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

은퇴 못하는 야구천재

웹소설 > 작가연재 > 스포츠, 현대판타지

새글

지언(至言)
작품등록일 :
2024.06.17 18:03
최근연재일 :
2024.06.29 08:46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3,998
추천수 :
77
글자수 :
68,289

작성
24.06.26 08:32
조회
314
추천
7
글자
12쪽

쇼케이스 (5)

DUMMY

#8


5회차를 시작한 뒤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무엇인가.

우승에 가까워지기 위해서 내가 살려야 할 강점을 찾아야 했다.

트레이닝을 거듭하고 날이 풀리면 금세 도달할 160km/h의 구속?

타고난 손끝 감각으로 마구의 포스를 뽐내는 변화구?

둘 다 아니다.


‘승부의 경험.’


나는 그 누구보다 타자를 많이 상대해 봤다.

또한 그만큼 타자로도 많이 뛰었다.

그 지독할 정도로 많은 승부 경험이 내가 지닌 최고의 무기였다.

타자의 폼과 얼굴만 봐도 속이 전부 보인다.


‘결국 돌고 돌아 빠른공을 치기로 결심했군.’


최대한 공을 뒤로 붙들어 놓으면서, 잡아당기는 스윙을 성사시켜 큰 타구를 만들려는 게 보인다.

득점권이니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간파당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나는 상호 녀석에게 사인을 보냈다.


‘스플리터.’


저렇게 뒤에 서서, 빠른 공 타이밍만 기다리고 있는 타자가 어찌 변화구에 대처하겠는가.

유인구로 던질 필요도 없다.

너무 뜨지만 않게, 그냥 낮게 형성되는 스플리터면 족하다.


휘릭!

부웅!

팡!

“스트라이크 원!”


그렇지.

이거지.

방금 스플리터는 단순히 상대의 허를 찌르는 한 수에서 그친 게 아니다.

아니나다를까, 타자가 자세를 고쳐 잡는다.

이번에는 앞에 선다. 표정 역시 좀 더 무겁다.

누가 봐도 작전을 바꿨다.


‘빠른 공 잘라내고, 변화구를 걷어 올리겠다?’


무사 1, 2루 상황.

괜히 큰 거 노리다가 변화구에 잘못 걸려서 병살타라도 나 봐라.

그만한 참사가 또 없다.

내 스플리터가 그 참사의 이미지를 타자의 머릿속에 각인시킨 모양이다.


휘릭!

뻐엉!

“스트라이크 투!”


체급이 낮은 타자는 나를 공략하는 게 불가능하다.

나는 단순히 힘으로 타자를 제압하지 않는다.

그 타자의 가장 약한 부분을 지그시 눌러 준다. 그러면 알아서 무너지더라고.

물론 야구는 확률 싸움인지라, 운이 좋다면 한두 번쯤 출루할 수 있을 거다.


‘전투에서는 승리할 수 있겠지. 하지만 전쟁은 무조건 내가 이긴다는 마인드야.’


지금도 봐라.

상대 타자가 노림수를 바꾸지 않는다.

자기 약점을 훤히 드러내놓은 꼴이다.

나는 그 꼴을 알아볼 수 있는 게 최대 강점인데 말이다.


‘안 바꿔?’


그 상태로 내 빠른 공은 건드리지도 못할 거면서.


휘릭!

부웅!

뻐엉!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상대의 노림수를 알면, 내가 가진 무기의 효과가 곱절로 증가한다.

이번 쇼케이스는 단순히 투수로서 내 피지컬을 자랑하는 무대가 아니다.

물론 내 화려한 구속과 변화구, 안정적인 커맨드를 뽐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으나.


‘이 정도면 제대로 보겠지?’


가장 큰 목적은 내가 어떤 투수인지 알리는 거다.

운영을 할 줄 아는 투수.

타자와의 승부에서 앞서가는 법을 아는 투수.

나는 내가 그런 모습으로 비춰지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오늘 투구를 준비했다.

그 때문에 연습 과정에서 볼 컨트롤에 더 신경을 썼던 것이기도 하다.

결국 운영이 성립되려면 커맨드가 갖춰져야 하거든.

내 경험과 기억에 의하면, 이런 투수를 가장 좋아하는 팀은 역시 매리너스다.


‘맨날 날로 먹으려다가 실패하면서. 대체 왜 그럴까?’


신인 뽑는 자리에서조차 완성형을 바라는, 아주 못돼 처먹은 심보를 가진 팀이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선수를 못 뽑지.

우승도 못 하고.

어쨌든 매리너스로 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기호를 충족시켜야 하니, 딱 그에 맞는 연출을 준비해 줬다.

다만 현재 게임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아이고, 죽겠네.”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급하게 준비된 쇼케이스.

아무리 내가 경력이 많아 컨디션 조절 능력이 탁월하고, 몸도 누구보다 잘 만들 수 있다고 해도.

