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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못하는 야구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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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至言)
작품등록일 :
2024.06.1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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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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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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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쇼케이스 (4)

DUMMY

#7


프랑키 손 주니어가 난지야구장에 도착해서 처음 꺼낸 말은 불평이었다.


“여기는 시설이 너무······.”

“좀 그렇긴 하네요.”


그의 직함은 시애틀 매리너스의 국제 스카우팅 디렉터.

고작 선수 한 명 보겠다고 급히 한국에 입국하여, 난지야구장을 찾아온 거다.

그를 따라다니는 부하직원 역시 난지야구장의 열악한 환경에 혀를 내둘렀다.

청소가 잘 돼 있고 부지도 꽤 넓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아는 얼굴이 많이 보이네요.”


스카우트 업계는 좁다.

야구선수끼리도 한 다리 건너면 다 알게 되는 마당에, 그보다 좁은 세계인 스카우트끼리는 어떻겠는가.

특히 메이저리그 소속 스카우트끼리는 신입이 아닌 이상 다 안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지금 여기는 아시아 지역을 맡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니, 더더욱 보기 쉽겠지.

지금 프랑키 손 주니어를 따라다니는 인물도 비서 같은 직함이 아니다.

한국 지역 고교야구 대회에 파견된 담당 스카우트다.

즉, 다른 팀에 파견된 사람과 비슷한 직급이었다.


“어떻게, 인사라도 좀 나누고 올까요?”

“됐어. 내가 가까이 가면 다들 불편해할 거야.”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다른 팀 쪽에서 여기를 먼저 알아보고 찾아왔으니까.


“프랑키! 내 전 상사!”

“반가워.”


양키스 소속 스카우트가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매리너스는 어때요? 지낼 만합니까?”

“똑같더라고. 승진이라 업무만 조금 달라지고.”

“하하- 스카우트가 다 그렇죠.”


인사치레는 여기까지.

곧바로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이야- 천하의 프랑키가 행차하다니, 매리너스는 킴 영입에 아주 진심이군요?”

“너무 사무실에만 처박혀 있었더니 좀이 쑤시더라고.”


부인할 수 없었다.

자신이 여기까지 온 건, 킴이라는 매물을 잡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추운데 고생이 많네. 끝나고 저녁이나 같이할까?”

“좋죠. 간만의 한식인데 맛있는 거로 얻어먹을 수 있겠군요. 일단은 일하러 가보겠습니다.”


프랑키와 부하 직원도 적당한 자리를 골라 앉았다.

관중석도 없는 야구장이라 파울 지역 펜스 부근에 설치된 간이 의자를 써야 했다.

평범한 야구장 기준으로 볼 보이가 있을 법한 그 자리 말이다.


“저쪽에서 우리 쳐다보는데요?”

“내가 온 게 신기한가 보지.”


다른 스카우트들과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자연스레 이목이 쏠린다.

당장 이 자리에 있는 스카우트 중 가장 높은 권한을 지녔다. 프랑키의 직급은 구단이 할당한 국제 스카우트 예산을 재량껏 분배할 수 있다. 단장의 결재만 떨어진다면 말이다.

그런데 말단 스카우트들은?

당장 팀이 얼마를 쓸 수 있는지도 잘 모른다. 선수의 가치를 잰 뒤 팀에게 보고할 뿐이다.

그렇기에 프랑키를 본 스카우트들은 전부 긴장할 수밖에 없다.

킴이라는 매물이 예상보다 높은 가치를 지녔을 경우, 어느 구단이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쉬울지 보이는 상황이 왔으니까.

그때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프랑키 앞으로 다가와 서성였다.


“엥?”

“야-옹!”

“야구장에 무슨 고양이가 있어? 우쭈쭈, 착하지?”


고양이가 프랑키의 품으로 폴짝 뛰어들었다. 그리고 마치 제 집인 양 몸을 말며 엎드렸다.


“낯도 안 가리고 귀엽네요.”

“게다가 얌전해. 사람 손을 좀 탄 녀석인가?”


고양이를 안고 있으니 이쪽을 향해 더 많은 관심이 쏠리는 거 같다.

프랑키는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고양이에 빠져서 맡은 일의 본분을 잊어선 안 될 일이었다.


“보아하니 우리만큼 신경 쓴 팀은 없는 거 같군.”

“보통 국제 스카우트 디렉터가 아시아까지 올 일은 없죠.”


도미니카, 쿠바 등 대형 신인이 쏟아지는 지역이 아니잖은가.


“슬슬 시작하려나 봅니다.”


선수들이 몸 푸는 광경을 보면서 기다리다 보니, 이내 간이 야구 경기가 시작되었다.

확성기를 통해 박 에이전트의 목소리가 야구장에 울려 퍼졌다.


[오늘 쇼케이스 진행 방식을 안내하겠습니다. 김진휘 선수는 오늘 총 열여덟 명의 타자를 상대할 예정입니다. 타선은 독립리그와 대학리그, 고교 주말리그 등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로 구성했습니다.]


