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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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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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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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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31. 악몽 2

DUMMY




01.

알란과 그가 이끄는 왕실 가드들이 부지런히 검은 탑을 향해 나아갔다.


확실했다. 알란이 지금 찾아야 하는 것은 빌어먹을 동생도 시커먼 놈들의 계략도, 심지어 이른 아침 송곳니 길게 난 <미식가>에게 납치된 왕가의 무녀 (대리)도 아니었다. 그가 찾아야 하는 것은 시민이었다. 마할란트라 도시의 시민들. 왕가를 섬기는 소중한 백성들.


도시의 건물과 길들과 그 안을 이루는 수많은 재화 따위는 아무리 많이 모여도 도시가 될 수 없었다. 사람이 곧 도시였다. 도시 그 자체였다. 그토록 중요한 시민들이 지금 거의 모두 검은 탑 앞에 있었다. 어리석지만 입심 하나는 좋은 동생이 또 어떤 감언이설을 풀어놓고 있을지 모른다. 게다가 더 음흉한 잿빛 머리의 시종도 붙어있지 않은가.


'이미 수작을 부렸고 여론도 돌아섰을지 모른다. 더 오래 놔두었다가는 알라딘이 말하는 것이 진실이 될 거다. 녀석이 바라는 것을 시민들도 바라게 되면...... 그땐 늦는다.'


알란이 생각했다. 그의 눈앞에 위대한 천정까지 우뚝 솟은 (혹은 천정에서부터 불쑥 내려온) 새까만 탑이 보였다.


마드와 그녀를 따르는 (추종한다고 이야기해도 좋을 것 같은데) 세 명의 가드들이 길을 열었다. 그들이 선봉이었다. 왕자의 앞을 가로막는 불충한 배신자들을 꿰뚫는 창이었다. 마사르와 안비오는 마드의 좌우에서 그녀를 보좌했다. 가장 앞선 것은 '오지마'였다. 왕실의 2급 가드인 그는 작년 왕자의 오찬장에서 벌어진 처참한 암살 미수극을 직접 목격했었다.


그날 암살 미수극에서 클라이맥스를 장식했던 왕실 가드들의 교관 '아마드로'. 오지마는 그의 바로 맞은편에 서 있었다. 아마드로가 갑자기 칼을 빼어들고 좌우의 가드들 (심지어 그가 가르쳤던 제자들)을 무자비하게 베어버렸을 때 오지마는 꿈을 꾸는 줄 알았다. 아마드로는 그에게 가드의 자격을 부여했던 교관이었다.


"너는 나이보다 훨씬 침착하고 현명하다. 네 얼굴이 괜히 늙어 보이는 것이 아닌 모양이야. 네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축하한다, 오지마."


왕실 가드 임명장을 수여받는 자리에게 아마드로가 그렇게 말하고 씩 웃었다. 오지마도 교관의 얼굴을 마주 보고 씩 웃었다. 그에게 미소 지어준 얼굴이 상상도 못할 만큼 비열하고 광포한 표정을 지었던 것을 오지마는 기억했다.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그들의 지존을 향해 검을 휘두른 장면이 여전히 생생했다.


'대체 어떻게 사람을 구워삶았는지 몰라. 하지만 분명한 건 당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거야. 알라딘 왕자.'


오지마가 생각했다. 명분이 충분했다. 비열한 둘째 왕자를 향해 검을 세워야 하는 이유가. 그렇게 비열한 자가 왕이 된다면. 소중한 사람들을 서로 반목하도록 만든 교활한 자가 왕이 된다면, 마할란트라의 미래도 끝이리라.


"너무 앞서가면 안 돼요, 오지마! 속도를 맞춰주세요!" 마드가 외쳤다.


"궁수대가 또 앞에 있습니다.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조심히 따라오세요, 대장님!"


이제는 잃어버린 '아마드로'를 대신해 오지마는 마드를 대장으로 삼았다. 그녀는 마할란트라의 시민이 아니고 심지어 지저인도 아니었지만 그가 마음으로 따르기에 충분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새롭게 따르는 대장이 <전장의 여신>이라니. 폼도 나잖아?'


아마드로가 검을 꽉 틀어쥐고 궁수들의 사정거리 안으로 몸을 날렸다. 알라딘의 가드들이 그의 기세에 우왕좌왕했다. 오지마가 길을 열고 마드가 뒤를 받쳤다. 마사르와 안비오는 벌어진 틈을 부지런히 메꾸었다. 완벽한 팀플레이. 세 명의 지저인 가드들과 그들을 통솔하는 전 세이마르 민병 대장의 눈부신 협업이 적들의 봉쇄를 날카롭게 뚫어 나갔다.


그때였다.


오지마의 눈앞에 둥그런 물체가 툭하니 떨어졌다. 이리저리 하도 많은 길 위를 구르다 보니 곳곳이 부서져 울퉁불퉁했지만 오지마는 보자마자 무엇인지 알았다. 잘린 머리였다. 심지어 머리의 주인은......


