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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못하는 야구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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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至言)
작품등록일 :
2024.06.1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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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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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스프링캠프 (3) (수정)

DUMMY

#6


나는 불펜으로 향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보그스!’


이번 생은 여러모로 잘 풀린다.

운이 따라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서둘러 과거 기억을 되짚었다.

스티븐 보그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금세 떠올릴 수 있었다.


‘포수 출신 배터리 코치. 매리너스의 핵심 선수인 칼 롤리를 키워낸 장본인이지.’


포수 조련 능력만큼은 알아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투수 보는 눈도 나쁘지 않다. 피칭 코디네이터와 협력하여 투수들의 리포트를 작성하고, 그걸 감독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얼른 꼬셔버려야지.’


이 둘의 날카로운 눈빛에 하트를 띄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냥 최선을 다해 공을 던지기만 하면 되었다.

프로의 세계에서 실력이라는 건, 가장 확실한 언어였고 화폐였다.


“더, 더 없나?”

“뭐가요?”

“변화구 말이야. 내가 듣기로는 던질 수 있는 구질이 꽤 많다던데.”


아이고.

더 보고 싶으시구나.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여기서 모든 패를 까는 것도 분명 괜찮은 선택지이고, 대부분의 신인 선수가 나 같은 상황에서라면 그런 판단을 내리겠지.

메이저리그 직속 코치의 눈에 들 수 있는 기회는 스프링캠프 내내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보그스는 코칭스태프 회의에서 발언권이 꽤 큰 인물이고, 또 수다쟁이다.

이 두 가지 특성을 알기에 정답 또한 정해져 있었다.

내가 택한 길은 천천히 돌아가는 거였다.


“글쎄요. 오늘 컨디션이 영 좋지 않은 거 같아서······.”


그 말에 보그스가 자신을 재촉해 왔다.


“딱 10구 정도만 더 보여주는 게 어떤가? 자네 공이 흥미로워서 그래.”


아주 달콤하다.

귀에 착착 감긴다.

그러나 나는 유혹을 뿌리쳤다.


“코치님 앞이라는 이유로 무리하고 싶진 않습니다. 딱 3구만 더 던지고 마무리할게요. 칼 롤리, 괜찮죠?”

“나야 뭐······ 내가 던져달라고 했으니, 투수가 던지고 싶은 만큼 던지면 된 거지.”


그렇게 후다닥 세 개의 공을 더 던진 뒤.


“오케이! 여기까지요!”


큭큭.

보인다 보여.

더 보고 싶어서 머릿속이 뒤죽박죽인 게 보인다.

얼씨구, 표정 보소.

저러다 침까지 흘리겠어.


“오늘 좋게 봐주셔서 기분이 좋군요. 뒷정리는 제가 할까요?”

“스프링캠프는 훈련 뒷정리 안 해도 돼. 헤이!”


롤리가 이제 막 출근한 직원들을 불러 뒷정리를 부탁했다. 그들이 맡은 업무가 이거다.

훈련장 관리.

나는 그걸 알면서도 굳이 이렇게 물었다.

예의 바른 신인의 이미지 역시 나중에 다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다.

그제야 표정을 수습하고 내게 다가온 보그스가 나의 등을 두드렸다.


“수고했어. 앞으로가 기대되는군. 남은 캠프 기간에도 힘내보라고. 내가 보기에 자네는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을 거 같거든. 열심히 하면 분명 눈에 띌 거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세상 편하게 정리 운동 스트레칭에 집중하고 있는데.

누가 내 등을 꾹꾹 누른다.


“나비?”

“냐-옹.”


여긴 또 어떻게 알고 왔대.

어차피 점심 먹기 전까지 시간도 비니, 휴식 겸 녀석이나 놀아줘야겠다.

나는 나비를 쓰다듬으며 훈련장에 드문드문 나타난 선수들을 지켜보았다.


‘근뎅.’


어?

뭐야.

나비가 말을 했다.


“야, 갑자기 말하면 어떡해?”

‘텔레파시 같은 거당. 이래 도 신인뎅······.’

“뭐야, 이런 것도 돼?”

‘당연하징!’


어이가 없네.


“여태 못했잖아.”

‘그건······ 힘이 부족했당. 신력을 다 썼거등. 이제 좀 회복됐엉!’

“어디에 그렇게 다 써버렸대?”


나비가 발끈했다.


‘그걸 몰라서 묻냥! 다 너 돌려보내고 특전 주다가 이렇게 된 건뎅!’


딱히 막 고마운 감정이 커지고 그러진 않는다.

어쨌든 귀여우니까 된 거 아닐까?


‘아무튼, 아까 왜 더 안 던졌냥? 눈도장 찍을 수 있었는뎅.’


이거 이거.

고양이 녀석도 하수네.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소문 들어 봤어?”

‘알징.’

“난 그 잔치에서 진수성찬을 대접하려고.”


더 중요한 환경에서.

큰 기회가 주어졌을 때.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물론 이건 좋게 포장한 거고.


