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조영김의 서재입니다.

Fortuna : 그 남자의 복수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조영김
작품등록일 :
2020.03.25 12:57
최근연재일 :
2022.01.30 07:00
연재수 :
256 회
조회수 :
367,693
추천수 :
3,606
글자수 :
1,293,490

작성
20.03.25 15:42
조회
3,431
추천
39
글자
11쪽

1-11

DUMMY

“뭔지 열어봐도 돼요?”

“물론이지, 선물은 바로 개봉해보는 거야. 마음에 들면 좋겠다.”


가방 위에는 검은색 양말 상자가 하나 올려져 있었다.

이신구는 가방을 여는 것보다 먼저 양말을 꺼내어보았다.

검은색 평범한 양말이었다.

복숭아뼈가 위치할 부분에 작은 영문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LSG.


“아, 그건 명절인데 용돈만 주면 뭐해서 새 옷 대신에 양말 한 켤레 넣었다. 영문자로 네 이름 이니셜로 새긴 거고, 아무래도 옷은 사이즈를 잘 몰라서....”


조영의 어설픈 변명 아닌 설명에 이신구의 눈가가 벌게졌다.


“뭐야, 너 설마 우는 거야? 양말에 감격해서?”

“아니에요, 눈에 갑자기 뭐가 들어가서.....실은 돈보다도 양말이······. 저 국민 학교 때 아버지 사고 생기기 전에 추석이라고, 아버지가 새 양말 사준 적이 있으시거든요,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는데······.”


아버지가 뱃일할 때까지만 해도 부유하지는 않지만 평범하게 자라던 이신구였지만, 아버지가 사고로 몸져누운 이후로는 아주 가난한 형편이 되었고, 대개의 가난한 집 아이들이 그렇듯이 이신구는 부모에게 생일이나 명절 선물을 사달라고 떼쓰지 않을 만큼 일찍 철이 들었었다.

설날 세뱃돈을 자랑하는 동네 녀석들을 때려준 적은 있었지만.

조영이 주겠다는 용돈보다 한 켤레의 양말이 이신구의 감정을 자극했나 보다.

싱거운 녀석.

다 큰 녀석이 겨우 양말 한 켤레에.

하긴 조영의 인생에서도 선물은 낯선 이름이긴 했다.

준 적도, 받은 적도.

조영은 선물을 주는 사람도 기쁠 수 있다는 걸 오늘 다시 한번 배웠다.

이신구가 가방을 열려고 했으나 잠겨 있었다.


“아, 비밀번호가 잠겨 있는걸 깜박했네. 비밀번호는 917이야. 우리가 처음 만난 날, 9월 17일을 기념해서 내가 정했어. 하하하.”


낯간지러운 비밀번호를 알려주자, 이신구가 가방의 다이얼을 돌려서 비밀번호를 조정했다.

딸깍.

007 가방이 열리고, 이신구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되면서 조영을 쳐다봤다.


“형님? 이게···. 이게 뭡니까?”

“선물이라니까. 용돈이라고 생각하고 받아.”


일반적인 용돈치고는 너무 많은 금액이었지만, 조영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건···. 이건···.”


이신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신구는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현금을 본 적이 없었다.

TV는 물론이고 꿈에서조차.


“이걸로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이신구가 자세를 바로 하며 조영에게 물었다.

이신구가 생각하기에 가방 가득히 들어있는 돈은 밥 사 먹고, 술 마시고, 외상값 갚으라고 주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었다.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외상값도 갚아. 옷도 사 입고. 형에게는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니니까,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조영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아······. 부모님 산소가 있는 산은 사도록 해. 가능하면 산소 근처의 땅을 많이 사면 나중에 도움이 될 거다. 내가 보기에 그 동네가 개발 가능성이 높아.”


지난 1주일간 황문달이 소개해준 부동산 전문가와 이야기하면서 들었었던 정보가 얼핏 생각난 조영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 * *


이신구 몫의 007가방을 옆에 세워두고, 조영은 이신구와 마주 앉아서 나머지 가방 한 개를 열어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007가방에는 이신구가 받은 만큼의 1만 원권이 가득 들어있었다.


“이건 박영배를 끌어 낼 총알이다. 박영배가 도박을 좋아한다며? 내가 박영배와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주선해 줄 수 있겠지? 박영배가 이 정도의 베팅을 받아 줄 만큼의 형편이 될까?”

“박영배야 노름판에서 죽치니까, 게임에 참여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박영배가 지 아버지 몰래 빼돌린 돈이 꽤 된다는 소문이니까, 돈도 제법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박영배도 이 동네에서는 먹어주는 선수입니다. 제법 눈치가 빠르고, 돈질을 잘해요. 형님이 직접 나서시기에는······. 차라리 홍관이를 내세우는 건 어떨까요?”

