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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조회수 :
210,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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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5
글자수 :
964,671

작성
20.11.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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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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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글자
12쪽

130. 악몽 1

DUMMY



01.

사자는 종횡무진 마할란트라의 도시를 누볐다.


공화국의 검사는 비상(飛上) 중에 '정체 구간'을 발견하고 포착한 순간 몸을 틀어 그곳을 향해 튀어나갔다. 사자는 마치 쇼핑을 하는 여자처럼 가볍게 움직였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는 태도로 가슴을 내민 대학생 새내기처럼 움직였다. 검사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자신감이 넘쳤다. 좀처럼 인정하기 싫었지만 전장은 그의 집이요, 결국 돌아가야 할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기도 하고 말이지.' 사자가 생각했다.


그의 콧속으로 매캐한 냄새가 들어왔다. 뭔가에 불을 붙인 인화성 물질, 누군가를 태우는 냄새, 도시 깊숙이 배어버린 폭발의 잔향들을 맡았다. 사자의 눈이 재빠르게 냄새가 난 쪽을 바라보며 움직여야 할 곳을 가늠했다.


귓불이 넓은 그의 귀는 예민하게 도시의 소리들을 수집했다. 날붙이를 휘두르는 소리, 드잡이를 하는 소리, 상대를 가리지 않는 욕설과 고함 소리를 재빠르게 포착했다. 그러고 나면 곧장 소리가 일어난 방향으로 날듯이 달려가 계시를 전하는 천사처럼 가드들 앞에 '강림'했다.


"자, 투항하라. 전투는 알란 왕자가......"


말을 끝맺을 틈도 없이 사자를 향해 날붙이들이 날아들었다. 가드들의 살의는 절박하기까지 했다. 알란과 알라딘파로 나뉜 가드들은 형제를 향해 칼을 휘둘러야 하는 처참한 심정으로 천천히 병들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별다른 목적의식조차 없이 관성에 의해 싸움을 계속했다.


"죽여! 바깥에서 굴어들어온 검사를 죽여라!"


사자는 피아가 구별되는 순간 바로 '옷걸이'를 휘둘렀다. 사자가 세차게 휘두르자 폭풍과 같은 바람이 일었다. 검을 내리쳤던 가드들은 미처 검을 회수하지도 못한 채 일제히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사자는 계속해서 머리 대신 몸통을 노렸기에 죽지는 않겠지만 또 모를 일이다. 운이 나쁜 친구들은 그대로 위대한 천정과 이별을 해야겠지. 하지만 그것까지 일일이 챙겨주기엔 사자는 오늘 좀 몹시 바빴다.


"무기를 버려라! 알란 왕자에게 반하는 자, 죽고 싶은 자만 덤벼라!" 사자가 계속 외쳤다.


일찍이 알레르기아의 무법자들을 처단할 때 그는 무척 조심스럽게 도시 골목을 누볐었다. 그때는 일주일 넘게 (맞나? 사흘이었나? 아무튼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오래였는데) 물도 한 모금 마시지 못했을 때였다. 사막의 참혹한 현실을 채 받아들이지도 못했을 때였다. 그때 사자는 외부인이었다. 하지만 지금 사자는, 밥 대신 달빛을 드신다는 그 고상한 노인장의 말대로......


'그래, 사막의 검이시다.'


사자가 눈앞을 가로막는 담벼락을 훌쩍 밟고 뛰어오르며 생각했다. 지금은 그때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과감하고 용맹하게, 본능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검사는 아무 거리낌 없이 힘을 발산했다. 지금 그나마 <공화국의 검>을 억제하는 것은 그의 손에 들린 무기뿐이었다. 죽도록 억센 '특제 옷걸이'.


사자가 휘두른 옷걸이가 지저인의 집 담벼락을 모래성 무너트리듯 부숴 버렸다. 사자의 뒤로 돌아가 협공하려던 가드들의 연계도 순식간에 끊어져 버렸다. 그 덕에 우회로가 막혀버린 알라딘의 가드들이 우왕좌왕했다.


"제기랄! 후퇴해! 뒤로 물러나 병력을 합쳐야 한다!"


알라딘의 가드들이 외쳤다. 그들의 판단이 옳았을까? 글쎄, 그들도 알 수 없었다. 지금 살아 움직이는 태풍처럼 도시를 쓸어내리는 '공화국의 검'에게 쫓겨 가드들이 계속해서 뒤로 전선을 물렸다. 사자의 뒤를 쫓아 알란의 가드들이 서서히 전세를 회복했다. 기세가 오른 알란파 가드들이 함성을 쏘아 올리며 알라딘의 가드들을 추격했다.


신출귀몰한 움직임에 알라딘의 가드들은 도시를 마구 뒤흔드는 이방인 검사가 여럿이라고 느꼈다. 물론 사자는 혼자였다. 혼자서 전황을 천천히 바꾸어놓고 있었다. 애초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사막에서 또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02.

사자가 전황을 온통 휘젓고 있을 때, 왕실 가드 아잉투는 알란에게 합류하기 위해 발을 재촉했다.


