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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못하는 야구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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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至言)
작품등록일 :
2024.06.1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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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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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쇼케이스 (3)

DUMMY

#5


최우선 과제가 정해지자 훈련의 농도 역시 짙어졌다.

역시 목표라는 게 참 중요하다.

매리너스의 우승 같은 당장에 지나치게 허황된 꿈 말고.

바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마일스톤 말이다.


“쉽지 않네······.”


지금 나는 모든 것이 부족하다.

심폐지구력부터 기초적인 근력까지.

게다가 성장을 다 마치지 못한 신체 역시 아쉬운 점이 많았다.


‘살도 조금 더 쪄야 하는데. 이건 단기간에 어려우니까.’


벌크업을 할 때가 아니다.

지금 가진 스펙으로 고점을 내야 한다.


“후우······.”


나는 하체와 코어를 집중적으로 갈궜다.

단순히 잠재력을 보여주는 선에서 그치면 안된다.

내 피칭을 본 모두가 충격에 빠지고, 책정된 예산을 전부 털어서라도 나를 사게 해야 한다.


‘제구를 잡아야지. 특히 변화구들이 아직 너무 말썽이야. 구단들의 눈을 뒤집어 까려면 걔들을 자유자재로 다뤄야 해.’


총을 쏜다고 생각해 보자.

‘서서 쏴’와 ‘앉아 쏴’, ‘엎드려 쏴’중 어느 사격 방식의 정확도가 높겠는가?

그냥 한발 더 나아가서 총에 지지대를 부착해버리면?

당연히 훨씬 정교한 사격이 가능해질 거다.

코어 근육과 하체는 야구공을 쏘는 투수라는 이름의 총을 지지하는 역할을 맡는다. 물론 그 지지대를 제대로 쓰기 위한 균형 감각 역시 필수다.


“와- 너 진짜 제대로 또라이구나?”

“조용히······ 해······!”


상호는 내 훈련을 도와주고 있었다.

한껏 하체와 코어를 갈군 뒤, 지금은 요가 자세로 균형 감각을 점검하는 중이었다.

마운드 플레이트 두께의 구조물 위로 올라가, 한쪽 다리를 들고 버티는 훈련.

올린 다리를 와인드업 단계처럼 ㄱ자로 유지하는 게 이 훈련의 핵심이다.

아, 옆에는 우리 고양이님께서도 구경하는 중이시다.


“벌써 오 분 지났어. 허리 안 아프냐?”


그냥 한 발 들고 서 있는 게 뭐 어렵냐고?

그냥 맨땅에라도 해 봐라.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위에 스파이크를 신고, 좌우 폭이 좁은 막대기 위에 올라가 있다고 생각해 봐라.

일반인은 30초만 버텨도 잘하는 거다.

그리고 투수라고 해도 1분에서 2분 정도가 평균일 거고.

하지만 내 균형 감각은 독보적이다. 다른 부분의 재능은 분야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균형 감각만큼은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 몸에 빠르게 적응하고, 내 균형 감각이 적용되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멈출 수가 없었다.


“와······.”


어느 순간부터 상호 녀석도 말 수가 줄어들었다.

그도 그럴 게, 내 훈련이 묘기와도 같다.

삐에로가 부리는 곡예보다 더하다.

삐에로의 곡예는 그저 신기해하며 박수 치면 그만인데, 상호 녀석과 나의 입장은 같은 꿈을 가진 운동선수 지망생이거든.


“오 분. 땡!”

“끄아아······.”


나는 그제야 나무토막에서 내려왔다.

동시에 거의 넘어질 뻔했다.


“야, 이게 쉽게 되는 거냐?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


상호가 곧바로 내 자세를 따라 해봤다.

그러나 정확히 이십 초쯤 지났을 무렵.


“으윽! 어어어? 아잇!”


숨을 쉬다가 무게 중심이 흐트러졌고, 작은 균열이 조금씩 커지더니 끝내 들었던 발이 땅에 닿고 말았다.


“너 지금 스파이크도 안 신었잖아. 30초는 버텼어야지.”

“됐어. 어차피 포수한테는 쓸모없는 훈련이야.”


별 의미 없는 건 맞다.

그래도 20초는 좀 심하다. 저 정도면 코어에 하자가 있는 거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야구를 그렇게 못했나? 특히 공격을?

물론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고.

상호 녀석은 좀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너 진짜 괴물이다. 이걸 대체 어떻게 오래 버티는 거냐?”

“그냥 한번 요령 깨달으면 쭉 버틸 수 있는 거지 뭘. 발 바꿔서 마저 할게.”


나는 반대 발로도 오 분을 채웠다.


‘오케이. 이 정도면 균형 감각은 합격.’


