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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못하는 야구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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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至言)
작품등록일 :
2024.06.17 18:03
최근연재일 :
2024.06.2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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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0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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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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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양민 학살 (2)

DUMMY

고양이는 결국 우리 집 앞 골목까지 따라왔다.


“야, 우리 집에는 못 들어와.”

“왜냥?”

“우리 어머니 성격이 보통 깔끔한 게 아니시거든.”


털 날리는 짐승을 허락하실 분이 아니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거냥!”

“일단 그 말투부터 어떻게 안 돼?”

“이, 이건 못 고친당······.”


녀석도 몸을 배배 꼬는 게 부끄럽긴 한 모양이다.


“노숙하긴 싫당. 들여보내 줘랑!”


물론 내 알 바는 아니다.


‘쌤통이다!’


4회차까지 나를 고생시킨 벌이다.



#3


다음 날 이른 아침.

나는 휴대폰에 등록된 중학생 시절 은사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팀 훈련에 노쇼를 선언한 상황이지만, 야구선수 김진휘에겐 실전 감각 유지를 위한 단체 훈련이 필요했다.


[여보세요?]

“감독님 안녕하세요! 저 진휘입니다!”

[어? 진휘? 네가 무슨 일이냐?]


함준호 감독님.

지금 시점엔 독립리그 수원 파인 이그스에서 배터리 코치로 계실 거다.

이것 역시 이전 회귀에서 얻은 정보였다.


“아유, 그냥 감독님 잘 지내시나 여쭤보려고 전화했죠.”

[네 성격에? 아부해 봤자 국물 안 떨어지니까 본론이나 얘기해.]


말씀은 저렇게 하셔도, 상당히 반가워하시는 거다.


“하하, 죄송합니다. 그냥 감독님 계신 팀에 일주일가량 신세 좀 져도 괜찮나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네가? 굳이 여기에? 팀 훈련은 어쩌고?]


독립리그.

고교야구보단 당연히 한 차원 수준이 높다.

그러나 딱 그뿐.

결국 국내에서 독립리그의 취지는 단순하다.

각자의 사정으로 프로 2군에서조차 살아남지 못한 선수들이 재기를 노리는 곳.

나처럼 즉시 1군 전력감으로 평가받는 유망주는 거들떠볼 필요조차 없는 세계다.

그러나 현재의 내게는 최선의 선택지였다.

기본적으로 야구선수들에게 겨울은 휴가 기간이다.

그러나 마음껏 쉴 순 없다.

폼을 바꾸거나 새로운 구종을 장착하는 등, 시즌 중에 시도하기 어려운 변화를 추구한다.

독립리그 선수들은 더하다.

이 선수들은 데뷔조차 못 한 경우가 다수고, 시즌 일정도 넉넉했기에 체력을 보충하기 위한 휴식이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니 선수들은 겨울에도 주 3회 이상 모여서 팀 훈련을 진행한다.

고등학교 팀보다 개개인의 수준이 높은 것은 물론, 훈련 강도까지 더 높다.


“팀 훈련이 캔슬돼서요. 좀 복잡한 문제가 있어서.”


아무리 그래도 전 은사님께 현 스승을 상대로 노쇼 중이라고 말하긴 좀 그렇지.

괜찮다.


[우리야 거절할 이유가 없지. 일주일이면 부담스러운 기간도 아니고. 네가 와주면 팀에 긍정적인 자극이 올 테니까. 활기가 돌 거야.]


독립리그 선수들이 젊다곤 해도, 현직 고교생에는 못 비비지.


“알겠습니다.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 이름을 먼저 밝히진 말아 주세요.”

[괜히 관심 쏠리긴 싫은 거지?]

“네.”

[그런데 쉽진 않을 거야. 실력 보면 어차피 이름부터 물어볼 걸?]

“그땐 괜찮아요. 어쩔 수 없기도 하고.”

[그래. 그래. 적당히 내가 몇 년 전에 맡았던 선수라고만 전해 둘게.]

“감사합니다.”


