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조회수 :
210,367
추천수 :
7,135
글자수 :
964,671

작성
20.12.05 10:00
조회
401
추천
16
글자
13쪽

139. 클라이맥스 3

DUMMY

01.

"너무 시간을 끌었군."


바이런이 나지막이 자책했다. 공화국 검사가 도시 어딘가를 헤집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따라잡힐 줄은 몰랐다. 분명 사막의 민병 대장은 그가 왕궁으로 갔다고 했는데.


'정말 실패한 거로군. '그분'이 실패한 거야, 그분이.'


바이런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알라딘과 시진이 암살자들을 왕궁에 들여보낸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목적이었는지도 알았다. 그가 시가전 틈틈이 좀처럼 폭발하지 않는 왕궁을 초조하게 바라보았던 것은 그 이유였다.


애초에 왕궁을 지키는 병력을 거의 두지 않았던 것은 바이런의 결정이었다. 암살자들이 움직이기 편하도록 한 조치였다. 그래도 조금의 병력을 남겨두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알란이 물었을 때 그가 뭐라고 대답했던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전하의 안위입니다. 왕실 가드를 전부 긁어모아도 부족합니다. 설령 알라딘 왕자가 왕궁을 직접 노린다고 한들 전하께서 계시지 않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왕궁으로 갔다던 공화국 검사가 멀쩡히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일이 다 글러먹은 것이다.


"겨우 따라잡았군. 보아하니 내 생각이 맞았던 모양이야. 하지만 배신한 자가 가드들의 수장일 줄은 몰랐지만."


사자가 말했다. 검사는 기절한 알란과 가드들에 둘러싸인 세 명의 가드, 그리고 피곤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가드장까지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의 표정은 태연했고 어쩌면 잔혹하리만큼 무심한 표정이었다.


"왕자를 데려가서 어쩔 셈이었나?" 사자가 물었다.


파란 불꽃이 이글거리듯 형형한 눈빛이었다. 바이런이 미간을 찌푸렸다. 켜켜이 쌓인 죄책감과 피로가 뒤섞여 바이런은 그저 피곤했다. <공화국의 검> 앞에서도 별다른 위험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평생을 싸워온 전사의 감도 완전히 무뎌져 있었다.


"그걸 내가 이야기해 주면 어쩔 것인가?"


어딘가 짜증이 섞인 목소리였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공화국 검사를 마주 보며 바이런이 물었다.


"당신은 철저히 외부인이 아닌가. 왜 이토록 왕가의 일에 개입하는 건가?"


"...... 이야기하려면 길다. 굳이 당신에게 설명해 줄 필요도 못 느끼겠고." 사자가 말했다.


"가드여. 내겐 별로 시간이 없다. 이 지하 세계도 좀 지겨워지던 참이야. 그러니,"


바이런이 사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 지겨운 하루도 이제 곧 끝이 나려는 모양이었다.


"왕자를 내려놓고 물러서라."



02.

물러서라고 했지만 먼저 달려든 것은 사자였다.


사자는 길고 긴 이 날을 어서 빨리 끝내고 싶었다. 미식가와 함께 사라진 마드 세라자드에 대한 걱정도 점점 커져갔다. 그의 눈은 걱정과 조바심이 뒤섞인 빛을 냈는데 사자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가드들과 무법자들은 그저 불안한 마음뿐이었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질 거야. 그리고 그건 분명히 나한테 좋은 일이 아닐 거야. 저건 대체 뭐야? 옷걸이?


그들 중 사자의 무용을 직접 봤던 사람은 블랑뿐이었다. 귀기 어린 모습으로 배신자 가드들과 사막의 무법자들을 베어 넘기던 블랑조차 잠시 서서 사자를 바라보았다. 마사르와 안비오는 공화국 검사가 벌이는 난장판에 입을 떡하니 벌렸다.


