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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김의 서재입니다.

Fortuna : 그 남자의 복수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조영김
작품등록일 :
2020.03.25 12:57
최근연재일 :
2022.01.30 07:00
연재수 :
2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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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93,490

작성
20.03.2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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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13

DUMMY

“형님, 박영배를 조지려면 첫날은 잃어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 새끼, 형님의 진짜 실력을 보면 겁먹고 꼬리 내릴지도 모르는데요?”


호텔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담뱃불을 붙이며 이신구가 조영에게 물었다.


“그럴 수도 있지. 줄곧 잃어주면서 자신감을 키워주고 마지막 한 방에 쓰러트리는 거···. 그런데, 박영배 저놈은 조금 느낌이 달라. 녀석은 승부를 즐기는 타입이야. 저런 놈은 페이크보다는 실력으로 승부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페이...요?”

“아, 페이크? 속임수 말이야.”

“제가 가방끈이 짧아서 영어 울렁증이 있습니다. 크크, 형님은 영어 잘하시지요?”

“생활에 불편함 없을 정도는 한다. 싱가포르라는 나라가 여러 언어를 쓸 수밖에 없거든.”

“몇 개 나라말을 하시길래요?”

“음, 영어, 중국어, 태국어, 베트남어, 아랍어 조금? 인연 닿은 분들이 있어서 말을 쉽게 배웠어. 너도 배워 볼 테냐? 앞으로 나를 도와주려면 외국어 배워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우와~ 역시 형님은 대단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외국어는 안 배울 랍니다. 주먹으로 돈 벌어서, 외국어 잘하는 놈 옆에 데리고 다니면 되지요. 하하하.”


이신구의 객쩍은 소리에 조영도 웃음이 나왔다.

맞다.

보스가 모든 걸 다 잘할 필요는 없다.

유능한 손과 발을 주변에 두면 된다.

조영은 택시 창밖으로 몇몇 얼굴이 떠올랐다.


* * *


1988년 10월 1일 토요일.

포커하우스의 열기는 뜨거웠다.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테이블 위에 올려진 돈을 바라보는 사내들의 눈빛은 욕망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일단 30.”


바닥에 오픈된 카드가 가장 높은 조영이 지폐 한 움큼을 내던졌다.

조영의 오픈된 카드는 Q, Q, J, 10이었다.


“30 받고, 60 더.”


곱슬머리 최 씨가 레이즈를 외쳤다.

곱슬머리 최는 스페이드 7, 스페이드 8, 다이아 6, 클로버 9였다.


“다이(die)”


나이 많은 문 씨는 죽었다.


“레이즈. 30에 60 받고 200만 원 더.”


음울한 표정의 박영배의 눈동자에도 수북하게 쌓인 1만 원권 지폐들이 비쳐 보였다.

박영배의 앞에는 클로버 3, 하트 1, 다이아 2, 스페이드 5가 놓여 있었다.


“다이”


오늘 새로 참석한 큰 덩치에 안경 쓴 사내는 포기했다.


“다이”


조영은 패를 덮었다.


“에이 씨발, 콜. 올인.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네.”


곱슬머리 최 씨가 앞에 놓인 돈을 모두 밀어 넣으며 호기롭게 외쳤다.


“자, 나는 스페이드 에이스 플러쉬여. 히든에 올라왔지. 하하하. 영배 너는 패가 뭐냐? 1, 2, 3, 4, 5 스트레이트지? 미안허다. 내가 돈이 부족해서 콜만 한 거야. 운 좋은 줄 알아.“


최 씨는 돈이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내보이고 있었다.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2탑 풀하우스입니다.”


박영배가 조용히 카드를 오픈했고, 너나 할 것 없이 담배를 문 사내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오픈한 카드는 2가 2장에 3이 1장. 오픈된 카드와 합쳐져서 풀하스를 완성했다.

풀하우스에서도 가장 낮은 22233 풀하우스였다.


“너···. 너···. 이 새끼, 빽 스트레이트 노리는 거 아니었어?”


곱슬머리 최 씨의 입에서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고 더듬거려졌다.

게임의 끝으로 달려가는 시간, 오늘의 게임에서 가장 큰 판이었고, 히든에 올라오는 뾰족하고 검은색 스페이드를 보는 순간 최 씨는 승리를 확신했었다.

