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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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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6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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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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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3
추천
26
글자
12쪽

110. 침입자 2

DUMMY




01.

사자는 왕궁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연이은 폭탄 테러의 의도가 왕궁을 깨끗하게 비우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왕궁으로 돌아가 진상을 확인할 수 있었을까?


대답은 아니오,였다.


그의 직감이 아주 미세한 경보를 머릿속에서 울려댔지만 사자는 왕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왜냐면 대체 의도를 모르겠으니까.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사자가 그답지 않게 끙 소리를 내며 고민했다. 왕궁이 비었다. 궁의 주인인 왕자는 가드들을 이끌고 도시로 나왔다. 모든 것이 적들의 의도일지 모른다. 문제는...... 그래서 뭐? 왕궁에 뭐가 있는데?


"왕궁에는 지금 시종들과 메이드들만이 있을 겁니다. 가신들은 모두 대피했을 거고요. 가드 몇 명이 남았을지도 모르죠. 왕자님께서 가드를 소집했을 때 저는 그 자리에 없었으니 알 수 없습니다. 그 외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왕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요? 말할 것도 없이 왕자님입니다. 그다음은 무녀님이겠지만, 무녀님은 이미......"


"시알라님이 이미 당했을 거란 말씀이신가요, 블랑님?"


"아니요, 설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라자드님. 저는 '진짜 무녀님'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왕가의 무녀께서는 사실 3년 전에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아니야,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게 아니야.


사자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사자는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직관의 힘을 믿는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그의 직관에 기대어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에.


도시에는 숫자를 알 수 없는 적들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왕자는 이미 그들과 대치 중일 지도 모른다. 게다가,


"만일 적들이 마황탄을 소지하고 있다면 큰일입니다. 놈들이 자살 테러라도 불사한다면...... 왕자님께서 힘을 펼쳐 보이시는 순간 모든 게 끝이 날 테니까요."


바로 그것이 사자가 일행과 갈라져 왕궁으로 달려갈 수 없는 이유였다. 사자의 머릿속에는 처음 조우했을 때 경험했던 알란의 힘이 강렬하게 새겨져 있었다. 쓰는데 큰 어려움이 없고 별다른 준비 과정도 필요 없던 그 초록빛 힘. 왕자는 쓰기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 힘이 무슨 일을 가져올지 모르고.


"블랑님 말이 맞소. 지금 당장은 왕자를 만나서 보호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 같군. 그러니 서두릅시다."


사자가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왕궁을 한번 돌아보았다. 하지만 왕자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는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왕가의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02.

사자는 왕가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알 수 없었다. 므시엘과 오조도 왕가의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들은 알았다. 이 왕궁에 그들에게 아주 중요하고 꼭 필요한 <방>이 있다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알았냐고? 왕자였다. 그리고 심지어 왕자조차도 누군가에게 그 사실을 들은 것이 분명했다.


"잘 들어라. 그곳은 왕궁의 지하에 있다. 하지만 들어가는 입구는 1층에 있지 않아.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2층을 통해야 한다. 2층의 형...... 알란의 방 옆을 지나쳐서 쭉 들어가다 보면......"


'작은 복도로 이어지고 그 부근을 훑으면 작은 문이 있다고 했지.'


므시엘이 들은 이야기를 한 번 더 복습했다. 그는 왕궁에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었지만 이곳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느꼈다. 이는 철저한 사전 준비 덕분이었다. 알라딘 왕자는 손수 왕궁 내부에 대한 전개도를 그려서 알려주었다.


"왕궁에는 나도 알지 못하는 길들이 갈래갈래 나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그곳으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탐색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뭣보다 네 능력을 사용한다면......"


므시엘은 그 모습을 보면서 둘째 왕자는 왕좌를 노리기보다 그냥 그림과 시를 쓰면서 지내는 편이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물론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왕자의 그림과 기억력은 훌륭했다. 덕분에 침입자 듀오는 착오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목적지를 더듬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피해를 최소화하지는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피는 거의 최대한으로 보는 중이었다.


