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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던전 거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1.02.16 22:06
최근연재일 :
2021.09.03 14:54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33,613
추천수 :
609
글자수 :
560,664

작성
21.06.29 17:07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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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던전 이스케이프(2)

DUMMY

던전의 진행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던전을 역으로 올라가던 우리는 드디어 늘 보던 벌레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체 조각들 말고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거...사람, 맞죠?"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그래 보이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바닥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시체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그 조각들이 지금까지 발견한 것들과 다른 점은, 누가 봐도 사람이 입을 법한 제대로 된 의상을 걸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몬스터의 공격을 버티지 못한 것 때문인지 방어구들은 전부 망가진 것 같지만 말이지."


내구도가 0이 되지 않는 한은 손상되지 않는 것이 던전의 아이템이었기에, 산산조각이 난 채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흉갑은 재사용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아주 못써먹을 것들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며 피에 젖은 채로 바닥에 박혀있던 장검 한자루를 뽑아들어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고, 주인 잃은 아이템은 레벨 제한 100의 레어급 장검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좀 아쉽기는 하군. 하긴, 이 던전에 들어올만한 헌터가 내가 착용할 수 있을만한 검을 들고 올 리가 없지.'


레전더리급 이상의 장비에서 가끔 보이는 귀속 장비의 경우에는 착용자의 레벨을 따라가는 장비도 있긴 하지만, 그런 장비들은 대개 착용자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버린다.


"구조대...인 걸까요?"

"구조대라기보다는 추가로 투입된 정찰조라고 보는 게 맞겠지. 던전 안에서 시간이 이만큼이나 지났는데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할만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솔직히 말해서 나 정도 되니까 이 정도씩이나 버티고 있는거지 어지간한 헌터들이었다면 진작에 이 던전의 일부가 되어버렸을거다.


"제대로 던전의 난이도가 규명되기 전까지는 이런 식으로 맨땅에 헤딩하는 것 말고는 수단이 적으니까 말이지. 최정상급의 헌터들을 고용하는 데에는 비용이 지나치게 들고 말이야."

"잔혹한 자본주의네요..."

"뭐 그렇지. 어쨌거나 이 양반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망자들의 유품들을 좀 챙기자고. 이대로 던전에서 썩어가도록 방치하는 것도 미안한 일이니 말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는 양수호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바닥에 떨어진 망자들의 아이템들을 수거하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일행들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들 바지런히 움직이며 죽은 자들의 아이템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내가 써먹을 수 있는 아이템들은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지만, 수연이를 제외한 나머지 셋이 사용할만한 아이템들은 제법 건질 수 있었다. 방어구들은 대부분 사용이 불가능해진 상태였지만, 운좋게 시체 파편에 걸려있던 액세서리 같은 것들이 조금 남아 있었던 것이다.


"뭐, 내 쪽도 아주 수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이곳에서 제법 많은 인원이 목숨을 잃었던 것인지 조금 전에 정보를 확인한 그 장검을 포함해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들을 다섯 자루나 회수해 등에 고정시킨 나였고, 그런 나를 향해 구선양이 표정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용도 못 할 장비를 그렇게나 챙기는 이유가 뭡니까? 생존을 위해서라면 조금이라도 짐을 줄이는 쪽이 나을 텐데요."

"그런 게 있어. 팔아치울 욕심에 눈이 먼 것은 아니니까 안심하라고."


착용 레벨 제한이 달리는 장비는 몽둥이로조차 써먹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써먹을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당장은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자자. 영 보기 거북한 광경을 보고 침울해지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기운 내자고. 이 양반들이 이렇게 여기 죽어 있다는 건 그만큼 출구도 가깝다는 반증이기도 하니까."

"화, 확실히 그렇구먼유!"

"이 자들도 우리가 만한 그 인간형 몬스터를 만나 전이당한 것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뭐, 굳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할 말은 없지만 굳이 부정적일 필요는 또 없잖아? 희망을 한번 가져 보자고."

"...그러죠."


나는 그렇게 일행들을 독려시키고는 일행의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고 있던 수연에게 다가가 물었다.


"여어. 따라오는 게 버겁지는 않지?"

"네, 네에. 조금 피곤하기는 하지만...그래도 저는 다른 분들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나저나 연습은 잘 되어 가고 있어?"

"그럭저럭요. 그런데 정말로 이런 약한 어빌리티라도 쓸만한 곳이 있을까요?"


내가 수연의 어빌리티로 이것저것 테스트를 거친 후, 나는 수연에게 본인의 어빌리티를 컨트롤하는 데 도움이 될 법하다고 생각되는 과제를 이것저것 내준 상태였고, 수연은 정말로 이런 과정들이 필요한지 의구심을 가진 상태였지만 그래도 내 부탁이니 꾸준히 해주고는 있는 상태였다.

그 결과로 수연의 사이코키네시스는 현재 딱히 출력이 더 늘지는 않았지만, 내가 처음 봤을 때보다 조금은 더 활용이 정교해진 상태였다.


"당장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도 언제고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던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으니까 말이지."

"그렇기는 하지만요..."


본인의 능력을 과신했다가 뼈아픈 실패를 겪은 탓일까, 수연은 자신감이 너무 부족한 상태였다. 마음 같아서는 케어라도 좀 해주고 싶지만, 지금 나는 일행의 전체적인 멘탈 케어로도 벅찬 상황이라 수연 혼자에게 할애할 신경은 없는 상태였다.


