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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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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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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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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14. 구원자 1

DUMMY



01.

오조는 므시엘보다 몇 걸음 뒤에 있었다. 그는 중앙 계단의 비스듬한 위치에 서서 므시엘과 아이의 감동적인 해후를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아무리 오조라도, 궁전 안의 죄 없는 시종들과 메이드들을 단칼에 베어버린 그라도 터부시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아이를 죽이는 장면이 그랬다. 이제 곧 감정을 주체 못 한 동료가 아이를 살해할 것이다. 심지어 별 희한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를 작정으로 보였다.


'개새끼.'


현관을 등지고 아이를 안은 므시엘이 오조를 바라보며 섬뜩한 눈을 떴다. 물론 그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 므시엘은 아마 희열과 쾌락의 절정 너머 어딘가를 애타게 주시하는 중이리라. 위대한 천정의 빛이 눈부시게 들어오던 현관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은 그때였다.


"애가 싫어하는 것 같은데 그만 놔주지그래?"


아이보리색 왕가의 옷을 입은 사내였다. 처음에 오조는 왕실 가드 하나가 돌아온 것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사내는 지저인처럼 하얗고 창백한 피부가 아니라 바깥에 있는 햇빛 (아, 그 찬란한 빛!) 과 모래바람에 그을린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 피곤과 스트레스가 스며든 깊게 팬 눈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사내의 눈에 파랗게 이글거리는 불길이 담기기 시작했다.


'불! 놈이 눈에 마나를 담고 있어.'


오조가 생각했다. 므시엘은 여전히 아이를 꽉 부둥켜 안은 채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눈빛이 저 멀리 쾌락 살인마의 천국 어딘가를 헤매다가 다시 현실로 천천히 돌아왔다. 므시엘의 눈도 사내처럼 열기로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애가 무서워하는군. 너무 그렇게 꼭 끌어안고 있으니. 괜찮다, 애야. 이제 겁먹지 않아도 된단다."


남자가 말했다. 깊게 울리는 저음의 목소리. 기품과 위엄이 함께 담긴 목소리였다. 아이에게 건네는 남자의 말에는 자애로움과 따뜻함이 공존했다. 그리고 두 명의 침입자 듀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분명했다.


내가 왔으니, 애를 놔주어라.


아니면 큰일이 날 거야.



02.

부끄러움을 느낀 왕실 가드는 아주 용맹하게 싸웠다.


블랑의 솜씨를 알고 있던 가드장 바이런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블랑은 적이 휘두르는 검에 서슴없이 몸을 들이밀었다. 바이런이 보았을 때 블랑의 맹렬함은 부끄러움에서 발산되는 것 같았다. 뭐가 됐건 부하를 응원할 뿐이지만.


바이런은 바깥에서 온 여인이 태클로 밀어 넘어트린 왕자를 부축했다. 바이런은 마드와 일면식이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용감한 여인일 줄은 정말 몰랐다. 날아드는 폭탄을 맨몸으로 받다니!


'지저인 사내 열을 붙여놓아도 못 당하겠군. 아니, 내 부하들보다 훨씬 용감한걸.'


여전히 폭탄을 손에 쥔 채 블랑의 싸움을 관전하는 마드를 보며 바이런이 생각했다.


"전하를 보호하라! 마사르와 아잉투는 세라자드 대장을 모셔라!"


바이런의 지시 아래 가드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블랑과 즈린, 그리고 남은 네 명의 왕실 가드들은 도시 가드들과 검을 맞댔다.


왕가를 지키는 가드들과 도시민을 지키는 가드들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실력의 갭이 있었다. 왕실 가드들이 점점 적들을 압도했다. 전황이 기울자 뒤쪽에 처져있던 알라딘의 가드들이 주춤거리며 빠질 틈을 찾기 시작했다.


"절대로 놓쳐서는 안돼! 놈들이 무엇을 노리는지 알아내야 한다. 꼭 살려서 잡아라!"


왕실 가드들이 일제히 적을 향해 마지막 공세를 펼쳤다. 블랑과 즈린이 가드장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귀신같이 달려들었다. 블랑이 먼저 베어버린 한 명에 더해 네 명의 적이 더 쓰러졌다. 즈린과 왕실 가드 우루사가 한 명씩 제압해 땅에 눕혔다. 도시 가드 중 가장 뒤에 서 있던 자가 완전히 등을 돌린 채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때 초록색의 빛이 주민들이 완전히 빠져나간 길 위에 커다란 바위처럼 떨어졌다.


"크악!"


줄행랑을 치던 알라딘의 가드가 비명을 지르며 땅 위로 고꾸라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마나의 바위가 땅에 처박힌 사내를 짓눌렀다. 온몸이 부서지는 압박 속에서 결국 사내가 기절했다.


