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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사판 공사판

인연살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구선달
작품등록일 :
2012.09.01 22:09
최근연재일 :
2016.07.08 02:27
연재수 :
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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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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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044

작성
11.09.2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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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글자
12쪽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1

DUMMY

선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와 그의 선원들 수십 명 앞에 선 일당 때문이었다. 선장의 배를 정지시키고 올라탄 그들은 겨우 5명이었지만, 그 5명만으로도 선상의 분위기는 압도당했다. 게다가 상선은 3척의 군선에 포위된 상태였다. 검은 개가죽망토를 어깨에 걸친 노병이 그들의 두목이었다. 그는 선장이 내민 증서를 몇 번이고 반복해 읽더니, 선장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선장이 움찔거리자 그는 코웃음을 쳤다.

"틀림없군. 좋다. 귀선의 안전을 보장하지."

빌은 증서를 둘둘 말아서는 선장에게 돌려줬다. 선장은 세금 영수증을 조심스레 받아서는 품 속에 챙겼다. 빌의 부하들이 아쉽다는 의미가 다분한 한숨을 내뱉을 때 그는 자신의 현안을 찬양했다. 어쨌든 북부 가까이에서 항해하면서 파롤 왕국에 거스르면 좋을 것 없다. 세금을 안 내고 장사했다간 빌 같은 사략수적에게 덜미를 잡히기 마련이다.

선장은 조금 더 용기를 내기로 결정했다. 이 기회에 빌과 친해지면 불상사에 대비할 수 있다. 그러나 선장이 때마침 꺼내놓은 포도주 자루를 들어올리자 빌은 고개를 저었다.

"난 술 안 먹네."

"아, 그러셨습니까? 그럼 차는? 산악연맹 놈들에게 팔 것이 조금 있습니다만."

"좋지. 차로 주게."

선장은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법자와 술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특히 물 대신 술을 마실 사람들에게는. 잔을 나눈 다음 선장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요즘 경기는 어떻습니까?"

"어렵지. 죽고, 다치고, 돈 깨지고. 신병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그렇습니까? 이 근방에서 큰 싸움은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

"규격 외 잡것들과 싸웠으니까. 다시는 그런 전투 치르고 싶지 않아."

"대단했나 봅니다."

"짜증났지."

다행히도 빌은 선장의 이야기에 적당히 어울려주었다. 선장도 차 한잔으로 회담을 끝낼 생각은 없었다. 혹여 문제가 생길 땐 좀 봐달라는 의미가 다분한 리넨 두루마리가 빌에게 주어졌다. 빌은 두루마리를 뒤의 병사에게 넘긴 다음 뒤이어 도착한 찻물을 잔을 받았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실 생각이신지?"

"지그하우스."

귀에 익은 도시 이름에 선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동네 요즘 분위기 험악하다고 들었습니다만."

"계집애가 자기 외숙부랑 싸운다지."

"소식이 빠르군요."

"고용되었으니까."

"저런."

선장은 고용주가 카드 하나는 잘 골랐다고 생각했다. 100명의 북부 병사. 지그하우스는 작은 도시다. 만만찮은 전력임이 분명하다. 선장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여자입니까, 남자입니까?"

빌은 대답했다. 그래서 그는 선장의 불쌍하다는 표정에 놀랐다.



*

북부재단 지그하우스 지점 응접실에서, 지점장은 생각에 빠졌다. 자신들은 어디까지나 외부인이다. 이 사실이 불리할 때가 많지만 유리할 때도 있다. 우선, 조카와 외숙부가 법률, 상식, 윤리, 의혹 등 온갖 문제로 으르렁거리는데 안 끼어들어도 된다.

눈 앞의 계집애는 그 장점을 완전히 탈색시켰다.

화사한 녹색 드레스를 입은 금발녹안의 소녀. 긴 생머리를 허리 아래까지 길렀다. 또래 아이들에 비하면 키가 꽤 커서 성숙한 여인에 가깝다. 그 덕택인지 허약한 느낌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흡사 기사의 딸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검은 옷의 사내들 앞에서도 소녀는 전혀 주눅 든 기색이 없다. 오히려 그들을 자신의 뜻대로 끌려고 시도 중이다. 지점장이 울고 싶어지는 이유는, 그녀가 충분히 그럴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점장은 조심스럽게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만, 북부재단은 어디까지나 외부인입니다. 그 누구도 북부재단의 장삿길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당신의 외숙부는 포악한 범죄자도 세리도 아닙니다. 잘 아시는 분이 거래를 관두라고 청하시다니 난감하군요."