이제 진짜 본론을 꺼낼 차례다.


“그런데 혹시, 오늘 가도 되나요?”

[······ 오지 말라면 안 오나?]

“그건······ 하하.”

[······ 오게.]

“정말 감사합니다!”


일단 임시 직장을 구했다.



#4


하루 사이 꽤 많은 일이 벌어진 모양이다.


“진휘야, 나가기 전에 잠깐 앉아라.”


아버지가 외출 준비 중인 나를 불러 세웠다.

내가 회귀 직후 친 사고를 수습할 때가 온 거다.


“학교에서, 감독님한테 연락이 왔더구나. 감독님한테 대들었다며?”

“어제 팀 훈련에 불참하고 혼자 연습한 것은 사실입니다.”

“왜 그랬니?”


땡땡이를 쳤다고 의심하진 않으신다.

난 꽤 성실한 야구선수였다. 솔직히, 이 무렵에는 정말 야구에 미쳐 있었지.

1회차에서 내 팔이 망가진 사고에는 내 책임도 있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으니까.

아버지가 모르실 리 없다.


“고교야구 훈련이 제게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야구부를 그만둘 생각입니다.”

“······ 그렇구나. 그러면 올해는 대회 안 나갈 생각이니?”

“네.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거나, 어려우면 개인 훈련으로 한 해를 보낼 생각입니다. 이미 제 잠재력은 증명이 됐다고 생각해서요.”


이미 2학년의 신분으로 고교야구를 폭격했다.

당장 메이저리그에서 관심을 가지고, 그 콩고물을 받아먹기 위해 에이전트들이 꼬이는 형국이지 않은가.

아버지께서는 잠시 침묵을 유지하시더니, 숙고 끝에 입을 떼셨다.


“네게 계획이 있다면 간섭하지 않으마.”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삼 고마운 분들이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

이번 생은 마지막이니까, 나를 끝까지 믿고 지지해 주시는 부모님께도 제대로 효도해 드려야겠지.

이전 생까지는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어디 나가려던 거 아니니? 얼른 마저 준비하고 가보렴.”

“네. 다녀오겠습니다!”


매리너스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금의환향하여 부모님도 잘 모시고 사는 게 꿈이었는데······.

그냥 미국에서 자리가 잡히는 대로 극진히 모실 생각이다.

이번은 마지막 회귀니까.


‘신기하네.’


마음가짐이 바뀌니까, 인생의 우선순위 또한 변화가 찾아온 거다.

나는 그 차이가 신선하다고 느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냥,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 오히려 일이 더 잘 풀릴 것 같달까.

목표만 보고 달려 나가는 건 생각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5


나는 수원 광교야구장으로 향했다.

수원 파인 이그스가 연습구장으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했지만, 집과 거리 자체는 멀지 않았다.


“마이 볼!”

“투 아웃!”

“나이스-!”


연습장에서는 선수들이 목소리를 높여 가며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함준호 감독님을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어. 그래. 여기서는 코치니까 호칭 신경 쓰고.”

“아, 네. 코치님.”

“몸 풀고 기다리고 있으면 돼. 말은 다 해놨어. 오늘 청백전이고, 1이닝 정도 던지게 될 거야. 괜찮지?”


오늘 날이 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따뜻하니, 경기를 진행한 모양이다.


“물론이죠. 준비해 놓겠습니다.”

“참 잘 됐어. 팀에 투수가 부족해서 청백전 진행이 어려웠거든. 맨날 5회에서 끊어야 했는데, 오늘은 별일 없으면 7회까지야.”


가벼운 스트레칭과 러닝으로 굳어 있던 몸을 풀고, 구석에 짱박힌 네트에 가볍게 공을 몇 번 던지는 것으로 웜업 과정을 끝냈다.

다른 선수들과 교류는 없었다. 마치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듯했다.

이름을 묻기는커녕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없었다.


“투수 교대!”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이게 이렇게 되네.’


어쩌다 보니 마무리 순번을 맡게 됐다.

