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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못하는 야구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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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至言)
작품등록일 :
2024.06.1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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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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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양민 학살 (3)

DUMMY

단 아홉 번의 투구로 이루어진 실전 피칭.

내 상태를 얼추 알아보기엔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래도 빠따보단 낫네.’


우선 20년을 통째로 쉬었던 공격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내 전성기에 비하면 형편없지만, 국내를 기준으로는 지금 상태로도 적수가 몇 없을 것 같았다.


‘컨트롤이 어느 정도 돼.’


코스를 정할 수 있다.

높게, 낮게, 안쪽, 혹은 바깥쪽.

코너웍까지는 안 되지만, 이 네 개를 구분해서 던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볼 컨트롤 능력이다.

심지어 볼과 스트라이크를 구분하는 것도 됐다. 빠른 공은.


‘변화구는 아직 좀 더 던져봐야겠어.’


시간은 많다.

이 팀에 최소 일주일은 신세를 질 테니까.

그동안 천천히 알아보면 될 일이다.

또한 이보다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어깨 상태.’


고등학교 2학년.

그러나 나는 수원고등학교의 에이스로 모든 대회에 참가했다.

나갈 수 있는 경기는 전부 나갔다.

그리고 던질 수 있는 한계 투구수까지 전부 던졌다.

내 팔꿈치 컨디션은 이미 나빠질 대로 나빠져 있었다.

검진을 받는다면 의사는 휴식을 권고할 터였다. 최소한 봄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난 2, 3, 4회차를 거치며 검사를 받아봐서 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왜 괜찮지?’


선수 경력이 100년에 가까워지다 보면 신비로운 능력이 생긴다.

내 팔의 의학적인 상태도 짐작할 수 있다고 해야 하나?

100% 맞는 건 아닌데, 대충 ‘이 정도 같다’라고 생각하고 검진을 받으면 거의 다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지금 내 팔에 대한 진단을 내린 결과, 예상과 달리 너무나도 쌩쌩했다.

금강불괴의 효능이 얼마나 될지는 모른다.


‘고양이 녀석에게 물어봐야 제대로 알 수 있겠지만.’


내 감각과 추측이 맞다면.

아무래도 이미 내 팔은 완전히 회복되었고, 이 특전은 사기가 맞는 거 같다.


“게임 셋!”


내가 7회 초를 틀어막으면서 청팀의 승리가 확정되었지만, 이번 청백전은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하기 위한 연습 경기.

7회 말까지 정상적으로 진행되었기에 한 박자 늦게 끝났다.

경기 종료와 동시에 나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다.

정리 운동을 하면서 누군가가 계속 말을 걸어왔다.


“너 대체 누구야?”

“어디 학교 출신이냐?”

“지금 몇 살이니?”


어차피 며칠간은 신세를 질 팀이기에, 나는 하나하나 대답해 주었다.

어차피 긴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수원고 2학년 김진휘입니다.”


이거면 충분했다.


“김진휘? 수원고 잠룡 김진휘?”


와.

이 시절의 나한테 저런 낯부끄러운 별명이 있었어?


“알지! 모를 수가 없어!”

“어쩐지 보통이 아닌 거 같더라.”


아무튼 내 존재도 모르던 사람은 거의 없는 듯했다.

다들 고교야구에 최소한의 관심은 두고 산다는 뜻이다.

각자 훈련이 바쁘니 경기를 챙겨보진 못해도, 누가 제일 잘한다더라- 정도는 소문으로라도 접할 수밖에 없다.

그때 누군가가 색다른 질문을 해 왔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왔어?”

“어? 그러게? 고등학생이 독립리그에 와서 뭐하게?”

“나도 대학생이거나 최근에 쫓겨난 육성선수일 줄 알았는데.”


그렇게 늙어 보였나?

이건 좀 뼈아프다.


“애초에 고교 졸업자가 아니면 팀에 못 들어와. 리그 규정에 미성년자는 출전 금지거든.”


이전 회차의 나는 이런 상황에서 관종기를 억누르고 적당히 대답해 왔다.

그러나 이번 생은 좀 나답게 살고 싶었다.


“미국 건너가기 전에 훈련할 곳이 없어서요, 함 코치님께 부탁드렸어요.”

“미국? 미이구욱?”

“우리랑 노는 물이 다른 놈이었구나.”

“KBO 패스하고 바로 미국 도전이가?”

“네, 아마 그렇게 될 거 같아요. 아 그리고 지금 이야기는······.”


나는 검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다 댔다.


“당분간 비밀입니다. 아시죠?”


긴 프로 생활이 이럴 때 큰 도움이 된다.

야구선수들은 대개 단순하다.

작은 비밀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빠르게 친해질 수 있다.

어차피 잠깐 머물다 갈 건데, 친해져서 뭐하냐고?

그 잠깐 머무는 시간이 중요하니까, 오히려 빠르게 친해져야 한다.

당장의 나는 실력 말곤 아무것도 없는 처지다.