"아잉투! 대체 어디서!"


오지마가 소리쳤다. 그가 살아서 외친 마지막 말이었다. 마드가 재빨리 앞으로 뛰쳐나왔다. 하지만 '미식가'가 더 빨랐다. 오지마의 눈에 마드의 창백해진 얼굴이 비쳤다.


'대장, 뭘 보고 그리 놀란 거예요?'


오지마의 머리가 떨어졌다.


"오지마!" 마드가 외쳤다.


"야호! 여기 있었구만." 나미르도 신이 나서 외쳤다.


드디어 빌어먹을 이방인 검사의 젊은 여자 애인을 찾아냈다. 그녀가 검을 휘두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나미르가 그 모습을 보며 방긋 웃었다.



02.

"대장님, 안 됩니다!"


마드를 멈춰 세운 것은 마사르였다. 오지마의 목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득달같이 달려드는 마드의 허리를 재빠르게 감싸고 물러섰다. 길게 뻗은 미식가의 손날이 그녀의 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재차 쫓아들어오려는 나미르를 안비오가 저지했다. 그가 무서운 속도로 휘두른 검을 나미르가 고개를 번쩍 들며 피했다. 미식가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아까워라.


"제기랄!"


마드가 안타깝게 외쳤다. 오지마의 잘린 머리가 길 위를 떼구루루 굴렀다. 죽은 가드의 치켜뜬 눈이 원망스럽게 마드를 바라보았다. 마드는 차마 계속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렸다. 죽은 로엘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막의 모래 위에 언제고 파묻혀 있을 그의 머리가 문득 생각났다.


마사르는 안타까움과 분노로 부들거리고 있는 마드의 몸을 붙들고 있다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전하는? 전하는 괜찮으신 거냐?'


어느새 나타난 알라딘의 가드들이 알란을 압박하고 있었다. 마드와 남은 두 명의 가드가 송곳니 길게 난 사내와 대치하고 있는 틈에 재빨리 돌아들어간 것이다. 모두 나미르의 지시였다.


오지마가 자신의 사선에 발을 내딛기 전, 알라딘의 가드들 앞에 나미르가 나타났다. 불쑥 튀어나온 사내 때문에 몇 명의 가드가 반사적으로 검을 빼들었지만 어느 하나 달려드는 이는 없었다. 그들은 얌전히 정체불명의 남자가 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바깥에서 왔다는 저 젊은 여자를 잡아야겠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알란 왕자가 나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그를 압박하세요. 알라딘 왕자가 여러분에게 무슨 명령을 내렸든, 여기서는 내가 책임자입니다. 혹시 이견이 있는 사람이 있나요?"


있을 리가. 그들 중에는 나미르가 누군지, 미식가가 뭐 하는 인간들인지 알지 못하는 가드도 많았지만 누구도 이견을 얘기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절대 거역할 수 없는 인간들이 있는 법이다. 나미르를 보니 확실히 알 것 같았다. 특히 저것 보아라. 저 남자가 왼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라고.


'머리야. 왕실 가드의 머리를 잘라왔어.'


가드들이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나미르의 손에 과일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아잉투의 머리를 보며 가드들은 새삼 그들이 선택한 길의 부조리함을 알아차렸다. 그들이 따르는 왕자는 저럼 짐승과 같은 남자를 불러들였구나. 하지만 이제 와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마사르. 집중하셔야 합니다." 안비오가 말했다.


젊은 가드의 말에 마사르가 정신을 번쩍 차렸다. 알란 왕자가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고립된 것은 그들이었다. 오지마를 제외하더라도 그들은 셋이고 상대는 하나였지만, 수세에 몰린 것은 명백하게 그들이었다. 마사르가 힐끗 바라보니 안비오의 얼굴이 새하얬다. 지저인이라 하더라도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창백해져 있었다.


"고맙다, 안비오. 헌데...... 너는 괜찮냐?" 마사르가 물었다.


"어떤 것 같으세요?"


아비오는 지금 서 있지만 이미 죽은 것 같았다. 지금까지 수없이 강한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그중엔 왕실 가드 중에서도 최고의 무용을 자랑하는 블랑도 있었고 지금 따르고 있는 전장의 여신도 있지만) 눈앞의 상대는 차원이 다른 강자였다. 안비오가 지금껏 만났던 사람들은 적어도 '사람'이었다.


이 남자는 (하는 짓도 그렇고) 사람이 아니었다. 절대 사람이 뿜어낼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다. 칼을 쥔 안비오의 손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눈도 깜빡하지 못한 채 가쁜 숨을 내쉬는 그를 보며 나미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그리 긴장하고 계시나."


나미르가 씩 웃었다.



03.

송곳니가 길게 달린 남자가 씩 웃었다.


마드가 그를 알아봤다. 물론 알 수밖에. 그를 마주한 것은 바로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그 사이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져 아주 오래전의 일처럼 느껴졌지만.


"송곳니...... 바로 그 자입니다. 시알라님을 납치한 사내요."