왕실 가드들에게 거머리처럼 붙어있던 무법자들을 사자가 걷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다 익은 벼를 추수하듯 무지막지한 옷걸이를 휘두르자 무법자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그들은 아마 머리가 날아가는 순간에도 뭐가 뭔지 제대로 몰랐을 테니.


사자는 이제 가슴을 노린다든지, 머리는 가급적 피한다든지 하는 달콤한 배려를 해줄 수 없었다. 지근거리에서 마황탄의 폭풍에 휘말렸던 그였다. 피해가 아예 없진 않았다. 게다가 표범의 송곳니를 한 미식가를 만났던 아침부터 지금까지 그는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했다.


'이제야 겨우 다시 밤이 찾아오는 모양이구나.'


사자가 문득 위대한 천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샛노란 아침의 빛을 뿜어내던 천정도 이제 대부분의 빛을 잃고 다시 조용히 잠들 채비를 하고 있었다. 너무 긴 하루였다. 그리고 그는 너무 많이 움직였다. 제아무리 '공화국의 검'이라도 지치는 법이다.


그래서 사자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운 나쁜 자들은 마지막 숨을 미처 내쉬지도 못하고 저승행이었다. 지저인들의 싸움에 돈 몇 푼으로 불려온 무법자들은 여태 한 번도 생각 못 한 최후를 맞게 됐다. 태양도 뜨지 않는 거대한 지하 세계가 무덤이 될 줄이야.


사자는 공화국의 검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조금 지친 숨을 내뱉었다.



03.

사자가 왕실 가드들의 앞길을 훤하게 열어준 사이 블랑이 바이런 앞에 섰다.


가드장 바이런은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태연히 블랑을 마주 보았다. 알란의 부왕, 알마르 하사딘이 하사했던 가드장의 검은 폭발에 휘말려 잃어버렸다. 왕가에 충성을 맹세했던 증표는 그의 아들에게 검을 겨눈 순간 사라져버렸다.


"...... 할 말이 있다면 해 보시죠."


블랑이 말했다. 피와 먼지가 엉겨 붙은 검을 쳐들어 바이런을 향해 겨누었다. 구레나룻 사이로 젖은 땀이 이미 식어가고 있었다. 블랑은 서늘한 오한을 느꼈다. 터질 듯 불타던 분노는 막상 당사자를 앞에 두고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래, 이제 어쩔 텐가. 왕자님이 깨어나시면 날 무릎 꿇리고 죄라도 물을 텐가?"


바이런이 물었다. 한때 충성스러웠던 늙은 가드장의 얼굴에 냉소가 머물렀다.


"아니, 아니. 그딴 거 말고요. 대체 뭐가 문제였던 겁니까? 아니, 처음부터 거짓된 충성이었던 건가요?"


"...... 지금 너는 내가 무슨 말을 하던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내 선택을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거다. ...... 블랑. 왕가에 충성을 바치는 것이 정말 가치 있는 것인지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왕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그냥 사표나 쓰고 물러나지 그랬어요. 당신 때문에 죽은 형제들이 몇인데 선택이니 뭐니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겁니까."


블랑이 말했다. 그리고 검을 치켜들었다.


"바이런 오카포. 왕실에 대한 반역과 마할란트라 가드들에 대한 살인 혐의로 당신을 처단하겠다."


"아니, 네가 손쓸 필요 없다. 주인을 물어버린 개가 살아서 뭐 하겠나?"


바이런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재빨리 꺼내 입안에 넣었다. 으적하는 소리와 함께 가드장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열기가 그의 얼굴을 새빨갛게 데우고 이윽고 입과 눈, 귀를 통해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블랑은 보자마자 그가 씹어 삼킨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산'이었다.


바이런은 이제 바닥에 머리를 찧어가며 온몸을 비틀었다. 그의 입에서 하얗게 거품이 일었다. 시뻘건 피도 섞여서 나오는 게거품이었다.


"끝까지 비겁하게 나오시는군. 부디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길 바랍니다."


블랑은 그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보지 않고 무심히 등을 돌렸다.



04.

산이 몸속의 내장을 모두 녹였다.


