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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못하는 야구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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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至言)
작품등록일 :
2024.06.17 18:03
최근연재일 :
2024.06.2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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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7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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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입단 기자회견 (1)

DUMMY

#1


내 계약이 확정되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매리너스의 보너스 풀을 탈탈 털어먹었다.

총 350만 달러.

내가 받게 될 계약금의 액수였다.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사방에서 난리가 났다.


[2023 드래프트 지명 1순위 김진휘, 시애틀 매리너스로. 계약금은 ‘약 50억 원’]

[한국인 역대 최대 규모 아마추어 계약! 김진휘는 어떤 선수길래?]

[시애틀 매리너스의 유니폼을 입게 된 김진휘.]


보통 계약 관련 논의가 시작되면 이야기가 새어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온갖 찌라시가 돌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갑자기 일이 터졌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언론이 알아챌 틈조차 없었다.

모든 일이 워낙 순식간에 벌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 질 낮은 찌라시가 튀어나왔다.

다만 전부 추측성 보도에 불과했다.

사실로 적힌 부분은 메이저리그 팀에서도 김진휘를 지켜보고 있고, 드래프트 전에 계약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정도가 전부였으며 그 외 내용은 전부 뇌피셜이었다.

심지어 기사가 별다른 관심을 얻지도 못했다. 야구팬들이 김진휘라는 선수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 잘한다고 기대를 모았다가 프로에서 뽀록 난 선수가 어디 한둘이었어야지.


‘분위기가 정말 확 바뀌었네.’


그런데 오피셜이 딱 떴다.

김진휘가 매리너스 유니폼을 입게 됐다.

물론 바로 메이저리그 데뷔를 할 순 없겠지만, 계약 규모가 역대 최대라는 점은 사람들의 관심사를 끌어내기에 차고 넘치는 소재였다.


“김진휘 선수님! 좋은 아침입니다!”


계약이 성사된 다음 날. 박상철 에이전트가 칼 같이 찾아왔다.

어제는 계약 때문에 만나고. 오늘도 처리할 문제가 있다나.


“네. 아침 식사는 하셨어요?”

“못했습니다! 조금 이따 같이 점심 드시죠!”

“저야 좋죠. 공짜 밥은 항상 옳다더라고요.”

“그럼요! 제대로 배우셨군요! 오늘 뵙자고 한 이유는 어제도 이야기한 기자회견 때문입니다!”


용건은 심플했다.

역대 최고 계약금.

이 수식어가 주는 어그로가 기대 이상이었고, 그 관심도는 그냥 날리기에 너무나도 아까웠다.

프로스포츠는 엄연한 팬 산업.

야구선수는 팬의 관심으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물론 관심을 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력으로 증명하는 것이지만, 이미지 메이킹을 안 할 이유는 없었다.

어제 계약 후 돌아가는 길에서는 내가 회의적인 대답을 내놨다.


‘실전 경기 한 번 보여주지 않은 선수가 무슨 기자회견이야?’


이런 마음에서다.

나는 매번 실전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그 이후에 대중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이번 회차는 달랐다.


“확실히 관심이 어마어마하던데요?”


그만큼 큰 금액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 유망주를 원할 때는, 보통 상한선을 200만 달러로 잡는다. 그렇게만 해도 25억 원을 훌쩍 넘기는 액수고, 한국 팀과의 경쟁을 완전히 따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금액은 50억 원에 육박한다.

이 상황이 시사하는 바는 단 하나.

메이저리그 팀 간에 경쟁이 붙었다는 뜻이다.

그 포인트를 놓칠 기자들이 아니었고, 덕분에 온갖 자극적인 기사가 대한민국 포털 메인페이지에 실렸다.

하루아침에 야구팬 중 김진휘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된 거다.


“그렇습니다! 따라서 기자회견을 안 할 이유도 없어졌죠!”


원래는 선택 사항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필수가 됐다.


“아니, 제가 말을 잘못했습니다! 해야만 합니다! 매리너스 측에서 요청했기 때문이죠!”


