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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김의 서재입니다.

Fortuna : 그 남자의 복수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조영김
작품등록일 :
2020.03.25 12:57
최근연재일 :
2022.01.30 07:00
연재수 :
2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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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93,490

작성
20.03.2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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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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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글자
11쪽

1-9

DUMMY

둘은 술잔을 짧게 부딪치고 입으로 가져갔다.


“크으~”

“소주는 드셔 보셨어요? 설마 소주도 처음이세요?”


조영의 짧은 탄성에 신구가 신기해하며 물었다.


“한국 술은 처음이지. 접할 기회가 없었다.”

“어디서 오셨기에 소주를 처음 드셔요, 그래? 희멀끔하니 생긴 걸 보니 부잣집 도련이시라 그런가, 올림픽이라 외국에서 오셨나? 대한민국에서 소주 안 마시는 사람도 있어요?”


밑반찬으로 김치와 몇 가지 나물무침을 내려놓으며 여주인이 참견했다.


“저~어기 멀리 외국에서 저를 만나러 오신 집안 형님이세요. 소주도 처음, 낙지도 처음이시랍니다. 이모가 아주 맛있게 낙지를 맛보여 주셔야 해요. 하하하.”


이신구가 밝게 웃으며 조영의 술잔에 소주를 채웠다.

조영은 즐거웠다.

처음 먹는 낙지도 맛있었고, 가격이 비싸지 않다는 소주도 맛있었다.

물선 타국에서 살았어도 체질은 한국인의 입맛을 갖고 있었나 보았다.

이신구는 처음 본 사이답지 않게 조영과 잘 어울렸다.

다방에서 보았던 어두웠던 표정도 많이 풀어졌다.

탁자에 소주병이 몇 병 쌓여갔다.


“그래, 형님은 앞으로 한국에서 사실 거요?”


조영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이신구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도 절름발이였습니다···. 그 몸을 이끌고 배를 타느라 고생이 많았다는데, 10여 년 전에 태풍이 심하게 불던 날 배를 돌아본다고 나갔다가 큰 사고를 당해서 몸져누웠어요. 병원비가 많이 든다고 해서, 큰 병원은 가보지도 못하고 방에 누워만 계셨는데 거동하기도 불편해했습니다.”

“태풍이 심하게 불면 배를 미리 항구에 대놓고 집에 계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 ”


조영의 말에 신구는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박가라고 아버지가 타던 배의 선주가 지독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랫사람들을 노비처럼 대했는데, 특히나 우리 아버지에게 심하게 대했던 모양입디다. 태풍이 심하던 그 날도 다른 사람은 다 두고 우리 아버지에게만 배를 돌아보라고 강제했던 모양입니다. 사고 이후에 병원비나 조금 보태 달라고 어머니가 몇 번 찾아갔는데, 매몰차게 쫓겨났더랍니다. 이 얘기는 나중에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마을 어른들이 술 마시고 하던 얘기를 들은 겁니다. 그다음 날 박가의 아들놈을 동네 도박판에서 만나서 뒤지게 패준 후에 학교를 때려치웠습니다. 어머니는 별말씀이 없으셨는데, 아버지는 잘했다고 하시기에 좀 희한하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박 씨라고? 이름이 뭐냐?”


조영이 술 한 잔을 마시고, 담배를 입에 물며 물었다.


“박춘삼입니다. 쓰벌...아버지와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또래인데, 유난히 울 아버지를 못살게 굴었던 모양입니다.”

“박춘삼이라······. 박춘삼의 아버지 이름은 뭔지 알고 있느냐?”

“글쎄요······. 노인네 이름은 잘······.”


이신구가 눈가를 찡그리며 이름을 생각해내려 했지만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모,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여주인이 소주를 가지고 오자, 이신구가 여주인에게 물었다.


“이모, 죽교리 박춘삼이네 아버지 이름 아세요?”

“아, 춘삼이 아버지? 노랭이 박 영감? 박만돌이지 아마? 그 구두쇠는 왜?”

