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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못하는 야구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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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至言)
작품등록일 :
2024.06.1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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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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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289

작성
24.06.1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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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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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3쪽

네 번째 회귀

DUMMY

#1


“투수 교체, 킴! 등번호 32. 등번호 32.”


장내아나운서의 메시지에 관객들이 환호했다.


“와아아아!”

“킴! 킴!”


그러나 마운드로 향하는 내 표정은 복잡미묘했다.


“시애틀 매리너스를 빛낸 위대한 투수, 진휘 킴의 마지막 등판입니다! 모두 박수로 그에게 유종의 미를 선사해 줍시다!”


선수로는 분명 큰 성공을 이뤘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선발투수로 18년을 뛰며 사이 영 상만 여섯 번을 탔다.

이보다 잘한 선수가 몇이나 있을까?

듣기로는 구단 영구 결번 및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도 사실상 확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만족할 수 없었다.


‘실패했어.’


결국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우승은 무슨.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남긴 선수로서의 마지막 날 아니냐고?

글쎄,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휘릭!

부웅!

팡!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나는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고 교체되었다. 은퇴 경기였기에 0.1이닝만 소화한 거다.

그리고 그렇게 내 선수로서의 생명이 다한 순간.


“으윽!”


나는 미끄러지며 넘어졌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2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어두웠다.

이제는 꽤 익숙한 공간이기도 했다.

정면에 허여멀건 귀신 녀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난기를 가득 담은 눈빛과 함께.


“왔구나?”

“뭐요. 뭘 그런 눈으로 봐요?”

“이번에도 실패했더라? 이제 벌써 네 번째야!”

“벌써? 벌써라고요? 그게 지금 저한테 할 말입니까?”


이 녀석과 나 사이에는 한 가지 계약이 존재한다.


“나는 강요한 적 없어. 그냥 제안했고, 받아들인 건 너지.”


1회차의 나는 평범한 메이저리거였다.

10년간 시애틀 메리너스의 선발진과 불펜을 오가다가, 팔꿈치 부상으로 서른세 살에 은퇴했다.

그때 처음 이곳에 왔다.

스스로를 ‘야구의 신’이라고 칭하는 잡귀 녀석이 나를 부른 거였다.


“여전히 내 바람은 하나뿐이야. 어떻게든 시애틀 매리너스가 우승하는 모습을 한 번 보는 거! 이게 그렇게 어려워?”


겪어봤으니 말할 수 있다.

한국의 자이언츠? 이글스?

악명이 더없이 높은 이 두 팀의 우승조차 매리너스의 우승만큼 어렵지는 않을 거다.


“네. 뒤지게 어려워요. 불가능하다고요!”

“흠··· 그 정돈가?”


그는 나를 회귀시켜 준다면서, 그 조건으로 매리너스의 우승을 걸었다.

시애틀 매리너스는 1977년 창단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한 팀이다.

부상에 시달리며 야구에 미련이 남아 있던 나는 가타부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2회차 삶을 부여받았다.


“어쨌든, 내가 보기에 이번 4회차는 3회차 때보다 나아진 게 없었어.”


2, 3회차는 타자로 살았다.

1회차 시절 투수로 온갖 잔부상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투수로서 내 재능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100마일의 포심패스트볼을 원하는 곳에 뿌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 길을 택할 수 없었다. 어차피 3년 안에 팔꿈치가 박살 나고, 똥볼로 잔머리나 굴리며 연명할 미래가 훤히 그려졌기 때문이다.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엔 턱도 없는 퍼포먼스였다.

그러나 타자라고 형편이 나아지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힘들었다.

야구에서 야수 한 명의 영향력은 너무나도 미미했다.

잡귀 놈에게 특전을 받긴 했지만, 그래 봤자 3할 중후반 타율에 시즌 평균 50홈런 정도가 한계였다.

2, 3회차에서는 이 기록이 약한 팀의 멱살을 잡고 이끌기에 한참이나 부족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러고 다시 투수로 복귀한 4회차도 방금 막 실패하고 오는 길이다.


“나아진 게 없다뇨? 사이 영 상 여섯 번 타고도 실패했다구요!”

“흐흐. 아쉽게 된 거지.”


여유롭게 웃는 꼴이 아주 보기 싫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갑과 을은 아주 명확하다.


“계약은 언제든 파기할 수 있어. 원한다면 자네를 지금 돌려보내 줄 수 있다는 뜻이야. 그냥 시애틀 매리너스의 레전드 투수로 남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때?”


이 녀석은 나를 너무 잘 안다.


“······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특전이나 제대로 줘요. 좀 더 좋은 거로.”

“이미 괜찮은 특전들을 가지고 있을 텐데?”


괜찮기는 개뿔.