이걸 어떻게 거절해.

입단 기자회견을 열자는데.


“매리너스의 요청이면 뺄 순 없죠. 그런데 하루 사이에 준비가 되긴 한대요?”

“이미 미국에서도 보도가 나자마자 난리가 났답니다! 관계자들이 저녁 비행기를 타고 들어온다네요!”


그러니까, 나 하나 때문에 미국 본사 직원 다수가 갑작스러운 출장을 온다는 거잖아?

그거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내가 정말 열일곱 살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야구선수로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보낸 선수다. 팀이 돌아가는 생리도 나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기준에서 매리너스의 행보는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한국에서 한 번. 그리고 그대로 돌아가서 미국 현지에서 한 번. 일단 찍고 보잡니다! 추진력이 상당하더군요!”


그래.

내가 매리너스를 매번 욕하면서도 미워할 순 없는 이유다.

이 친구들이 좀 모자라고 못나서 그렇지, 야구에 진심이 아니진 않다.

언제나 승리를 열망하고 있다.

매번 열정적으로 개혁을 외치고, 또 야심 찬 마음으로 시즌을 준비하지만······ 늘 결과가 나빴다.


‘그렇지. 지금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것도 사실 좋은 일이 아니야.’


내 영입은 매리너스 입장에서 작은 뉴스거리가 아니긴 하다. 그러나 이렇게 잔치를 벌일 일도 아니었다.

그냥 매년 있는, 수십 명 들여오는 신인 중 한 명일 뿐이다.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다.

마이너리그 환경이 원래 그렇다.

내가 정말 생 신인이라고 생각해 봐라. 이 상황 자체가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선수 망치기 딱 좋은 행동이다.

물론 정말 내가 부담감에 잡아먹힌다는 뜻은 아니고.


“하자면 해야죠. 언제랍니까?”

“오늘 저녁이랍니다!”


한국에서 먼저.

그리고 미국에서도.


“부모님께도 말씀드려야겠네요.”

“귀국 전까지는 제가 딱 붙어 있겠습니다! 준비할 것도 좀 있으니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뭐가 필요하죠?”

“네! 저번처럼 가족관계증명서와 부모 미동반 여행동의서가 필요합니다!”


그래.

다 바로 준비 가능하다.

애초에 메디컬 테스트를 받으러 이미 미국에 다녀온 몸이다.

여권도 당연히 있다.

내가 회귀한 뒤 뛰어다니면서 다 처리해 놓은 덕분이었다.

사진관에서 사진 찍고.

시청 가서 여권 발급 신청하고.

그러면서 달리기 중간중간 쉴 수 있었더랬지.

회귀를 네 번이나 했더니 사람이 변한 거 같다.

내가 시간을 이렇게까지 효율적으로 쓰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2


나는 에이전트와 함께 기자회견 장소로 향했다.

임시 기자회견장 세트는 상당히 조잡하고 산만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일이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빠르게 처리되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벌써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였다.


“리허설이나 대본 같은 거 없어요?”

“적어도 선수님한텐 없습니다. 그냥 준비된 때 유니폼 입고, 사진 찍을 때 웃어 주시는 게 끝이라네요.”

“질의응답 때는요?”

“알아서 잘해달라더군요.”


참 매리너스답다.

이런 주먹구구식 운영이 그들의 정체성이긴 하다.

내가 폐급이면 어쩌려고 이러는지 정말 모르겠다.


“······ 일단 알겠어요.”


이윽고 시작된 기자회견은 그래도 꽤 멀쩡했다.

사실 어려울 게 없긴 하다.

매리너스 측에서 김진휘라는 선수의 영입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자리.

이런 걸 매리너스 직원들이 얼마나 많이 준비해 봤겠는가.

대충 내가 어떤 선수고, 내게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 등을 설명한 뒤 유니폼을 건네는 것으로 발표가 끝났다.


‘유니폼은 또 어떻게 찍었대?’


