멈췄다. 그녀는 빌을 올려다보았다. 빌은 진심으로 충고했다.

"네 어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해라. 다시 말하지만, 돈으로 안 되는 일도 있긴 있다. 사생아."

그 순간 아실리의 녹색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었다. 소년시종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하지만 빌은 그 눈빛을 무시하고 손을 내저었다.

"시종, 모시고 가라. 틸리, 유력인사 가신다. 바래다 드리도록."



*

아실리 에소테리아는 돌아가는 길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틸리와 다른 석궁병은 심심하게 걷기만 했다. 숙녀가 오밤중 골목길을 걷는다 해도 다섯이나 되는 건장한 사내가 호위를 하는데 불량배가 덤빌 리 없다. 사실 아실리의 호위병 셋으로도 충분한 일이다.

틸리는 아실리의 뒤통수를 향해 말을 걸었다.

"아가씨, 대장 입장도 좀 이해해줘요. 대장이야 댁한테 나쁜 감정은 없을 테니까."

응답이 없었다. 틸리는 쓴웃음을 짓곤 동료를 돌아보았다. 신경 끄자고. 동료가 고개를 끄덕이자 틸리는 소년시종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옆얼굴뿐이지만 그도 기분이 영 안 좋다. 틸리는 소년이 돌아가자마자 뺨 맞을 것을 걱정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상회 건물 앞에서, 아실리가 입을 열었다.

"내 어머니는 검술학교의 배신자들에게 쫓겼지."

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이야기다. 검술학교의 대가들 중 죽은 자의 왕을 섬기는 자들.

"그들을 막으려면 역시 검술학교의 대가들이 필요했지. 내 호위병도 마찬가지야."

"무슨 이야기신……."

틸리는 말을 하다 말았다. 아실리가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정수리가 오싹하다. 그의 눈동자가 옆으로 흘렀다. 검. 시야로 검이 튀어나오는 순간 틸리는 황급히 뒤로 뛰었다.

"빅스!"

틸리가 부른 동료는 그만큼 날래지 못했다. 갑옷도 없다. 시시한 일이라 경장만 하고 나왔으니까.

피가 튀었다.

"도망쳐!"

여자 목소리. 피를 흘리는 쪽은 호위병이었다. 그가 이마를 감싼 채 비틀거리는 순간, 틸리와 그 동료는 잽싸게 뒤로 돌아 도망쳤다. 호위병들은 그들을 쫓아갈까 망설였다. 어둠 속에 한 패가 있다. 섣불리 쫓아갔다간 북부 총병들과 마주칠지도 모른다. 결국, 그들은 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어쨌든 신경전은 제대로 시작되었다.



*

빌은 투구를 벗고 갑옷만 입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그는 자리에 누운 지 30분이 지나기도 전에 투구를 도로 써야 했다.

"빌어먹을 계집애."

헐떡거리던 틸리와 그 동료는 빌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짜고짜 칼질이라니, 황당하더군요."

총알 같이 달려온 둘의 모습은 숙소를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물러설 곳이 없다. 소년시종의 제안도 헛될 공산이 크다.

못 말린다.

"대장!"

예상 밖의 도발에 황급히 정탐을 보냈던 병사 하나가 돌아왔다. 그는 간략하게 상황을 보고했다.

"민병대고 뭐고 아직 움직임이 없어. 오늘밤 당장 해치울 건 아닌 모양이야."

"그럼 신경전이군. 뜻대로 어울려주는 수 밖에."

빌은 어느 정도 안심했다는 듯 투구를 벗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당장 싸울 일은 없다. 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머릿속에서 정리한 계획을 입 밖으로 꺼냈다.

"방벽을 강화하고 2숙소의 시론에 연락해서 고참병 10명을 추려내라. 험상궂은 놈들로. 뷔독의 호위를 맡기겠다. 키체커와 코마는 자유행동을 허가한다. 그 친구라면 가장 전망 좋은 곳을 고르겠지. 게드 장로는 동이 트자마자 도시 밖에서 모병을 한다. 일단 숫자를 늘리고 봐야 해."

"어, 이 근방이라면 순전히 중부 놈들인데요?"

"일시 고용이다. 응할지는 모르겠지만. 여차하면 좀 더 북쪽으로 가서 할 일 없는 애들이나 찾아봐야지."