물리 법칙을 무시할 순 없다.

훈련 몇 번으로 전성기 시절의 나를 불러올 수는 없단 뜻이다.

특히 체력적인 면에서 아쉬움이 컸다.

1회차의 고교생 김진휘는 투구수가 좀 늘어나도 힘을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내가 쓰는 투구폼은 당장 내 몸에 100% 맞지 않다.

에너지를 비효율적으로 쓰고 있는 셈.

그래서 50구를 넘어선 시점에선 공 위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힘 조절을 할 수도 없었다. 어쨌든 쇼케이스에선 나라는 투수의 전력투구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줬어야 하니까.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둘.’


이제 내 빠른 공 구속은 140km/h도 채 나오지 않을 거다.

노려지는 순간 타자가 칠 수 있는 공이 됐다.

아무리 디셉션이 좋더라도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 투구폼이 내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었다.

게다가 컨트롤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언제 실투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힘들어.’


이런 상태로 타자 두 명을 전부 틀어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가능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애매한 확률 싸움이 싫다.

상대의 성공 확률은 극단적으로 낮아야 한다. 그걸 아는 채로 싸우는 것이 내 방식이었다.


‘한 타자로 끝낸다.’


나는 내가 가진 무기를 점검해 봤다.

병살타를 유도하기에 가장 좋은 카드를 물색하기 위해서다.


‘초구는 그래도 포심패스트볼. 볼이 되어도 괜찮으니 최대한 강하게.’


휘릭!

퍼엉!

“스트라이크 원!”


좌타자의 바깥쪽, 아슬아슬한 코스로 들어간 공.

이건 운이 좋았다.

짧고 간단한 빌드업.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여태 선보인 적 없는 공을 던질 거니까.


‘지금이야.’


승부수를 띄우기엔 이른 타이밍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승부수를 던지는 타이밍은 딱 두 종류다.

하나. 확실할 때.

둘. 상대가 예상치 못할 때.

지금은 후자에 기대야 할 때였다.

나는 실밥을 고쳐 잡고 완팔을 휘둘렀다.

내 선택은 투심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선보인 적 없는 투심패스트볼’만큼 병살타를 유도하기 좋은 구질이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휘릭!

부웅!

딱!


배트에 공이 걸렸다.

하지만 타구의 기세는 잔뜩 죽은 채 바닥을 또르르 굴렀다.

공이 향한 곳은 투수 정면이었다.

나는 무릎을 굽혀 볼을 집고, 곧바로 뒤돌아 2루로 송구했다.

투수는 이게 재밌다.

내가 의도한 대로 판이 흘러갈 때 오는 쾌감.

주도적으로 경기를 이끌며 상대 타선을 봉쇄하는 맛이 일품이다.

이걸 어떻게 끊어.


“아웃!”


연계가 물 흐르듯 이어졌다.

타자가 우사인 볼트여도 1루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타이밍인지라, 실수만 없으면 됐다.


펑!

“아웃!”


아웃 카운트 세 개가 쌓이며 휴식 시간을 받았다.


‘한숨 돌렸네.’


이제 마지막 유종의 미를 보여줘야겠지.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다시 승부가 시작되었다.

타자의 눈치를 살폈다.

왠지 모르겠지만 잔뜩 겁을 집어먹었다.

긴장한 게 눈에 보일 정도라니, 딱하구만.

저래서는 묘수를 꺼낼 필요도 없다.


휘릭!

부웅!

팡!

“스트라이크 원!”


초구는 가볍게 스플리터로 카운트를 벌고.


휘릭!

퍼엉!

“스트라이크 투!”


낮게 깔리는 빠른 공을 한 번 보여준 뒤.


휘릭!

부웅!

펑!

“스윙! 배터 아웃! 게임 셋!”


써클체인지업으로 스윙을 낚아채면 속을 수밖에 없다.

나는 주먹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나이스!”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결과다.



#9


이틀이 지났다.

나는 푹 휴식을 취했다.

아무리 금강불괴 특전이 있다지만, 쉴 땐 쉬어줘야 한다.

그래야 모티베이션이 유지되거든.

번아웃을 피하기 위해서도 빡센 투구 다음날은 늘어지게 쉬어야 한다.

물론 정리 운동 정도는 오전에 다 마쳐 놨다. 이건 그냥 몸에 밴 습관 같은 거라, 딱히 일이라고 인식하지도 않는다.


“으으, 나중에 보장······. 꼭 복수하고 만당······.”


한창 집의 귀염둥이 막내로 자리 잡은 고양이 녀석을 마구 쓰다듬으며 휴식을 만끽하고 있을 무렵.


띠리리리-


휴대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김진휘 선수! 박상철 에이전트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고 계십니까!]

“그럼요. 집에서 푹 쉬고 있습니다.”