“홍관이는 눈이 불편해서 쉽지 않을 텐데······. 그건 홍관이와 의논하고 일단 빠른 시간 내에 박영배가 끼어있는 도박판에 나를 연결해줘.”


조영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왠지 모르게 이신구에게 전염되고 있었다.


이신구가 조영을 데리고 간 도박장은 목포시 외곽에 있는 허름한 창고 건물이었다.

농업창고로 쓰던 곳인지 구석에 과일 부스러기며 녹슨 농기구들이 흩어져 있었다.

녹색 천이 펼쳐진 원형 테이블이 4개 있었고, 3개의 테이블에 사내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한쪽 구석 냉장고 앞에는 TV를 틀어놓고 두 명의 덩치 큰 녀석들이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도박판에서 잔심부름과 음료, 담배를 갖다 주고 가끔은 돈도 빌려주는 놈들 같았다.

여느 도박장처럼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깔끔한 정장 차림의 조영과, 역시 조영이 준 돈으로 말쑥하게 차려입은 이신구가 들어오자 음료를 마시던 사내 한 명이 아는 체를 했다.


“여~~신구야, 오랜만이다. 홍관이는 안 왔어? 정 부장네 하우스에서 엄한 짓 하다가 눈알 하나 잃었다고 소문이 자자하더라. 이제 은퇴하는 건가? 실력도 좋은 놈이 아깝게 됐네.”

“짱구형, 오랜만이요. 홍관이는 퇴원했어요. 그리고 엄한 짓 한 건 아니고, 그쪽에서 오바한거니까 이상한 소문 믿지 말아요. 홍관이가 사기 도박 안 하는 건 형들이 잘 알잖아요.”


이신구가 짱구라는 사내에게 아는 체를 했다.


“형, 자리 있죠? 오늘 서울에서 내려온 친척 형이 게임을 하고 싶다는데 함께 해도 되죠?”

“신구가 데리고 왔으면 짭새 쪽은 아닐 게 확실하고, 도박판이야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자리가 있지. 하하하.”


짱구라는 사내가 빈 테이블을 눈짓하며 말했다.


“음료는 뭐로 줄까? 콜라? 박카스?”

“촌스러운 거 말고, 요즘 이쁜 애들이 광고하는 그걸로 줘요, 암바사~”

“하하하, 신구도 이쁜 애들 좋아하는구나? 오케이.”


시답잖은 대화를 들으며 조영은 옆 테이블을 슬쩍 훑어보았다.

테이블 위에는 주로 동전과 천 원권 지폐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었고, 간간이 오천 원권도 보였다.


“여기는 동전으로 하는 거야? 좀 시시하네?”


조영이 이신구에게 건넨 말은 조용했지만, 짱구라는 사내는 귀가 밝은가보다.


“서울 손님이 손이 크신가 봐요? 어떻게 큰 판으로 멤버 모아드려?”


조영은 대꾸하지 않고 테이블에 앉으며 100장씩 묶인 만 원권 지폐 2묶음을 꺼내 놓았다.

2백만 원이었다.


“돈 많이 잃어 줄 수 있는 멤버들 좀 모아줘 봐요~”


조영이 1만 원권 2장을 짱구의 손에 쥐여주며 눈을 찡긋했다.

짱구의 눈빛이 반짝였다.

공장에서 한 달 고생해서 얻는 돈이 40만 원 내외인 동네에서 2백만 원을 쉽게 꺼내 놓는 외지인은 구미가 당겼다.


“어이, 한형, 최형, 문 씨 아저씨, 이쪽으로 자리 옮기시는 게 어때요? 여기 서울에서 큰 손님이 오셨네요. 흐흐흐.”


짱구의 이야기에 고개를 돌린 몇몇 사내들의 시선이 조영의 앞에 꺼내어진 돈다발을 보더니, 눈에서 욕망의 불길이 보이는 듯했다.

옆 테이블의 몇이 자리를 정리하며 조영의 테이블로 옮겨왔다.


“어이, 짱구. 여기 음료수 좀 다시 세팅해주고, 재떨이도 가져다줘야지~”


옆자리에서 제법 소득이 있었는지 곱슬머리의 사내가 1만 원권 한 장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짱구를 불렀다.


“나는 최 씨요. 여기는 한형, 오른쪽은 문 씨 아저씨······. 여기 죽돌이시지. 크크크.”


최라고 밝힌 사내가 나직한 웃음을 흘리며 눈인사를 건넸다.


“서울에서 온 김입니다.”


조영은 미소 없는 얼굴로 응대했다.


“자, 서울은 모르겠지만 여기 룰은 4구 초이스에 초구, 2구, 3구 하프 베팅. 그리고 히든카드에서는 프리 베팅이요. 외상없는 건 기본이고, 흐흐. 판돈 학교는 얼마로 가실까?”

