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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김의 서재입니다.

Fortuna : 그 남자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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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김
작품등록일 :
2020.03.25 12:57
최근연재일 :
2022.01.30 07:00
연재수 :
2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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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668
추천수 :
3,606
글자수 :
1,293,490

작성
20.03.2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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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18

DUMMY

황문달의 목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려왔다.


“사인은 심장마비입니다. 심장병으로 고생하던 노인네가 갑작스럽게 악화되어서 손쓸 틈도 없이 죽었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전화를 끊은 조영이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를 꺼냈다.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였다.

맥주는 차가웠지만, 조영의 뜨거운 피를 식히기에는 부족했다.


‘차가운 맥주보다는 독한 양주가 낫겠군.’


조영이 담배 연기 사이로 보이는 목포 앞바다에 시선을 두었다.


***


1988년 10월 1일 토요일.

박영배와 두 번째 포커 게임을 마친 날이었다.

조영은 예의 낙지볶음을 앞에 두고 이신구와 소주잔을 나누고 있었다.

따르릉.


“여보세요~ 누구? 잠깐, 기다려봐. 어이, 신구야 전화 받아, 진관이다.”


전화를 받은 여주인이 이신구를 불렀다.


“여보세요? 그래 무슨 일이야? 응, 나는 큰형님하고 소주 한 잔하고 있지. 뭐라고? 그 미친 새끼가 왜? 잠시만 기다려봐.”


송화기 부분을 손바닥으로 막은 채 이신구가 조영을 불렀다.


“형님, 당구장에 있는 진관인데요. 박영배 그 새끼가 형님이랑 할 얘기가 있다고 뵙고 싶다고 찾아왔다는데요?”

“박영배가?”


잠시 생각한 조영이 이신구에게 말했다.


“박영배에게 이곳으로 오라고 해.”

“네, 여보세요? 진관아, 박영배 그 새끼 낙지집으로 보내. 그래, 알았다.”


딸까닥.

이신구가 전화를 끊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 새끼가 왜 온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무슨 눈치를 챘나? 괜찮으시겠어요, 형님?”

“뭐라고 할지는 만나보면 알겠지.”


조영은 담담한 모습이었다.

드르륵.

잠시 후 낙지집의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여주인의 인사를 받으며 들어온 사내는 박영배였다.

박영배가 조영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며 다가왔다.


“뭐야, 새끼야. 네가 여기를 왜 왔어? 우리가 다정하게 소주잔 기울일 사이는 아니잖아?”


이신구가 박영배에게 날 선 소리를 건넸지만, 박영배의 시선은 조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일단 앉아요. 소주 한 잔 할테요? 사장님, 여기 소주잔 하나 더 주세요.”


박영배는 말없이 자리에 앉았고, 여주인이 가져다주는 소주잔을 공손하게 받았다.


“자, 일단 왔으니 한 잔 합시다.”


조영이 박영배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박영배가 술잔을 받자마자 입으로 가져가더니 단숨에 마셨다.

시선은 여전히 조영을 노려보고 있었다.


“눈깔에 힘 빼, 새끼야. 또 맞고 싶으냐?”


마주 앉은 조영보다 이신구가 먼저 박영배에게 화를 냈다.


“둘이서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신구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시선은 여전히 조영에게 둔 채로 박영배가 말했다.


“이런 쓰벌 놈이, 갑자기 찾아와서 뭐라는 거야?”


이신구는 거친 반응을 보였지만, 조영은 잠시 생각하고는 이신구에게 말했다.


“신구야, 자리를 좀 비켜다오.”

“아니..형님. 굳이 이 새끼하고...”


이신구가 잠시 저항했지만, 조영의 표정을 보고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알겠습니다, 저는 당구장에 있겠습니다. 얘기 끝나면 연락하세요. 여기 아줌마가 당구장 전화번호 알아요.”


이신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박영배는 말없이 조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한 잔 더 받아요. 그래, 할 이야기가 뭡니까?”


조영이 박영배의 빈 술잔에 소주를 기울였다.


“제가 잘하는 게 없는 놈입니다. 그런데 카드는 재미있어요. 카드를 더 배우고 싶습니다.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


박영배는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치고 들어왔다.