요점은 하나. 충분한 전력이 확보될 때까지 싸움을 피한다. 아실리 에소테리아가 싸움을 원한다면, 우선 이쪽은 허풍을 최대한 많이 쳐야 한다. 우락부락한 북부 총병의 호위를 받는 뷔독의 모습이라면 무력 시위는 된다. 또, 오합지졸이라도 모아서 덩치를 불려야 한다. 어차피 저쪽도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은 상회에 고용된 덩치들 몇 명에 불과하다. 민병대를 이용한 무장봉기란 극단적인 카드를 벌써 꺼낼 리는 없다.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는 사이에 진짜 전력이 모인다면 무력충돌의 가능성은 낮아진다.

틸리는 머리를 긁적이다 제의했다.

"차라리 먼저 칠까요?"

"그랬다간 도시 하나를 적으로 돌린다. 그 한복판에서. 명분과 보호 없이는 안돼. 우선은 여기까지. 그 이상은 안 된다."

문득 틸리는 적잖은 사람들의 의문을 품는 빌의 과거를 떠올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대장은 전에 도시 하나를 공략했죠?"

"그랬지."

"그땐 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빌은 쓴웃음을 지었다.

"언급할 가치도 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그게 한계였지. 틸리, 말했을 텐데. 그런 짓 두 번은 안 하겠다고. 가서 쉬도록."

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대로. 그는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의 동료를 데리고 패거리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빌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문득 빌은 묻지 않은 것이 있음을 떠올렸다. 그는 틸리를 불러 세웠다.

"틸리. 여자 목소리라고 했나?"

"예?"

"돌 던진 녀석 말이다."

"예. 여자 목소리였습니다. 보진 못했고요."

빌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질문했다.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 아니던가?"

잠깐 뒤 틸리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그는 나지막하게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

아침이 되자 빌은 잠을 자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어차피 날아간 잠이다. 게다가 셀레스테가 도시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지겨운 계집애 같으니라고.

"빌, 대장 듣고 있는 거요?"

빌과 마주 앉은 노인의 말이었다. 빌은 눈곱을 떼며 대답했다.

"잘 듣고 있소. 아실리 에소테리아가 적법한 상속녀라는 것부터 뷔독이 얼마나 바보 같은 놈인지, 그리고 이 도시에는 정의가 살아 숨쉰다는 이야기도."

도시 유력자들의 연쇄 방문.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만남들만 이어졌다. 게다가 그들이 말하는 내용은 한결 같았다. 적당히 반박하고 대꾸하며 상대하는 것도 한계에 달했다. 눈 앞의 유력 인사는 금세공사 출신의 은행가인데, 북부재단과도 돈독한 관계의 인물이었다. 이런 거물들이다 보니 지식도 말발도 보통이 아니다.

용병은 고용주를 배신하기 어렵다. 상식이다. 근데 뜻밖에도 유력자들이 이 상식을 뒤엎으려고 한다. 아실리 에소테리아, 그 여자가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으리란 사실은 쉽게 짐작이 간다.

"사실 나도 용병사업자들이 뷔독을 배신할 것이라 믿지는 않소. 다만 당신이 알아줬으면 해서 하는 말이오. 신앙이 있는 자라면 더욱."

"중부 교회와 북부 교회가 같소?"

"난 북부 장로교회 신도요. 아버지가 북부 출신이었지. 당신도 그럴 테니, 같은 신도로서 말합시다. 정의 말이오."

"정의라. 정의로운 자는 죽지 아니 하던가?"

빌이 미소를 짓자 노인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북부 선문답이군.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것 같소. 북부인들은 문제가 하나 있지. 죽은 자의 왕이 절대적이라고 믿는단 거요."

"그럼 아니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시오. 당신네 북부를 어설픈 회의론에 빠지게 만든 그는 죽음 그 자체가 아니오. 신화시대에도 그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중부든 북부든 경전에도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소. 30년. 겨우 30년 전에 등장한 괴물이란 말이오."

역사 강의에 빌은 흥미롭다는 표정만 지었다. 이 이야기는 그나마 낫군. 적어도 반복되진 않으니까. 멋대로 떠들어라. 그리고 다음 사람이 오면 가라. 그의 심정을 알 리 없는 노인은 열변을 토해냈다.

"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태양궁의 마법사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했던 생각이오. 어떤 마법사가 미쳐서 멋대로 시체를 일으켜서는 죽은 자의 왕을 자처하는 거요."