“베팅은 그렇게 하시고, 기본은 1천 원 정도 하면 어때요? 1백 원짜리 동전은 너무 오래 걸려서.”


조영이 호기롭게 1천 원 기본 베팅을 제안하자,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주로 1백 원이나 5백 원 베팅을 주로 하던 하우스에서 1천 원짜리 베팅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늘 목돈을 벌어가겠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초록색 테이블에 내려앉았다.


“좋아요, 까짓것 멀리서 오셨는데 너무 오래 걸리는 게임은 재미없지요.”


문 씨가 호응했고, 한이라는 사내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다들 학교 1천 원씩 가시고, 선을 뽑아 봅시다. 이 동네에서는 낮은 거 뽑는 사람이 선이요. 흐흐흐.”


곱슬머리 최 씨가 예의 흐흐흐 하는 웃음을 흘리며 짱구에게서 건네받은 새 카드의 포장지를 뜯어서 카드를 바닥에 섞어놓았다.


“어이쿠, 클로버 2를 뽑았네. 이거 첫 끗발이 개 끗발 되면 안 되는데.”


곱슬머리 최가 선을 잡고 셔플을 시작했다.

촤라라락.

셔플 솜씨가 카드 꽤나 만져본 솜씨였다.

게임은 한 시간여 만에 끝이 났다.

입에 문 담배를 거칠게 씹어 피우며, 곱슬머리 최가 마지막 카드를 덮었다.


“처음에 클로버 2가 나오더니, 마지막에도 클로버 2가 나오다니. 오늘 운 더럽게 없는 날이네, 씨벌.”

“어이, 서울에서 오신 양반, 내일 이 시간에 어떻소? 복수전 기회를 주시는 게?”


문 씨라는 나이가 제법 있는 사내가 내일을 외쳤다.

조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포 내려온 김에 며칠 머물 생각이니, 내일도 좋습니다. 낙지 살 돈은 많이 모을수록 좋더군요. 신구야 1만 원권만 골라서 챙겨.”


이신구가 조영의 앞에 수북이 쌓인 1만 원권을 챙겼다.

미리 준비한 가방에 현금을 쓸어 담았다.


“나머지 잔돈은 음료수 값입니다.”


1만 원권 외에도 제법 모여 있는 1천 원, 5천 원권을 힐끗 쳐다본 짱구가 박카스 두 병을 내밀며 감사를 표했다.


“서울에서 온 양반이 솜씨가 좋으시군요. 감사합니다. 내일도 와서 즐겨주시오.”


들어올 때와 다르게 한결 상냥해진 짱구의 인사였다.

역시 도박판에서는 돈 딴 놈이 최고였다.

창고를 나서는 조영과 이신구의 뒤에서 짱구가 옆자리 사내에게 말했다.


“영배한테 전화해서 내일 물 좋다고 나오라고 해~”

“우와~ 형님, 카드를 엄청나게 잘하시는데요? 저는 지금까지 홍관이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형님도 만만치 않으십니다. 존경스럽습니다.”

“하하하, 이 정도에 놀랄 거 없다. 그런데, 박영배는 언제쯤 나타날 것 같으냐?”

“형님 실력을 봤고 돈 냄새를 맡았으니, 짱구가 틀림없이 연락할 겁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바닥이 좁아서, 영배 새끼가 끼어들 판이 많지 않거든요.”

“그래, 빨리 나타나 주면 나야 좋지. 오늘 번 돈으로 낙지나 먹으러 가자. 동생들도 부르고.”


목포의 세발낙지와 연포탕의 맛에 흠뻑 빠져버린 조영이었다.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말씀드립니다. ※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작가의말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말씀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Fortuna : 그 남자의 복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 1-18 +1 20.03.25 3,119 32 11쪽
17 1-17 +1 20.03.25 3,098 34 11쪽
16 1-16 +1 20.03.25 3,143 34 11쪽
15 1-15 +1 20.03.25 3,160 35 11쪽
14 1-14 +1 20.03.25 3,168 34 11쪽
13 1-13 +1 20.03.25 3,252 32 11쪽
12 1-12 +1 20.03.25 3,287 34 11쪽
» 1-11 +1 20.03.25 3,431 39 11쪽
10 1-10 +1 20.03.25 3,570 38 11쪽
9 1-9 +1 20.03.25 3,730 39 11쪽
8 1-8 +2 20.03.25 3,889 38 11쪽
7 1-7 +1 20.03.25 3,941 40 11쪽
6 1-6 +1 20.03.25 4,051 37 11쪽
5 1-5 +1 20.03.25 4,198 38 11쪽
4 1-4 +1 20.03.25 4,495 39 11쪽
3 1-3 +1 20.03.25 4,889 47 11쪽
2 1-2 20.03.25 5,520 47 11쪽
1 1-1 +2 20.03.25 8,373 46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