이 정도면 단기간에 볼 컨트롤 잡는 것도 아마 될 거다.


“슬슬 시작하자.”

“던지게?”

“응.”

“뭐부터?”

“대충 사인 정해봐. 사인대로 던져줄게.”


상호는 곧바로 알아들었다.


“저번 불펜 피칭에서 변화구들 제구가 좀······ 그렇긴 했어?”


나는 피식 웃었다.

녀석의 같잖은 도발이 귀여웠다.

저 말이 진심이겠는가.

다 내가 더 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꺼낸 말이다.

내가 정말 동갑내기 소꿉친구였다면 꽤 자극이 됐겠지만······ 이제 평생 그럴 일은 없겠지.

과거로 여러 차례 돌아오며 느꼈다.

이건 저주다. 나만 추억을 기억하고, 나만 정신적으로 늙어가는 저주.

이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최대한 젊게 살고자 노력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몸이 젊어지면 그 연령대에 맞는 호르몬이 나오기 마련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잡념만 조금 지우면 금방 애처럼 굴 수 있거든.

덕분에 어느 정도는 젊게 살 수 있었다.


“큭큭. 배부른 소리하고 자빠졌네. 나랑 비빌 고등학생이 어디 있다고.”

“애늙은이 새끼.”


상호가 투덜거리며 주섬주섬 장비를 챙겨 홈플레이트로 향했고, 나는 간이 마운드에 올랐다.


‘초구는 우타자 기준 바깥쪽 빠른 공? 좋지.’


휘릭!

뻐엉!


“와- 이놈의 포심은 받을수록 놀랍네.”


실제로 내 포심의 위력은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회귀 직후에도 강력했지만,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

사십 대이던 내가 열일곱 살의 신체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이 몸을 효과적으로 쥐어짤 수 있는지 명확히 알고 있다.


휘릭!

팡!


“오? 이번에 제대로 왔는데?”


이후 온갖 변화구를 던졌다.

상호 녀석에겐 신비로운 경험일 거다.

변화구 한두 개에 포심패스트볼 원 툴이던 애가, 갑자기 만능이 돼서 온갖 공을 던져대니까. 심지어 꽤 그럴싸하게.

그런데 오늘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변화구의 완성도를 높이고 제구까지 잡았다.


휘릭!

펑!

휘릭!

펑!


투구가 진행될수록 상호의 말 수가 줄어들었다.

평소라면 ‘나이스 볼!’이라고 외쳐 주는 등 투수를 북돋우며 텐션을 한껏 올렸을 놈이거늘.

오늘따라 반응이 영 시원찮다.

공은 충분히 좋은 거 같은데 말이지.

그렇게 서른 번의 투구가 끝났을 때.


“이건······ 이건 아니야. 말이 안 돼.”


마운드로 다가오는 녀석의 눈을 보니 넋이 제대로 나가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나를 쏘아보더니.


“너 이 새끼, 대체 누구야?”

“엉?”

“김진휘 아니지? 내가 아는 그 투수는 어디 가고 어떤 미친놈이 김진휘의 탈을 썼어? 엉?”


그래.

못 믿을 만하다.

그런데 어쩌겠냐.

나도 내가 기억하는 김진휘라는 투수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흐릿하게 잔상만 남아 있을 뿐.

그렇기에 상호를 납득시킬 수도 없거니와, 설득하겠다고 애쓸 생각도 없었다.

어쨌든 오늘 피칭은 만족스러웠다.

영점이 잡힌다고 해야 하나.

불안하던 컨트롤이 예상보다 빨리 잡혔다.

이대로 컨디션만 잘 관리한다면 쇼케이스는 문제없이 치를 수 있을 듯했다.


“난 여기까지 하고······ 배트 좀 가져올래?”

“야 이 새끼야, 이제 나한테 잔심부름까지 시키려고? 내가 네 식모냐?”

“아니, 네 배트를 네가 가져오라고.”

“······ 아.”


아오.

답답한 새끼.

상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주섬주섬 자기 배트를 꺼냈다.


“좀 휘둘러 봐. 쉬면서 봐줄게.”

“갑자기?”

“갑자기라니? 너도 운 좋으면 미국 가는 거야.”

“내가? 왜?”

“쇼케이스 무대에 타자가 필요하거든.”


선수 및 장소 섭외는 끝났다.

수원 파인 이그스에서 도와주기로 되어 있었다.

큰 의미는 없겠지만, 그래도 타자를 세워 놓고 던지는 게 연출상 그림이 예쁘게 나온다.

그 타자 목록에 상호도 끼워 넣을 예정이었다.

물론 쇼케이스 무대에서 봐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또한 당장 녀석의 배팅 능력으론 내 공을 건드리는 것조차 벅찬 일이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잖는가.