"아직도 왕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을 줄 몰랐는데."


므시엘이 들고 있던 나이프를 바지 엉덩이에 대충 문질러 닦으며 말했다.


"왕자가 소집한 것은 가드들 뿐이니 그렇겠지. 게다가 여기 남은 자들은 폭발이 바로 코앞에서 일어나도 꼼짝도 안 할게다. 왜냐? 왕자가 엉덩이를 떼도 된다고 말한 적이 없거든. 왕자가 말하기 전에는 똥도 제대로 못 닦을 위인들이지."


"왕자가 말하면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겠고만."


므시엘의 말에 오조가 슬몃 웃음을 흘렸다.


"그건 우리 얘기 아니냐?"


"맞아."


므시엘이 배를 잡고 웃었다. 역수로 잡은 나이프가 배를 찌를 것 같이 아슬아슬했다. 오조는 므시엘이 웃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했다.


"남은 이들을 일일이 찾아다닐 필요는 없지만 눈에 띄는 것은 다 처리하고 가자. 칼이 무뎌지면 왕자의 방을 뒤져보는 것도 좋겠어. 뭔가 하나 쓸만한 게 나올지도 몰라."


"왕자님이 아시면 좀 노하실지도."


"하지만 그분이 말씀하셨잖아. 위대한 천정을 열려면 더 많은 피가 필요하다고 말이야."


므시엘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역수로 쥔 나이프를 꼭 틀어쥐고 방금까지 앞에 서 있던 방을 열어젖혔다. 한 번 더 비명소리가 길게 이어질 듯하다가 소리가 뚝 끊겼다. 쩍 벌린 입에 진흙이라도 들이부은 듯 콱 막힌 신음만이 답답하게 이어졌다. 방문이 다시 열렸고 므시엘의 칼날이 조금 더 무뎌졌다.



03.

오비에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함께 숨은 메이드 언니들은 거의 목놓아 울고 있었지만 아이는 정신을 꼭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비에는 왕궁에서 일하는 급사 소녀였다. 일찍이 유마가 아이에게 시알라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눈이 동그랗고 어색하게 자른 앞머리가 귀여운 여자아이. 그것이 오비에였다.


'나까지 울면 여기서 나가야 할 때를 놓칠지도 모르니까. 눈물이 부옇게 찬 눈으로는 길을 찾을 수 없는 법이거든.'


오비에는 어릴 적 아빠가 해주었던 말을 되새겼다. 아내와 딸과 술을 끔찍하게 사랑했던 아빠. 오비에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아빠의 말을 떠올렸다. 하필이면 가장 사랑했던 것이 술이었던 바람에 그는 이제 세상에 없지만.


오비에는 자신에게 무녀님이 어디 계신지 다정하게 물어보았던 바깥 세계의 남자가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 아이는 자신에게 떨어진 불운을 헤쳐나가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왕궁 바깥에서 괴한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은 피에 굶주린 살인마처럼 왕궁의 사람들을 모조리 해치기 시작했다.


오비에는 출출한 마음에 중앙 계단을 통해 내려오다가 그 광경을 보았다. 돌아와서 메이드 언니들에게 말해주자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맙소사! 가드들은? 왕궁에 가드들이 남아 있을 텐데!"


오비에가 보았던 것이 바로 그 가드들이 베이는 광경이었지만 아이는 얘기하지 않았다. 왠지 얘기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오비에는 패닉이라는 단어를 몰랐지만 그들을 지켜줄 사람이 왕궁에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언니들은 아마 미쳐버릴 것이다.


"여기 조용히 숨어있어야 할 것 같아요. 아마 그 남자들이 위로 올라올 것 같으니까요."


오비에가 제 손으로 자른 어색한 모양의 앞머리를 손으로 넘기며 말했다. 삐뚤빼뚤한 앞머리가 귀찮게 자꾸 눈을 찔러댔다. 메이드 언니들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하염없이 울었다. 오비에는 언니들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려 토닥여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울어봤자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대신 오비에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물었다.