꽁짓돈을 써서라도 추가 베팅을 할 생각도 있었으나, 끝나가는 분위기라서 콜만 외쳤었다.

그런데 풀하우스라니.

곱슬머리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는 담배 연기가 흔들리고 있었다.

담배와 함께.


“축하해요, 박영배 씨 운이 좋네요. 따라갔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하하하.”


조영이 박영배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조영이 덮어버린 카드 3장은 Q, K, J, 였다.

하지만 끝나버린 판에서 조영의 카드가 확인될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의 1등은 박영배였고, 2등은 조영이 될 것이다.

곱슬머리 최 씨는 올인으로 가져온 돈 5백만 원을 모두 잃었고, 나머지 둘의 앞에도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내, 내일 다시 합시다. 서울 양반, 박영배, 내가 내일은 돈 더 구해올 테니까, 꼭 와야 해.”


곱슬머리 최는 스페이드 에이스를 만지작거리며 눈을 들지 못하고 내일만을 외치고 있었다.


“좋아요, 저는 큰 판일수록 짜릿하니까요.”


박영배가 판돈을 쓸어 담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내가 서울에서 큰 판이 열린다는 연락을 받아서······.”


조영이 말끝을 흐리자, 곱슬머리 최가 당황했다.


“이······. 이런 법이 어디 있소? 내가 잃은 돈이 얼마인데······. 그러지 말고 내일은 내가 돈을 더 가져올 테니 한 판 더 붙읍시다.”

“여기는 동생도 볼 겸 바람 쐬러 내려왔다가 잠시 들른 것이라서요. 서울은 여기보다는 판이 큽니다. 나도 먹고살아야 하는 상황이라···.”


조영이 판의 규모를 들먹였다.


“얼···. 얼마나 됩니까, 서울 판의 규모가? 내, 내가 맞춰드릴 수 있어요.”


곱슬머리 최는 아직도 스페이드 에이스를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저 사내, 흥분하면 말을 더듬는 습관이 있군.

호르몬의 분비 탓인가?

쓸데없는 정보가 입력된다고 생각하며 조영이 박영배를 흘깃 쳐다보았다.


“내가 연락받은 곳은 입장 금액이 1억은 된다는데, 그게 좀 큰 금액이라서, 이 동네에서 참가할 선수들이 있겠어요?”


1억원!

서울에서 가장 비싸다는 강남의 은마 아파트가 5천만 원이라고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세상이었다.

서울에서도 큰 금액이지만, 목포에서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좋습니다, 내가 배를 담보해서라도 돈을 마련하겠소. 영배, 너도 할아버지 담보하면 가능하잖아? 어이, 짱구. 이리 와봐.”


‘곱슬머리 최도 어선을 가진 선주였나 보군.’


조영이 말했다.


“다섯 명은 모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둘이서 맞포커를 하시게요? 재미없을 텐데요?”


그때 곱슬머리 최의 부름을 들은 짱구가 다가왔다.


“짱구, 내일 여기서 큰 판을 벌이려고 하는데 멤버 두 명 정도 더 구할 수 있지? 하우스 문 닫아서 피라미들은 들여보내지 말고.”

“얼마짜리 판을 만드시게요?”


짱구가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큰 거 1장.”


곱슬머리 최의 대답에 짱구가 인상을 썼다.


“1천만 원이요? 뭐 작은 판은 아니지만, 하우스 문 닫을 정도는······.”


판돈의 일정액을 수수료로 받는 짱구 처지에서는 썩 내키지 않는 금액인가 보다.


“아니, 가장 큰 거 1장 말이야. 1억.”


짱구의 눈이 커졌다.


“선수는요?”

“저기 서울 양반하고, 나, 영배 너도 올 거지? 이런 판 목포에서 쉽지 않다. 꼭 오게 될 거다. 다른 사람 두 명만 짱구가 수배해 봐.”

“어유······. 이 동네서 그런 큰 판에 끼어들 사람이 최 사장님 말고 누가 있겠어요? 영배는 가능하냐? 할아버지가 내주시겠어? 선수는 다른 동네에서 불러와도 되는 거지요? 광주나 여수 쪽에 연락하면 가능할 듯도 한데. 내일 말고 모레 어때요? 준비도 필요하고.”


