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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웅스 님의 서재입니다.

드래곤빨로 기사 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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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제웅스
작품등록일 :
2020.07.24 14:26
최근연재일 :
2020.08.13 12:35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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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8
추천수 :
79
글자수 :
126,473

작성
20.07.25 18:00
조회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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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3쪽

1화

DUMMY

“어우~ 미켈씨 덥겠다~.”

“그러게, 갑옷에 아지랑이 좀 봐~. 좀 벗어요, 벗어~”


더워죽겠는데 뒷전에서 들리는 하이톤의 인사치레는 짜증만 돋울 뿐.


“아뇨... 저는 괜찮....”


그래도 웃는 낯으로 돌아보니 말 건넨 두 마법사는 보이지 않았다.

점심메뉴를 들먹이며 로비로 나서는 저들에게 신입 기사보의 안부 따위는 애당초 관심사가 아니었다.


‘나도 벗고 싶다. 이 쇳덩이들...’


하지만 연일 까칠하게 구는 계장 기사 그라딕은 이 더위에도 갑옷 착용을 강조했다. 게다가 미켈의 뒤통수에 날리고 있는 저 감시의 눈초리.


‘초장에 군기 잡는 건가...?’


돌아보지 않아도 그라딕의 도끼눈이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지면 또 무슨 잔소리를 날릴지.

구석자리에 꼼짝 않고 정자세로 앉아있는 것. 미켈에게 주어진 임무의 전부다.

종종 민원인들이 다가와 말을 걸면 그마저도 옆자리의 마법사가 얄밉게 채어간다. 하긴 실무를 모르니 해줄 것도 없다만.

하루 종일 앉아있는 것도 꽤나 고역이었다. 이건 뭐 감옥과 다를 게 없었다.


‘제길, 그때 내가 뭔 짓을 했길래...’


그라딕의 첫인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신입 환영식이라고 꽤나 거나한 술자리까지 베풀지 않았던가.

근데 그 날 뭔 일이 있었나 보다. 그 다음날로 미켈은 이 자리에 처박힌 것. 덤으로 계장의 도끼눈까지.

기억나는 게 있으면 만회라도 해보련만. 만취해버린 미켈의 기억은 깨끗이 지워져 있었다.


‘아 씨.... 주는 대로 다 받아먹는 게 아니었는데...’


한숨을 내쉬다 잠시 자세를 흐트린 미켈. 그라딕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이봐, 미켈!”


제길 꼬투리 잡혔네... 미켈은 조심스레 계장을 돌아보았다.


“점심시간에 왜 그러고 앉았어! 밥이나 먹고 와!”

“예...”

“으이구, 속 터져. 저런 게 어떻게 기사보가 됐대?”


그라딕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갑옷 차림으로 출근하기 시작한 것은 회식 다음 날부터였다. 아마도 미켈을 쥐어짜기 위한 속셈이겠지.

내근직 기사는 관례상 갑옷을 입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계장은 기사 복장 규정 운운하며 기어이 미켈에게 갑옷을 빠짐없이 다 착용하라고 명한 것이다.

요즘 갑옷이 어디 한 두 푼인가. 가난한 미켈의 집안에서는 가볍고 매끈한 신형 갑옷을 마련해줄 도리가 없었다.

결국 아버지가 쓰던 낡은 판금 갑옷이 간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


‘아... 더럽게 무겁네.’


과거 변방의 드래곤 슬레이어였다는 아버지. 그의 갑옷은 무식하게 크고 두꺼웠다. 당대의 유행인지 가공할 만치 부풀려 놓은 견갑장식 때문에 어깨가 빠질 것 같다.

미켈이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날 때 계장 그라딕은 이미 로비를 지나 입구를 나서고 있었다. 순간 햇빛을 받은 계장의 견갑이 푸르스름하게 빛난다.


‘저 인간, 갑옷에 마법 걸어놨네.’


덩치도 별로 안 좋은 양반이 갑옷을 입고도 이상하게 가뿐해 뵈더라니. 내근직 기사가 그 비싼 경량화 마법을 시전해놨을 줄은.


