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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못하는 야구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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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至言)
작품등록일 :
2024.06.1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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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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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양민 학살 (1)

DUMMY

#1


부모님과 함께 집 근처 카페로 향했다.

배 나온 아저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 김진휘 선수! 반갑습니다. 박상철 에이전트입니다!”


늘 느끼는 건데, 이 아저씨 참 쾌활하고 싹싹하다.


“언제부터 기다리셨어요? 괜히 무리해서 시간 빼신 거 아니죠?”

“지금이 주말이긴 하지만요! 원래 저희 업계가 그런 거 없기로 유명합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진휘 선수 계약 건이잖아요? 동남아 휴가 중이더라도 귀국했을 겁니다!”

“말씀이라도 고맙네요.”


가볍게 악수하고 마주 앉은 뒤, 곧바로 일 이야기가 시작됐다.


“전에도 안내 드렸지만, 저희 계약 조건은······.”


알 필요 없는 내용이다.

문제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지라.

회사가 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내가 버는 돈을 얼마나 떼 갈지 정해져 있는 계약서.

나는 집중하는 척 그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한 번씩 끄덕였다.


“계약 건은 여기까지입니다!”

“예.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팀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저희와 계약을 맺으셨다는 건······ 역시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셨다는 뜻이지요?”

“맞아요. 지금 시기에 정하면 잡음도 없을 거고요.”


괜히 멋모르는 팀의 1 지명 선택권을 날릴 순 없지.

한국 야구 자체가 나와 관련되진 않을 거다. 다만 한국 내의 야구팬에게 내 이미지가 깎일 여지가 있다.

도의적인 룰은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현재 김진휘 선수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에이전트의 설명이 시작됐다.


“우선 가장 일반적인 루트입니다. 지명받고 KBO 팀과 계약하는 길이죠! 이 경우 저희의 계약은 취소됩니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그다음 고려할 만한 행선지는 미국입니다! 국제 아마추어 계약을 맺고 성인이 되면 루키 리그부터 시작하는 거죠! 팀과 선수가 원한다면 커리어 시작일을 앞당길 수도 있습니다!”


난 무조건 이 선택지를 고를 예정이다.


“마지막 선택지는 일본! 호크스 같은 팀은 4군까지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메이저리그 못지않은 선수 육성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선수님의 성장을 고려했을 때 나쁜 선택지는 아니거든요! 미국보다 적응이 쉽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난 미래를 알기에, 박상철의 능력이 새삼 달리 보였다.

일본은 정말 좋은 선택지다. 이 시기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뿐.

매번 그와 계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이 상황에선 내 선택지가 정해져 있긴 하지만.


“저는 미국에 도전하고 싶어요. 이미 영어 회화에 문제없거든요.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거예요.”


딱히 믿는 거 같진 않는 기색이다.


“그렇군요! 혹시 생각해 둔 팀이라도 있으십니까?”


미국은 리스크가 큰 선택지다. 사실상 세 개 중 현시점 가장 추천하기 어려운 루트다.

물론 일반적인 상황에 그렇다는 거고.

이미 메이저리거로 70년가량을 보낸 내 기준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가능성은 다 열어둬야겠죠? 그래야 에이전트님도 일하기 편하실 거고.”

“아유! 두말하면 잔소립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저는 너무 좋죠!”

“그래도 원하는 목적지가 있긴 해요.”

“어딘가요? 뉴욕 양키스? LA 다저스? 피츠버그나 블루제이스도 괜찮고요! 아마 다들 김진휘 선수에게 관심이 있을 겁니다.”

“매리너스요.”


박상철 에이전트의 얼빠진 표정은 좀처럼 보기 쉽지 않다.

그래서 매번 회귀 때마다 이렇게 놀래주곤 했다.


“아! 매리······ 네? 매리너스?”

“네. 시애틀 매리너스로 가고 싶습니다.”

“하하! 네. 매리너스. 그렇군요. 매리너스······.”


큭큭. 고장 났네.

매리너스.

예상 못 하는 게 당연하다.

물론 좋은 팀이다. 메이저리그 30개 팀은 모두 뛰어난 설비를 갖췄고, 많은 돈을 굴려 최선의 라인업을 구성하고자 애쓴다.

그 팀이 메이저리그 30개 팀 중 가장 지위가 낮다고 한들, 다른 팀 하부 리그에서 썩는 것보단 훨씬 낫다.

