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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못하는 야구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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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至言)
작품등록일 :
2024.06.17 18:03
최근연재일 :
2024.06.29 08:46
연재수 :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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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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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글자수 :
68,289

작성
24.06.2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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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2쪽

쇼케이스 (1)

DUMMY

#1


사흘이 지났다.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원 파인 이그스의 연습장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또한 오늘은 처음으로 상호 녀석과 함께 출근한 날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수원고 2학년 김상호! 선배님들께 인사 오지게 박습니다!”

“여기 수원고 출신 없는데?”

“그래도 같은 야구인이면 다 선배 아니겠습니까!”

“싹싹하니 보기 좋네. 오늘 진휘 공 받아주러 온 거지?”

“네! 그리고 선배님들 보고 배우려고 왔습니다!”


함 코치님도 고개를 끄덕인다.


“말도 참 이쁘게 하는구만.”


오늘 나는 불펜 피칭에 들어간다.

저번에 청백전 1이닝을 소화한 이후 첫 투구였다.

몸을 풀고 간이 마운드에 올랐다.


‘힘 빼고 던지자.’


상호가 아는 나와, 지금의 나는 상당히 다르다.

그의 기억 속 나는 1회차의 열일곱 살짜리 유망주다.

현실은?

닳고 닳은 베테랑이다.


휘릭!

퍼어엉!


초구는 빠른 공.

구속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공을 받는 입장에서 모를 순 없다.


“진휘야?”

“어?”

“이거 뭐냐?”


다만 이 녀석도 지금은 초짜인 게 문제다.

분명 내 공이 무척 좋아졌다는 걸 느꼈을 터다.

그러나 설명은 할 수 없는 듯했다.


“뭔가 쓩! 하고 오는데, 뭐야? 궤적도 좀 다르고, 폼도 바뀌었고.”


안타깝게도 나 역시 1회차의 내가 어떤 폼으로 공을 던졌는지 기억을 못한다.

그래도 그때와 공이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얼추 예상이 간다.

내 투구폼엔 내 의도가 온전히 담겨 있으니까.


“좋아지긴 했는데, 대체 뭐가 좋아진 거지?”


그때 지켜보고 있던 함 코치님이 끼어들었다.


“진휘야, 나 그거 궁금하다.”

“네?”

“스플리터였지? 청백전 때 던진 거.”

“아, 예.”

“그거 한 번 볼 수 있겠니?”

“물론이죠.”


한 박자 늦게 상황을 파악한 상호 녀석도 깜짝 놀랐다.


“스플리터? 스플리터를 던질 수 있다고요? 쟤가?”


나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팔을 휘둘렀다.


휘릭!

턱.


그러나 경쾌한 미트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바운드 볼이 아닌데도, 상호가 공을 놓친 거다.

포구로는 고교 넘버원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선수인데도 말이다.

공은 상호의 가랑이를 시원하게 통과했다.

코스가 조금만 잘못됐어도 정말이지 큰일(?) 날 뻔했다.


‘역시 바로 잡기는 좀 어렵나?’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이는데.


“······ 이건 또 뭔 공이야?”


반응이 귀엽다.

좀 더 놀려줘야지.


“다음. 스위퍼.”

“슬라이더 말고 스위퍼? 내가 아는 그거?”


나는 상호에게 현대 야구가 발견한 새로운 마구도 보여줬다.


휘릭!

퍽!


이건 그래도 받네.

미트 끝에 걸려서 소리가 둔탁했지만, 어쨌든 포구는 됐다.


“대체 무슨 일이람······.”


녀석은 반쯤 넋이 나갔다.

가장 친하게 지내던 투수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됐으니 놀랄 만은 하다.


휘릭!

퍼엉!


“와씨, 이건 또 뭐야? 무브먼트 죽이는데?”

“투심.”

“무슨 메이저리거 공 직접 받는 거 같아.”


쓸데없이 감이 좋은 녀석이네.

물론 당장의 내가 메이저리그급은 아니다.

냉정하게 신체능력부터 꽝이다.

구속과 컨트롤도 아쉬운 부분이 많다. 애초에 전력투구가 아니기도 하고.


“체인지업.”


휘릭!

펑!


상호가 운동신경은 참 좋다.

처음 잡아보는 공이 태반일 텐데도 곧잘 따라온다.

초구야 받으면 이상한 거였고.


“야! 체인지업이라며!”

“맞는데?”

“이게 우투수 슬라이더랑 다른 게 뭔데?”


내가 던지는 써클체인지업은 역회전이 심하게 걸린다.

그래서 상호가 반대 손 투수의 슬라이더 같다는 표현도 얼추 맞는다.

종횡 변화각이 크고, 평범한 고등 레벨 투수의 직구 구속과 큰 차이도 없었다.


“이거만 있으면 좌타자든 우타자든 무서울 게 없겠어!”


아주 신이 났네.