“그리고 사실 내 문제가 해결이 다 안 됐어. 정상 기량이 아니야.”


실력은 빠르게 늘지 않는다.

하루하루 흘린 땀방울로 쌓아 올리는 거다.

내가 아무리 올바른 방향을 잡아 효율적으로 훈련한들,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를 뿐이다.

결국 물리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내 빠른 성장 속도를 팀에 각인시키기 위한 시간이 말이다.


“아마 저 코치님 성격에, 곧 팀에는 나에 대한 소문이 쫙 돌 거야. 이번에 50억 받고 들어온 놈이 좀 친다고. 기대할 만하다면서.”


이런 분위기라면 시범 경기 중 한 번은 마운드에 오를 수 있을 거다.

거기서 내가 가진 무기를 제대로 보여주면 된다. 그래야 소문을 퍼뜨린 당사자도 나를 발굴해 냈다는 쾌감이 딱 들지 않겠나.

그렇게 된다면?

투수를 콜업할 때 우선순위 목록에 내 이름을 올려놓게 될 거다.

내가 쌓아 놓은 좋은 기억들이 무의식적으로 나를 향한 애정이 될 거거든.

나의 계획에서 알 수 있듯, 내 다음 목표는 최대한 빠르게 데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의 피칭은 콜업 1순위가 되기 위한 전초전, 빌드업이었다.


‘너무 어렵당. 알아서 잘해 봐랑!’


이 고양이 녀석이, 실컷 설명하게 해 놓고는!

그래도 뭐.

덕분에 생각이 잘 정리된 거 같다.

나는 휴식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오후 훈련에 돌입했다.

공을 던진 날이니, 다리를 혼내 주어야겠지.

오늘은 근력보단 유산소가 땡긴다.


“하이, 두이, 서이, 너이!”


나는 혼자 외야 펜스의 러닝 트랙을 끝없이 오갔다.

아직 훈련 파트너는 없다.

그러나, 곧 생길 거다.


“하이! 두이! 서이! 너이!”


지칠 때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나는 팀원 다섯 명과 함께 달리고 있었다.


“하이! 두이! 서이! 너이!”


팀원들은 내 구호를 따라 부르기까지 했다.


‘옛날 생각 나네.’


처음 매리너스에 들어왔을 때가 떠올랐다.

이 팀 선수들은 성격들이 참 괴팍했다.

뭐랄까, 친해지는 방법이 항상 이런 식이다.

은근히 다가와서 함께 훈련.

그러다가 훈련 마치고 정리 운동하면서 첫 대화.

밥 먹으면서 친구 되기.

딱 이 루트가 보편적이었다.

여러모로 특이한 분위기와 문화다. 나는 매리너스만의 전통적인 분위기가 좋았다. 그래서 내가 팀에 있는 동안은 그 기조가 유지되었다.

나부터가 신입이 팀에 들어오면 그런 식으로 접근했으니까.

절로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하이, 두이! 서이, 너이!”


곧바로 앵무새처럼 내 말을 따라 하는 팀원들.

얼핏 살피니 다 아는 얼굴들이다.


“하이! 두이! 서이! 너이!”


얘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까.

모르겠지. 나랑 친구 먹기 전이니까.

그냥 내가 내는 일종의 구호이겠거니 싶을 거다. 실제로도 뭐, 비슷하고.

그나저나 참 잘도 따라하네. 구호를 발음하기 쉽게 바꾼 보람이 있다.

그렇게 팀원들과 어색하지 않은 첫만남을 가지게 됐다.


‘그나저나, 슬슬 때가 됐는데.’


어떻게 팀에 장점만 있겠는가.

그랬으면 진작 우승했겠지.

이제는 썩은 부분이 드러날 때였다.



#7


투수/포수 보고 당일.

오늘로 스프링캠프가 공식적으로 시작한다.

어느 팀이 안 그러겠냐마는, 매리너스의 스프링캠프 첫 일정은 팀 미팅이었다.


“다들- 반갑다!”


파이팅 넘치는 우리 감독님과 코칭스태프가 서른 명에 달하는 선수단과 마주했다.

이 서른 명은 선수단의 절반에 불과하다.

스프링캠프에 초청된 투수와 포수만 모였을 뿐이니까.

보통 이 자리에는 별다른 이야기가 오가지 않는다.

앞으로 열심히 하자.

한 해의 시작을 기분 좋게 시작해야 하지 않겠냐.

이런 덕담과 함께 선수들이 부담 없이 몸을 풀 수 있도록 한다.


“로스터에는 아직 빈자리가 있다. 특히 불펜 쪽은 텅텅 비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지. 선발 로테이션도 확정이 아니고.”


그런데 이 팀은 다르다.


“빈자리에 누가 들어올지는 나도 모른다! 여기에 초대된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가능성이 열려 있겠지. 이 말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스프링캠프부터 주전 자리를 두고 경쟁을 시킨다.


‘무조건 나쁜 방식은 아닌데, 이 방법으론 통 재미를 못 본단 말이지.’


매리너스는 봄에 강하다.