[좋군요! 휴식도 훈련이니까요! 아무튼, 오늘 연락한 이유는 메이저리그 팀과의 계약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서 그렇습니다!]


내 눈이 동그래졌다.


“벌써요?”

[네! 사실 협상의 여지가 더 없었습니다! 모든 팀이 부를 수 있는 상한선을 가져왔거든요!]


쇼케이스가 잘 풀린 거 같긴 했다.

그래도 인기가 이 정도로 폭발적일 줄은 몰랐다.

지난 회차에서는 매번 무난하게 매리너스로 들어갔거든.

계약금도 100만 달러에서 200만 달러 사이였고.


[일단 한국인 아마추어 선수 역대 최고 계약금 경신은 확실합니다!]


포스팅 시스템이나 자유계약으로 건너가는 선수는 제외다.

국제 스카우트 계약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역대 한국인 선수 중 가장 좋은 대우를 받게 된 거다.


[그래서 한 가지 확실히 여쭤보려고 합니다! 혹시, 여전히 다음 행선지로 매리너스를 택할 생각이신지요!]


이렇게 말하니 살짝 흔들리긴 한다.

뭐랄까, 양키스나 다저스 같은 팀에서도 최대치의 제안을 해 왔다는 뜻이잖아.

아마 마음만 먹으면 상상 이상으로 뜯어낼 수 있을 거다.

계약서에 담을 수 있는 액수에는 한도가 있지만, 선수 복지는 이야기가 다르잖은가.

전문 통역사 붙여 달라고 하고, 궁궐 같은 숙소도 구해달라고 하고. 어?

황제 육성 쌉가능이다.

그에 반해 매리너스는?

비교하기 부끄러운 수준의 복지나 들어오겠지.

없는 것보단 나은 숙소 지원 및 여비 지원 정도에, 속성 언어 강좌라도 보내주면 다행이다.


“조건에 차이가 좀 있나 봐요?”

[액수만 놓고 보면 선수님 의사에 따라 타협의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최고 대우가 기준이라면 명문팀을 선택하는 게 아무래도 합리적이라서요! 그 부분에 대한 결정을 내려 주셔야 다음 스텝으로 진행이 가능합니다!]

“음. 저는 매리너스가 좋습니다. 시애틀에서 생활하는 게 제 목표예요.”

[알겠습니다! 선수님 뜻에 맞춰서 최대한 진행해 보겠습니다! 다른 팀으로 가는 건 전혀 관심이 없으신 거죠?]


아니?

있다.

존나 많다.

나도 행복 야구 하고 싶어!

휘황찬란한 수비진의 호위를 받으면서! 타선 지원도 팍팍 받고! 어?

하지만 내 입은 나의 마음을 모르는지 냉정하게 현실을 말했다.


“······ 없습니다. 매리너스로 갑니다.”

[알겠습니다! 다른 팀과 딜을 치며 조건을 올리는 방향은 포기하겠습니다! 용건은 대충 정리가 된 거 같네요!]

“네. 늘 고생이 많으십니다.”

[일주일 내로 메디컬 테스트를 치르고, 정식 계약을 맺게 될 겁니다!]

“바로 미국으로 넘어갈 수 있나요?”

[네! 매리너스에선 김진휘 선수가 하루빨리 팀에 합류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마이너리그부터 시작하게 되겠지만요!]


나도 쇼케이스 한 번에 메이저리거 대접을 바라진 않는다.

애초에 당장 메이저리그에선 경쟁력이 없다. 잘 쳐줘야 로우 싱글 A 리그 수준인 타선을 상대로 50구 만에 나가떨어지지 않았나.

아직 개선점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다.


“스프링캠프 합류 조건은······.”

[두말하면 잔소리죠! 그 조건을 오히려 구단 측에서 바라게 되었거든요! 여러모로 성공적인 쇼케이스였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


“계약이 끝날 때까지 조금 더 고생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네! 선수님도 파이팅입니다!]


계약은 사실상 확정.

팀 합류도 이른 시일 내에 가능해 보인다.

처음 세운 단기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은퇴 못하는 야구천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 스프링캠프 (1) NEW 22시간 전 167 4 12쪽
11 입단 기자회견 (2) +1 24.06.28 230 7 12쪽
10 입단 기자회견 (1) 24.06.27 279 4 14쪽
» 쇼케이스 (5) 24.06.26 315 7 12쪽
8 쇼케이스 (4) 24.06.25 303 6 13쪽
7 쇼케이스 (3) 24.06.24 302 6 12쪽
6 쇼케이스 (2) 24.06.23 326 8 12쪽
5 쇼케이스 (1) 24.06.22 348 7 12쪽
4 양민 학살 (3) 24.06.21 375 7 13쪽
3 양민 학살 (2) 24.06.20 404 7 13쪽
2 양민 학살 (1) +1 24.06.19 439 8 12쪽
1 네 번째 회귀 24.06.18 511 6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