타자로는 배트 스피드 보정을 특전으로 받았다. 덕분에 컨택과 파워를 겸비할 수 있었다.

투수로서 받은 특성은 실투 방지. 이 특전 덕에 커리어 내내 실투를 한 번도 던지지 않았다.

······ 라는 건 저 잡신의 주장이고.

물론 없는 것보다야 낫지만, 개인적으로 그냥 있으나 마나 할 정도로 효과가 미미했다.


“없어요? 못 줘요? 솔직히 당신도 매리너스 우승 보고 싶어서 나 굴리는 거잖아! 좀 화끈한 거 하나 주면 어디 덧납니까?”

“혹시 원하는 능력이라도 있어? 대충 느낌이라도.”


뭐야.

내가 고를 수도 있는 거였어?

이걸 4회차까지 몰랐다고?

하지만 막상 칼자루를 쥐게 되자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떤 능력이 좋을지 도통 짐작이 가지 않았다.


“투타 양쪽에서 쓸 수 있는 녀석이면 좋겠어요.”

“겸업이라도 하게?”

“뭐라도 해봐야죠.”

“그런 특전은 효과가 직관적이지 않을 텐데··· 아, 하나 있긴 있어!”


오.

기대가 된다.

녀석이 줬던 특전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거든.

그런데 신 녀석이 그답지 않게 뜸을 들인다.

눈빛만 봐도 고민이 많아 보였다.


“······ 금강불괴 어때? 어지간해서는 다치지 않는 몸을 가지게 되는 거야. 회복력도 좋고.”


아니.

그런 개사기 특전이 있었단 말이야?

내 표정을 읽은 귀신이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대신 다른 특전은 다 회수해야 해. 그리고······.”


당연히 상관없다.

나는 타고난 재능이 나쁘지 않은 선수다.

투수로든 타자로든.

부상이 발목을 잡지 않는다면, 겸업도 꿈이 아니게 된다. 그렇게 뛴 선수가 없지도 않고.

하지만 이어진 잡신 녀석의 말은 나를 한 번 더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 특전을 받는다면 나도 너랑 같이 내려가야 해.”


아니, 왜?



#3


결국 돌아왔다.

나는 다시 한번 열일곱 살 고등학생이 되었다.


‘뭐야, 같이 내려온다며?’


신이라는 녀석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금방 신경을 껐다.

당장 처리할 일이 산더미다.

그리고 개중 가장 급한 일은 역시······.


띠리리링-

[박상철 에이전트 전화 받았습니다. 김진휘 선수?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요?]

“안녕하세요. 마음 정해서 연락드려요.”

[그 말씀은······ 저희와 계약하시겠다는!]

“예, 뭐. 박상철 에이전트님이 저를 좀 담당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매리너스에 들어가는 거다.

지난 회귀의 경험상 박상철 아저씨가 에이전트로는 최고였다. 선수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면서, 계약 조건도 맛있게 잘 따온다.


[잘 선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스폰은 천천히 알아봐주셔도 되는데, 팀을 빨리 구하고 싶어요.”

[그러면 어차피 계약서도 작성해야 하니, 오늘 한 번 뵐까요? 점심때 시간 괜찮으십니까?]

“그럼요.”

[네. 그때 찾아뵙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처리했고.

다음은 훈련이다.

일분일초가 아쉬운 상황이다.

내게 훈련은 다다익선이니까.

지난 4회차의 경험은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다.

일단 나를 잘 안다. 야구선수에게 메타인지는 생각보다 중요한 덕목이었다.

어떤 훈련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만으로도, 크게 앞서나갈 수 있다.

물론 첫날부터 무리할 생각은 없다. 오늘은 그냥 컨디션만 점검할 예정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첫 회귀 때는 젊어진 부모님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나왔더랬지.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문 밖을 나서자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나를 맞이한다.

첫 훈련 메뉴는 러닝.

집 주변을 끊임없이 돌며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이번 생은 무조건 성공해야 해.’


나는 솔직히 야구가 지겹다.

거의 백 년의 시간을 야구에만 쏟았다. 덕분에 훈련의 ㅎ자만 꺼내도 입에서 쓴물이 올라올 지경이다.

그런데도 5회차를 받아들인 이유는 하나.


‘더는 실패하기 싫어!’


1회차의 나는 처참하게 실패한 선수였다.

나름 메이저리그에서 오래 버티지 않았냐고?

나는 그곳에서 피식자였다.

모든 경기가 살얼음판과 같았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바로 모가지가 날아가는 잔혹한 전쟁터 속 조무래기 A가 된 느낌이랄까.


‘그 패배감을 평생 안고 살아갈 순 없지.’


선수 생명이 끝나는 부상이 찾아왔을 때 느낀 패배감.