“아니에요, 춘삼이 아재네 아들, 영배를 두들겨 패준 얘기하던 중인데 생각이 안 나서요.”


이신구와 여주인의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던, 조영의 눈빛이 반짝였다.


“만돌? 박만돌이라고?”

“왜요? 뭐 아는 사람이에요? 그 아까 하우스가 있던 유달 해변 쪽에서 쭉 살고 있는 선주예요. 동네 부자인데 하도 지독하게 돈, 돈, 돈 해대서 마을 인심을 다 잃었죠. 덕분에 제가 그 집 영배 새끼 두들겼을 때 뒤로 칭찬해주던 마을 어른들이 꽤 있었어요. 흐흐흐. 여기 이모도 그런 어른 중에 한 분이셨지요.”


조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박만돌. 그 이름이다. 할아버지 김중근을 감옥에 보냈던 밀고자 중 한 명. 이런 시골에 동명이인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사장님, 박만돌씨가 원래부터 부잣집이었어요?”


조영이 여사장에게 물었다.


“아닐걸요, 왜정 때만 해도 돈 받고 배 타던 뱃놈이었는데, 해방 후에 이 동네에 큰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갑자기 배를 갖게 됐어요. 갑작스러운 일이라 그때 사람들이 쑤군쑤군했던 기억이 나요.”


50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주인은 목소리를 낮춰서 은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때 박 영감이 모시던 주인집이 큰 액을 당해서 야반도주했는데, 그날부로 배 한 척을 가졌답디다.”


틀림없다.

놈들 중의 하나.

박만돌.

조영이 입을 앙다물며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이신구도 눈치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말없이 소주병을 들어 조영의 빈 잔에 채워 주었다.

조영과 이신구의 두 눈이 마주쳤다.

조영이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함부로 나눌 이야기는 아니었다.

소주 두 병을 더 시켜서 나누어 마시고 일어서는 자리에서 조영은 이신구의 외상값을 포함한 술값을 넉넉하게 계산해 주었고, 여주인은 잘생긴 총각이 돈도 쓸 줄 안다며 좋아했다.


“제가 대접해드려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형님.”


이신구가 미안해했지만, 조영은 개의치 말라고 했다.

앞으로 기회가 또 있을 테니까.

낙지집을 나온 조영과 이신구는, 조영이 묵고 있는 호텔 앞마당에 잘 꾸며진 정원의 탁자에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호텔의 바를 갈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이 엿들을 걱정이 없는 이런 탁 트인 공간을 조영은 좋아했다.


“아까 이야기하던 박만돌이라는 사람이 내 할아버지를 밀고해서 감옥에 보내고 재산을 빼돌린 일당 중의 한 명임이 틀림없다.”


조영의 나직한 말에 이신구는 ‘역시나’라는 기색이었다.


“형님, 그러면 그 박 영감님···. 아니 박 영감을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는 그 일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본 후에, 그의 과거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아낼 생각이다. 신구 너는 이 일에 관여할 필요가 없다.”

“그 박 영감이 이 지역에서는 나름 방귀깨나 뀌는 유지요. 섣부르게 손대기는 쉽지 않으실 겁니다.”


이곳의 물정을 자세히 모르는 조영을 걱정하는 이신구였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쉽게 움직이는 스타일이 아니다.”


조영은 환한 미소를 띠며 이신구를 안심시키려 했으나, 이신구의 눈에 비친 조영의 미소는 스산했다.


* * *


1988년 9월 18일 일요일.

지난밤에 이신구와 과음하고 들어온 조영은 아침 햇살에 눈을 뜨고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를 한 병 꺼내어 마셨다.

한국에서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낙지, 소주, 지금 마시는 음료는 암바사?’


콜라나 사이다와는 살짝 맛의 색깔이 다른 탄산음료였다.

조영은 음료를 마시며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창밖으로는 멀리 바다가 보이고 있었다.

