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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못하는 야구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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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至言)
작품등록일 :
2024.06.1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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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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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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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스프링캠프 (1)

DUMMY

#1


이사 건은 시일이 걸리는 문제다.

가족이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는데 그게 하루 이틀로 되겠는가.

무엇보다 나를 위해 옮기는 건데, 정작 나는 미국으로 가게 되면 당분간 숙소 생활을 해야 한다.

스프링캠프 때문이다.

우리 가족의 이사는 내 스프링캠프 일정과 맞춰서 이루어질 거다. 내가 어느 팀에 배정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물론 최종 목적지는 시애틀이 되겠지만 말이다.


“야, 너 출국 언제냐?”


오늘도 난 상호 녀석과 함께 훈련을 진행했다.

녀석이 내 공을 받아주고, 난 쉬면서 녀석의 타격을 봐줬다.


“일주일도 안 남았어.”


시간이 참 빠르다.

오늘은 2월 9일 수요일.

2023 스프링캠프 투수조 보고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이다.

주전 선수라면 슬슬 몸을 만들기 시작하는 시기이지만, 나 같은 신인에겐 그런 거 없다.

최상의 폼을 보여주어야 하는 무대다.


“어떤 곳일지 궁금하다.”

“뭐 다르겠어?”


거기도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고, 야구하러 모이는 것뿐이다.

시설 차이는 있어도, 스프링캠프의 목적과 분위기는 다른 리그 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부웅!

부웅!


“그렇지. 많이 좋아졌네. 그 스윙 하루에 천 번씩만 휘둘러도 고교야구엔 적수가 없겠다.”

“진짜?”

“공도 쳐볼래?”


진짜 내 공을 던져주긴 좀 그렇고.

적당히 앞에 그물을 세워놓고. 토스만 해줬다.


부웅!

딱!


“와- 야, 손맛부터 다르다!”


녀석이 신기해하는 모습에 뿌듯함이 올라오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어쭈? 말할 여유가 있어?”


공 올리는 속도를 한 템포 높였다.

물론 이 정도로 자세가 망가지지 않을 거란 계산은 진작 해 놓았다.


부웅!

따악!

부웅!

따악!


“그, 그만······.”


이 정도 경험만으로도 이전 생보단 높게 갈 수 있을 거다.

내가 알려준 스윙은 그 자체로 녀석에게 기연이다.

20년 미래, 최고 수준 야구의 정수가 담겨 있거든.


“여기까지! 수고했어.”

“헉······. 헉······.”


아마 오늘이 녀석과 함께하는 마지막 훈련일 거다.

이제 진짜 곧 출국인지라.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응?”

“은퇴하고 베팅장, 레슨장 같은 건 차리지 마라. 절대로.”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튼 경력 살려서 사업할 생각은 절대 하면 안 돼. 차라리 치킨집을 차려. 알겠지?”


이 정도면 상호에게 진 빚은 다 갚았다.

나머지는 녀석 하기 나름이겠지.



#2


출국 준비가 한창이던 때.

부모님이 모두 자리를 비운 사이, 다시 한번 고양이 녀석이 내게 접근했다.


“진휘! 미국 언제 가냥?”

“모레 출국인데, 왜?”

“나도 데려가 줘랑!”

“야, 널 어떻게 데려가?”


약 한 달 사이 녀석은 완전히 우리 식구가 됐다.

내가 함부로 빼낼 수 없다는 뜻이다.

이미 집구석에 다양한 고양이 용품이 들어섰고, 녀석도 눈치껏 부모님께 친근하게 굴며 떼놓을 수 없는 사이가 됐기 때문.


“데려가야 한당! 너랑 나랑 너무 멀어지면 특전이 사라질 수도 있거등!”


어.

그건 좀 큰일이긴 한데.

특전은 내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갈 수 있지만, 내 목표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닌지라.

정말 말 그대로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기에 특전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내 부상 위험을 극히 낮춰준다지 않는가. 아직 큰 체감이 되진 않지만, 없는 것보단 무조건 낫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메디컬 테스트에서 내 팔 컨디션이 완벽에 가깝다는 진단이 떨어진 덕분이었다.


“······ 그래?”

“그렇당! 그러니 나도 미국에 같이 가야 한당!”


쇼케이스 때 보여준 모습이 아무리 충격적이라 한들, 그것만 가지고 수십억 원을 어찌 쉽게 투자하겠는가.

결국 다 메디컬 테스트에서 부상 위험이 낮지 않다는 진단이 떨어진 덕분이다.

실제로 이전 회차에서 적당한 계약금만 받으며 만족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고.


“어떻게?”

“네가 생각해봐야징. 난 잘 모르니깡.”


일단 비행기에 고양이와 동승이 가능한지부터 알아봐야 한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안될 건 없어 보인다.

