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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못하는 야구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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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至言)
작품등록일 :
2024.06.17 18:03
최근연재일 :
2024.07.0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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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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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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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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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입단 기자회견 (2)

DUMMY

#3


미국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확실히 그럴싸했다.

준비 기간도 좀 넉넉했고, 이미 같은 내용의 회견을 가진 적이 있어서 그런지 진행도 매끄러웠다.

무엇보다 한국에 비해서 열기가 뜨겁지 않았다.


‘그렇지. 이게 정상이지.’


한국에서나 역대 아마추어 선수 최대 계약금이지.

메이저리그의 최근 기조를 보면 300만 달러 규모의 국제 아마추어 계약은 흔하디흔하다.

다만 특이점이 있다면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 정도다.

보통 베네수엘라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대부분의 선수를 수급하는데, 뜬금없이 한국인에게 가진 아마추어 계약 예산의 절반가량을 때려 박았으니 화제가 되긴 했다.


“킴은 국제 아마추어 유망주 랭킹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은 선수입니다. 이런 선수와 갑자기 큰 규모의 계약을 진행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만 그 화제의 방향이 나보다는 팀에게 쏠렸다.


“우리는 킴이 매리너스를 바꿔줄 키 플레이어가 될 만한 자질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에 맞는 제안을 했고, 킴이 받아들였을 뿐이죠.”


이 정도 질문은 양반이었다.


“시애틀 베이스볼 칼럼의 잭 카튼입니다. 누구도 매리너스를 빅클럽이라고 부를 순 없을 텐데요. 매리너스는 검증이 되지 않은 선수에게 300만 달러를 쓸 여유가 있었습니까?”


역시 본토 기자들이 맵다.

한국도 수위 자체는 비슷한데, 싼티가 너무 난단 말이지.

너무 선을 넘어서 제지해버리면 그만이거나, 너무 속 보여서 회피하기 편하다.

그런데 여기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지금도 보면 매운 내용과 달리 질문 자체는 ‘여유가 있냐’는 거다.

이러면 대답이 참 애매해진다. 그리고 그 애매함에 속아 어설픈 답변을 내놓는 순간······ 골로 가는 거지.

내가 이걸 어째서 자세히 알고 있냐고?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문득 이전 회차에서의 슬픈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러니까··· 킴은 검증된 선수가···.”


나는 냅다 끼어들었다.


“혹시 제가 대답해도 괜찮을까요?”


쩔쩔매는 구단 관계자들을 보니 답답해서 안 되겠다.

이 친구들에게 인터뷰 스킬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줄 요량이었다.


“어라?”

“영어?”


여태까지 나는 한국어로 소통했다.

내 말을 통역이 옮겨 주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내가 저들보다 영어를 많이 썼다. 모국어가 아니니 100% 현지인 발음은 아니겠지만, 누가 들어도 자연스러우리라.


“기자님, 솔직히 제가 300만 달러 값어치를 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요, 나한테 비슷한 제안을 한 팀이 많았습니다.”


양키스가 나와 계약했어 봐.

이런 질문이 나왔겠어?

이게 스몰 마켓 구단의 비애다.

나는 매리너스가 싫지만, 그렇다고 매리너스가 이딴 이유로 조롱거리가 되는 꼴도 보고 싶지 않다.


“여유가 있는지 없는지는 둘째 문제에요. 나를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리고 매리너스는 잡았죠. 이 부분에서 매리너스는 칭찬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물론 이들 입장에서 나는 리스크 덩어리다.

이해한다. 걱정할 수 있다.

그래도 지금 시점에 팀을 비난해선 안 된다.


“설령 내가 댁들이 그리 씹기 좋아하는 허위 매물이라고 해도, 지금 이 순간에는 매리너스가 다른 팀을 누르고 나를 차지한 거라고요.”


아. 갑자기 화가 나네.

우리 매리너스가 좀 못나긴 했어도 애는 착하다니까?


“제가 역으로 묻겠습니다. 영입 경쟁의 승리를 알리는 자리에서 팀 자금의 여유를 따지는 게 미국의 문화이고 예의입니까?”

“······.”


기자회견장에 정적이 흘렀다.

다른 기자는 내 말을 옮겨 적기 바빴고, 구단 관계자들은 마치 사랑에 빠진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 답변 감사합니다.”


잭 카튼이라는 기자가 황급히 발언권을 내려놓았다.

이 사람의 소속은 시애틀 베이스볼 칼럼.

매리너스의 소식을 전하는 주요 소식통이다. 지역 언론사인 만큼 이자도 분명 매리너스의 팬일 거다.

그런데도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게 이 팀의 진정한 문제다.


“크흠! 아무튼. 매리너스는 괜찮을 겁니다. 저를 산 게 손해가 아니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 빌어먹을 팀은 열심히 변화를 추구한다.