내가 속한 청팀이 4:2로 앞서는 가운데, 7회 초 마지막 이닝의 투수로 올라오게 된 거다.

정식 경기라면 이번 이닝을 막는 거로 게임이 끝나는 상황인 셈.


“쟤 누구야?”

“처음 보는데? 우리 팀 맞아?”

“유니폼부터가 다르잖아. 신입인가?”

“너무 호리호리하고 어려 보이는데?”


내겐 야구 말고도 특기가 있다.

바로 밝은 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이상하리만치 귀가 밝았다.

덕분에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가 다 들렸다.

심지어 아군 수비진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놀래주고 싶어지는 분위기네.’


연습 투구는 일부러 설렁설렁 던졌다.


휘릭!

퍼엉!

휘릭!

퍼엉!


“공은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야, 똥볼이야. 저거 작대기 직구라고.”

“긴장해서 전력으로 던진 공 아니야? 큭큭.”


그리고 나는 관종이다.

관심받는 게 좋다.

처음 야구선수의 길을 택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평범한 삶은 영 끌리지가 않았거든,


“플레이 볼!”


초구는 화끈하게 한가운데 포심패스트볼로.


휘릭!

뻐어엉!

“스트라이크!”


내 전력투구에 그라운드의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안 그래도 날씨가 추웠는데, 한파까지 몰아친 듯 고요했다.


휘릭!

부웅!

뻐엉!

“스트라이크 투!”


두 번째 공을 보고서야 현실 감각들이 돌아온 듯, 여기저기 다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쟤 뭐야?”

“괴물 새낀데?”

“누구지? 모르는 얼굴인데.”


얼굴은 모르겠지.

아마 이름 들으면 알 거다.

나는 투구 간격을 최대한 짧게 가져갔다.

교환할 사인도 거의 없는 마당에, 타자가 내 공에 당황한 지금 타이밍을 그냥 버릴 이유 또한 없다.


휘릭!

뻐어엉!

“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루킹 삼진 맛있고.


“야, 방금 구속 몇 나왔어?”

“스피드건 안 들고 있었냐?”

“마지막 공 147 나왔는데요?”

“한겨울에 147? 뭐 하는 괴물이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는 더 맛있다.

나도 좀 신기했다.


'팔 상태가 엄청 좋은데?'


이때의 나는 최고 구속이 딱 150km/h였다.

즉, 이 시기엔 145km/h도 벅차다. 평균 구속 140km/h도 사수하지 못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가뿐히 최고 구속에 근접한 구속이 나왔다.


‘왜지? 특전 덕분인가?’


깊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이유는 나중에 찾기로 하고, 나는 다음 타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번에도 초구는 포심패스트볼.


휘릭!

뻐엉!

“스트라이크!”


갑자기 호기심이 든다.


‘변화구도 한 번 섞어볼까?’


예정에 없었다.

여기서 완벽하게 던진다고 선수로서의 내 가치가 오르지는 않는다.

순수하게 내 몸 관리와 폼 유지를 위해서 참여한 훈련.

굳이 부상 위험이 오르는 변화구를 선보일 이유가 없다.

그런데 지금은 고민이 됐다.


‘구속이 잘 나온 것도 그렇고. 특전 효과를 살펴 보려면 한 번 던져봐야겠어.’


겨울에 변화구 몇 번 던진다고 고장 날 팔이면, 투수는 때려치우는 게 맞다.

몸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은 지금이 되레 기회다.

약간의 부하를 주고 몸의 반응을 살피기에 이보다 좋은 상황이 있겠는가?

나는 눈치껏 검지와 중지를 펴 사인을 보냈다.

협의된 사인은 없지만, 대충 두 번째 구질을 던진다는 의미는 통했으리라.


‘스플리터면 적당하겠지?’


제스처로 낮은 곳에 던져달라는 사인이 왔고,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왼팔을 휘둘렀다.


휘릭!

부우웅!


뚝 떨어지는 공에 타자의 배트는 당연히 헛돌았고.

포수의 미트 역시 허탕을 쳤다.