적당히 푹신한 바닥재가 깔린 동물 전용 케이지에 넣어서 옮기면 된다는데, 애초에 고양이가 아니니 걱정할 필요도 없다.

눈치껏 얌전히 잘 버티겠지.


“그게 문제가 아니당.”

“응?”

“네 부모님 몰래 나를 빼 오는 게 가능하겠냥?”

“아.”


이게 진짜 문제긴 하지.

부모님과 녀석 사이에 정이 많이 들었다.

이름도 생겼다.

나비.

너무 평범한 거 아닌가 싶지만, 원래 애완동물 이름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나도 가족들 있을 땐 나비라고 부르는데, 나비는 이름을 불릴 때마다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진다.

억지로 받아들이는 듯한 오묘함이 담겨 있다고 해야 하나.

그게 참 귀여운 포인트인데, 나만 알아볼 수 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우선 케이지를 사서 세팅한 뒤 숨겨놓고······ 공항으로 이동할 때 네가 몰래 빠져나와서 합류해야겠는데?”

“······ 그거밖에 없겠징?”


내가 짠 계획이 그나마 최선이었다.


“그러면 난 애리조나에서······.”

“응. 거기서는 밖에서 지내야 해.”

“······ 어쩔 수 없는 거 안당. 못난 집사가 집이 없는데 어쩌겠냥.”


물론 별로 미안하진 않다.

다 제 업보라니까?



#3


“도착했다!”


피오리아 스포츠 콤플렉스.

스프링 트레이닝 캠프가 열리는 주 경기장 중 하나다.

3월 말까지 매리너스의 홈구장으로 쓰일 예정이기도 하다.

정말 긴 여정이었다.

일단 인천공항까지 가서, 수하물 등록하고 어쩌고 하는 데 두 시간 반가량이 걸렸다.

그리고 비행기에만 열두 시간을 있었다.

또 내려서 입국 수속 마치고, 수하물 받고, 우버 구해서 구장까지 이동하는 데에도 한 시간 넘게 걸렸다.

이동만 했는데 하루가 지난 셈이다.


“정말 너무 답답했당!”

“그럴 만해.”


이 녀석과 공감이라는 걸 처음 해보는 거 같다.


“신기하당! 우리 낮에 출발하지 않았냥?”

“그랬지.”

“그런데 왜 여긴 또 오전이냥? 이미 한나절이 지났는뎅?”

“시차가 있으니까. 고양이가 됐다고 지능도 퇴화했나?”

“그런 거 아니당! 나는 이런 걸 겪어볼 일이 없었을 뿐이거등!”


시차가 참 어지럽긴 하다.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사람 몸이 그리 쉽지가 않더라.

사실 그리 오래 살면서 한국과 미국을 오간 적은 그리 많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미국 내에서 이동하는 건 나름 견딜 만했거든.


“야, 이제 조용히 해, 저기 누가 온다.”


우리에게 다가온 사람은 내 연락을 받고 온 구단 직원이었다.

아주 헐레벌떡 뛰어오는 꼴이, 뭔가 내가 실수했나 싶다.

직원의 첫마디는 유창한 한국어였다.


“아이고! 오시는 데 불편하진 않으셨어요?”


아무래도 내 담당인 모양이다.


“네, 뭐. 그냥 여행하는 느낌이던데요.”

“그래도 앞으로는 미리 말씀 좀 해주세요. 제가 공항으로 마중 나가서 모셔 오면 되거든요.”


물론 그럴 필욘 없다.

내가 미국 생활이 하루 이틀인가.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보다는 여기서 제가 어떻게 지내면 될까요?”


어디가 매리너스의 숙소고.

또 내 방을 어떻게 찾는지.

사실 다 알지만, 그걸 다 알고 있으면 상당히 수상해 보일 거 같다.


“아! 안내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한 바퀴 돌면서 확실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 고양이는······?”


아.

우리 나비.

아직도 내 어깨 위에 올라가 있었구나.


“반려묘입니다.”

“저희 숙소는 애완동물 반입 금지인데······. 혹시 안내를 못 받으셨나요?”

“받았습니다. 괜찮아요. 밖에서 재울 거라.”


나비야.

들었지?

어쩔 수 없다!

밖에서 자야겠다.

나는 직원과 시설을 한 바퀴 돌며 전체적인 안내를 받았다.


“여기에 짐 푸시면 되고요, 훈련은 모레부터입니다. 오늘 내일은 시차 맞추시면서 푹 쉬시면 될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가볍게 몸 풀고 잘 생각인데, 운동은 어디서 하면 될까요?”

“부속 구장이 두 곳 있을 겁니다. 개중 저희 숙소와 가까운 쪽을 쓰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내일부턴 일찍 나온 다른 선수들과 인사도 좀 해야겠네요.”

“도와드릴까요?”


나에게 공식적으로 붙은 통역은 없다. 구단과의 협의 내용에는 내게 통역이 아니라 언어 선생님을 붙여 준다는 조건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스프링캠프 기간은 팀에 적응하는 시기.