빌은 비몽사몽 와중에 봤던 죽은 자의 왕을 떠올렸다. 그는 스스로를 신의 자만을 거느리게 된 마법사라 말했다. 거짓말이거나 환상이었을 가능성은 없다. 그는 실제로 락토에 행차했으니까. 비유일 것이다. 아니면 진짜로 마법사거나. 하지만 빌은 그 주장이 아직 정답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최악의 난관 하나도 안다. 태양궁과 그 주변 나라들에게도, 북부에게도 그런 능력을 가진 마법사나 장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태양, 불, 물, 땅, 쇠. 태양궁의 능력 밖이다. 달? 미친 신비라면 가능성은 있지만 장로회의 틀로 이해하기도 어렵다. 중부의 심장인 태양궁을 침범하고 그 궁정을 저주로 물들일 정도의 장로가 있었다면 장로회는 북부의 왕을 찾을 필요도 없이 즉석에서 그를 북부의 대장로로 내세운 다음 전쟁을 시작했을 것이다.

빌은 생각을 그만뒀다. 뭐 어떤가? 죽은 자의 왕이 마법사이든 시체든 그에게는 큰 상관 없는 문제다. 그의 존재와 능력이 문제일 뿐이다. 그는 정체가 어쨌든 대항할 도리가 없는 초월자다. 그는 혼자서 미친 파리 떼를 부리고 시체를 일으켰으며 검술학교의 대가들을 타락시켰다.

"뭐 그렇다 치겠소. 왕이 당신의 말에 얼마나 화를 낼지는 둘째치고."

말조심하고 살라는 뜻의 경고였다. 이 도시도 왕에게서 자유롭지 못하다. 도축할 때는 가축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리를 묶어야 하긴 매한가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례는, 그 잘난 황금의 딸이다.

그 어미는 결국 죽음에게서 도망치지 못했다.

노인은 질린 표정을 짓더니 구석의 게드 장로를 슬쩍 돌아보았다. 마누크의 체스 상대를 해주던 그는 노인의 눈길을 보곤 코웃음을 쳤다.

"고자질 안 할 테니 걱정 마시오. 수호자도 죽은 자의 왕을 알현하긴 어렵소. 난 일개 교회 장로요."

그제야 노인은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게드 장로는 거기서 말을 끝내지 않았다.

"다만, 뭐랄까. 대륙의 모든 시체들을 일으키는 괴물이 과연 대륙의 모든 목소리를 듣지 못할지는 의심스럽소. 이 여관 안만 돌아봐도 죽은 쥐새끼와 벼룩의 숫자가 상당할 텐데."

노인의 표정이 다시 질렸다. 그 순간 천장에서 쥐들이 우르르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게드 장로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별일이군."

"예?"

"죽은 쥐가 달리기에 하는 말이오. 왜 죽었지?"

노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천장을 경계심 역력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게드 장로는 실실 웃으면서 쐐기를 박았다.

"참고로 말해두겠는데, 북부 병단은 모두 죽은 자의 왕에게 가호를 빌고 있소. 그가 특별히 귀를 기울인다 해도 이상하진 않을 것 같은데. 교회로 가보시는 것이 좋겠소."

노인은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더니, 병사의 인도를 받아 숙소 밖으로 빠져나갔다. 빌은 게드 장로를 돌아보며 질문했다.

"왕이 정말 우릴 다 보고 듣나?"

"가능성은 있어. 손은 안 닿아도 눈과 귀는 닿는 법이지."

"확신하나?"

"일단 우릴 보고 있을 가능성은 없네."

"왜?"

"아직 안 죽었으니까. 미친 파리 떼가 날아오지 않잖아. 저주나 역병이 돌지도 않고."

"죽은 쥐는?"

"아, 이거?"

게드 장로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더니 벽면을 문처럼 두드렸다. 잠시 뒤 벽의 틈새로 생쥐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산 생쥐들이었다. 빌은 웃음을 터뜨렸다. 신비와 광기. 태양궁의 마법사들은 흉내내지 못하는 달 계열 마법사들만의 특기다. 작은 동물들 몇 마리를 간단히 부리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왕의 가호라는 말도 거짓말이야. 북부의 왕도 아니고, 일개 병단에 그런 게 있으면 진작에 난리가 났지."

"재미있었네. 다만 왕의 이름으로 거짓말하는 건 좀 줄이게."

"락토에서도 그러더니, 이 망할 영감. 진짜로 오면 어쩌려고."

마누크가 투덜거리듯 말하자 게드 장로는 체스판으로 손을 가져가며 미소를 지었다.

"체크메이트."

마누크가 비명을 질렀다. 빌은 웃으면서 고개를 도로 돌렸다. 그는 정문을 바라보았다. 자, 다음은 누구냐? 예상 밖의 인물이 찾아왔다.

"지점장이군. 텔로그랬나?"