실제로 헛방을 많이 쳤다. 그러니까 반세기에 가까운 기간이 주어졌는데도 우승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거겠지.

그런데 이 팀의 진짜 문제는 이런 비판적인 여론을 너무 의식한다는 거다.

지금도 보면 팬이라는 작자가, 지역 언론사의 이름을 달고 나를 산 매리너스의 재정을 걱정하고 있다.

제 딴에는 걱정하는 마음이 담긴 질문이었겠지만, 저걸 지나치게 의식한 구단의 투자가 실제로 보수적으로 변해버린다.

이 팀은 줏대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지난 4회차 간의 경험으로 확실히 깨달았어.’


이 팀은 내가 아무리 잘해도, 야구만 해서는 우승할 수 없다.

팀의 분위기를 바꾸고, 나아가 팀의 운영 기조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

이번에는 또 다른 기자가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킴에게 질문하겠습니다. 킴은 스스로의 가치가 300만 달러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이건 또 뭔 개떡 같은 소리야?

아무리 내 영입이 고까워도 그런 말은 하면 안 되지.

애초에 직전의 질의를 이미 들었던 사람이잖은가.

그냥 지나칠 정도로 눈치가 없는 사람이다. 아니면 내 상상 이상으로 멍청하거나.

하여간 기레기 녀석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하하하!”


나는 시원하게 웃었다.

그 순간 회견장의 공기가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열일곱 살짜리 어린애가 주인공인 기자회견.

여기서 그 주인공이 부적절한 언행으로 사고라도 치면 어찌 되겠는가.

아주 참사가 따로 없다.

눈치를 보아하니 나를 제지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거 같다.

물론 나는 멈출 생각이 없다.


“기자님,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십니까?”


언론사 놈들의 태도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간사하다.

강한 놈한테는 꼬리를 말고, 약해 보이는 놈은 잔인하게 물어뜯는다.

한 번 기세에서 밀리는 순간 먹잇감으로 전락한다는 뜻이다.


“내 가치를 내가 정하고 팔았습니까? 시장이 정해준 가격 받고 계약했죠. 이게 무슨 말이냐.”


나는 내가 삼백만 달러짜리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억만금을 줘도 못 구하는 매물이지.

물론 이 생각을 입 밖에 낸들 당장에 설득력은 전혀 없다. 아직 나는 무언가를 증명한 선수가 아니니까.

대신 담담하게 사실만을 이야기했다.


“내가 사인한 순간 나는 삼백만 달러짜리 선수인 겁니다. 그 자각과 자부심,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일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되레 제가 궁금하네요. 열일곱 살 선수한테 대체 뭘 더 바라셔서 그런 악의적인 질문을 하시는 겁니까?”


우문에는 현답으로.

사실 이런 기자에겐 지금 같은 답변도 사치다. 제대로 알아듣기는 했으려나?

옛날의 나라면 더 들이박았을지도 모른다.

저 기자를 사람 취급도 안 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살다 보니 마음이 많이 누그러지더라.

어쨌든 저들은 선수의 말을 옮겨 적는 게 업인 사람들이다. 팬과 나를 연결해 주는 하나의 장치라는 뜻이다.


‘도구가 좀 더럽고 삐걱거려도, 맨손으로 일하는 것보단 낫겠지.’


기자 양반이 좀 모자라도 어쩔 수 없다. 아쉬운 대로 써먹을 수밖에.

직접 손수 팬들을 찾아다닐 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아마 내게서 이런 모습을 기대한 사람은 없을 거다.

아주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하고, 또 선 넘은 질문도 확실하게 쳐 내는.

17세의 신인에게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을 가지지 않았나.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는 내가 휘어잡고 있었다.


‘이게 맞아.’


내가 당당해야 매리너스도 자신감 있게 앞으로의 영입을 추진할 수 있다. 그래야 더 좋은 팀으로 거듭나겠지.

당장 내 말들은 단순히 내 이미지를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매리너스 팬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그들은 내 계약 소식에 기쁨보다는 불안감이 훨씬 클 터였다.

내 발언은 정확히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저는 아직 어립니다. 제가 잠재력을, 제가 받은 계약금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이런다고 그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지겠나.

매리너스 팬들은 팀을 향한 불신이 가득한 사람들이다.

한국의 자이언츠나 이글스 팬들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당장 그들의 의심을 완전히 지울 순 없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안심하겠지.’


이거면 된다.

어쨌든 그들은 매번 속곤 했다.

이번에는 다르다!

올해는 다르다!

역대 최다 트레이드 기록 경신! 이번 로스터는 진짜 정말 확실히 다르다!

50년째 실패만 하는데도, 욕하면서 지켜봐 준다.

열일곱 살 꼬마가 이 정도 말했으면, 한 번쯤 더 속아주지 않을까.

분명 그럴 거다.