그때 느낀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런데 만약 내가 4회차에서 야구 인생을 끝낸다면?

남은 삶을 그 패배감과 함께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게 두려웠다.

세 번이나 더 주어진 기회에도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용납할 수 없는 결과물이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솔직하게.

3, 4회차의 나는 정신적으로 꽤 약해져 있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는 어느 때보다 뛰어났지만,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간절함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


그러니 이번 생에서는 정신을 똑바로 붙잡을 작정이다.

무조건 마지막.

이 마음가짐을 잃지 않기로 다짐하며, 나는 계속해서 달렸다.


띠리리링!

그렇게 한참 다리를 괴롭히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감독님]


나는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김진휘! 너 이 새끼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어?]

“예?”

[오늘 나오기로 되어 있잖아!]


그랬나?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친 겨울로 시기가 고정되었을 뿐, 내 회귀는 매 회차 같은 날짜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처럼 사소한 문제가 생기곤 했다.

그럼 회귀하자마자 스케줄을 확인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아니. 어차피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우리 팀원들과 감독 새끼는 1회차의 나를 망친 첫 번째 원인 제공자거든.


[애들 다 모였는데 지금 너만 안 왔어! 네놈 없이는 지금 훈련 진행이······.]

“엿이나 까 잡수세요.”

[뭐, 뭣?]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맨날 떠드셨잖아요. 저 하나 없어도 팀은 잘 굴러갈 겁니다. 끊을게요.”

[야! 야! 너 이따위로 굴면 이 바닥에서 야구 더 못······.]


내가 첫 번째 삶에서 미국행을 택했던 것도 망가진 팔꿈치 때문이었다.

이미 고교 시절 지나친 혹사를 당했고, 내 팔 상태는 상당히 좋지 않았다.

겉으로는 멀쩡했으나 툭 치면 부러질 것만 같은, 바람 앞 등불과도 같은 처지였다.

그런데 마침 마이너리그의 루키 리그, 로우 싱글 A 리그는 경기 수가 적고 일정이 넉넉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스포츠 과학에 훨씬 진심인 국가이기도 하니, 보다 나은 환경에서 회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거기도 사람 사는 동네였고, 나 같은 투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렇게 부상은 고질병으로 진화해 버렸다.

당시 어리기만 했던 나는 낯선 땅의 불안감과 인정받고 싶은 어린 마음이 겹치며 팔 회복이라는 최초의 목적을 망각하고 말았고, 지니고 있던 잠재력을 거의 다 잃어버렸다.

이후 2회차부터는 선택권이 없었다.


‘어차피 나는 바로 미국으로 넘어가야 해.’


이후 내 목적은 오로지 매리너스의 우승. 이거 하나뿐이었다.

창단 이래 월드시리즈 무대조차 닿은 적 없는 팀을 가지고 30개 팀 중 정상에 오르는 일.

쉽지 않더라. 알고 있었지만, 직접 도전해 보니 예상보다도 훨씬 어려웠다.

그런 일이니만큼 성공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일 방법은 다 찾아서 써먹어야 한다.

당연히 최대한 빠르게 메이저리그에 데뷔해야 하고, 팀 내 영향력을 키워야겠지.

그러려면 당장 최대한 빨리 미국으로 건너가야 한다.

우선 휴대폰의 연락처로 들어가 [감독님]이라고 저장된 번호를 [십새끼]로 바꿨다.

갈아 마셔도 시원찮은 놈이지만, 이 녀석에게 복수한다고 뭐가 달라지지는 않더라. 어차피 십여 년 뒤 불법 토토에 관여했다가 들통이 나며 협회에서 제명당할 녀석이니, 그냥 아무 신경도 쓰지 않으면 된다.

복수에 시간을 쓰는 것조차 아까운 놈이었다.

달리다 보니 점심때가 부쩍 가까워졌다.


‘슬슬 들어가야겠군.’


집으로 돌아가 뜨끈한 물에 샤워를 조지고, 깔끔하게 박상철 에이전트와 계약을 맺으면 오늘 정해진 일과는 끝······ 이라고 생각한 찰나.


‘어?’


커다란 위화감이 나를 잡아먹었다.


‘왜 하나도 힘들지 않지?’


발이 무겁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전도유망한 선수라고 해도, 한겨울에 이만큼 뛰면 지쳐서 헉헉대야 정상이다.

몸 상태가 잘 쳐줘도 50%~70%가량일 테니.

그런데 전혀 힘들지 않았다. 숨만 찰 뿐, 조금 쉬면 그대로 뛸 수 있을 거 같다.


‘이게 금강불괴 특전인가?’


그간 특전에 이렇게 큰 체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좀 쓸 만한 특전을 받은 거 같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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