짱구는 머리를 굴렸다.

여수나 광주, 안 되면 부산 쪽에라도 연락하면 달려올 꾼들이 있을 것이다.

한 번 빠진 도박의 늪에서 헤어 나오기는 어렵고, 큰 판일수록 꾼들을 잡아당기는 마력이 있음을 알고 있어서였다.

곱슬머리 최의 시선이 조영과 영배를 왔다 갔다 했다.

그도 이런 큰 판에 참가할 생각을 해보는 건 처음이었다.

뺀질하게 생긴 서울 놈이 제법 잘 치기는 하지만, 독식할 만큼의 실력자는 아니었다.

박영배야 수차례 겪어봤으니 할 만하다.

마침 낡은 배 한 척을 새 걸로 바꾸려고 모아둔 돈이 있었다.

까짓것 안 되면, 낡은 배는 2~3년 더 타면 된다.

사고의 위험성이 높아지겠지만, 어차피 내가 탈 배는 아니었다.

선장 놈이 툴툴대기는 하겠지만, 어쩔 것인가.

선주는 곱슬머리 최 씨였다.

박영배도 고민에 빠졌다.

서울에서 왔다는 잘생긴 남자는 꾼이었다.

며칠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그의 포커페이스를 훔칠 수가 없었다.

승부는 이긴 판도 있고, 진 판도 있었지만, 그의 포커페이스만큼은 항상 일정했다.

별다른 쿠세(버릇, 습관의 일본말)도 아직 잡아내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체력이 약해서 힘으로 하는 일에는 자신이 없었다.

한 주일 건너 아버지한테 두들겨 맞는 엄마를 보면서도 힘을 키워 지켜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공부는 재미가 없었다.

남들보다 계산이 빨라서 성적은 괜찮았지만, 재미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돈이 최고라고 했고, 동네의 소문난 부자였지만 엄청난 구두쇠였다.

돈을 모으는 재미만 알고, 쓰는 재미를 알지 못하는 노인네였다.

무엇 보다 두들겨 맞는 엄마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친정이 가난한 집이라서 시집올 때부터 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이야기는, 동네 아줌마들이 오가면서 하는 뒷담화에서 들었다.

맞고 살던 엄마가 가출한 것은 박영배가 국민학교 졸업을 3일 앞둔 겨울이었다.

그날은 눈이 내렸었다.

눈 내린 새벽 엄마는 잠들어 있는 박영배를 안아주고, 아들이 잠결에 차내 버린 이불을 잡아당겨 잘 덮어주고는 떠났다.

박영배를 안아주면서 엄마가 흘린 눈물이 영배의 뺨에서 마르기 전에, 미닫이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잠이 깨어 있었던 박영배의 눈물이 더해졌었다.

끼이익.

현관문 닫히는 소리에 어린 박영배는 두 주먹으로 이불을 꽈악 움켜쥐었었다.

박영배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을 때 영배의 머리맡에는 예쁜 꽃다발 하나와, 곱게 포장된 선물이 하나 있었다.

박영배는 그날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를 믿을 수 없던, 할아버지의 명령으로 할아버지 집으로 옮겼다.

바로 옆방에 머물라는 박만돌 앞에서 이틀을 굶으며 떼를 써서, 할아버지의 방에서 마당 건너에 있는 별채의 방을 혼자 쓰기로 했다.

할아버지와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박만돌도 떼쓰는 박영배에게 화가 나서, 밤에 잠자다가 무서워서 건너와도 방문을 안 열어줄 거라는 협박을 했지만, 박영배는 끄떡하지 않았다.

무섭지 않았다.

박영배에게 무서운 것은 오직 하나, 엄마가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박만돌이 구두쇠였지만 4대 독자 외동손자인 박영배에게는 덜 모질었다.

중학교에 들어간 박영배는 할아버지가 주는 풍족한 용돈으로 친구들을 돈으로 사모아서 어울려 다녔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장난삼아 시작한 짤짤이에서 재능 아닌 재능을 발견했다.

박영배는 눈치가 빨랐고, 짤짤이를 하면 잃는 날이 없었다.

짤짤이에서 시작한 작은 놀이가 섰다로, 고스톱으로, 월남뽕, 훌라, 포커까지 종목을 가리지 않았다.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말씀드립니다. ※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작가의말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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