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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김의 서재입니다.

Fortuna : 그 남자의 복수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조영김
작품등록일 :
2020.03.25 12:57
최근연재일 :
2022.01.30 07:00
연재수 :
2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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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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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6
글자수 :
1,293,490

작성
20.03.2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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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8
추천
38
글자
11쪽

1-8

DUMMY

그들의 목소리에는 묘한 열기와 희망이 잔뜩 느껴졌다.

한 명의 젊은이가 애꾸가 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수술 중이었으나, 세상은 그것과 상관없이 활기찼다.

타인의 아픔과 슬픔에는 감각이 둔해진 세상이고, 타인을 모두 신경 쓰기에는 타인이 지나치게 많은 세상이었다.


터벅터벅.

힘없는 발걸음 소리를 내면서 다가온 이신구가 조영의 옆자리에 와서 털썩 앉았다.

조영이 말없이 담배를 하나 건넸다.

딸깍.

담뱃불을 붙이고, 조용히 몇 번의 담배 연기를 뿜어낸 이신구가 입을 열었다.


“왼쪽 눈은 실명이랍니다, 이제 앞을 볼 수 없는 장님이 되었네요. 니미랄....나이도 젊은 놈이...수술은 끝났고, 병실로 올라갔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를 따르던 동생인데 지켜주지 못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납니다. 휴~우.”


진한 담배 연기가 이신구의 입에서 흩어져 나왔다.

조영은 잠시 이신구를 바라보았다.

조영의 입에서 나올 말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이신구의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었다.

조심스러웠다.

이신구 본인 인생의 결정에 타인의 입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오늘 처음 뵈었는데, 감당하기 어려운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반드시 갚겠습니다. 사나이 이신구, 은혜와 원한을 잊어버리는 놈은 아닙니다.“

“아까도 잠시 얘기하려고 했지만, 선대의 은혜를 갚으러 멀리서 왔습니다. 오늘 일은 크게 신경 쓰지 마세요. 내가 이신구 씨에게 갚아야 할 은혜는 바다처럼 깊습니다.”

“저보다 나이도 많으실 듯한데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저는 이제 스무 살입니다.”

“은혜를 갚으러 온 입장이라서요....”

“존대를 하시면 제가 불편해서 그렇습니다. 그냥 말 놓으셔도 됩니다.”

“내가 27살이니 나이로는 형뻘이기는 하겠네요. 그러면 앞으로는 동생으로 편하게 대하도록 하지.”

“저도 형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서글서글하게 동생을 자처하는 이신구를 보며 조영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생겨났다.

피붙이는 아니지만 더 진한 사이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장소가 그렇기는 하지만 신구 너를 찾아온 이유를 알려주마. 나는 바다 건너 멀리서 왔다. 싱가포르에서 비행기를 타기는 했지만, 그보다 먼 곳에서 왔고, 출발은 이곳 목포였다.”


목포에서 출발했다는 조영의 말에 이신구의 눈빛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신구, 너는 부모님과 조부모님 세대의 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


조영이 이신구에게 물었다.


“저는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아버지가 배 타다가 크게 다치셨고, 병으로 오랜 시간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홀로 가족들을 건사하느라 고생하시다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가까운 친지도 별로 없고, 마을 어른들도 자세한 얘기는 없으셨던지라....”


이신구가 침울한 표정으로 내뱉는 말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그렇군....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먼저 해주는 게 낫겠구나.”


조영의 이야기가 담배 연기를 흩트리며 시작되었다.


* * *


조영의 집안은 목포에서 손꼽을만큼 잘 사는 선주 집안이었다.

큰 배를 일곱 척이나 운영하는 조영의 할아버지 김중근은 일본 유학도 다녀온 일제 치하의 인텔리였다.

김중근은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상당한 금액을 독립군에게 전달하기도 하였고, 아랫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에게도 넉넉히 베풀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였다.