“스트라이크!”


주자도 없고, 낫아웃 상황도 아닌지라 포수의 알까기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그쳤다.


“캬- 볼 좋네.”

“와씨, 방금 변화구? 뭐야?”

“포크볼인가?”

“저렇게 빠른 포크볼이 세상에 어디 있어? 무슨 메이저리거도 아니고.”

“그럼 스플리터?”

“저 공이 뭔지는 둘째치고, 코스가 죽이는데? 저 궤적에 저 코스면 그냥 못 쳐.”


잘 들어가서 다행이다.


‘운이 좋네.’


사실, 현재 내 기량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

망가져 있던 스윙과 같은 원리다.

신체 능력과 내 정신에 배인 습관의 불일치. 인지부조화가 나를 가로막는 벽이다.

즉, 변화구든 빠른 공이든 컨트롤에 얼마든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실제로 직전 4회차 때처럼 원하는 코스로 딱딱 들어가지 않기도 했고.

다만 본래 노린 코스는 아닐지언정, 충분히 치명적이었다.

타자의 표정을 보아하니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두 번째 승부도 사실상 끝난 셈이다.


휘릭!

뻐엉!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두 번째 탈삼진!

나는 청팀 벤치를 흘끗 살펴보았다.

예상대로 난리가 났다.

벤치에 있던 선수들이 함 감독님을 둘러싸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나에 대해 캐묻고 있는 모양새다.

나는 이내 들어선 세 번째 타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덩치가 컸다.


‘지금 타순이 2번이던가?’


저 덩치에 2번 타순이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선수가 수원 파인 이그스의 타격 에이스다.

내 목표를 되새기며 다시 한번 전력투구를 보여주기에 최선의 상대란 뜻이다.


휘릭-

부웅!

뻐엉!

“스윙! 스트라이크!”


타자가 스윙 이후 무게중심을 잠깐 잃었다.

힘이 지나치게 들어간 모양인데, 조금 실망이었다.

선풍기 타입은 아닌 거 같았는데.


휘릭!

따악!


오.

이번에는 타자가 공을 건드리는 데 성공했다.

타이밍은 어떻게 맞췄는데, 코스가 틀렸다.

배트는 공의 밑동을 건드렸고, 타구가 뒷그물을 강하게 때리며 파울이 선언되었다.

나는 곧바로 다시 검지와 중지를 펴 V자를 내보였다.

방금 즉석에서 짜낸 변화구 사인이었다.


‘어지럽겠지?’


던져줄 생각은 없다.

물론 스플리터도 못 치겠지만, 승부에서 정직하게 구는 나쁜 습관은 지워버린 지 오래거든.


휘릭!

뻐어엉!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 구 삼진 세 개로 이닝이 끝났다.

세 번 다 루킹 삼진이었다.

그제야 우리 팀 수비진이 내게 말을 걸어줬다.


“나이스 피처!”

“굳-!”


물론 가벼운 칭찬의 말뿐이긴 했지만 말이다.

처음 등장 때와는 모두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상대 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저, 저거 뭐 하는 새끼야?”

“쟤 입단 테스트 보는 거 아니었어? 저런 애가 우리 팀에 들어와?”

“함 코치가 미친놈을 데려왔구먼.”

“얘는 프로에 있을 놈 아니가? 와 여기 있노?”

“대체 누구야? 내가 이런 선수를 모를 리 없는데.”


덕분에 잘 놀다 갑니다.

실전 감각 유지에 직빵이었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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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입단 기자회견 (1) 24.06.27 279 4 14쪽
9 쇼케이스 (5) 24.06.26 31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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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쇼케이스 (3) 24.06.24 301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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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쇼케이스 (1) 24.06.22 347 7 12쪽
4 양민 학살 (3) 24.06.21 374 7 13쪽
» 양민 학살 (2) 24.06.20 403 7 13쪽
2 양민 학살 (1) +1 24.06.19 437 8 12쪽
1 네 번째 회귀 24.06.18 509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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