바이런은 알란이 누운 방향을 바라보고 죽었다. 알란을 들고 있던 알라딘의 가드들이 왕자를 조심히 바닥에 눕혀놓고 엎드려 사자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사자는 이들까지 죽이고 싶진 않았다. 살려준 이들이 복수에 불타며 알라딘에게 합류할까? 그럴 리 없었다. 이들의 싸움은 여기서 끝이었다. 그리고 반역의 죄는 죽을 때까지 이들을 쫓아다닐 것이다.


"눈앞에서 사라져라. 도시를 떠나야 할 거다. 언더그라운드 어디에 도망칠 곳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가드들이 줄행랑을 쳤다. 사자가 알란을 안아들고 마사르와 안비오에게 다가갔다. 힘을 모두 써 버린 두 왕실 가드는 땅에 주저앉은 채 거친 숨을 내쉬었다. 블랑도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그들에게 합류했다.


"가드장은......?" 마사르가 물었다.


"죽었어. '산'을 먹고. 처음부터 준비를 했던 모양이야, 그 노인네."


블랑이 말하고 침을 뱉었다. 피가 섞여 침이 새빨갰다.


"그렇게 비겁한 사람이었다니."


안비오가 말했다. 어린 가드의 얼굴은 아까보다 많이 진정된 듯 보였다. 이미 호흡도 많이 차분해진 상태였다. 과연 그들 중 가장 어린 가드다웠다.


"다들 고생했소. 당신들이 용감하게 싸워준 덕분에 알란 왕자를 구할 수 있었소." 사자가 말했다.


안고 있던 왕자를 바닥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안비오와 마사르가 다가가 왕자의 맥을 짚고 숨소리를 조심히 들어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블랑에게 사자가 다가갔다.


"...... 그 사람을 보았소. 우리와 함께 했던 가드 말이오." 사자가 말했다.


"가드장을 급하게 쫓느라 녀석의 끝도 봐주지 못했어요. 친구 자격도 없는 놈이죠, 저는." 블랑이 말했다.


그는 그저 알란의 얼굴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이 그제서야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나한테는 과분한 친구였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친구는 만나지 못할 거예요. ...... 나는 이 모든 일을 벌인 알라딘 왕자를 용서하지 못하겠습니다. 전하께서 들으시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그자는 내 손으로 목을 베어버릴 겁니다."


블랑이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사자를 바라보았다.


"이제부터는 우리에게 맡겨주세요. 전하께서 정신을 차리시면 병력을 수습하고 전열을 가다듬을 겁니다. 그리고 끝장을 봐야겠죠. ...... 사리안님은 사리안님의 일을 하십시오."


"...... 괜찮겠소?" 사자가 물었다. 블랑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론이에요. 그러니까 한시라도 빨리 마드님을 구출해 돌아와 주십시오. 그분은 이제 사막뿐만 아니라 마할란트라의 대장님이시기도 하니까요."


그래, 사자에게는 남은 일이 있었다. 그의 직감이 어디로 가야 할지 정확히 알려주었다. 불길한 모양으로 우뚝 솟은 검은 탑이 죽음으로 뒤덮인 도시를 음산하게 내려다보았다.



05.

마드는 아주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 이 빌어먹을 <미식가>놈은 그녀를 한순간도 가만두지 않았다. 그녀를 질질 끌고 가는 내내 쉴 새 없이 입을 주저리주저리 놀렸다. 마드는 대꾸할 여력도 없었고 대꾸하기도 싫었다. 그녀가 너무 조용하게 있다고 여긴 미식가는 종종 그의 <나무귀신>같은 손아귀를 세차게 틀어올리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녀는 머리칼이 다 뜯겨나갈 것 같은 통증을 여러 번 느껴야 했다.


"헉, 커억."