이 직원에겐 그 기간 나를 따라다니며 의사소통을 돕는 업무가 주어진 모양이다.

나는 영어로 대답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이래 봬도 언어에 좀 능숙하거든요.”

“예?”

“푹 쉬셔도 됩니다. 오늘은 혼자 좀 더 둘러보고 쉴게요.”


나는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고양이 녀석과도 이야기를 조금 나눠 봐야 하는지라.

피오리아 스포츠 콤플렉스 부지에는 아직 사람이 채워지지 않았다. 즉, 텅 빈 공간이 많았다.

그렇기에 산책만 다녀도 나비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근뎅-”

“어?”

“여기 마음에 든당!”


노숙은 절대 싫다던 녀석이?


“가까이서 야구를 볼 수 있어서 좋앙!”


실내외 연습장부터 주 경기장까지 정말 많은 공간이 야구를 위해 쓰이고 있다.

아마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면 이곳은 사람들로 꽉 들어찰 거다. 어딜 가든 야구 이야기가 오가고, 훈련에 열중하는 선수들을 볼 수 있다.

야구에 미쳐 사는 나비에겐 의외로 최고의 놀이터인 셈이다.

말이 노숙이지, 실내로 칠 만한 공간도 엄청 많고.

그렇긴 한데.

애가 원래 이렇게 긍정적이고 귀여웠나?


“너, 성격이 좀 변한 거 같아.”


아무리 생각해도 예전의 나를 회귀시키던 악랄한 매리너스 악귀가 아니다.

그냥 순진무구 에너지 넘치는 고양이일 뿐.

예전에는 분명 표독함이 이를 데 없었는데 말이다.


“너도 백 살 같지 않당! 같은 거거등!”

“그런 거구나.”


바로 납득이 됐다.

젊게 살면 젊어지는 건 백번 옳은 말이다. 주변 사람이 젊고, 내 신체가 젊으면 실제로 늙지 않더라.

인생의 경험이 쌓이며 약간의 변화가 오긴 하지만, 나라는 사람 자체의 사고방식이나 의욕, 열정 같은 것들은 결국 큰 틀에서 그대로더라고.

그러니 고양이로 살다 보면 고양이처럼 변하는 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뭐랄깡, 나는 그냥 달라질 매리너스를 빨리 보고 싶엉! 그래서 여기가 좋당!”

“나는 지긋지긋한데.”

“사실 너도 기대하잖냥! 결국 여기로 왔잖앙!”

“이놈의 팀에 뭘 기대해? 그냥 오기로 하는 거지.”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계속 먹다 보면 물리는 법이다.

내겐 야구가 그렇다. 나는 여전히 야구를 좋아하지만, 솔직히 물린다. 질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긴 하다.


“멀리서 보니까 희극이지, 가까운 곳에서 보면 참담한 비극이라고. 난 지긋지긋해!”

“그래도 열심히 할 거면성.”


그러나 나는 매번 꾸역꾸역 훈련했고, 시합에 나섰다.

내가 백 살 먹은 노인네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대략 스무 살부터 마흔 살까지의 삶을 반복해서 살았다.

내겐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걸 해낼 젊음이 있었다. 그렇기에 열심히 일할 수 있던 거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기왕 해야 할 일인데, 좋은 점, 즐거운 부분을 되뇌는 게 내게 이득 아니겠는가.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전혀 징징대지 않을 순 없고, 그냥 잠깐씩이라도 즐거운 순간이 찾아오면 그때를 즐기자는 마인드다.


“기왕 일을 맡게 됐으니 어쩔 수 없는 거지. 피할 수 없으니까 즐기는 거야.”


비극이다.

저주다.

지긋지긋하다.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긴 하지만.

사실 나도 누구보다 보고 싶다.

이 빌어먹을 팀이, 못났지만 애는 착한 금쪽이 같은 팀이 한 번쯤은 파란을 일으켜도 좋지 않을까?

그게 된다면 재미도 확실히 있을 거다.


“어쨌든, 내일부턴 본격적으로 움직여 보려고.”

“뭐 할 건뎅?”

“팀의 주전 포수부터 꼬셔야겠지.”


그 성실한 친구라면 이미 캠프에 합류했을 거다.

내일은 그에게 얼굴도장이라도 찍어 놓을 요량이었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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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스프링캠프 (2) +1 24.06.30 254 10 14쪽
» 스프링캠프 (1) 24.06.29 313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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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쇼케이스 (5) 24.06.26 427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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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쇼케이스 (1) 24.06.22 452 10 12쪽
4 양민 학살 (3) 24.06.21 482 9 13쪽
3 양민 학살 (2) 24.06.20 523 12 13쪽
2 양민 학살 (1) +1 24.06.19 570 11 12쪽
1 네 번째 회귀 24.06.18 652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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