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影野輯錄

주유강호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마눌밭
작품등록일 :
2012.11.15 06:53
최근연재일 :
2013.01.13 14:24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240,232
추천수 :
1,830
글자수 :
294,577

작성
12.12.01 17:37
조회
2,138
추천
18
글자
12쪽

주유강호-운남편[제1화]

DUMMY

달포가 흘렀다. 봄기운이 점점 강해졌다. 겨울에도 춥지 않은 지역인지라 봄이 찾아드는 속도 또한 빨랐다. 귀주에서 벌어진 참변 이후 태풍처럼 휘몰아치던 나날들이었다. 효기와 함께 사천의 산정을 헤맸을 때도 항상 추적의 그림자가 언제 그들을 덮칠지 하는 불안 속에서 지내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운남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그런 시련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단리의 소개로 그가 일하는 운남 소통 지단에 숙소를 마련할 수 있었다. 지단에서는 후원의 외따로 떨어진 곳에 작은 별채를 내주었다. 이후 일체의 간섭이 없었다. 가끔 부식을 가져다주는 말 없는 하인만 오갔을 뿐이다.

천강의 몸 상태는 생각보다 좋았다. 고질적인 내상과 당문에서 받은 모진 고문의 후유증은 당장 어떻게 처리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적수하 초소의 격전에서 몸을 드러낼 일이 없었던 지라, 만약 드러냈다면 그 자리에서 유명을 달리했을 것이 뻔하지만, 단리보다 오히려 겉보기에는 상태가 나아 보였던 것이다. 반대로 단리는 이번 전투에서 얻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장기간 치료와 요양이 필요했다. 운남에 온 첫날 얼굴을 비춘 이후로는 여태껏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취금과 효기도 비교적 잘 지냈다. 종종 부엌에서 두 사람이 같이 음식을 마련하는 모습도 보였다. 식사는 항상 세 사람이 같이했다. 취금은 용무가 있는지 식사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밖에서 지냈다. 지금까지도 그녀는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다. 기녀 일은 더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떠돌이 포주를 따라 전국을 유랑하는 기녀라는 직업은 정백련 지역에서 활동하기 위한 위장에 불과했으며, 현재는 또 다른 임무를 맡았다고만 말해주었다. 이 말을 들을 때의 천강은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이 년 전 그녀와의 우연한 재회에서 작위적인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기루가 아닌 여염집에서 만나는 취금은 편안했다. 귀주에서 같이 지낼 때 가끔 보이던 부자연스런 웃음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효기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잘 때도 각방을 썼다. 이곳의 별채는 세 사람이 각자의 생활을 하며 지내기에는 충분했다. 사람의 몸은 간사했다. 단지 달포 만에 천강의 몸은 편안한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다.

처음 며칠간은 무위도식에 걸맞은 생활을 했다. 효기도 비슷했다. 다만, 아침저녁으로 수련을 새로 시작했고, 대라신공의 위서에 대한 연구도 계속했다. 지금에 와서는 천강도 그것에 흥미를 느껴 같이 위서를 봤다. 무공의 이론이나 실기에 여러모로 딸리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끔 차를 타서 효기에게 주는 것 정도였다. 그때마다 효기는 한껏 웃음을 지으며 뜨거운 찻잔을 손위에 놓고 가만히 굴렸다.

피로도 가셨고 자잘한 외상은 이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일상이 있다면 언제라도 그 속에 녹아 들어갈 만반의 채비가 되었을 만큼 비일상의 긴장을 떨쳐버린 두 사람이었다. 시기를 재고 있었는지 때맞춰 취금이 말을 꺼냈다.

"앞으로 어쩔 생각이야?"

"부도강(腐屠堈)이란 곳을 아나?"

천강은 대답 대신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녀는 눈썹을 꿈틀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몰라. 썩은 시체들의 언덕이라니…… 그런 데는 왜?

"가봐야 해서."

