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影野輯錄

주유강호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마눌밭
작품등록일 :
2012.11.15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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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0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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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주유강호-운남편[제2화]

DUMMY

2.

대라신공의 위서(僞書)!

그나마 상당 부분이 손불여에게 넘어간 반쪽짜리 비급에 불과했다. 천강이 효기의 옆에서 한 달여를 들여다보고 있던 것은 심심파적하는 것이었지, 딱히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처지야 어떻든 다른 문파의 비밀을 엿본다는 것은 무(武)의 피가 몸속을 흐르는 강호인이라면 자연스럽고 강력한 유혹이었기 때문이다. 별 소득도 없던 문건(文件)에 자신의 미래가 달렸다는 말을 들은 천강은 탁자로 가 책자를 집어들었다.


능가경!

태산 북두 소림의 조사 달마대사 전했다는 이 경은, 한 때는 역근경을 능가하는 소림의 심법이 숨겨져 있다는 헛소문이 돈 적도 있었다. 소림의 절기는 수많은 강호인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심지어는 소림사 내부에서도 새롭게 조명된 적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소문은 거짓으로 판명되었으며, 지금에 와서는 술자리 담화의 말석 정도를 간신히 차지하는 정도가 되었을 뿐이다.


칠 권이 한 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필체가 고르지 못했다. 한자씩 뜯어보면 나쁜 필체가 아닌데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았다. 다른 경전을 구해 서로 대조해 보았지만, 내용은 모두 같았다. 기댈 것은 여백을 빽빽하게 채운 도형들이었다. 같은 형태가 무수하게 반복된 것으로 보아 미지의 문자가 아닐까 하는 추측 정도만 하는 상태였다.


“사실 대형에게 말을 할까도 싶었지만 괜한 기대만 하게 될까 봐 모른 척하고 있었어요.”

효기가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분위기로 보아 일정 수준의 성취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실 그녀는 이 도형들을 바라보다 일정의 법칙을 발견했다. 책장마다 같은 형태의 도형들이 반복해서 나타났다. 그리고 각 도형은 의도적으로 반반씩 겹쳐 있었다. 먹의 특성상 세밀하게 관찰하면 먼저 쓴 것과 나중에 쓴 것을 구분할 수 있어. 복잡하게 보이는 도형들도 며칠의 시간을 두고 관찰하자 따로 분리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효기는 기뻐 취금을 불렀다. 취금 역시 어떤 문자일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효기의 결과물을 필사해서 갖고 나갔다. 분타주를 비롯한 지단 내의 몇몇 사람에게 이 문자로 추정되는 것을 보였다. 그들 역시 문재(文才)가 깊은 것은 아니라 만족할 만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근처 사찰의 한 승려를 소개받을 수 있었다. 취금은 한달음에 달려 그 승려를 찾았다. 대방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덕한 풍채의 승려는 그녀가 가져온 것을 보고 대뜸 답을 찾아주었다.


“시주께서 가지고 온 것은 아마도 팔사파어(八思巴語)같습니다. 실제로 책을 보면 더 확실하겠습니다만……”

대방은 말끝을 흐렸다. 취금은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팔사파어는 이미 사라진 전전 황조의 유물이었다. 그들이 대륙을 지배할 때 잠시 쓰이다가 황조의 몰락과 같은 길을 걸었다. 하지만, 대방을 비롯한 학승들은 불교 경전을 계속 연구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를 습득하고 있었다. 팔사파어로 쓰인 불교경전과 연구서가 상당수 있었기에 이를 습득한 학승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대방의 도움으로 짧은 기간 안에 글자의 발음과 쓰는 법 정도의 기본적인 체제를 배웠다.


능가경 속의 팔사파어는 문자 상단의 가로 선이 모두 생략된 채였다. 능가경에 대라신공을 남긴 자는 좁은 공간에 많은 글자를 남기고자 공통되는 부분을 생략하는 대신 책장의 가장자리로 가로획을 대신했다. 덕분에 글자를 분리하는 데 있어, 작업자는 위험한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글자를 분리해 내면 이를 북방어(北方語:대륙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언어)로 고쳤다. 이들은 몇몇 글자의 반복임을 곧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육십사괘의 괘명들이었다. 육십사괘는 상경의 삼십괘와 하경의 삼십사괘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상경과 하경이 번갈아 가며 나열되었다.