등번호가 쓰이는 공간은 비어 있었지만, KIM 세 글자는 확실히 박아 놨더라.

그래서 등 부분은 보여주지 않고, 그냥 내가 받아서 입는 연출로 대신했다.


“이제 질문 몇 개 받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자리에 참석한 기자들은 대부분 스포츠 관련 기사를 내는 한국 언론사 소속이었다.

미국 미디어가 찾아오기에는 지나치게 일 처리 속도가 빨랐다.

어차피 곧 미국에서도 기자회견이 열릴 예정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언론들의 관심은 매리너스가 아닌 내게 쏠렸다.


“메이스포츠의 한경수 기자입니다. 김진휘 선수에게 질문하겠습니다. 미국행을 결정한 이유가 혹시 어떻게 되나요?”


은퇴하고 싶어서요.

이제 프로로 그만 뛰고 싶은데, 매리너스 우승을 시키지 못하면 그만두지 못하거든요!

물론 이 회귀는 내 선택으로 진행된 거다.

얼마든지 멈출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나를 죽이는 선택지였다.

실패했다는 패배감을 안고 무력하게 은퇴 이후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게 지옥이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1회차, 늦더라도 2회차에 관두었다면 살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80년이 넘는 시간이 매몰 비용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멈출 수 없다.

어떻게든 우승하는 수밖에.

물론 진짜 이렇게 대답할 순 없는 노릇이다.


“매리너스가 저를 가장 강력하게 원했습니다. 계약 조건이 최상은 아니었지만, 최대한의 편의를 빠르게 봐주셨기에 매리너스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거짓을 말하지도 않았다.

실제로 매리너스는 내게 올인 베팅을 가장 빨리 한 팀이었다.


“데일리베이스볼의 조구성 기자입니다. 저도 김진휘 선수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쇼케이스 내용이 상당히 파격적이었다고 들었는데요, 이것이 계약 조건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까?”


맞지.

이거 궁금할 만하지.


“네. 저는 선수로 많이 발전했고, 그 모습을 많은 팀 스카우트가 보았습니다. 덕분에 더 좋은 조건을 받을 수 있었던 거 같네요.”


쇼케이스는 공개적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촬영은 금지였다.

보는 눈이 워낙 많았는지라 소문은 무성했으나, 정작 대중이 직접 보고 확인할 자료가 없었다.

대체 거기서 무슨 상황이 벌어졌느냐가 여론의 주된 궁금증이었다.


“이건 제가 이어서 대답하겠습니다.”


앤디 맥케이 부단장이 끼어들었다.

대체 왜 해외에서 열린 국제 아마추어 영입 기자회견에 그가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보고에 따르면 킴의 투수로서 능력이 상당하더군요. 한겨울인데도 빠른 공의 위력이 상당했고, 그 외에도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여주어 영입 제의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상할 만한 뻔한 질문과 대답이 오가며 기자회견이 다소 지루해지려는 찰나.


“김진휘 선수에게 질문하겠습니다. 혹시 야구선수로서의 목표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매리너스와 관계없는 질문이 날아들었다.

이 자리는 영입 발표회이기도 하지만, 회귀 이후 나를 대중에게 선보이는 첫 번째 자리이기도 했다.


“제가 매리너스와 계약 이야기를 진행하며 좀 알아보았는데요, 이 팀이 아직 창단 이래 우승한 적이 없더라고요.”


운을 띄웠다.

그러자 기자들의 눈빛이 변하는 게 느껴진다.

이 양반들이 다른 건 몰라도 눈치 하난 기막히게 좋다.

기삿거리 냄새를 어찌 그리 잘 맡는지 원.


“제 목표는 매리너스의 우승입니다. 이대로 쭉 매리너스에서 메이저리그 콜업을 달성하고, 제가 있는 로스터에서 저의 활약과 함께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리길 바라고 있습니다.”


말하고 나서 조금 후회했다.


‘이 인터뷰는 미국 건너가서 해야 하는데.’


거기 현지 팬들 머리 깨주려고 준비한 멘트였다는 사실을 잠시 잊어먹었다.