‘어려서인가? 스트레이트로만 던지는군.’


조영이 박영배를 쳐다보며 말이 없자, 박영배가 술잔을 들어 한 번에 마셔버렸다.


“어제, 오늘 게임을 하면서 알았습니다. 사장님께서 저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 고수라는 것을요. 어떻게 알았느냐고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그냥 압니다. 제가 눈치가 좋습니다.”

“글쎄요. 내가 박영배 씨가 생각하는 만큼 실력이 있는지 자신이 없군요.”


조영은 즉답을 회피했다.

박영배는 박만돌의 손자였다.

박만돌과 그 자손들은 조영의 타겟이었다.

박영배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한걸음 옆으로 움직여 조영의 앞에 섰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었다.

예상치 못한 박영배의 행동에 조영도 일순 당황해서 표정이 굳었다.

어색한 분위기에 여주인은 주방으로 자리를 피했다.


“뭐 하는 겁니까, 지금?”

“국민학교 졸업하면서부터 이 세상이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복잡한 가족사가 있습니다. 저는 오로지 카드 게임을 하는 동안만 즐겁습니다.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저에게 카드를 가르쳐주시면 절대 배신하지 않고, 은혜를 잊지도 않겠습니다. 저의 과거를 모두 버리고 사장님을 따르겠습니다.”

“과거를 버린다고요?”

“낳아주기만 했지 한 번도 돌봐주지 않은 아비 같지 않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핍박해서 떠나게 한 할아버지, 남편과 시아버지가 괴롭힌다고 어린 아들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 모두 저에게는 의미 없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다른 인연은 있지도 않습니다. 이곳을 떠나서 사장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휴~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일단 자리에 앉아요. 내가 불편합니다.”


딸칵.

조영이 담뱃불을 붙이며 권했고, 박영배는 자리에 앉았다.

쪼로록.

조영이 다른 한 손으로 박영배의 빈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담배가 다 탈 동안 조영은 말이 없었다.

조영은 타버린 담배를 비벼 끄고, 연이어 새로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 박영배 씨. 아버지가 박춘삼, 할아버지가 박만돌 씨이지요? 나는 당신의 할아버지에게 받을 빚이 있어서 목포에 왔습니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조영의 입이 열렸다.

박영배는 박만돌의 손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조영과 같은 테이블에서 술잔을 나눌 사이가 아니었다.

조영의 가슴 깊은 곳에서 시작되는 울림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박영배에게 술을 따라주는 것도 조영의 모습이었다.

박영배의 눈에는 열망이 있었다.

카드 게임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무언가를 경험해보고 싶어 하는 열망이 보였다.

조영은 그런 눈빛과 열정이 부러웠다.

조영과는 방향이 다르지만 어떤 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박영배의 눈에서 나와서 조영의 몸과 마음을 덥히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 박만돌에게 빚을 받으러 왔다는 말에는 간단하지 않은 사정이 있음을 눈치챘을 텐데도, 박영배는 동요하지 않았다.

박영배는 차가움을 갖고 있었다.

뜨거운 열망과 차가움을 동시에 갖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오래지 않은 조영의 삶을 기준으로 봤을 때 오히려 어려움에 가까운 일이었다.

조영의 어깨 위에는 가벼워지기 어려울 만큼 많은 사람의 열망과 마음이 올려져 있었다.

무게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항상 차가움을 유지하고 있어야 했다.

예전에 스탠리 호 사부는 조영이 나이에 비해 과하게 차갑다고 놀림 반, 우려 반이 섞인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좋아. 박영배 네 말은 나와 너의 집안 사이에 어떤 과거가 있어도 상관없이 나에게 가르침을 받겠다는 거냐?”


조영이 말투를 하대로 바꿔서 물었지만, 박영배는 어색해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더 이상 남아있는 감정이 없습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기 3일 전에 그들과의 관계는 이미 끝났습니다. 저는 사장님께 가르침을 구할 뿐입니다.”

