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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김의 서재입니다.

Fortuna : 그 남자의 복수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조영김
작품등록일 :
2020.03.25 12:57
최근연재일 :
2022.01.30 07:00
연재수 :
2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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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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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6
글자수 :
1,293,490

작성
20.03.2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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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17

DUMMY

넓은 병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링거를 꽂고 누워있는 박만돌은 초라해 보였다.

검버섯으로 가득한 얼굴에는 생의 기운이 다해가고 있음을 의사가 아닌 조영도 알아볼 수 있었다.


드르륵.

눈을 감고 지나간 삶의 한 장면을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박만돌이 인기척에 눈을 떴다.

처음 보는 조영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낯익어 보이는 것은 박만돌의 착각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조영의 얼굴에서 예전에 알고 있던 다른 누군가의 얼굴이 연상되었을 수도 있었다.

조영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조영이라고 합니다.”

“누....구 신가?”


침대 옆 테이블에 꽃과 과일 바구니를 올려놓는 조영에게 박만돌이 의아한 눈빛으로 정체를 물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부탁으로 문안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많이 편찮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쾌차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조영이 답을 했지만, 박만돌은 김조영의 할아버지가 누군지 감이 오지 않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부탁을 했다는 이상한 말도 귀에서 걸러내지 못했다.


“처음 보는 젊은이인데, 할아버지가 누구시오? 내가 아는 분이신가?”


박만돌의 목소리는 얇고 가래가 끼어있어 듣기에 거북했다.


“내 할아버지의 함자는 중자 근자를 쓰십니다.”

“김....중.....근?”


박만돌이 조영의 할아버지 이름을 입안에서 두세 번 읊조렸다.


“헉! 설마.....?”

“맞습니다. 1948년 목포를 떠나신 김중근 할아버지이십니다. 어르신께서도 잘 알고 계시던 그분이 맞습니다.”


조영이 박만돌의 머리에 떠오른 이름의 의미를 확인해주었다.


“어떻게! 어떻게?”


박만돌은 말을 잇지 못하고 탄성만 내뱉었다.


“할아버지가 직접 오시고 싶어 하셨지만, 불행하게도 차디찬 이국의 땅에서 돌아가신 지 20여 년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내가 대신 왔습니다. 그분의 손자로서, 예전 인연 있으신 분의 마지막 가는 길에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조영이 마.지.막. 길을 강조했지만, 박만돌은 ‘김.중.근’이름 석 자만을 되새기고 있었다.


“어······. 어떻게 가셨는가? 그분은 어떻게 가셨어? 편안히 가셨는가?”

“글쎄요, 마지막 인사를 하시던 할아버지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습니다. 아마도 돌아가시던 순간에 어르신 이름을 한 번쯤 속으로 불러보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조영의 날 선 대답에 박만돌의 검버섯 가득한 손이 부르르 떨림을 조영은 보았다.


“나···. 난······. 나는 아닐세. 오해야. 나는······.”

“오해라···. 그건 저승에 가서 내 할아버지를 직.접. 뵙고 말씀드리십시오. 나는 그 오해라는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어르신께서 맡아 가지고 있던 할아버지의 것을 돌려받으러 왔습니다.”

“돌려받다니? 뭘 말인가?”


이제 박만돌의 손에 이어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


“어제 짱구라는 분이 다녀가셨을 텐데요? 치매는 아니시라고 들었는데, 40년 전 일도 아니고 바로 어제 일인데 기억이 안 나시나요?”

“그....그러면....영배, 우리 영배가..”

“어르신의 손자 박영배가 짱구라는 분에게 빚을 좀 진 모양이더군요. 아, 물론 짱구라는 분은 나에게 빚을 지고 있지요.”


박만돌은 어제 한낮에 찾아왔던 짱구라는 사내를 생각했다.

그는 1억 원짜리 차용증서를 내밀며 돈을 요구했다.

