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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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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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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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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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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13쪽

140. 클라이맥스 4

DUMMY

01.

알라딘이 병사를 모두 모았다.


도시 곳곳에 퍼져 명령이 닿지 않는 병력들을 제외하고 (그들 중 상당수는 미련 없이 도시를 떠났거나 무기를 버리고 숨어들었다.) 모을 수 있는 병사들은 모두 모았다. 그 수는 모두 200이 조금 넘었다.


아직 죽지 않은 가드, 배신의 흥분이 가라앉고 죄책감으로 가득 찬 가드, 오직 돈으로 부리는 용병들과 지저인 여성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시무룩한 무법자들까지 뒤섞인 잡다한 병력이었다. 검은 탑 앞에 모여 있던 시민들은 모두 탑 너머 도시 외곽으로 이동시켰다.


"모두 모였습니다, 왕자님." 시진이 말했다.


시종일관 음흉하고 불쾌한 미소를 지어대던 그의 얼굴에선 어느덧 아무런 웃음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폭탄 테러와 검은 탑 앞에서의 선전극(宣傳劇)은 자못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그 이후에 진행된 전략들은 어느 하나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었다.


왕궁의 저질스러운 황금 지붕은 여전히 건재했다. 그 위에 뻔뻔한 눈을 디밀고 있는 <위대한 천정>도 마찬가지다. 공화국 검사의 목을 잘라오라고 보냈던 <미식가>는 바깥 세계의 민병 대장만을 끌고 와서 시시덕 거리며 탑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개 같은 녀석이......'


마드의 얼굴을 바라보며 희희낙락해 하던 나미르를 떠올리며 시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변질된 것은 사막 뿐이 아닌 모양이었다.'


"겨우 이것뿐인가? 500이 넘는 병력을 끌어왔다고 하지 않았어?"


알라딘이 물었다. 왕자의 표정에는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지금 둘째 왕자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형에 대한 무한한 적개심과 열등감이었다.


열등감은 적개심을 더욱 불타게 하는 불쏘시개였다. 둘째의 열등감은 방금까지 도시 전역에서 볼 수 있었던 거대한 마나의 새가 나타난 뒤로 더욱 커졌다. 새의 형상을 가진 마나는 왕가의 적자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하사딘 왕가를 이을 수 있다는 증표와도 같은 것.


알라딘은 그 힘을 갖지 못했다. 그의 마나는 그저 불길하고 흉흉하게 피어오를 뿐. 혈육에 대한 적개심이 커질수록 그의 마나는 피처럼 검붉어졌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아버지는 형을 사랑했다. 그를 추종하는 것은 나였는데도.


"설마 일이 다 어그러진 것은 아닐 테지." 알라딘이 중얼거렸다.


"도시 구석구석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잃어버린 병력들이 있지만 여전히 알란 왕자에 비해 훨씬 우세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진이 말했다.


'그건 다 너 좋을 대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냐. 계속해서 계획이 기울고 있는 느낌은 그저 기우일뿐이냐?'


알라딘이 생각했다. 하지만 잿빛 머리의 시종을 바라만 볼 뿐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이미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멀리 와 버렸으니, 누구를 탓할 시간도 끝난 것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을 봐야 할 때였다.


"가시죠." 시진이 다시 말했다.


알라딘의 병력이 천천히 행군을 개시했다. 알란의 마나가 내려앉았던 장소로, 마황탄의 마지막 폭발이 일어난 곳으로,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끝내기에 합당한 곳으로.


200여 명의 병력이 육중한 몸을 겨우 뗀 짐승처럼 느릿느릿 전진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우뚝 선 검사 한 명을 발견한 것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02.

남자의 어깨는 대사막처럼 넓었다.


하지만 평생을 지하에서만 살아온 지저인에게 그의 어깨가 암시하는 사리안(대사막)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리 만무했다. 그저 저 넓은 어깨로 휘두른다면 무엇이 되었건 아주 위협적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색이 얼마간 변색된 돌로 만든 길쭉한 무언가였다. 그들 중 아주 눈이 좋은 몇몇의 무법자만이 정체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옷걸이를 들고 온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도 떠올리지 못했다.


남자는 왕실의 옷을 입고 있었다. 잿빛 먼지와 까맣게 굳어버린 피딱지가 뒤덮인 아이보리색 정복은 제 색깔을 잃어버린 뒤였다. 알라딘을 포함한 모든 병사들은 멀리서도 알 것 같았다. 그의 깊게 팬 눈이 무슨 색깔을 띠는지.


남자는 지금 이글거리는 파란색 안광을 띤 채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03.

알라딘은 홀로 200이 넘는 병력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남자를 보고 말문이 막혔다.