“좋다, 네가 나에게 배우고자 한다면 조건이 있다. 나는 너에게 한 가지 요구를 할 것이고, 한 번의 테스트를 진행할 것이다. 네가 그 요구를 들어주고, 또한 테스트를 통과한다면 너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배울 기회를 주겠다.”


조영은 박만돌을 향한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둘은 소주와 낙지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날 조영은 호텔 벨 보이가 가져다준 상자에서 작동이 멈춰버린 검은색 전자손목시계를 하나 건네받았다.


***


박만돌의 장례식은 삼일장이었다.

빈소 앞에는 각처에서 보내온 많은 조화가 진열되어 있었다.

선주 협회, 수협, 경찰, 지역 국회의원이 보낸 조화도 있었다.

오랜 시간 지역 유지였지만, 마을 사람들이 많이 오지는 않았다.

고인이 사람들에게 베푼 정도를 보여주는 것이 장례식의 한 단면이었다.

빈소에서 고인의 영정을 보며 향을 살라 준 조영은 고인에게 두번 반의 마지막 절을 하며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당시의 처한 상황이 어려워서 변변한 장례식도 치르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하던 아버지의 모습도 떠올랐다.


‘박만돌, 저승에서 할아버님을 만나 뵌다면 진심으로 사죄하시오.’


맞절하는 상주의 자리에 박춘삼은 보이지 않고 박영배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뒤에서 조문을 위해 기다리는 몇몇 사람들을 의식해서, 박영배와는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상주가 준비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자 황문달이 구석진 자리에서 손을 들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조영이 자리에 앉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닙니다. 이제 막 식사를 마쳤습니다. 사장님은 식사하시렵니까? 달라고 할까요?”

“아닙니다. 상에 있는 거나 간단히 먹고 일어나겠습니다.”


상 위에는 돼지 머리 고기와 김치 등이 간결하게 놓여 있었다.

황문달이 소주병을 들어 조영에게 권했다.

소주 한 잔을 마시려 할 때, 식당으로 들어오는 일단의 사내들이 있었다.


“맨 앞에 있는 자가 최정식 목포 경찰 서장입니다. 최정식의 아버지가 최덕술이라고, 목포 경찰 서장을 거쳐서 전라남도 경찰국 보안과장을 지낸 고위 경찰이었습니다.”


걸음걸이부터 거드름이 뚝뚝 떨어지는 2:8 가르마를 하고 있는, 선두에 선 사내를 흘깃 바라본 황문달이 조용히 말했다.


“어떻게 바로 알아보세요?”


조영이 묻자 황문달이 씁쓸한 표정으로 소주 한 잔을 비우고 얘기했다.


“최정식, 저자와는 안면이 조금 있습니다. 예전 직장에서요.”

“좋지는 않았던 기억인가 보네요? 하하하.”


조영의 반 농담에도 황문달의 안색은 딱딱했다.


“이곳에서 만나자고 하셔서 조금 의외였습니다.”

“황 사장님이 자세한 정보를 모아 주신 덕분에 내가 바랐던 일이 잘 해결되었습니다. 고인과는 먼 인연이 있어서 와봐야겠기에 겸사겸사 여기서 뵙자고 한 겁니다. 괜히 불편한 사람과 마주치게 한 상황이 되어서 죄송스럽네요.”

“아닙니다. 마주친다 해도 아는 체할 사이도 아닙니다.”

“박춘삼이 동거한다는 여자 말입니다.”

“아, 네······. 잠시만요.”


황문달이 안주머니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내 들었다.


“어디 보자···. 네, 송춘례입니다. 30세로 지역 미인대회 출신인데, 서울 올라가서 영화배우 한다고 깝죽거리다가 실패하고 내려와서 빈둥거리다가 박춘삼을 만난 듯합니다. 박춘삼이 어선도 가지고 있고, 아버지 박만돌이 지역의 알부자라는 소문을 듣고 한탕 땅기려고 한 것 같은데, 요즘은 박춘삼이 별 볼 일 없는 걸 알아채고 다른 꿍꿍이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송춘례의 동네 친구인 공미자라는 아가씨에게 얻은 정보이니 신뢰도가 꽤 높습니다.“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말씀드립니다. ※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작가의말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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