"아무튼 연습은 잘 되고 있다니 다행이네. 앞으로도 계속 힘내주면 고맙겠어."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러는 류진씨는 조금은 쉬어 달라고 말하고 싶지만...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네요."


나 한 명의 힘에 모두가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 달갑지는 않지만 워낙에 좋지 않은 상황 덕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한 수연의 한숨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그럴 능력이 있으니 하는 것 뿐이야. 괜히 네가 신경쓸 필요는 없다고."

"그래도...아니, 아니에요. 이런 사과보다는 지금은 고맙다고 말하는 편이 모두에게 낫겠죠."

"그래. 잘 아네. 감사는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나간 뒤에 받도록 할게."


나는 씨익 웃으며 그렇게 수연의 어깨를 한번 건드려 주고는 다시 일행의 최선두에서 전진하기 시작했다.


-----


"저거, 또 있네요."

"그렇군. 전에도 느낀 거지만...묘하게 기분나쁜 광경이야."


몇 차인지 모를 정찰조들의 시체 조각들이 늘어진 곳에서 조금 전진한 후 우리가 도달한 곳은 저번에도 한 번 봤던 알 수 없는 고치가 허공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에이리어였다.


이번에도 그 고치의 주변에는 가사 상태에라도 빠진 듯이 꼼짝도 않고 서있기만 하는 벌레들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고치만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고, 그 벌레들은 우리가 주변을 지나가건 말건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기에 지나치게 넓은 것 외에는 통과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은 에이리어였다.


"통로는...하나 있군. 아쉽게도 위로 올라가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나는 우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는 곳의 정 반대편에 뚫려 있는 통로를 발견하고 말했고, 양수호가 그런 내 뒤에서 말했다.


"어떻게...이번에도 벽을 따라서 전진합니까?"

"그 수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더 좋은 의견이 있다면 받도록 하지."


그런 내 말에 굳이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인원은 없었고, 그에 따라 그 자리에서 이번 에이리어의 방침이 정해졌다.


"저번에 실험해본 결과로는 어지간히 근처까지 다가가도 별다른 반응은 없었지만...그래도 혹시 모르니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이자고."

"네, 넷."

"말할것도 없구만유!"


방침이 정해졌다면 굳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었기에 우리는 즉시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숨이 막힐 것만 같은 정적 속에서 우리는 벽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


마치 찍어놓은 사진을 보는 것마냥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벌레들과 쓸데없이 붉은 배경, 그리고 마찬가지로 시뻘건 고치 때문에 이쪽에서 바라보는 에이리어의 풍경은 마치 붉은 노을 밑에서 태양을 바라보고 선 허수아비들이 모여 있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기분 나쁘구만.'


저렇게 생긴 허수아비면 성능 하나는 기가 막히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리를 움직이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나였고, 어느새 우리는 에이리어의 절반 가까이를 넘어올 수 있었다.


까딱하면 호흡마저 멈추게 될 정도의 침묵 속에서, 들리는 것은 오직 자신의 심장 고동뿐. 그런데 어째선지 그 생각은 나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 듯 했다.


"심장이 엄청나게 뛰는데요."

"우연이로군요. 저도입니다."

"저, 저도유."


...뭔가 이상한데. 그야 이만한 수의 벌레들 뒤를 거의 근접해서 지나가는 일이니 긴장될 만한 일이기야 하지만, 이렇게 심장 뛰는 소리가 밖으로까지 들릴 정도로 긴장될 법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내 심장이 뛰는 위치에 오른손을 가져다대 본인의 심장 고동을 확인했고, 이내 표정을 굳히며 벌레들 쪽을 다시금 확인했다.


"...이런 제길."

"류, 류진씨? 무슨 일입니까? 안색이 영 좋지 않은데요."

"다들. 지금부터 전진하는 속도를 올립니다. 어느 정도의 소음은 발생해도 괜찮으니 서둘러서 이 에이리어를 빠져나가는 것을 우선합니다."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그렇게 사색이 되어서는. 은밀성이 중요한 거 아니었습니까?"


확실히 정론을 찌르는 구선양의 말이었지만, 지금은 정론 같은 걸 따질 시간이 없었고, 나는 움직이는 속도를 올리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지금 울리는 심장의 고동은, 우리 게 아닙니다. 본인의 심장 박동을 확인해보면 알 겁니다."

"네? 그건 무슨..."


다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본인의 심장 부근에 손을 올리며 박동을 확인하고는 다들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다르군요. 그렇다는 말은..."


이러고 있는 와중에도 심장의 고동을 여전히 울리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오히려 조금 전보다 확연히 커진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저 고치, 분명히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마치 그려진 풍경화처럼, 찍힌 사진처럼 미동도 없는 풍경이었을텐데.


"지금은, 조금씩이지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고동의 근원은 아마 저 고치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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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던전 이스케이프(4) 21.07.01 112 3 9쪽
94 던전 이스케이프(3) 21.06.30 107 3 9쪽
» 던전 이스케이프(2) 21.06.29 105 3 11쪽
92 던전 이스케이프 21.06.28 106 3 9쪽
91 양수연의 던전 일지 21.06.25 105 3 11쪽
90 던전에서 살아남기(6) 21.06.24 118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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