그는 병원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그가 병원으로 옮겼던 우루사는 목숨은 건졌지만 다시는 검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암살자들이 마신 '산'에 경솔하게 담갔던 손가락은 모두 잘라내야 했다. 하필이면 그중 하나가 엄지손가락이었다. 우루사는 이제 왼손잡이로 전향하는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검을 쓸 수 없었다.


'제기랄. 대체 어디까지 타락하려는 것이오, 왕자!'


아잉투가 알라딘을 향해 울분을 토하며 달렸다. 믿을 수 있는 도시 가드 열 명과 함께였다. 그를 따라온 도시 가드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알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피곤에 지친 몸을 함께 술로 달랬던 동료들이 모조리 돌아섰다는 사실도 이해했다. 이 모든 것이 왕자들 간의 싸움이 빚어낸 일이었고, 이제는 끝낼 때였다.


"자, 좀 더 속도를 냅시다. 어서 전하께 가야 합니다!"


아잉투가 가드들을 독려하며 사거리로 접어들었다. 그때 뒤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솟아올랐다. 아잉투가 간신히 멈춰 섰다. 그의 부츠가 젖은 길 위를 아슬아슬하게 미끄러졌다가 균형을 잡았다.


아잉투의 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 하나가 들어왔다. 그가 길게 손을 뻗어 뒤에 처져서 달리던 가드 하나의 목을 틀어쥐고 들어 올렸다. 가드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목을 꽉 틀어쥔 바람에 눈이 터질 듯 튀어나왔다. 실핏줄이 터져서 피눈물을 흘리는 것만 같았다. 공중에 들린 가드의 양 발이 대롱대롱 흔들렸다.


가드를 들어 올린 사내가 무심한 표정으로 가드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사내의 눈에는 적의도 살의도 없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어쩌면.


'즐거움? 지금 즐거워하는 것이냐?' 아잉투가 생각했다.


마침내 사내가 입을 열었다. 짐승의 것처럼 길게 뻗은 송곳니가 드러났다.


"어딜 그렇게 열심히 가시나?"


사내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힘뿐만 아니라 폭력에 대한 과도한 찬미와 생명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 가득 베어 있었다. 그가 펼쳐 보이는 괴력이 아니더라도 그의 목소리는 아잉투와 도시 가드들을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했다.


"내가 묻지 않나. 어딜 가느냐고. 아! 지금 이 자 때문에 대답할 정신이 없으신가?"


사내가 씩 웃었다. 그리고 곧장 손에 들린 가드의 목을 꺾어버렸다. 겨우내 얼은 나뭇가지가 깨지는 듯한 소름 끼치는 파열음이 길 위를 울렸다. 그의 동료가 방금 끔찍한 모습으로 살해당했는데 가드들은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다. 분노도 적의도 가질 수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잠에서 깨어나면 포근한 침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이런, 이런. 눈 똑바로 뜨고 보셔야지. 여러분이 지금까지 꿈꿔왔던 악몽이 마침내 내려오신 거다, 이 말이야."


나미르가 유쾌하게 웃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섬뜩하게 빛났다.



03.

나미르는 천천히 움직였다.


<미식가>는 공화국의 검과 정반대의 위치에 있었다. 그는 하늘을 나는 대신 땅 위를 걸었다. 그리고 사자와는 정반대의 전략대로 움직였다. 물론 궁극적인 목표에 있어서는 사자와 완전히 일치했다. 미지에서 오는 혼돈.


'공포는 천천히 위엄있게 움직이는 법이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느리고 음흉하게. 어느새 마음속에 자란 공포심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늦은 거야.'


나미르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의 손에는 아까 만났던 왕실 가드 아잉투의 머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나미르가 공포심을 유발하는 49가지 방법 (그것도 점점 업데이트되는 중이지만) 중에 한 가지였다. 웬만한 사람들은 몸에서 뜯어낸 머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겁에 질려서 아무것도 못한다. 그 모습에서 저절로 자신의 미래를 연상하니까.


'공포는 미지에서 오는 거거든.' 표범의 엄니를 가진 자가 씩 웃었다.


나미르는 아무런 날붙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아잉투의 머리를 벤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뜯어냈'다. 무자비한 힘으로 목을 몸에서 떼어낼 때 사람은 비명조차 지를 수 없다. 말도 안 되게 부조리한 상황에서 사람은 비명을 지르기보다 먼저 정신줄을 놓는 것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리 대신 격한 숨소리만을 단말마처럼 내뱉는다. 통증은? 그야, 알 수 없지. 단지 표정에서 짐작할 뿐이다.


'그렇게 굳어버린 표정이야말로 최고의 작품이지. 우둔한 녀석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말이야.'


나미르가 유쾌하게 웃었다. 그가 걸어온 길 위로 핏방울이 똑똑 떨어져 흔적이 남았다. 마녀에게 잡혀가면서 빵조각을 잘라 떨어트려 놓았다는 그 영악한 남매처럼, 나미르는 그가 만드는 죽음의 흔적을 전혀 감추지 않았다.