“미켈씨, 따로 생각해둔 메뉴 없으면 나랑 같이 나가지.”


그라딕이 사라지자 미켈의 사수인 선배 기사보 플래터가 넌지시 말을 걸어왔다.



***



“아, 이 친구 답답하네.”


그라딕의 까칠한 반응에 대해 먼저 운을 띄운 건 플래터였다.


“신입이 이런 땡보직을 맡았으면 응당 뱉어내는 게 있어야지.”

“예?”

“여기 들어올 때 저 윗선엔 뭔가 찔러줬을 거 아냐? 계장도 내심 콩고물을 바라고 있는 거지.”

“찔러주긴 뭘 찔러줍니까. 전 그냥 가란 데로 오건데요.”

“뭐? 당신 청탁으로 온 거 아냐?”

“저 당당히 시험 패스해서 발령 받아 온 겁니다!.”


명색이 드래곤 슬레이어의 자식이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특훈을 받은 미켈이었다. 타고난 강골의 아버지는 얼마나 혹독하게 훈련시켰던가.


‘훈련 좋아하네. 그건 학대지!’


불현 듯 떠오른 기억에 치가 떨렸다.


‘그래도 그 덕에 승점에 가산점까지 얻어서 기사보가 됐으니 일단은 감사해야 하나?’


아닌 게 아니라 미켈은 당당히 토너먼트 우승을 거머쥐고 견습기사를 건너뛰어 기사보에 임용되는 특전을 얻었다. 뭐... 결승은 부전승이라 찜찜하긴 하다만.


“그냥 여기에 보냈다고? 당신 같은 케이스는 본 적이 없는데...”


시험을 통해 평민에게도 기사의 길이 열린 것은 오래지 않았다.

내전 종료 후 잔잔한 세파 속에서 귀족, 평민 구분은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전쟁이 없으니 평민이 귀족 끝물인 기사 작위라도 받을 일이 있나. 그러다 보니 귀족들끼리 품앗이하듯 주고받으며 기사작위를 독점했다.

나이만 차면 작위를 받게 되니 귀족 자제들의 파이팅이 떨어질 수밖에. 그 결과는 기사 역량의 폭망!

내전 끝났다고 천년만년 평화가 오나. 전쟁만 없다뿐이지 도둑놈 심보의 타국들이 건재한데.

결국 신분을 막론하고 1차 필기, 2차 토너먼트 시합으로 이뤄진 시험을 통해 기사를 선발한다는 왕명이 떨어졌다.

기사는 곧 귀족. 기성 귀족들이 신흥 귀족의 탄생을 그냥 두고 볼 리 없지. 결국 그들은 기존의 기사를 견습기사, 기사보, 기사의 3등급 체계로 분리하는 꼼수를 선보였다.

시험 합격자는 통칭 기사. 하지만 작위가 주어지는 건 3등급 중 최상위인 기사 신분부터. 즉 견습기사와 기사보를 거쳐 기사의 반열에 올라야만 비로소 귀족 끝물이나마 맛볼 수 있게 해둔 것이다.

게다가 고위 귀족들은 패스와 동시에 기사 작위를 받는 특혜를 두고 평출들은 견습기사부터 뺑이치다 제풀에 나가떨어지게 핸디캡도 걸어두었다.

하지만 귀족 자제라 해도 합격을 해야 꿀 빠는 어드밴티지를 받지.

예나 지금이나 기사의 제일 덕목은 몸빵이 아니던가. 국왕은 2차 토너먼트의 승패 여부 및 순위에 가산점을 잔뜩 부여했으니 돈 없고 힘깨나 쓰는 평민 장정들이 대거 몰려드는 것은 당연한 일.

유약한 도련님들이 이들을 상대로 이기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도 귀족들은 언제나 그렇듯 해답을 찾았으니, 바로 시합장에서 이뤄지는 즉석 승부조작!

귀족 측 브로커가 제시하는 금액은 견습기사의 몇 년 치 녹봉. 이를 무시할 수 있는 평민 수험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당연히 미켈에게도 브로커들이 접근했지만, 단순 잡상인인 줄 알고 말도 안 섞은 미켈이었다.