마드가 가까이 다가온 마사르에게 말했다. 안비오는 그들보다 약간 앞에서 쉴 새 없이 검을 고쳐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베어서 자칫 잘못하면 검을 놓칠 것만 같았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들 수 없었다.


마드가 다시 한번 흘깃 눈을 바닥으로 내렸다. '오지마'. 방금까지 그녀와 팀을 이루었던 가드의 머리가 길 위에 나뒹굴었다. 입을 쩍 벌린 채였다. 찰나의 순간 극심한 고통이 그를 덮쳤을 것이다. 목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에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겠지만.


마드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의 명복을 빌어줄 때가 아니었다. 위험은 여전히 당당하게 앞에 서 있었으니까.


"당신, 시알라님을 어떻게 했어?"


마침내 마드가 입을 열었다. 마드의 얼굴을 흥미롭게 들여다보던 나미르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짐짓 설레기까지 한 표정이었다.


"시알라? 왕의 무녀 말이냐? 그녀는 지금 사람들 앞에서 열심히 연기를 하고 있을 테지. 아니다. 연기는 소품에게 쓰는 말이 아니려나?"


나미르가 유쾌하게 웃었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는 미식가를 마드와 가드들이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뭐가 그렇게 우스운 건데, 이 빌어먹을 놈아.' 마드가 생각했다.


"연기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왕가의 무녀님을 대체 어디로 데려간 거냐?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면......"


마사르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나미르가 무심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사내에 대해 아무런 흥미도 일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도시 위를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보는 것만큼이나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말하지 않으면? 뭐 어쩔 건가?" 나미르가 말했다.


의아한 표정이었다. 마치 주인을 열심히 위협하는 새끼 고양이를 보는 듯. 아무런 위협도 위해도 되지 않는 벌레를 보듯이.


"물었잖아. 어떻게 할 거냐고." 나미르가 한 발짝 앞으로 다가왔다.


마사르와 안비오가 재빨리 마드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두 사내의 비장한 표정을 보며 나미르가 비죽이 미소 지었다. 그의 윗입술이 살짝 말려올라가더니 날카로운 송곳니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저놈 아무래도...... 전하가 아니라 대장님을 노리는 것 같습니다."


마사르의 말에 마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죠? ...... 차라리 잘 됐어요. 저 자가 왕자님을 노린다면 우리에겐 막을 방법이 별로 없어요. 차라리 이 자리에서 막아내야 할 겁니다." 마드가 말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막아? 저 자를 우리 셋이서 막는다고? 사리안의 일격조차 간단히 피했던 자를? 짐승과 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 막히는 괴물을?


마드는 자신이 사리안을 막아서는 장면을 떠올렸다. 대사막과 같은 어깨를 가진 공화국 검사 앞에 검을 들이미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다.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송곳니 길게 난 사내의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람 앞의 등불.


'아주 시적으로 위기일발이네, 마드야.' 마드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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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139. 클라이맥스 3 +3 20.12.05 401 16 13쪽
138 138. 클라이맥스 2 +7 20.12.04 386 12 13쪽
137 137. 클라이맥스 1 +9 20.12.03 396 12 13쪽
136 136. 사냥꾼들 3 +4 20.11.29 403 14 13쪽
135 135. 사냥꾼들 2 +10 20.11.28 403 12 13쪽
134 134. 사냥꾼들 1 +2 20.11.27 400 14 13쪽
133 133. 악몽 4 +6 20.11.26 395 13 12쪽
132 132. 악몽 3 +2 20.11.22 422 15 12쪽
» 131. 악몽 2 +4 20.11.21 418 17 12쪽
130 130. 악몽 1 +6 20.11.20 418 15 12쪽
129 129. 시가전 3 +4 20.11.19 420 13 13쪽
128 128. 시가전 2 +4 20.11.15 445 17 12쪽
127 127. 시가전 1 +4 20.11.14 446 15 12쪽
126 126. 재회 3 +10 20.11.13 440 17 13쪽
125 125. 재회 2 +6 20.11.12 459 21 12쪽
124 124. 재회 1 +7 20.11.08 488 20 12쪽
123 123. 드러난 음모 2 +8 20.11.07 453 20 12쪽
122 122. 드러난 음모 1 +8 20.11.06 459 16 12쪽
121 121. 트리거 2 +4 20.11.05 465 17 12쪽
120 120. 트리거 1 +4 20.11.01 498 20 12쪽
119 119. 연극 2 +4 20.10.31 468 15 12쪽
118 118. 연극 1 +4 20.10.30 504 19 13쪽
117 117. 보일러실 +8 20.10.29 511 18 12쪽
116 116. 징벌 +13 20.10.25 543 28 12쪽
115 115. 구원자 2 +10 20.10.24 507 28 12쪽
114 114. 구원자 1 +12 20.10.23 518 26 12쪽
113 113. 오비에 +14 20.10.22 518 29 13쪽
112 112. 침입자 4 +15 20.10.18 629 2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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