내가 수십 년간 지켜본 이 팀의 팬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4


기자회견 이후.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매일 거르지 않고 진행하는 훈련과 미국에서 살아가기 위한 준비까지.

시간은 없는데, 처리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개중에는 부모님과의 대화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지금 혼자 넘어가겠다는 거니?”

“······ 안 되겠죠?”


짝!

어머니가 내 등짝을 때린다.


“얘가 그걸 지금 말이라고!”


나는 시애틀과 계약했으니 이제 미국으로 넘어가서 살아야 한다.

문제는 내 나이가 주민등록상 만 17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세상 어느 부모가 핏덩이 같은 아들을 혼자 타지에 보내고 싶겠는가.

당연히 내가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다 같이 이사를 갈 순 없잖아요.”


그렇다고 가족 전체가 미국으로 거처를 옮길 수도 없다.

한국에서 살면서 쌓인 부모님의 기반이 버려지잖아.

현재 마련한 거처부터 직장, 인간관계까지 전부.

냉정하게 이 모든 걸 엎기는 불가능하다.

내가 자유계약이나 포스팅으로 거액의 연봉을 보장받은 게 아니니 말이다.

50억 계약금이 있지 않냐고?

세금 떼고, 집 구하고, 어쩌고저쩌고 하다 보면 생각보다 금방 동이 날 거다.

그 돈만 믿고 미국으로 다 같이 건너오기에는 아무래도 리스크가······.


“안될 거 있니? 2년 정도 좋은 경험 해보는 셈 치고 함께 다녀오면 되지.”


아.

그래.

이런 분들이시지.

몇 번째 겪는 상황인데도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매번 나를 무한히 믿어주셨다.

그 어려웠던 1회차를 처절하게나마 버티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도 다 부모님의 지지 덕분이었다.


‘나야 오히려 좋지.’


미국에 꼴랑 30만 달러만 받고 넘어간 적도 있다.

1회차의 메디컬 테스트에서 고장 나 버린 팔을 딱 걸리고 말았더랬지.

그때도 멀쩡히 잘 살았다.

야구선수로서 김진휘가 조금 못나 보일 때이긴 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빅리그까지 올라가 남부럽지 않게 벌긴 했거든.


“저야 괜찮지만, 어머니 아버지는 한국에 쌓은 게 있잖아요.”

“너무 부담 가질 필요 없어. 잘 안 풀리면 또 어떻니? 그냥 다시 돌아오면 되는 거란다.”


나는 정말 오래 산 사람이다.

지금 부모님보다 두 배가 넘는 기간을 살아왔다.

하지만 부모가 되어본 적이 없어서일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부모님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한다.

아직도 부모님이 어떻게 이런 선택을 내릴 수 있으신 건지 의아할 따름이다.


‘그래. 혼자 넘어갈 수 없으면 차라리 다 같이 가는 게 나아.’


내가 실패할 사람도 아니고.

나야 혼자 넘어가서 자리 잡고 부모님을 모시는 쪽이 편하지만, 우리 부모님 성격상 절대 불가능한 일이란 사실을 방금 대화로 깨달았다.

그렇다면 남은 경우의 수는 둘로 좁혀진다.

찢어지거나, 모두 함께 넘어오거나.


‘떨어져 사시는 것보다는 함께하는 게 더 행복하시겠지.’


마지막일 확률이 굉장히 높은 인생.

당연히 내 주변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

나는 매리너스를 우승시키고 밝게 웃으며 은퇴할 거고, 부모님은 그런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아무 걱정 없는 삶을 살아가시게 될 거다.


“그래요. 까짓거. 다 같이 넘어가서 살죠! 재미는 있겠네요.”


이번 회귀 직후 그렇게 만들겠다고 다짐했으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99 유랑무인
    작성일
    24.06.28 09:20
    No. 1

    우승 쉽잖아요. 잘나가는 선수 데려오면 되죠. 물론 단장 역할이죠. 하지만 계속 성공할 선수 맞춰봐요. 그럼 세번째부터는 먼저 물어볼걸요. 몇억불 주고 계약한 선수 망할거 안망할거 맞추고 드래프트 성공할 선수 맞춰봐요. 80% 확률만 되어도 단장이 감히 무시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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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입단 기자회견 (1) 24.06.27 394 8 14쪽
9 쇼케이스 (5) 24.06.26 428 13 12쪽
8 쇼케이스 (4) 24.06.25 408 10 13쪽
7 쇼케이스 (3) 24.06.24 409 10 12쪽
6 쇼케이스 (2) 24.06.23 433 11 12쪽
5 쇼케이스 (1) 24.06.22 455 10 12쪽
4 양민 학살 (3) 24.06.21 484 9 13쪽
3 양민 학살 (2) 24.06.20 525 12 13쪽
2 양민 학살 (1) +1 24.06.19 570 11 12쪽
1 네 번째 회귀 24.06.18 653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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