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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못하는 야구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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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至言)
작품등록일 :
2024.06.1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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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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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6.2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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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쇼케이스 (2)

DUMMY

그럴 생각이긴 하다.

타자로 전향한다는 뜻은 아니고, 투타 겸업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부분은 아직도 확실히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걸어본 적 없는 미지의 길.

그리고 반복된 실패.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멈춰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길은 가능성이 없잖아!’


투수로는 실패했다.

타자로도 마찬가지다.

역대급 스탯을 찍고, 매리너스의 전설을 넘어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기록을 세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놈의 팀을 우승시키려면, 내가 더 많은 역할을 소화해야 해.’


투수 한 명이 맡을 수 있는 경기는 한계가 있다. 그 한 명의 실력이 개입하지 못하는 경기가 너무나 많다.

겸업이라면 그때마다 타자로 나설 수 있게 된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꽤 많은 경기의 결과를 뒤집을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리스크가 문제야.’


양쪽 다 제대로 해내지 못할 수 있다는 단점이 가장 크다.

하지만 코치의 질문과 동시에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전향은 절대 안 할 겁니다. 투수 포기 못하죠.”


해보니까, 그래도 투수가 타자보단 낫더라고.


“그런데 타자도 도전은 해볼 생각이에요.”


겸업?

까짓거 해봐야지.

하루빨리 미국으로 건너가고자 학교도 때려치우는 마당에, 겸업은 못할 게 뭐란 말인가.


“정말인가? 하긴, 이 스윙을 썩히는 건 지나친 손해야.”


내가 대답하든 말든, 코치님이 신나서 떠든다.

나는 다시 훈련장 구석에서 내 배트를 돌리는 데 집중력을 쏟고 있었다.


“당장 스윙에 단점이 없진 않아. 솔직히 변화구 대처하기엔 어려운 점이 있어 보이거든. 그래도 지금 나이에 배트를 이렇게 휘두를 수 있다는 것부터가 엄청난 재능이야!”


이때 느낌이 왔다.

이 코치님, 상당한 투머치토커다.


“스윙 연습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뭔지 아나? 바로 똑같이 휘두를 수 있는가야. 이게 생각보다 어렵다? 사람인 이상 조금씩은 폼이 달라질 수밖에 없거든. 새 폼을 찾을 때는 더 그렇고. 근데 자네는 무슨 기계처럼 모든 동작이 똑같아. 스윙 궤적부터 무게중심 이동까지 모두!”


물론 싫진 않았다.

적적하고 지루한 훈련에 활기가 돋지 않는가.

나도 사람이다. 칭찬에는 어쩔 수 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부웅!

부웅!

······.


그날 나는, 대략 오백 번가량 배트를 휘둘렀다.

이날 훈련을 마치면서 한 가지 확신이 들었다.


‘그놈의 잡귀 새끼! 그동안 받은 특전은 쓰레기야!’


효과가 전혀 없었느냐?

그건 아니다.

하지만 금강불괴를 제외한 모든 특전이 사라진 지금, 역체감이 거의 들지 않았다.

원래 뭐든 줬다 뺐으면 더 크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글쎄?


‘내게 특전이 있긴 있었구나.’


딱 이 정도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좋게 생각하자.’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다.

다른 특전 없이도, 나는 메이저리그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재능의 소유자다.



#3


그 며칠 사이 많은 것이 바뀌었다.

우선 고양이 녀석과 나의 관계였다.


“자- 밥 먹자.”

“사료 싫당······.”

“먹지 말든가.”

“미, 미안하당!”


집에 아무도 없을 땐, 이처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고양이가 말을 한다는 것이 상당히 어색했는데, 이것도 결국 익숙해지더라고.

또한 집에 나랑 이 녀석만 남는 상황이 흔치 않아서, 나는 잽싸게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이 금강불괴 특전은 효과가 대체 어디까지야? 막 교통사고 같은 거 당해도 회복되나?”

“되겠냥? 그냥 몸이 덜 피로해지고, 피로감에 더 예민해지는 거당.”

“예민해진다고? 피곤함을 잘 느낀다는 뜻 아냐?”

“맞당.”


이상하다.

피곤하지도 않던데?

이놈 이거, 자기 능력에 대해서 잘 모르는 거 아니야?


“돌아오고 나서 피곤했던 적이 없어. 한 번도.”

“한 번동?”

“어.”