그는 아잉투의 머리를 들고 여유 있게 전장을 누볐다. 그를 만나는 가드들은 모두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격한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미식가로서 발휘하는 압도적인 위압감에 왕실 가드의 머리가 데코레이션처럼 곁들여졌으니 가드들은 감히 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게다가 나미르는 사자처럼 그들의 머리 대신 가슴을 노린다던가 하는 자비심 따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미르는 만나는 족족 죽였다. 북쪽 숲의 <나무 귀신>들처럼 가늘고 긴 손가락이 온통 피로 물들었다. '표범(나미르)'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신이 지하 도시를 빨갛게 물들여갔다.


얼굴에 활짝 미소를 띤 채 여유롭게 길 위를 걷던 나미르가 자리에 멈춰 섰다. 그가 선 자리의 옆 건물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좀 더 드라마틱 한 소품을 구할 수 있겠는데. 나미르는 잠시 궁리하더니 건물의 현관문을 발로 차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씩 힘을 잃어가는 위대한 천정의 빛과 등잔불을 미처 갈아놓지 못한 집 주인의 게으름이 겹쳐 집 안은 어두웠다.


"......"


하지만 인기척이 있었다. 나미르는 태연히 앞만 보며 걸어갔다. 가드들의 피로 푹 적신 그의 부츠가 쩍쩍 소리를 내며 거실로 들어섰다. 거실 한쪽 벽에 천으로 만든 소파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지저인 아이 둘이 있었다. 그들의 부모는 어디 갔을까? 이미 폭발에 휘말렸을지도 모르고 정신이 반쯤 나간 채 지금쯤 알라딘의 검은 탑 앞에 몰려갔을지도 모른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어린 남매 둘만 남겨졌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부엉이처럼 동그랗게 놀란 눈을 뜬 채로 가만히 숨을 죽였다. 혹시라도 소리가 날까 남매는 서로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지저인 남매는 침조차 삼키지 않았다. 그저 부들거리는 눈으로 거실 밑바닥만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뭔가 공 같은 것이 데구루루 굴러오더니 아이들의 눈앞에서 멈추었다. 피로 흠뻑 젖은 머리카락,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게 얼어붙은 뺨, 고통에 부릅떠진 아잉투의 눈이 아이들과 딱 마주쳤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남매가 비명을 지르려던 찰나, 얼굴이 하나 더 소파 밑으로 쑥 하고 내려왔다.


엄마가 읽어주던 동화책의 늑대가, 잠투정을 부리며 어리광 피우는 남매에게 아빠가 짓궂게 흉내 냈던 흡혈귀의 얼굴이 진짜로 모습을 드러냈다.


"까꿍."


나미르가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서로의 입을 꽉 틀어막은 손 사이로 애처로운 절규만이 힘겹게 흘러나왔다. 나미르는 아이들의 비명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여자아이와 사내아이를 번갈아 보며 뭔가를 궁리할 뿐이었다.


그는 아이들 중에 '누가 더 좋을지' 고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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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139. 클라이맥스 3 +3 20.12.05 401 1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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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137. 클라이맥스 1 +9 20.12.03 397 12 13쪽
136 136. 사냥꾼들 3 +4 20.11.29 404 14 13쪽
135 135. 사냥꾼들 2 +10 20.11.28 403 12 13쪽
134 134. 사냥꾼들 1 +2 20.11.27 401 14 13쪽
133 133. 악몽 4 +6 20.11.26 396 13 12쪽
132 132. 악몽 3 +2 20.11.22 424 15 12쪽
131 131. 악몽 2 +4 20.11.21 418 17 12쪽
» 130. 악몽 1 +6 20.11.20 419 15 12쪽
129 129. 시가전 3 +4 20.11.19 420 13 13쪽
128 128. 시가전 2 +4 20.11.15 445 17 12쪽
127 127. 시가전 1 +4 20.11.14 446 15 12쪽
126 126. 재회 3 +10 20.11.13 440 17 13쪽
125 125. 재회 2 +6 20.11.12 460 21 12쪽
124 124. 재회 1 +7 20.11.08 489 20 12쪽
123 123. 드러난 음모 2 +8 20.11.07 453 20 12쪽
122 122. 드러난 음모 1 +8 20.11.06 459 16 12쪽
121 121. 트리거 2 +4 20.11.05 465 17 12쪽
120 120. 트리거 1 +4 20.11.01 498 20 12쪽
119 119. 연극 2 +4 20.10.31 470 15 12쪽
118 118. 연극 1 +4 20.10.30 506 19 13쪽
117 117. 보일러실 +8 20.10.29 512 18 12쪽
116 116. 징벌 +13 20.10.25 543 28 12쪽
115 115. 구원자 2 +10 20.10.24 507 28 12쪽
114 114. 구원자 1 +12 20.10.23 519 26 12쪽
113 113. 오비에 +14 20.10.22 518 2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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