차용증에는 박영배의 지장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연대 보증인의 이름에는 박만돌 이름 석 자가 적혀있었고, 무려 박만돌의 인감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짱구는 3일의 시간을 통보하고 돌아갔고, 박만돌은 충격으로 심장 쪽에 응급처치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짱구의 배후라고 나타난 사람이 그분, 그분의 손자라니.

박만돌은 왼쪽 심장 부위가 답답해져 옴을 느꼈다.

무려 40년이나 지난 일인데, 아직도 박만돌의 심장을 공격하는 과거라니.

박만돌은 40년 전 어느 날 갑자기 부자가 되었지만, 그 돈을 허투루 쓸 수가 없었다.

돈을 쓰려고 할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지갑으로 가는 그의 손길을 잡았다.

그는 그렇게 구두쇠, 수전노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자네는 내게 복수라도 하겠다고 찾아온 것인가? 그 옛날의 일을 들먹이면서?”


박만돌이 냉정한 기색을 회복하며 조영에게 소리쳤다.

박만돌도 80여 년을 살아온 삶의 경험이 있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80년이라는 시간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지나가는 긴 시간이었다.

이 정도의 말 몇 마디에 흔들려 모든 것을 내어놓을 만큼 만만한 시간들이 아니었다.


“글쎄요, 내가 받을 것은 원금 정도 되겠네요. 돌아가신 내 할아버지께서 소유하셨던 배가 여러 척이었다는데, 그중 1척의 값 정도 되려나요?”


조영이 어깨를 으쓱하는 과장된 몸짓으로 말했다.


“나는 짱구를 통해서 돈을 받았으니, 원금은 회수한 것으로 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어르신 말씀대로 시간이 오래 지난 일이라 이자가 만만치 않게 불었더군요. 크크크.”

“이자라니? 원금도 모르는 일인데 웬 이자를 말함인가? 나는 쉬어야겠으니, 썩 물러가게.”


평상심을 찾은 것인지 박만돌의 목소리에 힘이 돌아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나도 오래 있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좀 바쁘게 살고 있어서요. 다만 가시는 길에 얼굴 뵙고 인사는 드려야 도리일 듯싶어서 와 본 겁니다. 내가 뼈.대.있.는 집안의 자손이라 제법 예의가 있습니다. 아무튼, 쾌차하시기를 바랍니다. 현대 의학이 많이 발달해서 못 고치는 병이 없다고 하더군요. 하하하.”


박만돌은 조영의 말이 쾌유를 축원하는 것보다는 비꼬는 저주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이···. 이만 돌아가시게. 자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은 유감이네. 이게 끝이야. 나는 더 이상 자네와 할 말이 없네.”

“네, 나도 얼굴 뵈었으니 돌아갈 겁니다. 강녕하시기 바랍니다.”


조영이 들어올 때와는 달리 고개를 까닥이는 인사를 남기고 뒤돌아섰다.

뚜벅뚜벅.

병실 문의 손잡이에 손을 올린 조영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조용하게 말했다.


“내가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 있습니다. 궁금하지 않으실까요? 내가 잠시 후에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조영이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값비싸 보이는 꽃과 과일 바구니를 보며, 쓸데없는 데 돈을 쓰는 놈이라는 생각을 하던 박만돌이 눈을 감아버렸다.

40년 전에 다 끝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끝난 게 아닌가 보았다.

짱구가 들고 온 1억 원짜리 차용증을 생각했다.

박만돌이 가지고 있는 어선들과 재산을 생각하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큰돈은 아니었지만, 아까운 건 사실이었다.

박만돌의 아들 박춘삼은 어려서부터 여자들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각종 사고를 일으켰다.

만나던 여자애를 임신시켜서 병원비를 대준 것만도 두 번이었다.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이었지만, 마음이 가지 않는 놈이었다.

게다가 결혼한다고 데리고 온 여자는 가진 것 없는 집의 맏딸이었다.

얼굴은 예뻤다.