이후로도 질문은 끝없이 이어졌다.

개중에는 날이 선, 적대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김진휘 선수가 메이저리그의 좋지 못한 투자의 예시로 남을 거라는 비관적인 의견도 존재하데요······.”


이런 질문에 잘 대처하는 것도 프로의 덕목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존중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무언가를 보여줄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런 의견은 경과를 좀 보고 꺼내도 늦지 않을 거 같은데요.”


그래도 이 정도 질문은 귀엽다.

다음 질문이 진짜 악질이었다.


“계약 규모가 굉장히 큰데, 이 정도 오퍼라면 다른 메이저리그 팀과도 이야기가 오갔다고 봐야 할 겁니다. 다른 명문팀의 제의를 거절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내가 매리너스와 계약했다는 뜻은, 다른 오퍼를 거절했다는 거다.

이 기자가 정말 멍청해서, 기자회견 초반에 내가 매리너스를 택한 이유에 대한 설명을 기억하지 못하겠는가.

그냥 분탕을 치는 거다. 어떻게든 갈등을 만들고 어그로가 끌릴 만한 기사를 내고 싶은 모양이다.


“기자님, 이 자리는 제가 매리너스에 입단하게 된 사실을 알리는 자리입니다. 다른 팀의 계약 오퍼를 거절한 이유를 말하기에 적절한 장소가 아닌 거 같네요.”


이런 건 단호하게 쳐내야겠지.

나와 맥케이 매리너스 부단장은 몇몇 질문을 더 받은 뒤, 기자회견을 종료했다.

예상보다 길었다. 다른 팀 입단 기자회견의 경우 발표부터 질의까지 짧으면 30분에 끝난다는데, 한 시간 이상 걸렸다.

준비가 좀 부족했고, 질문도 많이 받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성공적인 거 같다.

큰 실수도 없었고, 화제성이 꺼지기 전에 장작이 알맞게 들어갔으니.


“······여기까지 받겠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모두가 나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구단 관계자부터 우리 에이전트까지 싹 다.


“언론 대처가 완벽하신데요? 논란으로 번지게 작정한 질문들에 완벽한 대답을 내놓거나, 말씀을 딱 멈추시는 게 무슨······ 베테랑 선수 같았어요.”

“선수님! 대화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말씀을 참 잘하십니다! 열일곱 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아요!”


솔직히 잘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내가 만 17세라는 점 때문에 장점으로 비치는 거겠지.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렇게 좋은 인상을 심어 두면, 어떻게든 좋게 돌아오더라.

그렇기에 난 내게 쏟아지는 칭찬 세례를 즐겼다.


“아휴, 아니에요. 다들 잘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사실 국내 기자회견은 전초전, 예행연습에 불과하다.

진짜는 미국 현지에서 벌어질 기자회견이다.

거기 여론은 여기와 비교조차 되지 않을 거다.

왜 나 같은 무명의 녀석에게 삼백만 달러를 태우는지, 납득하지 못한 매리너스 팬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현지 기자회견은 그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자리다.

그리고 예정대로라면, 그 날짜는 내일이나 모레가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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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스프링캠프 (1) NEW 21시간 전 167 4 12쪽
11 입단 기자회견 (2) +1 24.06.28 230 7 12쪽
» 입단 기자회견 (1) 24.06.27 279 4 14쪽
9 쇼케이스 (5) 24.06.26 314 7 12쪽
8 쇼케이스 (4) 24.06.25 303 6 13쪽
7 쇼케이스 (3) 24.06.24 301 6 12쪽
6 쇼케이스 (2) 24.06.23 326 8 12쪽
5 쇼케이스 (1) 24.06.22 347 7 12쪽
4 양민 학살 (3) 24.06.21 374 7 13쪽
3 양민 학살 (2) 24.06.20 402 7 13쪽
2 양민 학살 (1) +1 24.06.19 437 8 12쪽
1 네 번째 회귀 24.06.18 509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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