효기와 취금이 번역을 할 때 두 번째 난관에 부딪힌 것이 이 부분이었다. 나름 팔괘와 주역에 정통해 있던 취금으로서도 이 괘들의 나열이 무엇을 뜻하는지 난해했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조합하고 그 뜻을 밝혀내려 했지만 좀처럼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해답을 알아낸 것은 효기였다.


그녀는 괘명(卦名)들이 상경과 하경으로 번갈아 가며 나열된 빈도가 상당히 높은 것 그리고 상경은 여간해서는 스무 번째를 넘지 않는 것을 알아냈다. 대라신공 비급은 한 장에 글자의 열이 이십을 넘지 않았다. 이에 상경의 순서를 글자의 열, 하경의 순서를 해당 열의 특정 글자를 지적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이들의 순서에 따라 능가경의 글자들을 나열했다.


하지만, 곧 새로운 장애에 봉착했다. 도저히 문장이 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解脫當이란 세 글자를 뽑아내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대체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긴 문장을 만들어도 뜻이 이상했다. 선문답도 아니고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효기와 취금은 혹시 이 글자를 이끌어 내는 조건들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몇 번이나 재검증을 했다. 심지어는 파사파어뿐 아니라 대륙 주변의 다양한 문자와 대입을 해보고, 팔괘가 아닌 다른 것은 아닌지 그녀들이 아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했다.


몇 날을 그렇게 허비했다. 대라신공의 심법 비슷한 어떠한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의 속은 타들어 갔고 머리가 빠질 것 같은 두통에 시달렸지만 천강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일어나서 먹고 마시고 다시 자는 늘어지는 일상만 반복했을 뿐이었다. 물론 마음이 내키면 가끔 여인들에게 차시중을 들기는 했다. 두 여자는 가끔 팔자 좋게 취해서 자는 천강의 뺨을 힘껏 비트는 것으로 쌓여 있는 불만을 해소했다.


효기는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비급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이제 완연한 봄기운을 띄고 있었으며 햇볕은 포근하게 마당을 감싸고 있었다. 기분 좋은 바람마저 마당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기지개를 켰다. 비급은 가벼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효기는 천천히 몸을 굽혀 책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어 무릎 위에 놓았다.


지금까지 물에 담가보기도 하고, 촛불에 그슬려 보기도 했다. 초에 담그거나 녹말 푼 물을 발라보기도 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한숨을 쉬며 책을 머리 위로 높게 쳐들었다. 그러다 붉은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점들은 일련의 암호들이 선택한 글들이었다. 그녀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이질적인 글자들. 내용보다 떨어져 보이는 필체. 그로 말미암아 이 필사본은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불균형의 원인은 붉은 점들이 찍힌 글자들 때문에 더 도드라져 보였다.


그녀는 글자에 집중하며, 안력을 돋우었다. 실내에서는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십수 년을 함께 했던 종이. 그녀는 종이에 집중했다. 질 좋은 뽕나무 껍질로 만든 상지(桑紙)는 비록 그녀가 만들던 죽지(竹紙)와는 성질이 조금 달랐지만, 종이 특유의 성질은 상당 부분 닮아있었다. 효기는 글자를 보지 않고 종이를 보았다. 특히 먹이 지나간 부분을 유심히 살폈다. 그렇게 한식경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효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천강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었기에 아무도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지막이 환호성을 내었다. 고민으로 굳어 있던 표정이 밝게 풀어졌다. 생글거리는 미소가 얼굴에 그려졌다. 천강이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그 미소였다. 먹이 지나간 자리. 균형이 무너져 일그러진 필체. 그것들이 나타내는 것은 글자 속의 글자였다. 그렇게 귀주 서하루의 비극을 낳고 다시 천강을 구할 대라신공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효기는 즉시 이 사실을 취금에게 알렸고, 그날부터 두 여인은 본격적인 해석 작업에 착수했다. 비급의 암호를 풀어낸 이후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다만, 얽혀 있는 도형을 풀어내고, 그에 따라 특정 지은 글자의 특성을 파악하는 일련의 작업은 극도의 지루함과 피로감을 가져왔다. 대라신공 이라는 희대의 심법이 아니었다면, 또한 천강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면 도중에 던져버렸을 것이다.