그런데 정작 코치님 쪽은 조용했다.

흘긋 살펴보니 사실 이쪽의 리액션이 더 과했다.


“······.”


함 코치님은 눈을 땡그랗게 뜨고. 입은 쩍 벌린 채 굳어 있었다.

다 큰 어르신이 지은 표정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실제로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놀랄 만하지.’


물론 나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한 15구 이후부터는 이 불펜이 내 쇼케이스 무대라고 생각하고, 가진 패를 전부 털어 넣었다.

그렇게 계속 공을 던지다 보니, 불펜에 조금씩 구경꾼들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공 던지러 온 투수와 포수가 봤고, 그들이 놀라서 다른 팀원을 끌고 오기까지 했다.

며칠간 함께 훈련하며 지켜본바, 실력은 좀 부족해도 다들 좋은 사람이었다.

광교야구장엔 순수하게 야구를 미칠 듯이 좋아해서, 그만둘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아르바이트와 운동선수를 병행하며 어떻게든 프로의 꿈을 꾸는 청년들.

아마 이들과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겠지.

어쩔 수 없는 현실이 그렇다.


‘그래도 추억 하나는 쌓아드려야지.’


그들에게 술자리에서 지겹도록 반복할 만한 썰 하나 정도는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다음은 너클.”

“뭣?”

“너클?”


첫 번째 삶에서 팔이 망가졌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 배웠던 너클볼.

4회차에서도 요긴하게 써먹었다. 한 번씩 던지니까 타자들이 좋아 죽더라고.


슈욱!

턱!


상호가 포구에 실패했다.

암. 이 공은 못 받아도 이상하지 않지.


“······.”

“자, 마지막 다섯 구!”

“······.”


불펜에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 소리.

포수가 공을 받는 소리.

그리고 내 목소리.

이 셋뿐이었다.


“슬라이더!”

휘릭!

펑!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특히 변화구는 컨트롤에 하자가 있다.

위력이야 내 신체의 타고난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는 데다 손끝의 감각도 완벽하니 문제가 없는데, 신체조건 자체는 달라졌으니 볼이 원하는 대로 가지 않았다.

실제로 스카우트들이 보기에도 컨트롤이 불안정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스플리터!”

휘릭!

펑!

“아, 이번엔 잘 안 들어갔네.”


가끔 실투도 나왔다.

이제 실투 방지 특전은 없으니까.


“포심!”

휘릭!

뻐엉!


그래도 빠른 공 하나는 기가 막힌다. 심지어 얘는 제구도 얼추 된다.

이거 하나만 보고도 나를 영입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설 거다.


“커브!”

“커브는 던진 적 없······.”


받기 편하게 파워커브로.


휘릭!

펑!


마지막 공은 역시.


“라스트! 포심!”

휘릭!

뻐엉!


약 40구에 걸친 불펜 피칭이 끝났다.


“후우우- 힘드네.”


상당히 빠른 템포로 공을 던져서 그런지, 공만 던졌는데도 숨이 많이 찼다.

20구 이후부터는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그때부턴 기어를 올려서 100%로 던졌는데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물론 개인적인 감상일 뿐. 보는 입장에서는 달랐을 거다.


“정말 어마어마하구나.”

“이런 애가 야구해야지······.”

“대박!”


몇몇은 나를 보며 신기해했고, 또 몇몇은 기가 죽었다.

아마 전자는 투수가 아니고, 후자는 투수일 확률이 높겠지.

함 코치님이 내게 다가왔다.


“수고했다. 뒷정리는 나랑 상호가 하마. 아이싱하고 푹 쉬어라.”

“넵. 감사합니다.”

“솔직히 나는 너 왔을 때 다시 수원고에 돌려보낼 생각이었어.”

“그래요?”


아. 얼추 알고 계셨구나.

이런 분이긴 하다.

자신이 맡은 선수 한 명 한 명을 세심하게 짚어 주는 스타일이시지.

조금만 생각해 봐도 눈치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학교를 관둬서 뭐 하니? 선택지만 줄어들지. 고교야구를 거치면서 배우는 점도 분명히 있을 거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모른다면 말이다.


“오늘 보니까 내 생각이 오지랖이었네. 그냥 여기서 원하는 만큼 훈련해. 그리고 네가 원하는 대로 미국으로 가버려.”


파인 이그스의 팀원들도 거들었다.


“코치님 말이 맞지. KBO에 오지 마! 안 그래도 자리 없어서 난리니까!”

“부럽다······.”


조범현 감독님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접점도 없는 사람인데, 회귀하며 스쳐 지나갈 때마다 좋은 말씀을 남겨 주시곤 했다.


“넌 무조건 잘될 거야. 내가 본 고삐리 투수 중에 네가 제일 잘한다. 박찬호? 김선우? 걔들도 어릴 때 이 정도는 아니었어.”