대중의 명성, 인맥, 돈.

그 어떤 것도 가지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의 실전 훈련은 지금의 내게 최고의 선택지였다.

이 팀 선수들이 내 성장의 발판이란 말이다.

학교라는 선택지는 고려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거긴 감독부터 문제고, 팀원들도 절반 이상이 맛탱이가 가 있거든.

나를 시기 질투하는 놈.

야구를 우습게 보는 놈.

그냥 실력이 처참한 놈.

외에도 다양한 빌런이 들러붙은 곳이다.

나와 합을 맞추던 포수, 상호 녀석은 빼고.


‘그러고 보니 상호 녀석도 챙겨야 하는데.’


은퇴한 뒤 베팅센터는 절대 차리지 말라고 전해줘야 한다.


“자- 여기까지!”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도 다들 고생 많았고, 먼저 들어갈 사람들은 일찍 가서 쉬도록 해.”


성공적으로 하루를 때운 나는, 연습장을 나서기 전 함 코치님을 찾아갔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수고했어. 팀 분위기는 좀 어때?”

“잠깐 스쳐 갈 외인인데도 격하게 환영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다들 너무 친절하시고 좋았어요.”

“하하- 그거 다 네 피칭 보고 반해서 그래. 특히 투수 놈들은 눈이 뒤집혔을걸?”


한국 야구계는 선후배 문화가 깍듯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독립리그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여긴 20대 초반의 선수들이 대다수인지라, 그것만으로 선후배 관념이 좀 희미하기도 하고, 뭐랄까······.

다들 너무 간절한 탓인지 철저한 실력지상주의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잘하는 놈이 왕인 세계다.

선배로서의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보다 잘하는 녀석과 친하게 지내며 좋은 점을 배우는 게 미덕인 느낌?


“막 스플리터 그립 물어보고 난리 나지 않든?”

“······ 아직은요.”


조만간 질문 공세를 받게 되리란 예감이 강하게 들긴 했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다.

나는 여기 사람들에게 내 노하우를 전수하고.

그 대가로 회비조차 내지 않으며 여기 시설과 팀원을 이용(?)하고.

서로 윈윈이다.


“아, 맞다. 코치님.”

“응? 또 뭐 부탁하려고.”

“아이, 제가 코치님 부를 때마다 부탁하는 파렴치인가요?”

“그렇진 않지. 하지만 적어도 방금처럼 뭐 까먹고 있었다는 듯이 부르면 전부 무리한 부탁이었어.”


읽히고 말았다.

참 신기한 일이다.

나이 많은 사람은 당해낼 수가 없다. 도통 속을 모르겠단 말이지.

내가 회귀를 거듭하며 오래 살긴 했지만, 오십 대를 넘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싶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다름이 아니라, 저랑 배터리였던 수원고 포수 녀석도 가끔 데리고 오고 싶어서요.”

“······.”

“안 되나요?”

“아이고 머리야-.”


연습 시설만 놓고 보면 수원고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훈련의 질은 단언컨대 여기가 낫다.

여기 선수들은 대부분 수원고보다 한층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게다가 모두가 프로 데뷔에 진심이다. 그 열정을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열일곱 살 포수 유망주에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중고교 시절 내내 나의 공을 받아준 친구에게 이 정도 선물은 해줘야지.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거 같다.


“마음 편히 공 던지려고 부르는 거지? 그렇게 해.”

“네. 그 친구는 수원고 일정도 있으니까 매일 오진 않을 거예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우리 김 나으리 원하는 대로 다- 하십시오.”


코치님의 볼멘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내가 제자를 잘못 키웠어. 제자는 무슨. 제자를 빙자한 상전이지. 상전.”


말씀은 저렇게 하셔도 참 좋은 분이다.

선수와 스스럼없이 지내면서도 카리스마를 잃지 않으신다.

그리고 선수들이 뭘 잘할 수 있는지 잘 찾아서 알려주는 일엔 아주 도가 트셨다.

중학생 시절의 내가 어떤 공을 던질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던 것도 함 코치님 덕분이었다.

그리고 2회차 들어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도 하나 있다.

함준호 감독은 지금 시점으로부터 약 15년 뒤,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팀 감독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심지어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내가 이끌던 시애틀 매리너스를 격추시킨 적도 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던 셈이다.



#6


집으로 돌아오자 충격적인 일이 벌어져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아들, 왔니?”

“어머니, 지금 품에 안고 계신 거······.”

“아, 얘? 집 마당에서 자꾸 낑낑대길래 안쓰러워서 데리고 왔어. 애가 참 얌전하고 순하더구나.”


이거 실환가.

우리 엄마가 고양이를 집구석에 들였다고?

결벽증 말기라고 해도 믿을 우리 어머니가?

고양이 녀석은 어머니 품에 안긴 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 귀엽네요.”