다만 자식이 없어서 애태우던 중 나이 서른에 아들 김천우를 낳아, 아들을 애지중지하는 모습에 지인들에게 팔불출이라고 놀림 받곤 했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1948년 10월 여순사건이라고 불리는 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제14연대 소속 병사들이 일으킨 반란이 시발점이었다.

반란군은 짧은 기간 활동하고 지리산 등으로 도주했지만, 그 여파는 상상 이상이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반공 노선은 이전보다 상당히 강화되었으며, 1948년 12월 국가보안법이 통과되기에 이르렀다.

전국에서 좌익과 우익으로 편을 갈라 서로 죽고 죽이는 무서운 시대가 도래했다.

김중근이 교류하던 지식인 중 일부가 좌익으로 몰려서 처형당했고, 김중근도 한패라는 밀고에 김중근은 감옥에 갇혀서 모진 고문을 받아야 했고 재판을 받기도 전에 감옥에서 죽어 나갈 지경이었다.

김중근은 정통 유교를 선망하던 선비에 가까운 사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좌익과 우익을 상관하지 않고 당대의 지식인들과 폭넓은 교류를 하던 것이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그때 감옥에 있던 김중근을 빼내어 주는 결정적인 증언을 한 것이 이신구의 할아버지인 이중구였다.

김중근이 소유한 배 ‘목포 1호’의 선장이었던 이중구는 김중근에게 받았던 도움을 갚는다는 사명감으로 김중근을 위한 증언을 했고, 김중근은 풀려날 수 있었다.

감옥에서 나온 김중근은 더 이상 목포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가족을 데리고 북으로 떠났다.

북으로 올라간 김중근과 가족들은 남로당 출신이었던 김중근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자리를 잡았으나, 6·25 전쟁이 끝난 후 벌어진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남로당 출신들은 숙청되었다.

김중근과 가족들을 중국으로 도망칠 수 있게 도움을 준 것이 남로당 출신이었던 김중근의 친우가 해준 마지막 도움이었다.

고향을 잃고 나라도 잃은 김중근과 가족들은 중국을 가로질러 베트남까지 도망가야 했다. 그곳에서 인연을 만난 김조영은 현재 싱가포르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고, 부모님의 부탁에 따라 예전 도움을 받았던 이신구의 조부 이중구를 찾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것이었다.

조영의 이야기를 들은 이신구는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1948년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의 인연으로 형님이 저를 찾아오신 것 이라구요?”

“그렇지,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도 네 할아버지께서 우리 할아버지를 구해주신 덕분이니. 나는 당연히 너와 네 가족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

“하......”


이신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하나 꺼내어 불붙였다.


“저는 우리 집안에 이런 깊은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 배타다가 다치신 이후에 거의 집에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이런 얘기는 해주시지를 않아서요······. 형님께서 조금만 더 일찍 오셔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셨으면 기뻐하셨을 텐데요.”

“미안하다, 나도 중간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어서 지체되고 말았구나. 그러면 지금은 너와 여동생 둘뿐인 거냐?”

“신애는···. 아, 여동생 이름이 신애입니다. 올봄에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서울 가서 자리 잡는다고 올라갔는데, 연락이 잘 닿지 않습니다. 오빠인 제가 뒷바라지를 잘 해줬어야 했는데, 대학 등록금도 마련해 주지를 못해서....”


여동생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이신구는 침울한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신애를 찾는 데는 나도 한 손을 거들도록 하지. 신구 너는 앞으로 뭘 하면서 살고 싶으냐?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도움을 주고 싶다.”

“저는 고등학교 중퇴인지라 딱히 뭘 하고 살지는 정한 바가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몸이 날래고 쌈박질을 하고 다녔더니, 맨 오라는 데는 깡패들뿐 이라서요. 어머니 살아계실 적에는 어머니가 하도 건달을 싫어하셔서 저도 망설였는데, 요즘은 마음이 흔들리는 중이었습니다. 오늘 홍관이 일이 없었다면, 조만간 정 부장 밑으로 들어가서 자리 잡을까 하던 중이었습니다.”