“전에 계약 건으로 통화할 때도 느꼈는데, 저 친구 영어 발음이 상당해. 겉모습과 다르게 말이지.”

“그러게요. 한국식 발음은 확실히 아니에요. 현지에서 꽤 오래 지낸 말투입니다.”


이 선수들 동원하는 것도 다 일이다.

폼이 참 많이 들었을 거다.

메이저리거 스카우트들이 모이는 쇼케이스라면 선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거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 자리에서 눈도장을 받아낼 수 있는 선수라면 진작에 어디 프로 무대에서 뛰고 있을 터였다.


“다른 선수들에 대한 정보는 좀 있나?”

“아뇨. 전혀 없다고 봐도 됩니다. 특히 독립리그 쪽은 저희가 전혀 관심이 없어서요. 한국의 2군보다 낮은 레벨입니다. 우리로 치면 루키 리그, 로우 싱글A와 비슷하겠네요.”


이것도 높게 쳐준 거다.

아무튼, 쇼케이스란 게 참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그래서 요새는 쇼케이스 대신 공개 트라이아웃을 훨씬 많이 진행한다. 같은 목적을 지닌 선수들이 모여서 쇼케이스를 펼치는 거다.


[중간에 주어지는 휴식 시간은 실제 경기에서 주어지는 시간보다 짧지만, 대신 조금 자주 가질 예정입니다. 수비진 교대와 투수 휴식을 모두 만족하는 방향으로 구성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오늘 김진휘 선수가 상대할 타자는 총 열여덟 명입니다.]


“오래 던지는군.”

“모든 걸 다 보여주겠다는 각오가 느껴집니다.”


처음 쇼케이스 소식을 전할 때도 에이전트가 잔뜩 강조한 부분이었다.

오래 던지는 것.

많이 던지는 것.


“보통 단점을 숨기려고 조금씩만 던지잖아요.”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거겠지.”


타자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게 좀 아쉽지만.

어떤 공을 던지는지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자리다.

이내 마운드의 투수가 초구를 던졌다.


휘릭!

뻐엉!

“스트라이크 원!”


한가운데 포심패스트볼.

그야말로 ‘쇼’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축포였다.


“오우-”

“홀리 쒯!”

“나이스 볼!”


초구부터 148km/h의 강속구가 나왔다.


“148? 마일로는 얼마지?”

“92마일입니다.”

“이 날씨에 대단하군.”


휘릭!

탁!


두 번째 공은 볼이었다.

공이 바운드가 된 후 포수에게 도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반응이 좋았다.


“왓?”

“커브볼?”

“구속은?”

“81마일!(130km/h)”


프랑키 일행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좋은 변화구가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제 기억 속에도 조잡한 슬라이더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제구는 괜찮은 걸까?”

“일단 방금은 코스가 나쁘지 않았어요. 타자가 잘 참았죠.”


휘릭!

부웅!

팡!


그리고 세 번째 공에는 어떤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프랑키는 나지막이 부하 직원을 불렀다.


“허드슨.”

“······예.”

“방금 내가 헛것을 본 거 같아.”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네도?”

“우리 둘이 같은 걸 본 거 같은데, 잘못 본 게 아니라는 뜻 아닐까요?”

“그럴 리가 없는데.”


투수가 던진 공은 파워커브였다.


“140······ 마일로는 87마일.”

“커브였지?”

“네. 확실히 탑스핀이었습니다.”

“폼도 같았고.”

“영상으로 다시 돌려보겠지만, 일단 당장 육안으로 보기에는 같았습니다. 관중석보다 훨씬 가까우니, 잘못 봤을 확률도 높지 않고요.”

“이게 말이 되나?”


열일곱 살 투수가 90마일이 넘어가는 포심패스트볼을 던지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그게 김진휘라는 투수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왼손 선발투수의 90마일. 앞으로의 성장을 고려하면 경쟁력 있는 메이저리거로 성장하기에 충분하다.


“완급 조절로 써먹기 좋은 슬로 커브와 90마일이 넘어가는 빠른 공. 이 두 구질의 중간 지점에 있는 파워 커브를 던질 수 있다고?”


이건 예상 밖이다.

기술적인 피칭이 되는 선수라면, 이야기가 바뀐다.

그를 유망주가 아니라, 즉시 전력감으로 봐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직 세 개밖에 던지지 않았습니다. 그냥 운 좋게 잘 들어간 공이 연달아 나왔을 수도 있죠.”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지금 내가 보기엔······.”


도무지 그럴 것 같지 않다.

딱 잘라 근거를 설명할 순 없었다.

그냥 던지는 모습 보면 느낌이 온다고 해야 하나.

오랜 기간 스카우트로 일하며 생긴 직감이 오랜만에 발동했다.


휘릭!

뻐엉!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결정구는 포심패스트볼이었다.


“방금 바깥쪽 꽉 찬 코스지?”

“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네요.”

“점점 마음에 드는군.”


프랑키는 조금 마음을 내려놓았다.