지저인들의 왕자가 손을 들어 마나를 마음껏 발산했다. 그의 힘에는 지금껏 보지 못한 왕자의 기분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것은 울분이었다.



03.

"잡았습니다!"


왕자가 마나를 거두자 블랑이 달려가 기절한 가드를 붙들고 외쳤다.


"잡았습니다."


즈린도 말했다. 과묵한 남자의 무릎 밑에 목뒤를 완전히 제압당한 가드가 버둥거렸다.


"오, 젠장. 이 미친 자식이!"


왕실 가드 우루사가 소리 질렀다. 그에게 제압돼 머리를 처박고 있던 가드의 입에서 게거품이 일어났다.


"독이다! 이 새끼 독을 먹었어!"


그 순간 즈린의 무릎 밑에서 발버둥 치던 가드도 똑같이 입에서 게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눈이 까뒤집어진 가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약을 빼내기 위해 즈린이 황급히 입을 열고 손을 밀어 넣으려던 찰나, 마드가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안돼요! 산이에요. 만지면 안 됩니다!"


마드가 크게 소리쳤다. 동시에 우루사가 왼손을 감싸 쥐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어냈다. 미처 마드가 말릴 틈도 없이 경솔하게 손을 집어넣었던 것이다. 우루사의 왼손 손가락 두 개가 까맣게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움켜쥔 우루사가 극심한 통증에 무릎을 꿇고 신음했다. 가드들이 그를 에워쌌다. 마사르가 입고 있던 정복을 쭉 찢어 손가락을 감싸맸다.


그 사이 산이 든 캡슐을 삼킨 두 명의 가드는 차마 보고 있을 수 없는 기괴한 모양으로 몸을 비틀어대며 고통스러워했다. 산이 혀를 모두 태우고 분출한 마그마가 넘어가듯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눈동자가 뒤집어져 흰 자가 드러났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땅을 긁어대느라 손톱이 모두 벗겨졌다.


이윽고 그들의 몸속에서 장기를 모두 태운 산의 열기가 밖으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새까만 연기가 몸에 있는 구멍마다 새어 나왔다. 가드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황망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루사를 어서 왕립 중앙 병원으로 옮겨라! 그리고 블랑, 너는 놈의 입에 재갈을 물려라."


알란이 직접 나서 명령을 내렸다. 스스로 몸속을 태우는, 적들의 처절한 저항에 넋이 나가있던 가드들이 그제야 최면에 깨어난 듯 움직였다. 가드 둘이 우루사를 부축하여 병원으로 움직였다. 블랑은 뒷주머니에 차고 있던 포승줄을 꺼내 기절한 적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즈린이 마드에게 다가왔다.


"주십시오, 대장님. 이건 이제 제가 맡겠습니다."


과묵한 남자가 처음으로 마드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이었다. 마드가 잠시 기억에서 잊힌 폭탄을 내려다보았다가 즈린을 쳐다보았다.


"아니요, 이건 제가 보관을...... 그러니까 혹시나 마나라도 닿는다면."


"괜찮습니다. 저는 재주가 없는 놈이니 마나 따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믿고 넘겨주십시오. 그보단 대장님의 마나가 섣불리 일렁거릴까 봐 두렵습니다."


즈린이 마드를 안심시키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없이 어색하고 끝없이 다정한 미소였다. 마드가 마황탄을 그에게 넘겼다. 폭탄이 즈린의 손으로 넘어가는 순간 그녀는 잠시 숨을 참았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인 거냐. 누가 설명을 좀 해다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알란이 마침내 입을 뗐다.


"그리고...... 그 사내는 어디 있느냐? 공화국에서 온 검사 말이다."


왕자가 물었다.



04.

사자는 결국 왕궁으로 돌아왔다.


이야기했듯이 그는 논리와 직관이 부딪히면 대부분 직관에 따르는 남자였다. 생각이 단순할수록 검은 빨라진다.요크가 항상 강조하는 바였다. 공화국 검사 중 그의 지론을 가장 충실하게 따르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사자일 것이다.


사자는 적의 의도가 왕궁을 비우는 것이란 사실을 알았다. 모르는 것은 그들의 목적이었다. 그러니 '와서 직접' 확인해보면 될 일이었다. 잠시 그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던 왕자의 안위?


그거야 믿고 맡길 수 있는 훌륭한 동료가 있지 않은가.


"내 걱정 말고 다녀와, 사리안. 여기 훌륭한 왕실 가드님도 계시니까."


마드가 장담했듯 그녀는 훌륭하게 왕자의 목숨을 구했다. 사자는 그의 일을 하면 되었다. 직관에 따라서.