흩뿌려지는 담배 연기 속에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만돌?

그자가 할아버지를 감옥으로 밀어 넣은 일당 중의 한 명일 거라는 생각은 거의 확증에 가까웠다.

1948년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서 일의 앞뒤를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지만, 북한과 중국을 거치는 기나긴 도피의 여정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당시에 누군가 음모를 꾸민 자들이 있을 거라는 심증을 가질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명단을 적어놓고 한 명씩 상황을 유추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의심할 만한 자들의 이름이 추려졌다.

조영의 아버지는 조영이 어릴 때부터 주기적으로 그들의 이름을 알려줬다.

언젠가는 대면하게 될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말이다.

박만돌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할아버지가 떠난 후로 갑자기 배를 운영하는 선주가 되었다는 게 사실이라면 의심의 칼날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조영은 황문달의 일 처리가 마음에 들었다.

한국에 별다른 일손이 없는 지금 황문달은 능력이 충분해 보였고, 조영의 손이 될 수 있었다.

들어가는 비용은 대수롭지 않았다.

지금도 싱가포르에 있는 조영의 회사는 잘 성장하고 있었고, 큰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따르르릉.

조영의 상념을 깨는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김 사장님, 황문달입니다. 일어나셨습니까?]

“아, 황 사장님.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내가 묵고 있는 호텔 로비의 커피숍에서 만나 뵈었으면 합니다만, 시간이 어떠실까요?”

[가능합니다. 의뢰인이 만나자고 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지요. 하하하. 몇 시에 찾아뵐까요?]

“한 시간 정도 후가 좋겠습니다. 씻고 내려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한 시간 후에 호텔 커피숍에서 뵙지요.]


조영은 전화를 끊고, 샤워실로 향했다.


한 시간 후.

조영은 커피를 앞에 두고 황문달과 마주 앉았다.


“추가적인 의뢰가 있습니다만, 주로 이곳 목포에서 활동해야 하는 일이라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비용만 충분히 주신다면야 대한민국 방방곡곡뿐이 아니라, 해외에도 나갈 생각이 있습니다. 하하하.”

“좋습니다. 의뢰는 목포 죽교리에서 배를 운용하는 선주인 박만돌 일가에 대한 상세한 정보입니다. 박만돌 본인, 아들, 손자 뭐든지 조사해주세요. 시간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비용은 1천만 원 정도면 어떻겠습니까?”


푸흡.

황문달이 마시던 커피를 흘렸다.


“네? 얼마요? 1천만 원이요? 해야죠, 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황문달은 정신이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인 그의 큰딸은 미술에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예체능으로 진로를 정한다는 것은 부모의 경제적인 도움이 상당히 필요한 일이었다.

1년여 전까지 박봉의 강력계 형사 생활을 할 때도 여유롭지 않았던, 황문달은 모종의 사건으로 경찰을 떠나서 흥신소를 차린 이후로 경제적 압박을 심하게 받고 있었다.

아내의 눈초리가 점점 심상치 않아졌고, 얼마 전부터는 부업으로 집에서 호돌이 인형의 눈알을 붙이는 부업을 시작했다.

집안 곳곳에 굴러다니는 호돌이 인형과 눈알들이 황문달에게는 끔직했다.

황문달은 TV에서 연일 나오는 올림픽 뉴스와 그때마다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를 볼 때마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호돌이가 황문달을 볼 때마다, 돈 벌어 오라는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대학교 입학금이 1백만 원이 조금 안 되니까, 1천만 원짜리 의뢰라면 박상인의 몫을 떼어줘도 집에서 호돌이 인형을 당분간 치워도 될 것 같았다.

얼마 전에 큰딸이 무슨 화구를 사야 한다고 했었는데, 집에 들어갈 때 물어보고 사다 줘야겠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서울에 올라가는 대로 선금으로 모두 지급하겠습니다. 이번 일 처리가 아주 마음에 들었거든요. 하하하.”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말씀드립니다. ※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작가의말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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