그녀는 천강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잠시 시선을 돌리고 부도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사천을 공방을 떠나던 날, 아팔이라는 자가 그녀를 부도강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효기는 조만간 주화입마에 빠질 것이다. 그것을 막으려면 마라혈공과 무노인이 가지고 있던 향로가 필요했다. 그자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지금 유일한 단서는 부도강뿐이었다.

"그래서, 어떤 단서라도 잡은 거야?"

이번에는 천강이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이렇게 막막하지는 않았겠지. 단지 한가지 막연하게나마 기댈 수 있는 것은 효기의 고향을 찾아보는 정도겠지?"

"거기가 어딘데?"

천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효기는 다 식어버린 찻잔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차를 더 가져온다는 말과 함께 그녀는 방에서 나갔다. 취금은 그녀가 나가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다.

"호남 어디쯤……"

취금은 기가 막혔다. 기껏 운남에 와서는 다시 사지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호남은 무당이 세력을 뻗친 곳이다. 청성, 아미, 당문이 견제를 하며 균형을 유지하는 귀주와는 달리 호남은 완전히 무당의 천하다. 형산파가 있지만, 그들은 형산 일대에서 봉문 한 채 더는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천강이 운 좋게 운남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청성과 당문의 보이지 않는 알력에 의해서였다. 이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무당의 천하, 게다가 청성, 당문 그리고 이번에는 거의 관여를 하지 않았던 아미의 힘을 합한 것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곳이 무당이었다. 이런 곳에 머리를 들이민다는 것은 자살하겠다는 소리와 다를 바 없었다.

취금은 조용히 자리를 피한 효기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지울 짐치고는 너무나 무겁고 큰 것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화제를 돌렸다.

"우선은 눈앞의 일부터 해결하자. 당장 호남으로 달려간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니까 말야."

"눈앞의 일이라니, 무슨 일 또 터졌냐?"

"대형 몸 말야. 기매(琪妹)도 급하지만, 대형도 급해. 위험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 꽤 좋은 기회를 잡고 있다는 거 알아?"

그녀는 천강 일행이 운남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그를 진맥해 왔다. 그때마다 그녀의 얼굴을 보는 천강은 한 사람을 떠올렸다. 효기의 조부였다. 그의 표정과 취금의 표정은 완전히 같았다. 기묘한 그의 상태를 대하는 무림인 대부분은 아마도 거의 비슷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의 몸 상태는 강호를 떠나 은거를 하며 무공을 완전히 버린다면 모를까, 칼날 같은 무림에 적을 둔 이상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급상황은 그의 명줄을 확실하게 갉아먹을 것이다.

"대형 몸 상태가 어떤지 자신이 제일 잘 알고는 있겠지만, 그래도 한번 정리는 하고 넘어갈 게. 우선 제일 먼저 짚어야 할게 기해혈의 내상이겠지."

천강은 무심하게 눈을 껌뻑였다. 상처를 입은 지 십 여년. 그동안 목숨을 부지한 것만 해도 어쩌면 평생의 운을 반쯤은 쏟아 부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각설하고 현재의 이 갑갑한 상태는 전부 이 내상에서 기인했다. 마지막 임무 중에 입은 부상. 아직도 누가 자기를 해하였는지 정체조차 모른다. 당시 제거 대상이었던 자인지 아니면 다른 자인지 알아볼 도리는 없었다. 그렇게 버텨온 세월이었다. 취금의 말은 담담하게 이어졌다.

"다음은 내가 준 대환단. 그리고 당문의 그 당숙영이라는 계집애한테 당한 극독, 인제 와서 독의 성분을 알아낸다는 것은 무리고, 그저 대환단의 효능이 독을 뛰어넘기를 바랄 수밖에 없어. 단 득인지 실인지 그 계집애가 억지로 진기까지 밀어 넣는 바람에 당문 삼양귀원공의 기운까지 몸속에서 진을 친 상태야. 삼양귀원공 자체는 나쁠 게 없지만, 전혀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억지로 집어넣은 진기가 좋을 리가 있겠어? 묘상대사의 치료와 요상법문-아마도 보리세수경의 일부이겠지만-의 효능이 없었다면, 천하의 대환단을 낭비하게 되는 결과를 만들었을 거야."

