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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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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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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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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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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
13쪽

118. 연극 1

DUMMY



01.

마할란트라의 시민들은 지금 어디에 있었을까? 그들은 놀랍게도 검은 탑에 몰려와 있었다.


살면서 한 번을 볼까 말까 한 폭발을 하루에, 그것도 점심도 채 먹기 전에 세 번이나 경험한 지저인들은 그저 그들의 본능이 시키는 대로 무턱대고 달렸다. 본능이 말했다. 달려, 우선 달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해. 폭음으로부터 떨어져. 귀가 떨어져 나갈지도 모르니까. 섬광으로부터 눈을 돌려. 평생 위대한 천정의 빛도 못 보고 살아가기 싫으면. 열기와 폭풍에 닿지 않도록 멀리멀리 달아나. 꽁무니에 불이 붙기 싫다면.


아이가 있는 지저인들은 아이를 안고 달렸다. 달릴 수 있는 나이의 아이를 둔 부모는 혹시나 아이가 뒤처지지 않을까 계속 돌아보며 달렸다. 아이도 없고 지켜야 할 사람도 없는 외로운 지저인들은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부둥켜안고 뛰었다.


그러고 나니 탑이었다. 위대한 천정에서부터 자라나 언더그라운드의 대지 위에 붙박은 탑이 시커먼 거인의 그림자처럼 우두커니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제서야 지저인들은 우뚝 선 검은 탑을 보며 불안함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몇몇의 시민들이 여전히 폭연이 솟아오르는 도시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저 너머 유난히 빛이 바랜 왕궁의 황금색 지붕이 보였다.


"탑에는 가까이 가면 안 되는데......"


입을 연 것은 서화점 주인 아지라엘이었다. 마할란트라에서 그림을 사고팔 수 있는 '유이한' 가게 중 하나인 서화점의 주인. 그는 경쟁자인 '화랑'의 주인 쥬르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아직 몰랐다. 그저 연기가 그의 가게 가까이에서 치솟는 것을 보며 혹시나 경쟁 업종 하나가 날아간 것은 아닐까, 이제 매출이 좀 오르겠구나, 하고 실없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아지라엘의 말을 듣고 시민들의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우뚝 솟은 탑을 불안한 눈으로 올려다보던 아이가 느닷없이 울음을 터트렸다. 불안은 금방 전염됐다. 아이들이 잇달아 울기 시작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어른들도 겁먹은 눈으로 두리번거렸다.


그때 탑의 2층 테라스에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왕가의 피를 이은 또 한 명의 왕자. 하지만 피를 이을 수 있는 기회를 받지 못한 둘째. 알라딘이었다. 그의 뒤로 시진도 모습을 드러냈다. 알라딘을 보필하는 노인은 여전히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뒤로 넘긴 잿빛 머리를 질끈 묶은 모습이었다.


눈을 가늘게 뜬 시진이 알라딘의 뒤에서 시민들을 바라보았다.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흘렀다.


"모두 들으십시오!"


알라딘이 입을 열었다. 지저인들이 고개를 들었다.



02.

"시민들이여. 마할란트라의 소중한 국민들이여, 내 말을 들어주십시오!"


알라딘이 말했다. 왕가의 일원답게 (비록 둘째이더라도) 위엄 있고 존재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가 입을 열자 시민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처음엔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이미 4년이나 넘게 자리를 비운 왕자. 검은 탑과 가까운 지역의 지저인들은 그가 검은 탑에 틀어박힌 것을 잘 알았지만 대다수의 시민들은 이미 그를 기억에서 지운 지 오래였다. 그때 지저인들 사이에 목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폭발을 피해 도망 온 지저인 이라기엔 지나치게 침착하고 의뭉스러웠다.


"알라딘 왕자님이야. 둘째 왕자님."


"그분이 탑에 계셨어?"


"자넨 몰랐나? 이미 몇 년 전부터 이곳에 계셨는걸."


지저인들 사이에 목소리가 계속해서 퍼졌다. 알라딘은 그들이 충분하게 정보를 공유할 때까지 기다렸다. 인내는 그의 장기이자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왕자의 의무였으니까.


"지금 마할란트라에 위기가 닥쳤습니다. 여러분도 알 것입니다. 테러입니다. 이미 수많은 도시민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나는 가드들을 모아 도시 곳곳으로 보냈습니다. 이제 다른 시민들께서도 가드들의 호위를 받으며 이곳으로 올 것입니다."