"지점장님, 저는 이 도시의 유력자입니다. 저의 외숙부란 사람은 한낱 범죄자일 뿐이며, 시민의 지지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저의 외숙부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소녀의 당찬 반박. 논리적이라기보단 힘과 권위에 의존한다. 지점장은 탁자를 엎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외숙부가 아니라고? 뻔히 서류가 있는데?

"일단 외숙부께서는 존중 받는 법률과 정의로운 시민들에게 축출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북부재단은 공증인들이 인정한 서류에 반박하지 않습니다."

"많은 서류는 위조되는 법입니다."

지점장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장사판에서 구른 우리가 너도 아는 그 한심한 사실을 모를 것 같으냐? 소녀는 지점장의 불편한 속내를 눈치챘지만, 거리낌없이 말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도 그는 제 어머니의 유산을 흥청망청 씁니다. 제 상회와 도시의 발전을 위해서는 그를 제지해야 합니다."

"그럼 그가 정말 해악이고, 북부재단이 외부인임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위해 나설 필요가 있다 칩시다. 직설적으로 묻겠는데, 저희가 거래를 깨는 위험을 무릅쓰고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소녀는 다소곳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 북부재단이 가장 갈망하는 특권이 곧바로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북부재단에서 판매하는 청어의 관세를 절반 이하로 줄이겠습니다. 이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쌍방에게 좋겠죠."

지점장은 너무 쉽게 떨어진 이익에 웃지 않았다. 다른 북부재단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생각했다. 이 계집애, 무슨 꿍꿍이인 거야? 소녀는 용건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북부재단에 더 할 얘기가 없었다.

"좀 바빠서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잘 생각해보시길."

그녀는 응접실에서 사라졌다. 발자국소리가 멀어져 들리지 않게 되자, 재단 사람들은 코웃음을 치며 소녀의 제안을 비웃었다. 제일 먼저 지점장이 입을 열었다.

"관세 철폐라고? 웃기는 소리."

관세를 매기지 않고 팔리는 청어. 말 그대로 돈이 쏟아져 들어오는 막대한 특권이다. 소녀의 외숙부와 진행하던 거래가 꽤 크긴 하지만, 그 특권과 맞바꿀 정도가 되진 않는다. 예상답안은 둘 뿐이다. 소녀가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거나, 정말 급박한 모양이다. 모범답안은 전자다. 후자는 가능성이 없다. 북부재단에겐 이익이 안 되는 이야기다.

"외숙부를 쫓아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관세를 다시 올리겠죠."

한 직원의 말이었다. 다른 직원도 맞장구를 쳤다.

"얻는 게 없습니다. 이래나 저래나 이 도시에서 우리는 천덕꾸러기 신세입니다."

"멋진 텃세지. 하지만……."

저항할 방법도 없다. 직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녀의 능력을 아는 직원들은 독이 든 맥주를 마시는 기분으로 모범답안을 골라야 했다.

황금의 딸.

지점장이 거래취소 명령을 내리려 하던 그때였다. 갑자기 사색이 된 직원 하나가 응접실로 뛰어들어왔다. 그는 손가락으로 응접실 창 밖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군선이 떴습니다!"



*

본명보다 별명이 더 유명한 금발 소녀, 아실리 에소테리아는 북부재단의 건물 앞에서 기다리던 일행과 합류했다. 그녀는 북부재단이 자신의 뜻을 따르리라 예상했기에, 제법 으리으리한 건물을 올려다보면서도 입을 삐죽거릴 수 있었다. 이 도시에서 그녀는 절대 강자다. 잠시 혼란을 주는 엉터리 외숙부 따위는 곧 축출된다. 금을 가랑이에 쏟아야 교성을 내지를 계집들, 나자빠지는데 환호하기 바쁜 비싼 전쟁놀이는 지겹다.

나는 황금의 딸이다.

아실리는 자신의 별명을 곱씹으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보았다. 피 같은 금의 낭비는 막아야 한다. 금은 그녀의 존재 이유이자 기반이다.

"아가씨. 그만 돌아가시죠. 곧 해가 집니다."

충실한 소년시종의 말에 아실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의 이변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집을 향해 걸었다.

"끝났네. 생각보다 쉬웠어. 북부재단도 별 것 아닌데?"

"훌륭하십니다."

"낯 간지러운 칭찬은 그만둬. 순전히 좋은 친구들을 둔 덕분이니까."

아실리는 밝게 웃었다. 상속녀의 웃음에 소년시종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가 말한 좋은 친구들은 도시민 전체다. 물론 뻔질나게 뛰어다니며 지지를 모은 일행, 소년시종도 포함된다. 다른 사람들도 웃으면서 조속히 상회의 정상화를 기도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순간, 그녀는 사색이 되어 건물을 뛰쳐나오는 북부재단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 그 순간만큼은 황금의 딸도 살짝 겁을 먹었다. 그러나 건물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죽은 자의 왕이 군세를 일으킨 것도 아니며, 지점장이 드디어 살짝 돌아서 아실리 에소테리아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생각을 한 것도 아니다.