17살에 뛰어난 수비력을 자랑하고, 스윙도 그럴싸한 유망주에 관심 있는 팀이 한 곳쯤은 나타날 수도 있다.


“임팩트를 더 모아. 자세가 일찍 풀리니까 스윙에 힘이 안 실리는 거야. 공을 기다리다가 한번에 팍! 오케이?”

“······너 정말 더럽게 못 가르친다.”

“흥! 네가 말귀를 못 알아먹는 거지.”


원래 인생에서 기회는 정말 생각지 못한 타이밍에 찾아오는 법이다.

살다 보니 그렇더라고.


“냐-옹.”



#6


쇼케이스 날짜가 삼 일 뒤로 확정된 날.


[김진휘 선수! 좋은 아침입니다!]

“무슨 일인가요?”

[좋은 소식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일본 쪽에서 김진휘 선수에게 관심이 지대한 거 같더라고요!]


거기에서?

이런 소식은 2, 3, 4회차를 통틀어 처음이다.


“예!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소문이 좀 났나 봅니다!”


정말 뜬금없는 이야기라 벙쪘다.

회귀 이후 처음으로 놀란 거 같다.

그래도 금방 인과관계가 유추되었다.


‘파인 이그스의 누군가가 일본 프로야구와 연줄이 닿아 있고, 그 줄을 통해 소문이 전해졌나?’


사실 내 이름 석 자 정도는 관계자들이 모를 수가 없다.

일반 야구팬들에게 ‘고교 최대어’라는 수식어는 식상한 단어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각 팀의 스카우트나 디렉터는 이 수식어를 무시할 수 없다. 요주의 인물이라는 뜻이니까.

그런데 그 선수가 제대로 각성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비밀리에 접촉을 시도해 와도 이상할 게 없다.


[입단 테스트 문의가 갑자기 쇄도하더군요! 특히 세이부 라이온스와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상당히 적극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가고 싶지 않아요. 제가 일본어보다 영어가 편하기도 하고요.”

[그렇군요! 하지만 쇼케이스에 대한 정보는 넘겨주겠습니다! 이건 괜찮으시죠?]

“어차피 다 알고 있을 텐데, 숨길 필요는 없겠죠. 다 오라고 합시다.”

[시원시원하시니 좋군요! 그럼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못 먹을 떡.

구경이라도 시켜줘야지.


[또! 다른 소식도 있습니다!]

“네? 더 있어요?”

[협상 진행이 지지부진하던 메이저리그 팀에서 동시에 좋은 시그널을 보내고 있습니다! 쇼케이스를 준비 중이라고 살짝 흘리니까, 담당자들 눈빛이 달라지더라고요!]


이건 예상한 바다.

메이저리그에서 국제 아마추어 계약 선수를 뽑을 때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무엇이겠는가?

불확실성 때문이다.

정보가 너무나 부족하다.

경기는 어떻게 염탐하겠지만, 훈련은 볼 수 없다. 특히 한국 선수들의 경우 학교 차원에서 보안을 신경 쓰기도 한다.

심지어 그 실전도 데이터가 부족하다.

일 년 내내 쫓아다닐 것도 아니잖은가.

실전 몇 경기만 보고 그 선수의 기량이 아닌 잠재력을 정확히 평가한다?

그 어떤 스카우트를 데리고 와도 불가능하다.

물론 정말 중요한 선수인 경우엔 그깟 보안망 따위 우습게 뚫어버리겠지만, 그것도 결국 다 시간과 돈이 드는 일이다.

그런데 대놓고 보여주겠다고 하니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제 예상보다 좋은 조건으로 계약할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제 역할이 중요하겠군요.”

[완벽하게 이해하고 계십니다!]


말은 쾌활하게 해도, 걱정이 산더미일 거다.

내 기량을 정확히 모르는 건 이 열정 넘치는 에이전트 아저씨도 마찬가지일 터라.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든다.

선수를, 나를 향한 신뢰가 느껴진달까.


“금방 아시게 될 겁니다. 저와 에이전트님 판단이 옳다는 사실을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지난 네 번의 삶 중, 세 번의 인생에서 내 계약을 맡아준 사람이다.

그리고 계약 및 선수 관리 부분에서는 늘 만족해 왔다.


‘마지막이잖아.’


요즘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뇌는 단어다.

마지막.

네 번을 살다 보니 주변에 고마운 사람이 많이 생겼다.

헌데 매번 그 빚을 다 갚지 못하고 과거로 돌아와야 했다.

물론 내 최우선 목표는 단연코 매리너스의 우승이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니만큼, 그들에게 진 빚을 갚아 나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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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 번째 회귀 24.06.18 509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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