또 한 번의 웅성거림. 알라딘이 말을 이었다.


"궁금하실 것입니다. 어째서 테러를 내가 수습하는 것인지. 나는 반대로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지금 사태를 책임지고 수습해야 할 왕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몇몇 분위기를 파악 못한 지저인이 나지막이 야유를 보냈다가 금세 입을 다물었다. 지치고 두려운 군중들의 눈이 일제히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마치 잡아먹을 듯한 눈빛이었다.


좀 닥쳐. 닥치고 뭐라고 말하는지 듣자. 아니면 네가 나가서 지껄이던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알라딘이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말씀해보십시오, 마할란트라의 시민들이여! 지금 나의 형, 알란 왕자는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03.

동생이 형을 찾는 그 시간, 알란과 왕실 가드들은 도시 한복판에서 완전히 발이 묶여 있었다. 또 다시 한 무리의 가드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번엔 수가 훨씬 많았다.


도시 중앙까지 오는 동안 마할란트라 시민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몇몇 굼뜨게 움직인 이들과 공포로 발이 움직이지 않았던 이들이 전부였다. 알란은 그들에게,


"도시는 지금 위험하다. 가드들의 지시를 따라 왕궁으로 이동하라."


라고 말하려다가 관두었다. 가드들의 지시를 따르라고 하기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에게서 등을 돌렸을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왕궁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 도시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였다.


'바깥 세계의 검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있자니 무참하다...... 그는 지금쯤 무엇을 발견했을지......"


바로 그때 가드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지존을 보는 눈이라고는 볼 수 없는 눈빛을 하고 슬금슬금 다가왔다.


"무엄하다! 네놈들이 지금 어느 분의 앞을 가로막았는지 아느냐!" 바이런이 소리쳤다.


가드들은 대꾸하지 않았다. 입을 여는 대신 검집을 열고 날이 까만 검을 길게 뽑아 들었다. 그들을 도시를 지키는 가드로 임명한 사람이 누구였을까? 사열식에서 그들에게 검집을 채워준 이가 누구였을까? 바로 알란이었다. 왕자는 착잡했다.


"너희들에게 지시를 내린 이가 누구인지 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라. 내가 왕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너희가 가드이기 때문이다. 도시를 지키고 시민들을 지키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느냐." 왕자가 말했다.


"지금 시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가봐야 한다. 부디 길을 열어 다오."


가드들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알란의 일침에 잠시 눈빛이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다른 왕자에게 받은 지시를 떠올리며 검을 바투 잡았다.


그들이 지시받은 것은 딱 한 가지였다.


'절대 알란 왕자가 검은 탑 가까이 다가와서는 안된다. 그가 시민들과 접촉해서도 안된다. 그의 목숨을 뺏지 못해도 좋다. 너희는 그저 까만 바위처럼 그의 앞길을 단단히 막아라.'


그들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의 백성들이 검은 탑에 모여 둘째 왕자의 말에 귀 기울이는 동안 알란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04.

"내가 여러분 앞에 선 것은 마땅히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왕자가 여러분의 곁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닙니다."


알라딘이 시민들 앞에서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시진은 시종일관 지저인들이 볼 수 없는 위치에 서서 알라딘을 자랑스럽게 (그리고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그가 모시는 왕자가 그동안 형에게 가려져 좀처럼 드러낼 수 없었던 카리스마를 마음껏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위대한 천정 아래서 감히 우리 마할란트라를 불과 연기로 어지럽히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십니까?"


"대체 누구입니까!"


군중 속의 목소리가 물었다. 마치 합이라도 짠 듯한 타이밍이었다. 알라딘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오랫동안 연습한 동작이었다.


"바로 바깥 세계에서 온 이방인들입니다!"


나지막한 신음소리가 시민들 사이에서 울려 퍼졌다. 바깥에서 손님들이 들어왔다는 것을 많은 도시민들이 알고 있었다. 그들이 도시 안을 산책하는 모습을 본 지저인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과 몇 마디 말을 나눠본 이도 있었다. (대부분 비골라의 인터뷰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테러를 일으켰다고? 그들은 손님인데? 그리고 손님을 초대한 것이 누구였지?