‘더 놀랄 일은 없겠지.’


인간적으로 그렇다.

완급 조절이 가능한 커브가 지나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저거만으로도 메이저리그에서 구원 투수, 스페셜리스트로는 활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조금만 다듬어도 콜업이 가능한 수준.

하지만 프랑키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휘릭!

펑!

“스트라이크 원!”


난지야구장이 한 번 더 술렁였다.


“What?”

“The Fuxk!”

“이건 미쳤어!”


뜬금없이 튀어나온 너클볼.

사실 이 공 자체가 당장 김진휘라는 투수의 기량을 평가하는 데엔 별 영향이 없을 거다.

너클볼이라는 무기가 좀 독특한 게 아니잖은가. 무기 자체의 위력보다는 투수의 무기 활용법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부분은 단기간에 검증할 수 없다.

하지만.


“대체 언제 배웠지?”

“감각이 엄청 좋은 선수는 확실하겠네요.”


너클볼은 김진휘의 잠재력을 대신 증명해 주었다.

마치 이런 것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투수라고 말하는 듯했다.


“다들 환상에 빠지겠는데요?”

“당장 나도 군침이 도는데, 여기 온 말단들은 더하겠지.”


제대로 방향을 집고 키운다면, 저 투수는 뭐든 해낼 것만 같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의미의 너클볼이었다.

이후 다시 144km/h의 평범한 빠른 공을 던지며 타자를 몰아넣은 김진휘의 결정구.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커브가 나오겠지?”

“그러겠죠. 딱 커브 타이밍입니다. 올 걸 알아도 못 칠 걸요?”


물론 이번 예상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들의 무지해서가 아니다. 여기서 커브는 분명 최선에 가까운 선택지다. 실전이었다면 말이다.

이곳은 쇼케이스.

투수가 자신의 가진 무기를 자랑하는 무대다.


휘릭!

부웅!

펑!

“스윙! 배터 아웃!”


이번에 나온 구종은 써클체인지업.

또 예상치 못한 무기가 등장했다.

프랑키의 부하직원, 허드슨은 순간 언어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아, 아······. 이, 무슨, 뭔, 왜······.”


이제는 외면할 수도 없다. ‘내가 잘못 봤나?’ 따위의 말로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현실이다.

이 투수의 능력은 지난 10월 전국체전 이후로 몰라보게 성장했다.

금방 진정한 허드슨이 짤막한 감상평을 내놓았다.


“그냥 다른 사람이 됐네요.”

“그 말이 딱 맞아. 동일 인물이라고는 모두지 믿기지 않는군.”


프랑키도 김진휘의 과거 피칭 영상을 봤다.

대회에서 그는 가장 뛰어난 투수였고, 인상적인 포심패스트볼을 뿌릴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고, 그것만으로도 백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데이터를 조합해 보니, 잘 키운다면 100마일의 공을 원하는 곳으로 뿌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킴은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된 투수였다.

가진 예산을 전부 털어 넣어서라도 챙겨야 하는 매물이었다.


“스플리터? 라기엔 각이 좀 얕은데.”

“그리고 빨라!”

“투심? 싱킹패스트볼?”

“워후! 90마일?(145km/h) 날 풀리면 93마일까지도 나오겠어!”


그런데 계속 뭐가 나왔다.

이게 대체 뭔가 싶은 의문이 해소되기는커녕, 점점 쌓여만 갔다.


“스, 스위퍼? 아니, 스위퍼는 대체 언제 어디서 배웠······.”

“새삼스럽게 뭘. 다른 것도 던지는데.”

“······.”


시간은 흐르고 흘러 쇼케이스도 어느덧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김진휘는 열여섯 타자를 상대하며 하나의 볼넷과 두 개의 안타를 내줬다.

특히 최근 두 타자에게 동시에 안타와 볼넷을 맞은 부분이 아쉬웠다.


“힘이 빠졌군.”

“그럴 만하죠. 투구 수도 꽤 되고, 무엇보다 휴식이 너무 짧아요.”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만으로도 대단해. 그래도 마무리가 깔끔했으면 좋겠는데.”


일반적인 실전 환경이 아니다.

투수는 이닝을 마친 뒤 아군의 공격이 진행되는 동안 쉴 수 있다. 그런데 쇼케이스는 모든 과정이 상당히 축약된 채로 진행되었다.

아웃 카운트 세 개를 쌓으면 2분간 휴식.

타자 여덟 명이 타격을 마치면 공수 임무 교대. 이때도 2분 휴식.

이게 김진휘에게 주어진 휴식 시간의 전부였다.


“확실히 밑천을 그냥 다 보여주려는 거 같네요.”

“오히려 호감이야.”


프랑키와 허드슨, 그리고 그 외에도 쇼케이스에 초청받은 수많은 스카우트들 모두가 비슷했다.

마운드 위 투수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원래 투수의 진가는 어려울 때 드러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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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양민 학살 (3) 24.06.21 376 7 13쪽
3 양민 학살 (2) 24.06.20 404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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