“그렇지? 얌전한 데다 말귀도 잘 알아먹으니 괜찮더구나. 내일 병원에 가서 검진도 받고, 얘 사료도 좀 사 와야겠어.”


저 녀석이 얌전하고 순할 리가 없는데.

쟤 고양이 아니에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붉은 진실을 굳이 밝히지 않기로 했다.

생긴 게 귀엽긴 하니까.

나는 서둘러 하루를 마무리했다.

적당히 씻고, 적당히 누워서 휴식을 취하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띠리리링!


[김상호]


발신자 이름을 보고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야! 너 무슨 일이냐?]

“상호 하이.”

[하이? 하아이이? 연습은 안 나와, 감독 새끼는 아무 말 없어. 대체 뭐 어떻게 된 거야?]


그래.

저 팀에서 날 걱정할 사람은 얘밖에 없다.

참 파렴치한 팀이다.

내가 팔을 갈아 넣었는데, 에이스 대접도 제대로 안 해주고.

역시 우리 학교 팀은 거르는 게 맞다.

한때는 명문이었고, 지금도 명문 소리를 듣지만······ 현 세대의 현 체제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나 같은 유망주를 죽였으니까. 실제로 이후 몰락의 길을 걷기도 하고.


“야구 때려치우려고.”

[갑자기 뭔 미친 소리야. 뭐 잘못 먹었냐?]

“뻥이야. 그냥 좀 쉬고 싶어서 안 나가고 있어.”


이후로도 시답잖은 잡담이 오갔다.

나는 대화를 나누다가 넌지시 질문을 건넸다.


“넌 학교에 언제 언제 가?”

[응? 나는 거의 매일 가지. 내 훈련은 쉬더라도 투수들 공 받아줘야 해서.]

“고생이 많네.”

[고교야구는 어쩔 수 없어. 불펜 포수를 따로 두기 어렵잖아.]

“그거 격일로 못 줄여?”

[줄이려면 줄일 순 있는데······ 감독님한테 좋은 소리는 못 듣지 않을까?]

“그러면 줄이고 나랑 다른 데 좀 가자.”


김상호.

성실하고 괜찮은 포수다.

다만 능력에는 의문부호가 붙어 있긴 하다.

수비력은 확실히 검증되었는데, 공격력이 문제다.

타격을 정말 못한다.

고등학교 레벨에서도 평균 이하의 공격력으로 주전에 발탁되지 못한 게임이 많았다.

내 전담 포수로서 완벽에 가까운 무실점 기록을 이어가지 않았다면, 사실 그 자리조차 보전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재능이 없는 놈은 아닌데.’


신체 능력은 좋다.

요령이 부족한 놈이다.

실제로 이런 극악의 공격력으로도 프로 무대에서 아득바득 살아남던 녀석이다.

최대 커리어라고 해 봤자, KBO 리그 1군의 백업 포수 정도가 전부이지만 말이다.

주전으로 나선 기간이 커리어 내내 반년도 채 되지 않는다.


[음······.]

“빼지 말고 와라. 끊을게.”

[야, 야! 아직 안 정했어. 나 안 간다?]


나는 가차 없이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올 거다. 다른 수원고 투수 공 받다 보면 내가 보고 싶어질 테니까.

어쨌든 나는 이 녀석의 재능도 한 번 끌어내 볼 생각이다.

되면 좋고.

아님 말고.

딱 이 마인드로.

어린 시절, 나는 야구선수로 성장하며 이 녀석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 덩치가 한참 왜소하던 때, 불량배도 퇴치해 주고.

한참 공 던지는 일에 재미 붙였을 때, 표적을 자처했다. 덕분에 원 없이 포수에게 공을 던질 수 있었지.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마운 일이야. 자기도 하고 싶은 게 있었을 텐데.’


공 받는 게 좋을 수도 있지 않냐고?

초등학생 땐 그런 거 없다.

던지고 치는 게 최고다.

그런데 녀석은 늘 내 포수를 자처했다. 과장 좀 보태서 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오지랖이 너무 넓어졌나?’


뭐, 좀 넓으면 어때.

얘 잘되는 거 보고 싶은 내가 이기심을 좀 부리겠다는데.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선수들과 같은 공간에서 훈련하고, 또 거기서 내 공까지 받는다?

이중 삼중으로 걸린 경험치 버프와 다를 거 없다.


‘어우, 근질근질해.’


빨리 실전 투구를 선보이고 싶다.

내 잘난 피칭을 세상이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계약금 협상이라는 지루한 과정이 남아 있다.

그래도 내가 처리해야 할 급한 일은 거의 다 처리한 상황.

당분간은 에이전트 아저씨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훈련에 매진하면 된다. 이때를 틈타 더욱 완벽한 기량으로 나 자신을 갈고닦아야겠지.

겸사겸사 새 특전에 대한 연구만 곁들여 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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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민 학살 (3) 24.06.21 375 7 13쪽
3 양민 학살 (2) 24.06.20 404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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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 번째 회귀 24.06.18 510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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