시즌 초반 늘 파란을 일으키고, 돌풍의 주역으로 거듭난다.

그러다가 여름이 되면 기세가 한풀 꺾인다. 그래도 여전히 포스트시즌 진출에 대한 희망을 두고 싸운다.

하지만 시즌 막바지엔 완전히 퍼진다. 특히 투수진이 정신을 못 차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타자라고 사정이 다르진 않다.

주전이 확정되지 않은 포지션은 연초부터 경쟁을 강하게 붙인다. 그리고 살아남은 선수를 기용한다.


“이점 유념해서 스프링캠프에 임했으면 좋겠다. 이상!”


얼핏 보기에 합리적인 운용 방식이다.

그러다가 시즌 막바지 지친 선수를 빼고 적절한 대체 선수를 기용할 수 있다면 말이다.

매리너스는 그러지 않는 팀이다.

팀 성적보다 선수들의 서비스 타임 관리를 더 신경 쓴다는 뜻이다.

시즌 초에는 그 어느 팀보다 혁신적인 변화를 추구하는데, 딱 중반을 지나는 순간 베테랑만 선호하는 기형적인 팀이 탄생한다.

그래도 당장 효과는 분명 있을 거다.

몇몇 선수들의 눈빛이 호전적으로 변했다. 이 꼴만 봐도 알 수 있다.


‘딱 애매한 위치 선수들에겐 눈 돌아가는 이야기이긴 하지.’


콜업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 있는 마이너리거들.

혹은 자기 위치 보전이 애매한 롱-미들 릴리프들.

종종 임시 선발을 맡으며 도약을 꿈꾸는 이들까지.

모두가 열성적으로 몸을 만들 터였다.

당장 스프링캠프 분위기는 한층 좋아지겠지만······.


‘이게 정말 팀 성적을 위한 길일까?’


지난 회차에서는 그냥 내버려뒀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결국 장단점이 있는 방법이잖은가.

그래서 팀 운영에 관해서는 깊게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을 바꿔 먹어야 한다.

네 번이나 실패했다. 수십 년을 꼬라박았다.

그렇게 나온 결론을 무시할 수 없으리라.


‘이 방식은 매리너스와 맞지 않아.’


내 지난 인생이 이를 뒷받침한다.


‘싹 다 바꿔버려야지.’


물론 당장은 어렵다.

내가 무슨 의견을 꺼낼 수 있는 위치는 아니니까.

그러나 오히려 좋다.

이런 팀 분위기라면, 일단 내가 자리를 잡기는 더없이 쉬운 환경일 테니까.


‘그냥 기어를 올려 버릴까?’


마음을 고쳐먹었다.

본래 일 년 정도는 마이너에서 구를 작정이었다. 그러면서 할 일도 있었다. 이 팀의 팜에서 성장하는 선수 중, 크게 될 놈들이 얼른 콜업될 수 있도록 도울 구체적인 계획들을 세워 놨다.

겸사겸사 점수도 따 놓고.


‘그래서는 늦어.’


막상 이 팀이 굴러가는 꼴을 보자 참을 수가 없었다.

마이너리그 생활은 최소한으로 단축.

팀 내에서 나의 영향력을 최대한 빠르게 끌어올려야 할 것 같다.


‘어차피 올라올 놈들은 올라와. 조련은 그 뒤에 해도 돼.’


방금 막 떠오른 계획이지만, 점점 마음에 들었다.


‘······ 정말 괜찮은데?’


내가 자리를 빨리 잡을수록, 부모님도 편해질 거다.

나비도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나와 매리너스를 지켜볼 수 있겠지.

또한 한국에 남겨져 있는 인연들을 챙기기도 쉬워진다.


‘스프링캠프에 사활을 건다.’


금강불괴가 없었다면 감히 세울 수 없을 계획.

스프링캠프 기간은 죽은 셈 치고, 기량 향상에 매진할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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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시범 경기 (1) NEW +1 12시간 전 154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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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평가 훈련 (1) +2 24.07.02 304 10 13쪽
» 스프링캠프 (3) (수정) +1 24.07.01 362 10 12쪽
13 스프링캠프 (2) +1 24.06.30 384 13 14쪽
12 스프링캠프 (1) 24.06.29 430 10 12쪽
11 입단 기자회견 (2) +1 24.06.28 458 14 12쪽
10 입단 기자회견 (1) 24.06.27 506 11 14쪽
9 쇼케이스 (5) 24.06.26 539 15 12쪽
8 쇼케이스 (4) 24.06.25 517 12 13쪽
7 쇼케이스 (3) 24.06.24 523 13 12쪽
6 쇼케이스 (2) 24.06.23 547 13 12쪽
5 쇼케이스 (1) 24.06.22 572 12 12쪽
4 양민 학살 (3) 24.06.21 608 11 13쪽
3 양민 학살 (2) 24.06.20 651 14 13쪽
2 양민 학살 (1) +1 24.06.19 699 13 12쪽
1 네 번째 회귀 24.06.18 799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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