“그야 피곤할 정도로 안 굴렀으니까 그렇징. 몸에 대미지가 누적돼서 다치게 생기면, 무조건 큰일이 나기 전에 알 수 있을 거당. 적어도 나는 그랬당. 결국 특전이란 게, 내 능력을 떼서 주는 거거등!”


그렇다고 무작정 불신할 수도 없었다.

고양이가 되기 전의 말을 되짚어 보면, 이 녀석은 틀린 말을 하지 않는다.

설명을 모호하게 하거나, 좀 과장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렇지.


“흐음······.”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당. 더 열심히 굴러 봐랑!”

“키 때문에 운동량 조절해서 그런가?”


이미 꽤 독한 훈련을 소화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아직 열일곱 살이고, 키도 더 커야 하는지라 조심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근육을 키우겠답시고 무게를 치는 등의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답답하네.’


결국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다. 특전의 자세한 효능을 알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들어가야 하리라.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하루가 급한데, 돌아가야만 한다니.


“그런데 오늘은 왜 훈련 안 나갔냥?”

“오늘? 쉬는 날이야. 다른 일정이 있거든.”

“다른 일정?”

“응. 에이전트님이랑 미팅 있어서 나가봐야 해.”


이미 나갈 준비를 마쳐 놨다. 비는 시간에 집구석을 차지한 고양이 녀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거다.


“다녀올게.”

“나, 나동!”


그때 이 귀신에 씐 고양이 녀석이 폴짝 뛰어올라 내 등짝에 매달렸다.


“뭐야?”

“얌전히 있을겡! 나도 끼워 주랑! 같이 가장!”

“헛소리하지 말고 들어가지?”

“집안 너무 답답하당! 난 원래 고양이가 아니라공! 외출하게 해줭!”


애초에 네가 기어들어온 집구석이잖아······.

고양이 몸도 네가 선택한 거 아니니······?

말려도 들을 것 같지 않아,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 얌전히 있겠다고 약속해.”

“내가 누군지 까먹었냥? 최소한의 눈치는 있당. 걱정하지 마랑!”


그러면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아주 신이 났구만.



#4


“김진휘 선수! 오랜만입니다!”


에이전트 아저씨와 같은 카페에서 만났다.

오늘은 중간 미팅이다.

현재 각 팀과의 협상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안내하고, 조율 중인 조건 내용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그, 옆에 고양이는······.”

“반려묘예요.”

“그러시군요! 귀엽습니다!”


다행히 고양이 녀석은 자기 말을 잘 지켰다.

돌발행동 없이 얌전히 내 옆에 엎드려 있었다.


“자! 전화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김진휘 선수에게 의미 있는 관심을 보인 구단은 총 여섯 군데입니다!”

“어디죠?”

“탬파베이 레이스! 뉴욕 양키스! 시애틀 매리너스! 이 세 팀이 좀 화끈했고요! 피츠버그, 클리블랜드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또한 신시내티 레즈에서도 김진휘 선수의 미국 진출 의사를 적극적으로 물어왔습니다만······ 여기는 추천 드리기 어렵습니다!”


총 여섯 곳.

어떤 나비효과가 적용된 것인지는 몰라도, 내게 짙은 관심을 표명하는 팀의 목록이나 숫자는 조금씩 바뀌어 왔다.

하지만 그중 변함없는 한 팀이 바로 매리너스였다.

너무나 기막힌 우연의 일치.

이제는 필연이라고 믿기로 했다.


“조건은 어떻든가요?”

“······ 사실 좋다고 볼 순 없습니다!”


국제 아마추어 계약은 특약사항으로 넣을 만한 조건이 거의 없다.

게다가 마이너리거는 연봉도 거의 고정이다.

즉, 계약금이 사실상 계약 조건의 전부다.


“가장 높은 계약금을 제시한 양키스가 90만 달러를 불렀습니다!”

“다른 팀은 그 이하라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사실 제안은 많은 팀에서 왔습니다만, 50만 달러 아래의 금액을 부른 곳은 제외한 겁니다!”


짐작하던 바다.

회귀 때마다 계약금이 달랐다. 주로 인혁이 아마추어 시절 얼마나 더 활약했는가에 따라 그 규모가 변하곤 했다.

이번에는 아무런 활약이 없었으니 좀 적을 수밖에 없다.

순수 1회차 때의 기량만으로 매겨진 가치였으니까.


“물론 협상의 여지는 충분합니다! 저희 역량으로 120만 달러까지는 끌어올 수 있어 보이거든요!”