다만 매리너스는 그 낮은 지위를 자랑하는 팀이다.

이유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나쁜 성적.

팀을 골라 갈 수 있는 입장에선, 최우선 목표로 둘 일이 없는 팀.

그게 매리너스다.

이걸 어떻게 예상하겠어.

고교 특급 유망주의 입에서 언급될 이유가 전혀 없거든.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 질문도 네 번째 받는다.

예전에는 그럴싸한 대답을 내놓기 위해 꽤 고민했는데.


“매리너스를 우승시켜 보려고요.”

“패기가 좋네요! 마음에 듭니다!”


대충 솔직하게 넘어가도 되는 거더라.

어차피 무어라 말하든 진심으로 믿어주진 않더라고.



#2


이후로도 중요한 이야기를 몇 가지 나누긴 했다.

그러나 내용은 별거 없었다. 전부 에이전트한테 맡기는 형국이었다.

아버지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고 대화를 지켜보기만 하셨다.

애초에 자식에게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오늘도 그냥 보호자 신분으로 계약에 꼭 필요해서 자리해 주신 거다.

나는 모든 일을 에이전트에 위임해 버렸다.

믿고 맡겨도 되는 사람이다.


‘어쨌든, 또 한 건 끝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오후 훈련 메뉴를 고민하고 있었다.

당장 몸을 빡세게 만들어 갈 생각은 없지만, 운동은 결국 꾸준함이다.

시즌을 코앞에 두고 매 급히 몸을 만들다 보면, 선수 생활 말미에 너무 힘들어지더라고.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기반을 다져 놔야 했다.


‘옆 헬스장에서 가벼운 웨이트? 아니면, 상호 녀석 불러서 공이나 좀 던져도 좋고.’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배트나 다시 휘둘러볼까?’


이전 생엔 타석에 거의 서지 않았으니, 이것도 괜찮다 싶은 찰나.


“냐옹!”


고양이 한 마리가 내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이기에 순간 발걸음이 멈췄다.

털색은 새까만데 다른 검은 고양이들과는 좀 달랐다.

뭐랄까, 좀 더 고급진 색이라고 해야 하나. 윤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


‘귀엽다!’


하지만 이내 시선을 거뒀다.

나는 바쁜 사람이고, 귀찮은 건 질색이다.

귀여운 모습은 화면으로 보자는 주의였다.

나는 큰 보폭으로 폴짝 고양이를 넘어갔다.


‘오늘은 가볍게 삼백 번만 휘두르고 자야겠다.’


삼백 번이면 폼 점검하기에 적당한 수치다.

나는 고등학생 때 자주 이용하던 레슨장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오! 우리 레슨장의 보배 아니야? 어서 들어와라!”

“배트 좀 휘두르려고요.”


레슨장 주인아저씨가 반갑게 맞이해 준다.

사실 이 아저씨에 대한 기억이 많진 않다. 솔직히 이름도 헷갈린다.

고등학교 시절에 신세 참 많이 졌는데.

이번 생엔 그동안 받은 도움을 좀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이니까.


“폼 좀 같이 봐도 될까?”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카메라를 설치하고 몸을 푼 뒤 본격적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부웅!

부웅!


따로 공을 치진 않았다.

백 번 휘두르고 녹화된 영상을 확인했다.


‘역시 맛이 가 있네.’


야구는 결국 밸런스다.

피칭과 베팅 모두에 해당하는 말이다.

내 신체 능력을 정확히 인지하고, 무게중심을 알맞게 이동하여야 정확한 회전운동이 이루어진다.

그런 점에서 내 스윙은 100점 만점에 50점도 안 됐다.

2, 3회차의 현역 시절 퍼포먼스를 끌어내려고 무리하는 꼴이라 해야 하나.

신체 능력이 한창 정점일 시기에, 배트스피드 특전 보상까지 적용된 상태의 스윙은 지금의 나와 맞지 않는다.


“스윙이 좀 많이 달라졌는데? 몸이 좀 안 좋니?”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 모양이다.

달라진 건 회귀 때문이다.

신체 능력과 내가 가진 습관이 부조화를 이루며 비효율적인 스윙이 나왔다. 이걸 쓸 만한 스윙으로 바꾸는 게 내 1차 목표다.


“어떻게 바꾸는 게 나을까요?”