어렵사리 얻어낸 대라신공의 비급을 바로 천강에게 전수할 수는 없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비급은 정상이 아니었다. 근 반 정도가 손실된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당한 고수였던 서하루주 곽근창조차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할 정도로 정교한 세공을 가했다는 점이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취금이 굳이 이 대라신공을 택했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그만큼 정교한 것이라면 이 위서에 쓰여있는 심법의 내용이 진본에 가깝다는 말이기도 했다. 결국, 대라신공 정도라면 도박을 걸어볼 만하다는 말이 되었다. 천강 입장에서는 사실 이것저것 따질 틈이 없었다. 자신을 위해, 그리고 효기를 위해서 어떻게든 상황을 개선해야 했다.


정파의 무공들이 대저 그러하듯 이 심법 역시 익히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지만, 무공을 수련하면서 쌓이는 탁기를 몰아내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도가(道家)의 정종심법이 가지는 특성은 현재 천강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에 제격이었다. 몸속에 도사리는 당문의 독과 마구잡이로 주입된 삼양귀원공의 내력을 다스리며, 대환단의 약효를 고스란히 전신으로 퍼뜨리는 것이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현재 혈맥들이 타통된 덕을 톡톡하게 볼 수 있었다. 파괴된 기해혈을 우회하여 진기의 도인(導引)을 대라신공의 심법에 따라 운용한다면 천강의 내공은 비약적으로 증가할 기회를 잡게 되는 것이다. 단지 하단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여 그 성취가 정상인과 비교하면 상당 부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지금까지의 무력했던 세월과는 작별을 고하게 되는 셈이었다.


“흠 뭔가 날로 먹는 느낌인데?”

“훗. 지금까지 잘도 받아먹었잖아. 앞으로 몸으로 때울 일이 많을 거야.”

천강을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내가 대라신공을 익혔을 때 주화입마에 걸리지 않을 거라는 건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지?”

“어차피 대라신공을 극성까지 익힐 것은 아니잖아? 당장 주위에 청성파 고수가 도와주지 않는 이상 그건 불가능한 일이고 말야. 앞서 말했듯이 대형 몸속의 대환단의 약효를 도인 하기 위한 수단으로 쓸 생각이야. 동시에 그 당씨 계집애가 집어넣은 잡기(雜氣)도 제거하고 말야.”


신공의 심법을 그대로 이용한다는 것은 아무리 조심을 한다 해도 위험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취금은 자신의 심법을 천강의 연공에 응용할 생각이었다. 취금 자신이 사도맹에 속해 있다고 하더라도 몸에 지닌 무공은 해남파의 그것이었다. 정파의 무공은 그 근본을 파고들면 상당 부분이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물론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미세한 차이가 나타나고 그 차이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적어도 그 일정 수준 이전에서 신공의 비법을 자신의 심법으로 재해석해서 천강에게 전수할 요량이었다. 천강에게 필요한 것은 내공수련을 통한 내력의 증진이 아니라, 이미 몸속에 필요 이상으로 요동치는 기운의 다스림이었기에 가능한 편법이었다.


본격적인 수련은 내일부터 할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 천강은 몸속의 혈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묘상이 전수해준 요상구결을 조용히 외우며, 말끔하게 정리된 혈맥을 더듬어 나갔다. 아주 느리지만 착실하게 진행했다. 기해혈을 제외한 나머지 기경팔맥의 운행은 원활했다. 천강은 희망에 부풀었다. 더는 여인들의 손에 목숨을 이어가는 구차함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무엇보다 강하게 와 닿았다.


천강이 요상을 마치고 눈을 떴을 때, 두 여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방문 너머 수다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식사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수건을 들고 우물가로 갔다. 아직 냉수로 몸을 씻기에는 찬 날씨였지만, 과거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길을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은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작가의말

>>운남편 2화(완전판) 보기


함박눈이 내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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