달리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마드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고통에 겨운 신음소리가 전부였다. 하지만 나미르는 그녀가 신음을 흘릴 때마다 징그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미식가의 얼굴이 아주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래, 아직 정신을 차리고 있군. 죽으면 안 돼. 함께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 죽는다는 말이야? 오, 안 되지, 안돼. 만약 사신이 당신을 붙잡고 늘어지더라도 매몰차게 거부하라고. 나는 지금 이 남자를 따라가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이야."


나미르가 꺽꺽대며 웃었다. 그리고 휘청이며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미식가였어도 폭발에 완전히 멀쩡하지는 못했다. 비록 폭발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고 스스로 몸을 부풀려 알란의 힘에 대항하고 있었으며 마황탄의 섬뜩한 빛이 뿜어져 나왔을 때 누구보다 재빠르게 뒤로 날아올랐어도 말이다. 열기에 그슬린 얼굴이 더욱 흉측한 모습을 드러냈다.


"...... 엿이나 드셔."


마드가 말했다. 열이 펄펄 나고 편도선도 터지기 직전의 화산처럼 뜨겁게 부풀었지만 그래도 한 마디 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머리채를 휘어잡힌 고통보다 더 큰 통증이 목에서 솟아올랐다. 나미르가 마드를 힐끗 쳐다보고는 히죽거렸다.


"그래, 그렇게 기운 내라고. 저기 보이지? 시커먼 탑. 녀석들이 저곳에 날 위한 비밀의 방을 만들어주었지. 거기서 우리 즐거운 시간을 보낼 테니 기대하라고."


마드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어떤 고통이 들이닥친다 해도 눈을 부릅뜨고 있을 작정이었다. 그러면 와줄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 누가 막더라도 와줄 것이다. 파란 눈의 사리안이 넓은 어깨를 휘날리며 달려와 줄 것이다.


그는 <공화국의 검>이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막의 소드마스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1 141. 두 번째 조커 1 +3 20.12.10 382 15 13쪽
140 140. 클라이맥스 4 +3 20.12.06 414 16 13쪽
» 139. 클라이맥스 3 +3 20.12.05 402 16 13쪽
138 138. 클라이맥스 2 +7 20.12.04 386 12 13쪽
137 137. 클라이맥스 1 +9 20.12.03 397 12 13쪽
136 136. 사냥꾼들 3 +4 20.11.29 404 14 13쪽
135 135. 사냥꾼들 2 +10 20.11.28 403 12 13쪽
134 134. 사냥꾼들 1 +2 20.11.27 401 14 13쪽
133 133. 악몽 4 +6 20.11.26 396 13 12쪽
132 132. 악몽 3 +2 20.11.22 424 15 12쪽
131 131. 악몽 2 +4 20.11.21 418 17 12쪽
130 130. 악몽 1 +6 20.11.20 419 15 12쪽
129 129. 시가전 3 +4 20.11.19 420 13 13쪽
128 128. 시가전 2 +4 20.11.15 445 17 12쪽
127 127. 시가전 1 +4 20.11.14 446 15 12쪽
126 126. 재회 3 +10 20.11.13 440 17 13쪽
125 125. 재회 2 +6 20.11.12 460 21 12쪽
124 124. 재회 1 +7 20.11.08 489 20 12쪽
123 123. 드러난 음모 2 +8 20.11.07 453 20 12쪽
122 122. 드러난 음모 1 +8 20.11.06 459 16 12쪽
121 121. 트리거 2 +4 20.11.05 465 17 12쪽
120 120. 트리거 1 +4 20.11.01 498 20 12쪽
119 119. 연극 2 +4 20.10.31 470 15 12쪽
118 118. 연극 1 +4 20.10.30 506 19 13쪽
117 117. 보일러실 +8 20.10.29 512 18 12쪽
116 116. 징벌 +13 20.10.25 543 28 12쪽
115 115. 구원자 2 +10 20.10.24 507 28 12쪽
114 114. 구원자 1 +12 20.10.23 519 26 12쪽
113 113. 오비에 +14 20.10.22 518 29 13쪽
112 112. 침입자 4 +15 20.10.18 629 29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