'너는 울지 않을 자신 있지? 언니들과 함께 여기를 나가자. 가드들은 이미 없지만 어쩌면......'


오비에가 왕가의 옷을 입고 무녀님이 어디 계신지 물었던 남자를 떠올렸다. 그와 함께 왔던 바깥 세계의 사람들을 떠올렸다. 어깨가 아빠처럼 넓고 눈이 마할란트라의 밤처럼 새파랗던 남자를 떠올렸다.


'정신 차리자, 오비에.'


오비에의 눈이 반짝거렸다. 다행히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04.

알란이 손을 치켜들었을 때 그를 향해 칼을 세운 배신자들의 얼굴에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기다린 듯한 표정이기까지 했다.


'내 힘을 모르는 가드가 있나? 아니면 마나에 대항하는 수단이라도 있는 것이냐?'


알란은 의아했지만 그렇다고 힘을 쓰지 않을 것은 아니었다. 가드들끼리 칼을 맞댈 필요가 없다고 했던 것은 괜히 한 말이 아니었다. 같은 가드들끼리 칼을 휘두르고 동포끼리 피를 봐야만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면 이겨도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그렇게 해서 이길 바엔 지는 것이 나을 것이다.


'물론 아피아가 무서운 얼굴로 따끔하게 한 마디 하겠지만.'


피를 볼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질 수도 없는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알란, 그라면 가능했다. 위대한 하사딘 왕가의 장자. 그의 아버지가 직접 정해준 적은 없지만 스스로 추호도 의심한 적 없는 마할란트라의 유일한 지배자.


알란의 손에서 이윽고 초록색의 빛이 서서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배신자들이 눈빛을 반짝였다. 그리고 뒤에 숨어있던 가드 중 하나가 (녀석이 숨은 것을 알란은 이미 훤히 알고 있었다. 뭘 숨기려고 한 건지는 몰랐지만) 몸을 잽싸게 드러내며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던지려고 했다.


'뭐지? 까만...... 돌?'


"엎드려요!"


그때 날카로운 여인의 목소리가 알란의 귓전을 때렸다. 알란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여기 마할란트라의 왕자에게 저렇게 당당하게 지시할 수 있는 여인은 여태껏 없었으므로. 알란에게 소리친 바깥 세계의 민병 대장이 몸을 날렸다.


마드라는 이름의 민병 대장이 지휘관 다운 넓은 어깨로 (마드 스스로는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부딪혀 온 것은 다름 아닌 왕자, 자신이었다. 마드의 태클에 왕자가 그대로 떼구루루 앞으로 굴렀다.


"컥."


그동안 기품이 넘치는 단어만 골라서 뱉어왔던 왕자의 입에서 단말마와 같은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맙소사.'


블랑이 이 모습을 경악하며 쳐다보았다. 놀라기는 맞은편에서 마황탄을 언더스로우로 던지려던 도시 가드도 마찬가지였다. 그자의 눈빛에서 한순간에 많은 것이 지나갔다.


뭘까? 저것도 우리의 동료일까? 가드 중에 여자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왜 왕자에게 죽일 듯이 부딪혔을까?


그리고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은데 이걸 계속 던져도 되는 걸까?


마지막 물음이 떠올랐을 때 사내는 폭탄을 던지려던 동작을 멈추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마무리 동작에 들어간 팔을 어찌하진 못했다.


마황탄이 크게 호를 그리며 날아갔다. 던진 자와 그의 동료들, 맞서 싸운 왕실 가드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폭탄을 따라 움직였다. 블랑의 눈도 거대한 종말을 예감하며 함께 움직였다. 그리고 폭탄을 받은 것은,


'전장의 여신이여. 마나여. 이번만은 제발 오지 말고 저리 비켜가줘요. 안 불렀으니까 오지 말라구요.'


마드였다. 블랑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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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114. 구원자 1 +12 20.10.23 521 26 12쪽
113 113. 오비에 +14 20.10.22 523 29 13쪽
112 112. 침입자 4 +15 20.10.18 633 2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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