여기까지는 천강도 묘상에게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 취금은 아마 그 화상이 문파라는 명분을 중시하지 않았다면 천강에게 보리세수경을 전수해 주었을지 모른다고 했다. 그녀의 추측은 거의 맞았다. 묘상 자신도 불제자이기 전에 문파에 속한 무림인임을 내세워 비인부전의 뜻을 전했었다.

"다행히 혈맥의 상처는 이제 완치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해도 되겠지. 덕분에 전신의 혈이 타통된 것까지는 좋은데 이걸 타고 돌아야 할 진기가 정신을 딴 데 쏟고 있다는 거야. 애써 기연을 만났는데 써먹을 수가 없어. 대환단과 극독의 성분이 서로 안정되면서 이미 파괴된 단전을 되살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까지는 해결해 줄 수는 있는데 이미 몸이 기억해 버린 삼양귀원공이 또 그 길을 막는 거나 마찬가지야. 눈먼 미친 말을 묘상의 법문이 겨우겨우 이끌고 있다는 느낌이야.

말을 하면서 취금의 머리는 다시 꼬이는 느낌을 받았다. 천강을 한 달 동안 봐오면서 매일같이 시달리던 두통이 다시 찾아왔다. 마침 효기가 차를 들고 들어왔다. 취금은 효기에게 사과했다. 효기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태로운 폭탄을 안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천강의 문제는 꼭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는 뜻을 전했다. 효기는 취금의 손을 잡으면서 신경 쓰지 말라고, 이미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천강은 두 여인의 대화를 들으며 사이좋은 자매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잠깐 두 여자가 각자 자신의 아이들을 앉고 일터에서 돌아오는 자신을 맞이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무슨 망상을 하는 거야?"

취금의 찡그린 눈썹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천강은 헛기침을 하며 현실로 돌아왔다. 자기는 대형의 몸을 고치려고 불철주야 힘쓰는데 정작 주인공은 딴 데 정신이나 팔고 있다며 투덜거렸다. 천강은 머리를 긁적이며 얼버무렸다. 그는 짐짓 허리를 펴고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효기도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대형의 상태는 순서는 뒤죽박죽 되었지만, 나쁘지만은 않다는 거야. 대환단과 극독으로 이루어진 내단. 엄밀히 말해서는 전혀 다른 거지만, 달리 표현할 길이 없으니 내단이라고 할게. 하여튼 그런 게 대형의 내상을 치료해 줄 단서를 마련해 줄 거야. 그리고 전신 혈맥의 타통되어 있다는 거. 즉, 어린애와 같은 상태가 된 거야. 자발적이 아니라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이만하면 꽤 괜찮은 상태야. 적어도 뭘 새로 시작하기에 조건은 갖춰진 셈이거든."

여기까지는 웬만한 고수라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효기의 조부도 천강을 진맥하고는 곧 그의 상태를 알아내었다. 실제 취금이 고민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문제는 해결책이야. 언제 미친 멧돼지처럼 날뛸지 모르는 삼양귀원공과 그에 반응하는 극독을 다스리면서 묘상의 법문을 깨트리지 않으면서도 대형 몸속의 기운을 고스란히 자신의 진신진력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방법 말야. 처음에는 내가 아는 내공심법이라도 전해 줄까 생각했지만, 해남파하고 풀 문제도 있고, 또 거기 무공들이 전부 여인들한테 특화된 거라 대형에게는 안 맞아. 배울 수야 있겠지만, 부작용도 좀 문제고……"

"어떤 부작용이요?"

효기가 끼어들었다. 취금의 표정이 야릇하게 변했다.

"피부가 고와지고, 허리가 나긋나긋해지겠지. 아마 집안일도 잘할 거야. 호호호."