매리너스와 계약하게 되면, 그 계약금으로 투타 각각 코디네이터를 고용할 생각이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혼자 힘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 과정에 동네 레슨장 주인아저씨의 아이디어라도 쓸 만하다면 받아들여야겠지.


“스윙 궤적은 참 이상적인데 말이야, 아직 스피드가 못 따라오네. 최근에 폼 바꾼 거지?”


오호.

이 아저씨 보는 눈이 상당하다.


“이 폼은 네게 좀 이른 거 같아.”


결론도 나와 같았다.

다만 아이디어를 제공받진 못했다.

결국 내가 떠올린 방법을 적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좀 느낌을 바꿔 볼게요.”


다시 백 번의 스윙이 시작되었다.


부웅!

부웅!


확실히 배트가 전보다 잘 돌아갔다.

요령은 별거 없었다.

스윙의 역동성을 줄이는 동시에 무릎과 발목 관절을 좀 더 활용해 봤다.

단순하게, 회전운동에서 상체보다 하체의 비중을 늘렸다고 보면 된다.

일반적으로 택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부상 위험이 오를 수 있는 방식이거든.

스윙 안정성도 떨어지고.

하지만 내겐 지난 인생의 데이터로 하체에 이 정도 부하는 거뜬하다는 정보가 있다.

게다가 특전이 제대로 적용된다면 더더욱 걱정할 바가 없다.

스윙 안정성도 마찬가지다. 당장 피지컬이 부족해서 예전 폼을 소화하지 못한 것이니, 열심히 몸을 단련하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였다.

그렇게 백 번의 추가 스윙이 끝나고.


“어땠나요?”


다시 한번 녹화된 영상을 확인해 봤다.

이전보다 확실히 나아졌다.


“와······.”

“예?”

“이래서 천재, 천재 하는구나······.”


엄연히 이곳은 레슨장.

주인아저씨도 과거에는 어엿한 프로야구 선수였다.

지도자로서 프로 레벨을 가르친 적이 없을 뿐, 야구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부한 사람이다. 이미 수많은 일반 회원들에게 야구를 알려 주고 있기도 하고.


“누가 뭐 알려 주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감을 빨리 잡아? 아까보다 훨씬 좋다!”


아.

남들이 보기엔 그래 보일 수 있겠다.

나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메이저리그 70년 차 베테랑이다.

그 긴 기간 쌓인 요령이 만 17세에 발휘된다면, 세기의 천재처럼 보여도 이상할 게 없다.


“하하······.”

“넌 내가 뭘 알려줄 수준이 아니야. 그냥 열심히만 해. 전부터 느꼈는데, 넌 왠지 큰 선수가 될 거 같아. 그러니까······.”


잔소리 타임이 시작됐다.

이 레퍼토리는 과거로 돌아갈 때마다 매번 듣던 소리다.

그것도 매일같이. 약 이십 년 만에 다시 듣는 거지만 여전히 귀가 아팠다.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들어주었다.


“감사합니다. 마저 백 회 채우고 들어가 볼게요.”

“그래. 겨울에 무리하다가 다치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어.”


부웅!

부웅!


배트를 계속해서 돌렸다.


‘오케이, 오늘은 여기까지.’


고작 삼백 번의 스윙이지만, 그사이 17세 김진휘의 기량은 그 어느 때보다 폭발적으로 늘었을 터였다.

회귀 직후는 성장이 빨라서 참 좋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레슨장 문을 나서니 시선이 하나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응?”


아까 골목길에서 만났던 고양이가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 그 녀석인가?”


색 때문에 알아봤다.

저런 색을 가진 고양이가 길거리에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신기한 놈이네.”


짧은 감상을 뒤로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뭐야, 얘 왜 따라와?”


녀석이 내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걸음걸이도 귀엽다. 도도도.

그러면서도 우아한 느낌이 드는 게, 평소 지나가며 보던 길고양이들과는 뭔가 좀 달랐다.

그러더니 기어코.


“얼씨구?”


폴짝 뛰어 야구가방에 오르더니, 한 번 더 뛰어올라 내 어깨에 올라타는 게 아닌가.

그제야 알아차렸다.


“잠깐만, 너 혹시!”


이거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다.


“이제 눈치챘냥?”

“마, 말도 해?”


고양이 녀석이 앞다리를 들어 내 볼을 툭 건드린다.

어이가 없었다.

같이 내려온다는 게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이런 거였어?

상상했던 모습과는 조금 많이 달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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