"텔로그 호프만입니다. 그라스 모리 지점장에게는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이야기? 거긴 남쪽 끝인데?"

"편지는 자주 하니까요. 황동그릇을 이용할 수도 있고. 사적인 이용이라 걸리면 곤란합니다만."

웃자고 꺼낸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빌은 북부재단 지점장까지 아실리 에소테리아를 비호하기 위해 찾아온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지점장은 그런 추측을 부정했다. 북부재단은 상식을 지키고 싶어하는 국제적 집단이었다. 호프만 지점장은 다른 이유로 찾아왔다.

"솔렌 은행장을 봤습니다. 에소테리아의 농간인가 보군요."

"아버지가 북부인이라더군."

"예. 맞습니다."

"내 부하 중엔 북부의 피를 받았어도 남부에서 자란 애들도 있지. 근데 그 녀석들이 더 북부인다워. 이곳이 북부에 훨씬 더 가까운데. 웃기는 일이야."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죽은 자의 왕을 험담하더군."

지점장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북부 출신 치고 죽은 자의 왕에 관해 멋대로 논하는 놈은 거의 없다. 특히 그의 존재를 폄하하려는 시도는.

"이 도시 자체가 상당히 비정상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입니다. 이 도시는 북부재단이 기를 못 펴는 몇 안 되는 자유시 중 하나죠. 그 말은, 보편 타당한 이야기가 안 통한단 말입니다. 국제적인 건 보편적인 법이죠."

"고립인가?"

"그건 아닙니다. 무역으로 먹고 사는 자유시가 고립을 택하면 큰일나죠. 문화나 관세 같은 문제가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아실리의 엄마였습니다. 그 망할 황금의 노예가 도시를 바꿔버렸죠. 아무리 죽은 자의 왕에게 쫓겼다지만 비상식적인 여자였습니다. 미친 거죠. 아실리는 그 여자의 적법한 상속녀를 자처하고요. 아비 없이 태어나 어미의 성을 택한."

"웃기는군. 사생아는 아버지 없는 자식을 말하는 것이 아닌데."

"그 말, 아실리 앞에서는 안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왜?"

"그 계집애 자랑이 아비 없이 태어났다는 겁니다. 아비를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태양궁의 여왕까지 뒤집어질 개소리로군. 창세신화냐?"

"황금의 딸 아닙니까? 엄마는 인간, 아비는 황금."

"엄연한 현실에 허튼 소리 붙이면 영생을 누리게 되나 보군. 죽은 자의 왕이 얼마나 웃을지 상상도 안 가. 여하튼 왜 칼부림이 나왔는지 이제 이해했네."

"예?"

"그 사생아란 소리를 아실리 바로 앞에서 했지."

지점장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아랫입술을 한번 핥고는 말했다.

"실수하셨군요."

"정보부족이다."

지점장은 더 이상 그 화제로 이야기를 잇지 않았다. 그는 들고 온 가죽자루를 탁자 위에 놓았다.

"맥주입니다."

"맥주는……."

"북부인이 맥주를 술 취급하면 안 돼죠. 약한 겁니다."

"준비성 좋군."

빌은 잔에다 맥주를 받았다. 입 안으로 넘기니 맛이 밍밍하다. 물 탔군. 잔을 반쯤 비웠을 때 지점장이 비밀이야기가 있다는 듯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본론을 속삭였다.

"현실이라니까 하는 말입니다만. 귀신늑대가 지점에 왔었습니다."

그 순간 빌은 마시던 맥주를 잔 안으로 도로 내뿜었다.


작가의말

러시아는 맥주를 술 취급하지 않았다가 청소년 계층이 알콜 중독으로 작살났다죠. 뭐, 보드카의 나라니까.-_-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60 죠스바lv9
    작성일
    12.05.04 12:23
    No. 1

    맥주는보리음료인거죠맥콜처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케발리어
    작성일
    12.05.09 21:20
    No. 2

    난 알콜섭취를 못하는 특이체질이라....맥주만 마셔도 취하던데..ㅡ_-;;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2 라라.
    작성일
    15.10.11 19:36
    No. 3

    알콜 흡수를 못하는건 조상중에 중국인이 있다는거예요.
    모든 한족이 알콜 흡수를 못하는게 아니고 알콜 흡수를 못하는 유전자가 한족중 일부 집단의 유전적 특성이라고 하네요. 격세로 유전 되기도 하는 유전적 특징으로 그런 유전 형질이 있는건 조상중 한족(중국인)이 있다는거

    찬성: 0 | 반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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