“부럽다······ 감독님한테 저런 말도 듣고.”

“난 우리 감독님이 이런 칭찬도 할 줄 아는 사람인 거, 처음 알았잖아. 큭큭.”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한다.

회귀는 그 선택의 적중률을 획기적으로 올려준다.

하지만 나는 실패를 반복한 사람이다. 머릿속으로는 옳은 길인 걸 알아도 불안감을 완전히 지우진 못한다.

고등학교를 때려치우고 하루라도 빨리 미국으로 건너가는 거.

이게 정말 정답인지 나도 모른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늘 불펜 피칭에서 확실히 깨달았다.


‘이게 맞아.’


당장 내일이라도 넘어가면 이득이다.

걱정이 사라지자 구체적인 목표 또한 자연스레 떠올랐다.


‘스프링캠프 합류.’


봄이 오기 전에 매리너스에 입단.

그리고 매리너스의 스프링캠프에 초청.

팀에 내 잠재력을 제대로 증명하고, 또 스프링 캠프 내에서 제대로 한 번 증명한다면······.

최연소 메이저리그 데뷔도 가능하지 않을까?



#2


내 훈련은 끝나지 않았다.

애당초 불펜 피칭만 하고 말 거였으면, 상호만 불러와서 따로 연습했을 거다.

나는 내 배트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빈 공간을 찾아가 냅다 휘둘렀다.


부웅! 부웅! 부웅!


오늘은 폼을 볼 필요가 없다.

이미 교정은 틈틈이 끝내 놨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지금 스윙폼에 익숙해질 요량이었다.

그래서 공을 찾지도 않았다.

오늘 훈련은 그러지 않아도 되거든.

하지만 이미 나는 광교야구장의 아이돌이 되어버렸다.

어디에서 뭘 하든 관심이 쏠린다고 해야 하나.

내 스윙 훈련이 수석코치 겸 타격코치인 임수민 코치님의 눈에 걸려드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스윙 시원시원하고 좋은데?”

“감사합니다.”


부웅!

부웅!


대답하면서도 배트를 휘둘렀다.


“유연성이 끝내주네.”

“······.”


대답하고 싶지만, 집중을 깨고 싶지 않았다.

그저 배트를 휘두르는 게 아니다.

스윙할 때마다 내가 그린 이상적인 형태가 그려지는지 계속 점검한다. 집중을 놓을 수 없는 거다.

가만히 내 훈련을 바라보던 코치님이 대뜸 질문을 던졌다.


“공도 좀 쳐볼래?”


이건 구미가 당기긴 한다.

공을 굳이 칠 필요가 없을 뿐이지, 치는 것도 좋다.

다만 굳이 다른 사람 폼을 들여서까지 스윙 연습을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코치님이 먼저 제안해 줬으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면 저야 감사하죠.”

“팀에 피칭머신이 딱 하나 있어. 마침 비니까 따라와.”


나는 이미 한바탕 팀 타자들이 휩쓸고 간 배팅케이지에 들어섰다.


“135km/h로 세팅한다? 얘 최고 구속이 145인데, 기계가 오래돼서 그런지 가끔씩 코스가 튀더라고. 너무 위험하더라.”

“넵. 알겠습니다.”


위이이잉-

기계가 돌아가고, 나는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투웅-

공이 쏘아졌고, 나는 자연스럽게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제대로 맞았다.

역시 배트는 알루미늄보다 나무다. 손맛이 달라. 손맛이.


“나이스 배팅!”


투웅-

따악!

투웅-

따악!


연습이 진행될수록 의문점이 짙어졌다.


‘왜 이렇게 잘되지?’


치기 쉬운 공이다.

당연히 멀리 보낼 수 있다. 정타도 자주 나오는 게 당연하다.


“야, 비거리가 무슨······.”


케이지에서의 타격이라 실제 비거리를 잴 순 없다.

그러나 나는 물론이고, 코치님도 타자가 공 치는 모습을 일평생 봐온 분이다.

대충 타구의 발사각과 속도만 눈대중으로 보더라도, 비거리가 얼마나 나올지 예측이 된다는 뜻이다.


“어떻게 모든 공이 배트 중심에 맞는 거냐? 스윙이 좋아서 그런가?”


투웅-

따악!

홈런.


투웅-

따악!

이것도 홈런.


그렇게 스무 번의 타격이 끝났을 때.


“야, 내가 잘못 생각했다.”

“네? 뭘요?”

“네가 타자로서도 나쁘지 않은 재목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틀린 거 같아.”


그렇게 별로였나?

솔직히 나쁘지 않았던 거 같은데.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꽤 좋았는데?


“타자로 전향하는 건 어떤가? 자네라면 대한민국 4번 타자가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아.

그런 뜻이었구나.

난 또 뭐라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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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양민 학살 (2) 24.06.20 404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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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 번째 회귀 24.06.18 511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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