“주먹에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지. 네가 원하고 능력이 있다면 말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먹 세계에 발을 딛는 순간 평탄한 삶을 살 수는 없게 된다. 심사숙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하, 그쪽 세계에 경험이 많이 있는 듯이 말씀하시네요? ”


형님이기는 하겠으나 많은 나이 차가 나지 않는 조영이 경험한 듯이 하는 말에 이신구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면 조영 형님은 이제 서울로 올라가실 겁니까?”

“아니다, 이곳에서 찾아볼 사람들이 몇 있고, 1948년 당시의 사건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볼 생각이다. 사업 거리도 좀 찾아볼까 싶기도 하고.”

“오늘은 저랑 술이나 한 잔하시지요? 오늘 큰 도움을 받았으니, 제가 거하게 술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그래? 동생이 사주는 술을 한 잔 마셔볼까? 하하하.”


조영도 무거운 분위기를 바꿀 겸 밝게 웃으며 화답했다.

술집은 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허름한 식당의 창에 [낙지 무침], [연포탕] 등이 쓰여 있었다.


“낙지? 이게 목포에서 유명한가?”


조영의 질문에 이신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형님, 낙지 안 드셔 보셨어요? 오늘 맛보면 한 달간 생각나실 겁니다.”


드르륵.

한걸음 옆으로 비켜서서 미닫이를 옆으로 밀어서 잡은 채로, 조영이 들어갈 공간을 내어주며 이신구는 낙지를 처음 들어보는 듯한 조영을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내가 목포는······. 아니 한국은 처음이라서.”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조영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어라, 신구 오래간만이네. 오늘은 외상값 들고 왔지?”


넉넉한 몸집에 커다란 앞치마를 두른 나이든 여주인이 아는 체했다.


“아이구, 이모! 오늘은 손님 모시고 왔는데 좀 봐줘요. 떼어 먹지도 않는 외상값 타령은, 맨날.”


익숙한 곳인 듯 자리를 찾아 앉으며 신구가 대꾸했다.


“형님, 앉으세요. 목포에서 제일로 맛난 집입니다. 전국 어디를 가도 여기 연포탕 만한 음식을 맛보기는 힘들어요.”

“신구, 네가 다른 동네 가서 먹어 본 적은 있고?”


여주인은 신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소주 1병과 잔 두 개를 들고 왔다.


“맨날 먹던 연포탕 주면 되지? 오늘은 쌍둥이들은 안 왔네?”

“아···. 홍관이가 좀 아파서요. 대신 오늘은 형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홍관이는 어디가 아프대? 또 싸웠어? 쌈박질 그만하고 이제 일자리 잡아야지. 여기 잘생긴 형님은 누구셔? 매일 동생들만 데리고 오던 천하의 이신구가 형님이라고 함께 온 건 처음인 것 같네? 호호호.”


여주인과 신구의 대화는 정감이 넘쳤다.

조영은 이런 분위기와 대화가 낯설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객쩍은 소리는 그만하시고, 음식이나 많이 주시고, 소주 먼저 주세요.”


여주인에게서 소주를 건네받은 신구가 소주병을 입으로 가져가더니, 이빨로 병뚜껑을 땄다.


“퉤~”


병뚜껑을 뱉어내고 술병을 두 손으로 공손하게 잡은 신구가 잔을 권했다.


“형님, 동생이 따라주는 술 한 잔 받으시오. 내가 윗사람과 술 마신 적이 별로 없어서 예의나 이런 건 잘 모릅니다.”


술을 받은 조영이 잔을 내려놓고, 신구의 잔에도 하나 가득 소주를 따라주었다.


“우리 조영 형님 앞으로 만사형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 신구의 앞날도 번창하기를 바란다.”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말씀드립니다. ※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작가의말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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