군중들 속에 숨겨놓은 '목소리'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군. 나는 봤거든. 그들이 밤중에 도시를 배회하는 것을 말이오."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목소리가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위대한 천정이 눈을 감은 밤에 어떻게 그들인 줄 알았냐고? 바로 '로브'를 입고 있었거든. 그 뭐시냐, 모래바람을 막는다는 로브 말이오. 우리 마할란트라 시민들이 그런 것을 입을 리가 없잖소? 그래서 알았지. 위대한 천정이 눈을 감은 틈을 타서 그들이 우리의 도시를 수상쩍게 돌아다녔던 것을 말이오!"


목소리들이 뿌린 의심의 씨앗이 군중들 사이에서 자라났다. 그들도 보았다. 지저인들은 결코 입지 않을 로브를 입고 돌아다니던 남자들을.


"나도 봤어...... 까만 로브. 그들이 로브를 휘날리면서 골목골목을 누비는 것을 똑똑히 보았어."


똑똑히 봤을 수밖에. 시진이 비식 웃음을 흘렸다. 까만 로브를 테러범들의 유니폼으로 정한 것이 바로 그였으니까. 군중들 사이에 의심이 퍼지는 것을 보며 알라딘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여러분이 왜 놀랐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대체 누가 이방인들을 불러들였을까? 위대한 천정 아래서 우리의 도시를 마구 유린하는 그들을 불러들인 사람이 누구일까?" 알라딘이 말했다.


"바로 마할란트라의 왕자, 알란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군중 속의 목소리가 역할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알란이 사자와 마드, 때로는 비골라, 그리고 정말 간혹 유마와 함께 있었던 것을 지저인들이 똑똑히 보았으니까. 이제 시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문을 전달하고 의혹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왕자에 대한 불신이 산더미처럼 불어갔다.


알라딘이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연극의 첫 번째 클라이맥스가 이제 시작이었다.


"여러분."


알라딘의 목소리가 검은 탑 앞 광장에 울렸다. 시민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착한 관객이라면 훌륭한 연기자 앞에서 때에 맞춰 침묵하는 법. 알라딘은 정적을 충분히 음미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관객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 나는 5년 전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폐하께서 행방불명되시고 나는 왕궁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폐하께서 계시지 않는 곳은 슬픔이 가득하고 또한 의문이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알라딘이 고개를 들어 도시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왕궁에 닿았다. 한때는 그의 시종이었고 그의 메이드였던 이들의 피로 푹 적셔진, 한때는 그의 보금자리였던 곳.


"나는 왕궁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아니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폐하께서 계시지 않은 곳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대신 나는 폐하께서 어떻게 되신 것인지 그분의 행방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그리고,"


시진이 들리지 않게 손가락을 퉁겼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거대한 교향곡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 최고의 타이밍이다.


"드디어 의문의 해답을 찾았습니다."


알라딘이 손을 들었다. 그가 서 있는 테라스의 뒤, 어둠으로 잠긴 방에서 가드들이 누군가를 부축하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바로 폐하의 행방불명을 누군가가 의도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여기 증인을 데려왔습니다. 아니, 증인이라는 말엔 어폐가 있겠습니다. 바로 이 자도 한패였으니까요. 자, 보십시오!"


마침내 가드들의 손에 이끌려 나온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군중들은 그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누구지? 노인인데......


그때 군중 속의 목소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마법사다! 왕실의 수석 마법사, 후산이야! 죽었다고 들었는데...... 살아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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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134. 사냥꾼들 1 +2 20.11.27 400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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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132. 악몽 3 +2 20.11.22 422 15 12쪽
131 131. 악몽 2 +4 20.11.21 418 17 12쪽
130 130. 악몽 1 +6 20.11.20 418 15 12쪽
129 129. 시가전 3 +4 20.11.19 420 13 13쪽
128 128. 시가전 2 +4 20.11.15 445 17 12쪽
127 127. 시가전 1 +4 20.11.14 446 15 12쪽
126 126. 재회 3 +10 20.11.13 440 17 13쪽
125 125. 재회 2 +6 20.11.12 459 21 12쪽
124 124. 재회 1 +7 20.11.08 488 20 12쪽
123 123. 드러난 음모 2 +8 20.11.07 453 20 12쪽
122 122. 드러난 음모 1 +8 20.11.06 459 16 12쪽
121 121. 트리거 2 +4 20.11.05 465 17 12쪽
120 120. 트리거 1 +4 20.11.01 498 20 12쪽
119 119. 연극 2 +4 20.10.31 468 15 12쪽
» 118. 연극 1 +4 20.10.30 505 1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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