왕궁의 연회장에서 봤던 얼굴이었다. 형을 향해 이를 드러낸 둘째 왕자에게 다짜고짜 돌로 만든 원탁을 들어엎으려 했던 그 사내. 아까부터 계획이 차츰 어그러지고 있다고 느끼게 만든 원흉. 왕자들 간의 싸움에 끼어든 최악의 조커가 지저인의 3층 건물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감히 저놈이......" 알라딘이 으르렁거렸다.


"진정하십시오, 왕자님."


시진이 서둘러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여태보다 훨씬 창백했다. 이제야 제 나이를 찾은 듯 한참 늙어 보이기까지 했다.


"진정하라니? 놈이 혼자서 무슨 배짱으로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놈만 베어버리면......"


"아니요, 아닙니다. 제게 맡겨주십시오, 왕자님."


시진이 왕자를 다독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사자를 향해 소리쳤다.


"자네, <미식가>를 찾는구먼. 아주 재밌는 장난감을 찾은 듯 하더구나. 그는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 이미 탑으로 간 지 오래다."


알라딘이 놀라 그를 돌아보았다.


"너 지금 뭘 하는 게냐?"


"......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 저자와 충돌한다면 모든 일이 어그러져 버릴 겁니다. 한시라도 빨리 알란 왕자를 처단하고 하사딘 왕가의 왕좌를 이으셔야 합니다."


시진이 사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말했다. 아니 눈을 뗄 수 없었다. 아까부터 심상치 않은 불꽃을 띠고 있던 남자의 눈빛은 시진의 말을 듣고 나서 한층 더 커진 크기로 일렁였다. 그 불은 닿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도 거스름이 남을 정도였다. 만약 저자가 돌변하여 달려들기라도 한다면.


'제아무리 '나라고 해도' 막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시진이 생각했다.


"그렇다고 저 건방진 놈을 놔주란 말이냐? 순순히 탑으로 보내주라고?"


"어쩌면 이 자리에서 공화국 검사를 잡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분명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것입니다. 게다가 알란 왕자의 병력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해도 모자랄 판에 굳이 피해를 감수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너는......"


"네. 저는 '미식가'를 미끼로 내어준 것입니다. 저자는 분명 나미르 그자가 끌고 온 여인을 구하러 온 것입니다. 지금 당장 충돌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일만 잘 풀린다면 앞으로도 저 공화국 검사와는 부딪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진의 말은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알라딘의 입장에서 순순히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의견이었다. 고작 한 명의 검사를 피해 꼬리를 내리자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부딪히지 않을 수 있다고?"


알라딘이 사자를 바라보았다. 공화국 검사는 아까부터 손에 든 괴상한 옷걸이를 이리저리 손안에서 굴려가며 잠잠히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검사가 무슨 궁리를 하는지 왕자는 알았다. 그래서 속이 더 뒤집어질 것 같았다.


'고민하고 있구나. 저 검사가...... 지금 여기서 내 목을 치고 이 전쟁을 끝내면 어떨까 하고. 어찌 이리 건방진......' 알라딘이 속으로 혀를 찼다.


"...... 만약 저자가 나미르를 잡고 우리의 뒤를 노리면 어찌하느냐?"


알라딘이 물었다. 가까스로 화를 누그러트린 듯 풀 죽은 목소리였다.


"그렇게 되기 전에 알란 왕자를 처단해야 합니다. 왕자만 사라진다면 공화국 검사에게는 더 이상 개입할 명분도, 끝난 쿠데타를 뒤집을 이유도 없어집니다."


"쿠데타라고......" 알라딘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시진이 다시 건물 위의 검사에게 소리쳤다.


"자네, 어서 서두르는 게 좋지 않겠나? 그 미식가 놈은 아주 흉포한 녀석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너." 시진의 말을 뚝 끊으며 사자가 입을 열었다.


검사는 소리치지 않았지만 땅 위의 선 알라딘의 모든 병사들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알라딘의 병사들은 무서운 기시감에 시달렸다. 지금 저자와 부딪힌다면 우리 중 상당수는 이 자리에서 끝을 보게 될 것이다. 왕자들의 싸움이 끝을 보기도 전에.


병사들도, 왕자도, 시진도 무서운 집중력으로 공화국 검사의 말에 귀 기울였다.


"네가 나를 탑으로 보내려는 이유를 잘 안다, 시종이여. 하지만 나는 알란 왕자의 저력을 믿는다. 그는 싸움에서 결국 승리할 것이다. 그에 곁에는 이미 걸출한 인물들이 여럿 있고 너희의 결속보다 훨씬 끈끈한 병사들이 있다."


시종이라는 말에 시진이 눈썹을 씰룩였다. 하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사자가 말을 이었다.