"뭐, 뭐야?"

아실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북부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강으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아실리는 강에 뭐가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새로 들어오는 배. 그녀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북부 병단? 설마 무장하고 들어온 건가?"

"아무래도 그런 모양인데요."

소년시종이 맞장구를 쳤다. 무장한 병단이 도시에 들어온다면 그건 거래할 생각이 없단 뜻이다. 거래가 아니라면? 용병으로서 왔다. 그들이 이 도시에 올 이유는? 북부재단이 용병에 기겁을 할 일이 무엇일까? 용병들은 소녀의 적일 가능성이 높다. 아실리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웃었다.

"하! 외숙부도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군. 북부 잡것들을 끌어들인 모양인데?"

"위험하지 않을까요? 용병은 민병보다 훨씬 무서운데요."

시종의 겁먹은 목소리에 아실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자신 있게 말했다.

"병단이 기껏해야 몇 명이나 되겠어? 게다가 재단도 북부인과 우리들의 불필요한 갈등은 안 바랄걸? 조금만 기다려 봐. 북부재단이 설득해서 그 병단은 돌아갈 거야."

"그게 쉽다면 지점장이 직접 뛰쳐나갈 것 같진 않은데요."

소년시종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그 순간 아실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거물이다?"

"그럴 가능성이 높죠."

그런 거물들이 세상에 존재하긴 한다. 西파롤의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네 사략수적들. 침몰선주 프론홈, 왕의 노 에릭슨, 흑선 시다크. 그리고 하나 더. 아실리가 그 이름을 떠올리기 전에 항구 쪽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미친 빌이다!"



*

틸리, 키체커, 마누크, 게드 장로, 시론과 함께 항구에 들어선 빌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석양에 빛나는 전형적인 소도시. 그렇지만 익숙하지 않은 도시다. 이 도시는 언제나 그의 항로에서 벗어났다. 북부재단을 빌어 거래를 하는 그로서는 재단의 힘이 약한 동네에 별 볼일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익인과의 전투에서 입은 피해가 아니면 이렇게 일을 덥석 물지 않았다.

성급했다.

오판했다.

정보가 부족했다.

"대장, 이건 뭔가 심상치 않은데."

시론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틸리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주변의 분위기는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누가 왜 불렀는지 벌써 다 안다는 표정의 시민들은 총총걸음으로 항구에서 멀어졌다. 키체커는 벌써 사냥총을 꺼내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마누크는 도시 전체에 대한 저주를 읊었다. 게드 장로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빌은 짧게 내뱉었다.

"지뢰 밟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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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인연살해 3부: 미친 빌과 졸업논문 - 서막 +12 11.12.03 3,262 84 10쪽
35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종막 +17 11.11.26 3,325 94 7쪽
34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14 +13 11.11.19 3,256 90 20쪽
33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13 +12 11.11.12 3,278 86 16쪽
32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12 +7 11.11.05 3,333 79 17쪽
31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11 +11 11.10.09 3,407 98 19쪽
30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10 +8 11.10.01 3,477 91 26쪽
29 인연살해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9 +8 11.09.25 3,576 84 19쪽
28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8 (복구 완료!) +3 11.09.25 3,368 77 12쪽
27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7 +1 11.09.25 3,330 73 18쪽
26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6 +2 11.09.25 3,518 78 22쪽
25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5 +3 11.09.25 3,448 80 16쪽
24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4 +5 11.09.25 3,616 86 12쪽
23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3 +3 11.09.25 3,882 91 27쪽
22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2 +3 11.09.25 3,728 80 10쪽
»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1 +3 11.09.25 4,238 85 12쪽
20 인연살해: 미친 빌과 황금의 딸 - 서막 +4 11.09.25 4,104 86 5쪽
19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종막 +14 11.09.25 4,056 98 13쪽
18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7 +3 11.09.25 3,717 92 6쪽
17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6 +3 11.09.25 4,175 79 17쪽
16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5 +7 11.09.25 3,770 100 20쪽
15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4 +5 11.09.25 4,639 79 17쪽
14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3 +4 11.09.25 4,064 84 17쪽
13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2 +6 11.09.25 5,103 96 15쪽
12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1 +6 11.09.25 4,265 106 12쪽
11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0 +8 11.09.25 4,442 99 11쪽
10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9 +5 11.09.25 4,492 102 22쪽
9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8 +6 11.09.25 4,573 116 13쪽
8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7 +4 11.09.25 5,047 113 23쪽
7 인연살해: 미친 빌과 귀신늑대 - 6 +8 11.09.20 5,042 12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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