그 정도면 사실 충분하다.

일반적인 경우, 최대한 많은 계약금을 받아야 한다.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이너리그는 박봉의 세계이고, 거기서 얼마나 버텨야 할지 모르잖는가.

하지만 나는 다르다.


‘길어야 1~2년인데, 뭐. 100만 달러면 차고 넘치지.’


애초에 이 금액부터 어설픈 드래프트 중하위 라운드 선수와는 비교도 못 할 정도로 크다.

물론 계약금 제외 어떠한 옵션도 없기에, 미국으로 건너가는 비용부터 생활비까지 모든 금액을 그 돈에서 까야 한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환경 자체는 드래프트로 뽑힌 선수도 똑같다.

다만 그들은 대부분 2~3년 차까지 집안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뿐.


‘나는 내가 알아서 해야지. 그러려고 계약금을 받는 거고.’


고등학교를 때려치웠으니, 앞으로 내 앞길은 내가 책임지는 게 맞다. 부모님 지원을 스스로 사양한 꼴이니까.


“매리너스가 제시한 조건은 어떻게 되죠?”

“비슷합니다! 85만 달러에 김진휘 선수를 원하더군요! 다만 이쪽은 협상의 여지가 크진 않은 거 같습니다!”


그건 뭐.

구단 재정 차이가 드러난 것일 뿐이다.

양키스는 넉넉하고 매리너스는 빡빡한 거겠지.


“다른 팀도 대동소이합니다! 액수로는 큰 차이가 없죠! 어차피 선수님은 매리너스에 가고 싶어 하시고! 그래도 궁금하실까 봐 자료로 뽑아서 가져왔습니다!”


나는 적당히 종이 쪼가리를 받아 들었다.

제대로 읽지도 않았다. 어차피 쓰여 있을 내용이야 뻔하다.

양키스의 가장 높은 제안. 그리고 매리너스의 제안.

이 두 개면 충분하다.

이쯤 해서 본론을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제가 쇼케이스라도 뛰면 효과가 있을까요?”

“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이 아저씨 장점은 이거다.

선수에게 더없이 솔직하다.


“왜냐하면! 제가 김진휘 선수의 현재 기량을 정확히 모르거든요! 제가 기억하는 모습은 작년 10월의 전국체전입니다! 그때와 많이 달라지셨다면 쇼케이스도 열어볼 가치가 있겠죠!”

“좀 많이 변했어요. 좋은 쪽으로. 그래서 에이전트님과 계약하기로 마음을 먹은 거고요.”

“그러시군요! 좋습니다! 추진해 보겠습니다!”


선수 단독 쇼케이스.

당연히 돈이 많이 든다.

공간을 빌리는 것부터가 한두 푼 드는 게 아니다.

단, 이건 일반적인 경우다.


“아, 굳이 미국으로 건너갈 필요는 없을 거예요.”

“네?”

“한국에도 다 와 있잖아요. 각 팀 스카우트들. 그 친구들한테 보여주면 되지 않겠어요?”


효과는 좀 적다. 여기까지 와서 인재를 탐색하는 직원의 입김이 얼마나 세겠는가?

하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내게 관심이 많을수록 그 스카우트의 의견을 중요시할 테니까.

매 회차 내게 러브콜을 보낸 그 빌어먹을 팀의 스카우트만 제대로 꼬드기면 된다.


“쇼케이스에 들어가는 비용 70%는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당장은 회사가 힘 좀 써 주시고, 비용은 추후 계약금에서 제하시죠.”


그저 열일곱 살의 패기라기엔, 내 자신감의 깊이가 상당하다.

그렇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도 밀어붙일 수 있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회사 차원에서 열심히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나는 오늘 미팅에서 구단들의 제의가 50만 달러만 넘길 바랐다.

그 정도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면, 직원을 써서 내 쇼케이스에 찾아오는 걸 당연하게 여기겠지.

그거면 충분하다.


“일정은 언제가 편하십니까?”

“최대한 빠르게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일주일은 걸리지 않을까 싶은데, 자세한 일정이 잡히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늘 힘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더 감사하죠!”


드디어 윤곽이 잡혀간다.

또한 훈련에서도 방향성을 좀 더 뚜렷하게 잡을 수 있을 거다.


‘당분간 배트질은 못하겠네.’


스트레스 해소에 직빵이었는데.

당분간은 피칭을 위한 몸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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