"만약 네 말이 거짓이라면...... 너희가 이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나는 돌아올 것이다. 나는 돌아와서 해야 할 일을 하겠다. <공화국의 검>이 약속한다. 공화국 검사의 약속은 무겁다. 만만하게 보지 마라."


"...... 좋을 대로."


시진이 대답했다. 검사는 얼마간 서서 시진과 알라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라졌다.


"...... 이제 우리에게도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어서 일을 끝맺으시지요."


시진이 조용히 재촉했다.



04.

사자가 마침내 검은 탑에 도착했을 때 나미르는 여전히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괴물처럼 부풀었던 몸은 어느새 줄어들었다. 한번 변신했다가 돌아온 그는 한층 지저인을 닮아 있었다. 창백한 피부에 긴 팔과 다리는 물속 깊이 잠겼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 익사체처럼 보였다.


"사, 사리안......!" 거의 쇳소리나 다를 것 없는 소리로 마드가 외쳤다.


그녀는 애처로운 모습으로 미식가의 손에 매달려 있었다. 계속해서 질질 끌고 갔다간 '재미'를 보기도 전에 여인이 죽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미식가는 그녀의 허리춤을 잡고 번쩍 들고 있었다. 마드는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린 채 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희망과 안식이, 고통과 절망이 절반씩 얼굴 위에 떠올랐다.


사자가 검은 탑 앞의 광장에, 지하 세계 최고, 최악의 선전극이 끝난 그곳에 내렸을 때 나미르가 제자리에 우뚝 섰다. 그의 입술이 소리를 내지 않고 훌떡 뒤집어졌다. 다시 한번 짐승의 엄니가 잔혹한 모양으로 드러났다.


"...... 당연히 쫓아올 거라고는 생각했다만 이렇게 빠르다고? ...... 그 더러운 시종 놈이 알려주었나 보군."


나미르가 썩은 미소를 지었다. 검은 탑 앞에 모여 있던 알라딘의 가드들이 나미르의 등장에 몹시 긴장했다가 사자를 보고 황급히 달려 나왔다. 탑을 경비하기 위해 알라딘이 남겨두었던 병사들이었다. 나미르가 그들에게 고개를 까딱거리며 지시했다.


"너희, 저자를 막아라. 나는 조금이라도 재미를 봐야겠으니. 보기보다 별거 아닌 놈이야. 그러니 목숨을 걸고 막아라."


나미르가 말했다. 그가 한 손에 들린 마드를 내려다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그의 눈에 성욕 따위는 없었다. 그저 잔혹한 갈망만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는 여자를 욕보이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타인의 고통만이 유일한 관심사였을 뿐.


가드들이 일제히 뛰쳐나갔다. 나미르는 다시 쩔룩이며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이나 옮겼을까. 고통스러운 절규와 둔탁하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미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더없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놀이를 방해받은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건방진 공화국 검사의 발밑에 지저인 가드들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하나같이 머리가 없었다.


"그녀를 놔주어라. 네 더러운 손에 붙들려 있기에는 너무 소중한 사람이다. 내 말을 듣는다면......"


사자가 옷걸이를 가볍게 휘둘러 묻은 피를 털어냈다. 그리고 나미르를 향해 치켜 들었다.


"고통없이 죽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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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135. 사냥꾼들 2 +10 20.11.28 403 12 13쪽
134 134. 사냥꾼들 1 +2 20.11.27 401 14 13쪽
133 133. 악몽 4 +6 20.11.26 396 13 12쪽
132 132. 악몽 3 +2 20.11.22 424 15 12쪽
131 131. 악몽 2 +4 20.11.21 418 17 12쪽
130 130. 악몽 1 +6 20.11.20 418 15 12쪽
129 129. 시가전 3 +4 20.11.19 420 13 13쪽
128 128. 시가전 2 +4 20.11.15 445 17 12쪽
127 127. 시가전 1 +4 20.11.14 446 15 12쪽
126 126. 재회 3 +10 20.11.13 440 17 13쪽
125 125. 재회 2 +6 20.11.12 460 21 12쪽
124 124. 재회 1 +7 20.11.08 489 20 12쪽
123 123. 드러난 음모 2 +8 20.11.07 453 20 12쪽
122 122. 드러난 음모 1 +8 20.11.06 459 16 12쪽
121 121. 트리거 2 +4 20.11.05 465 17 12쪽
120 120. 트리거 1 +4 20.11.01 498 20 12쪽
119 119. 연극 2 +4 20.10.31 470 15 12쪽
118 118. 연극 1 +4 20.10.30 506 19 13쪽
117 117. 보일러실 +8 20.10.29 512 18 12쪽
116 116. 징벌 +13 20.10.25 543 2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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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114. 구원자 1 +12 20.10.23 519 26 12쪽
113 113. 오비에 +14 20.10.22 518 2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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