"좋으네요. 어차피 바깥일 하는 것도 없는데. 호호호."

불시의 공격이었다. 천강은 얼굴이 조금 붉어지면서 헛기침을 했다. 두 사람의 농을 끊으며 해결책이 뭐냐며 채근했다. 취금은 쉽사리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가까스로 진정한 그녀는 한 달 동안 고민한 결과를 알려주었다.

"해결책은 기매가 갖고 있어."

천강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효기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어지럽게 휘갈긴 글자가 빼곡한 종이와 붓 몇 자루가 흩어져 있었다.


작가의말

>> 운남편 1화(완전판)보기기

운남편이 시작되었습니다.

조금은 살만해진 그를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45 무우지게
    작성일
    12.12.02 16:35
    No. 1

    내공도 쌓고 무공도 높아지는 우리의 주인공을 성원합니다.
    그 과정을 설렁설렁 넘어가는 법이 없는 작가님의 세세신공에 박수를 보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 천외일랑
    작성일
    12.12.08 10:29
    No. 2

    너무너무 좋은 글
    독자들이 모르는게 아쉽군요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주유강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완전판은 게시판을 이용해 주세요 12.11.22 2,153 0 -
65 주유강호-운남편[제7화] +4 13.01.13 2,309 19 15쪽
64 주유강호-운남편[제6화] +5 12.12.31 2,012 20 12쪽
63 주유강호-운남편[제5화] +2 12.12.26 2,131 20 12쪽
62 주유강호-운남편[제4화] +2 12.12.17 1,938 25 12쪽
61 주유강호-운남편[제3화] +2 12.12.11 1,783 19 13쪽
60 주유강호-운남편[제2화] +1 12.12.05 1,859 21 13쪽
» 주유강호-운남편[제1화] +2 12.12.01 2,139 18 12쪽
58 주유강호-귀주이편[제10화][完] +3 12.11.27 2,049 19 13쪽
57 주유강호-귀주이편[제9화] +3 12.11.22 1,789 16 13쪽
56 주유강호-귀주이편[제8화] +3 12.11.15 2,118 24 12쪽
55 주유강호-귀주이편[제7-2화] +6 11.10.27 2,337 24 7쪽
54 주유강호-귀주이편[제7-1화] +3 11.10.23 2,326 25 9쪽
53 주유강호-귀주이편[제6-2화] +5 11.10.16 2,464 24 7쪽
52 주유강호-귀주이편[제6-1화] +5 11.10.11 2,239 36 8쪽
51 주유강호-귀주이편[제5-2화] +3 11.10.07 2,408 44 7쪽
50 주유강호-귀주이편[제5-1화] +5 11.09.30 2,418 22 8쪽
49 주유강호-귀주이편[제4-2화] +2 11.09.28 2,314 20 8쪽
48 주유강호-귀주이편[제4-1화] +4 11.09.24 2,477 24 9쪽
47 주유강호-귀주이편[제3-2화] +4 11.09.21 2,647 25 8쪽
46 주유강호-귀주이편[제3-1화] +3 11.09.16 2,451 24 8쪽
45 주유강호-귀주이편[제2-2화] +7 11.09.10 3,031 40 8쪽
44 주유강호-귀주이편[제2-1화] +4 11.09.06 2,758 30 8쪽
43 주유강호-귀주이편[제1-2화] +6 11.09.02 2,764 26 7쪽
42 주유강호-귀주이편[제1-1화] +3 11.08.23 2,813 30 7쪽
41 ============================== +3 11.08.09 2,473 10 1쪽
40 주유강호-사천편[제21화][完] +3 11.08.07 2,875 23 12쪽
39 주유강호-사천편[제20-2화] +4 11.08.02 2,825 22 8쪽
38 주유강호-사천편[제20-1화] +4 11.07.30 3,112 33 8쪽
37 주유강호-사천편[제19-2화] +5 11.07.27 3,230 32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