하지만 여자의 집은 가난했고, 박만돌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며느리로 인정하기가 싫었었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가난한 집 여자를 며느리라고 데리고 들어온 아들놈을 사랑해 줄 수가 없었다.

돈 한 푼도 주고 싶지 않았다.

박만돌은 내심 그 여자를 며느리라고 받아들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만 손이 귀한 집이어서 아들 박춘삼과 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손자 영배는 소중했다.

손자를 잘 키우라고 아들에게 아까운 돈을 주었다.

빌어먹을 아들놈이 그 돈으로 계집질을 하고 다니는 것을 알았지만, 손자를 위해서 결국에는 배 한 척을 넘겨주었다.

손자의 어미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손자는 박만돌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굶길 수는 없었다.

가끔 보는 손자의 웃음이 좋았고, 손자가 먹는 거, 입는 거에 들어가는 돈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러나, 손자의 어미가 가출한 날 이후로 손자는 자신에게 더는 웃음을 보여주지 않았다.

손자의 웃음을 보지 못하는 박만돌의 얼굴에도 검버섯이 피어나기 시작했었다.


‘김조영에게 돈이 가도록 도와준 사람이 있다고? 내 주변에? 그건 누구지?’


박만돌의 심장이 힘겹게 뛰고 있었다.

얼마나 과거의 상념에 빠져 있었을까?

드르륵.

미닫이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박만돌이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병원 앞에서 구두 닦는 소년이 서 있었다.

뺨에 검은색 구두약이 묻어있는 초라한 옷차림의 소년이었다.


“뭐냐?”


박만돌의 퉁명스러운 물음에 구두닦이 소년이 작은 목소리도 대답했다.


“저, 이거 어떤 분이 전해드리라고 해서 심부름 온 거예요, 저는 1천 원 받고 심부름만 하는 거예요.”


병색이 완연한 박만돌이 무서웠는지 소년은 움츠린 몸짓으로 작은 봉투를 하나 건네주었다.


“아, 그리고 그게 이자라고 전해주래요.”


소년이 몸을 돌려 병실을 나가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뛰어가다가 이쪽으로 오는 치료 카트를 밀고 있는 간호원과 부딪힐 뻔했으나, 용케 피하고는 사라졌다.

박만돌은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어보았다.


‘이자라니? 뭐지?’


봉투 안에서 나온 것은 오래된 검은색 전자 손목시계였다.

배터리가 다 된 것인지 현재 시각도 표시되지 않은 시계였다.

시계를 손에 쥔 박만돌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커어억!”


손이 심하게 떨렸다.

드르륵.


“할아버지, 주사 맞을 시간입니다.”


병실로 들어서던 간호원이 박만돌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병실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큰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선생님 여기 빨리 와 보세요.”


중앙 스테이지에 있던 의사와 선임 간호원들이 뛰어오는 발걸음 소리와 고함치는 소리가 박만돌의 귓가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시계는 박영배의 것이었다.

박만돌이 손자의 국민학교 졸업을 축하하며 선물해 준 것이었다.

박영배가 졸업하기 전년도의 크리스마스 때부터 갖고 싶다고 졸라대던 것이었다.

박만돌은 바로 시계를 샀지만, 졸업식 깜짝 선물로 전해주려고 숨겨 갖고 있었다.

손자의 졸업식 날 선물해줬지만, 손자는 무표정했었다.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시계였는데 본체만체했다.

한 번도 손목에 착용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박만돌이 한 번도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던, 손자의 어미가 집을 나간 것이 졸업식 3일 전이었다.

그 시계가, 손자의 손목에 있어야 할 그 시계가 오랜 시간을 건너뛰어 박만돌의 손에 쥐어졌다.

박만돌의 손에서 힘이 빠지면서, 검은색 전자시계는 침대 밑으로 떨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시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따르릉.

호텔 객실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던 조영이 움직여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사장님, 황문달입니다. 박만돌이 오늘 오후에 사망했습니다.”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말씀드립니다. ※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작가의말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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