그렇게 돌아온 왕궁에서 사자는 처음 보는 지저인 소녀의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 역시나 처음 보는 지저인 사내들로부터 말이다. 사자는 정면에 보이는 지저인의 옷에 주목했다. 까만 셔츠와 마로 된 바지를 입은 그의 옷은 원래 색깔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피로 얼룩져 있었다. 충혈된 눈도 이미 수많은 피를 보았다는 증거였다.


'게다가 나의 등장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군. 초조해하는 표정을 보니 뭔지는 몰라도 아직 '임무'를 성공시키지 못한 모양이고.'


사자가 그들에게 말을 건네며 (애가 싫어하는 것 같은데 그만 놔주지그래?) 생각했다.


'정면에 선 자는 임무의 수행이 더 늦어질 것을 걱정하는군. 한데 아이를 안은 이 남자는......'


사자는 언더그라운드에 들어와 오랜만에 붉은색 마나를 보았다. 알란 왕자의 동생, 알라딘이 뿜어냈던 붉은 기운 말이다. 마나는 (공화국의 정의에 의하면) '강력한 의지의 발현'이니만큼 마나의 색깔은 그들이 무엇을 강력하게 주장하는가에 달려 있었다.


붉은색 기운은 대부분 위험했다. 아우바에서 만났던 사막의 마녀가 뿜어냈던 기운도 붉었다.


그리고 지금 등을 돌리고서 마치 소중한 딸을 안듯 아이를 꼭 끌어안은 이 남자. 이 자의 몸에서 일렁이는 빛은 붉은 정도가 아니었다. 검붉은 피의 색깔이었다. 그것도 날붙이에 베인 살점에서 흘러나오는, 확실한 희생을 담보하는 붉은 핏빛이었다.


'분명하다. 마나의 색깔만 봐도 알겠어. 아주 오랜만에 보는 부류로군.'


수없이 많은 적을 상대해본 연륜 있는 <공화국의 검>. 사자는 확신했다. 지금 그의 앞에서 등을 돌리고 앉은 자는 살인마였다. 그것도 사람을 죽이는 일에 거리낌이 없고 때로는 즐거워하는 타입이었다. 쾌락 살인마. 사자가 이런 부류의 인간들을 만나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지저인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거지. 이토록 일그러진 정신을 가진 인간이 태어나는 것을 보면.'


"애가 무서워하는군. 너무 그렇게 꼭 끌어안고 있으니. 괜찮다, 애야. 이제 겁먹지 않아도 된단다."


사자가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아이의 눈은 공포로 가득했다. 차갑게 얼어버린 표정을 보니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죽음을 목격한 모양이었다.


"내 말 들리지 않나? 아이를 놔주라고 했다." 사자가 한 걸음 다가서며 재차 말했다.


"어이. 계속 그렇게 다가와봐라."


등을 돌린 사내가 말했다. 그가 계속 아이를 안은 채로 말을 이었다.


"목소리를 듣자 하니 제법 네 힘에 자신이 있는 모양인데...... 계속 그렇게 까불어봐라. 이 아이가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 네놈도 생각이 바뀔 테지만 말이야."


사자는 사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정신병자가 하는 말 따위 조금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대신 사슬을 든 손에 조용히 힘을 주었다.


"오조."


사내가 말했다. 그 말에 정면으로 사자와 대치하고 있던 남자가 등을 돌린 사내를 바라보았다.


"내게 트로피를 가져와, 오조. 서두를 것 없어. 놈은 조금도 움직이지 못할 테니까."


사자의 눈앞에 붉은 돔이 내려앉은 것은 그때였다. 그리고 오조라고 불린 남자가 사자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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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134. 사냥꾼들 1 +2 20.11.27 400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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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132. 악몽 3 +2 20.11.22 422 15 12쪽
131 131. 악몽 2 +4 20.11.21 417 17 12쪽
130 130. 악몽 1 +6 20.11.20 418 15 12쪽
129 129. 시가전 3 +4 20.11.19 420 13 13쪽
128 128. 시가전 2 +4 20.11.15 445 17 12쪽
127 127. 시가전 1 +4 20.11.14 446 15 12쪽
126 126. 재회 3 +10 20.11.13 440 17 13쪽
125 125. 재회 2 +6 20.11.12 459 21 12쪽
124 124. 재회 1 +7 20.11.08 488 20 12쪽
123 123. 드러난 음모 2 +8 20.11.07 453 20 12쪽
122 122. 드러난 음모 1 +8 20.11.06 459 16 12쪽
121 121. 트리거 2 +4 20.11.05 465 17 12쪽
120 120. 트리거 1 +4 20.11.01 497 20 12쪽
119 119. 연극 2 +4 20.10.31 468 15 12쪽
118 118. 연극 1 +4 20.10.30 504 19 13쪽
117 117. 보일러실 +8 20.10.29 511 18 12쪽
116 116. 징벌 +13 20.10.25 543 28 12쪽
115 115. 구원자 2 +10 20.10.24 507 2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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