“그럼 선배는 계장님한테 뭘 찔러주셨는데요?”

“봤잖아. 오늘 입은 갑옷. 야전 물 좀 먹었다고 퍽이나 장비 욕심이 많더라고. 마법 걸고 마나도 빵빵하게 채우느라 좀 썼지.”

“아...”

“그럼 자네... 집은 좀 사나?”


윗물이 더러우면 아랫물도 더러운 법.

고위 귀족에는 못 끼어도 행세깨나 하고 사는 집안의 자제들은 출세를 위한 나름의 방편이 있었다.

바로 돈을 풀어 노른자위 같은 보직을 선점하는 것. 고위층들이야 패스가 목적이니 시합장에서만 돈이 든다만 이들은 패스 이후에도 땡보직 사수를 위해 이중의 돈을 풀어야 했다.

공교롭게도 미켈이 발령 받은 왕도 관리서는 알짜 중의 알짜인지라 플래터가 오해할 수밖에.


“저희 아버지... 집에서 그냥 노십니다.”

“...”


드래곤 사냥이 합법이던 시절, 서식지를 따라 험준한 산지로만 나돌던 아버지. 별안간 떨어진 드래곤 보호령에 산골 벽지에서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드래곤 슬레이어가 당대에는 먹어줬다니, 근방 산골에서는 최고 미녀였던 어머니를 만나 살림은 차렸다는데, 그렇게 무능력할 줄은 몰랐겠지.

싸우고 부수는 것 말고는 당최 할 줄 아는 게 없는 양반이었다. 기억나는 한에서는 무위도식했던 모습밖에 없다.

그래도 종종 산짐승을 사냥해오는 덕에 배는 곯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직업으로 삼은 건 아니고. 드래곤 때려잡던 손으로 사냥꾼이나 될 수는 없다며 산짐승도 야밤에 남몰래 잡아다 먹었더랬다.


“어... 그래도 계장님한테 성의는 좀 보이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보통 어느 정도나?”

“뭐... 잘 생각해봐.”


듣고 보니 별 거 없는 처지인데 알려준들 뭐하나. 그냥 손절할 생각으로 플래터는 넌지시 미켈과 거리를 벌렸다.


‘듣고 보니 이거 더러운 판이네.’


산골에서 나고 자란 미켈이 기사 시험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알 리 없었다. 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았으니 이런저런 더러운 꼴 볼 일이 있겠나.


‘그냥 때려치울까?’


사실 산골 생활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드래곤 슬레이어의 피가 어디 갈까. 소년기부터 웬만한 사냥꾼 저리 가라할 정도의 사냥 실력을 뽐냈던 미켈. 체면 때문에 무위도식하는 아버지와는 달리 사냥판에 끼는 것에 거리낌도 없었고 실적도 꽤 좋았다.


‘이대로 가면 아버지가 난리 치겠지...’


뒤늦게 기사 시험 소식을 접한 아버지는 미켈에게 응시를 강요했다. 본인은 연령 제한 때문에 안 된다나.

불만 없는 삶에 괜스레 공부하기 싫어 대들었다가 참 많이도 맞았다.


‘자식 된 도리로 맞아드린 거지. 나도 성인인데 제대로 맞서면...’


아버지는 아직 정정하셨다. 더군다나 드래곤을 때려잡은 경험이 있는 실전파.


‘...좀 더 참아보자!’


모르는 새 플래터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미켈은 손절 당한 줄도 모르고, 점심의 답례라도 사가자는 생각에 시장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뭘로 계장 놈 입을 틀어막는다?’


자신의 형편에 마법 갑옷은 언감생심.

나름 장비 성애자라니 무기류로다가...

칼? 기사는 롱소드지. 그런데 그것도 가격이 만만치 않다.

방패? 이것도 쓸 만한 건 비싸지.

지갑이 부실하니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


‘대출이라도 받아? 나도 이젠 미스릴 밥그릇이니 한도는 좀 될 텐데. 지금처럼 뺑이치느니 그냥 돈 좀 먹여서...’


-에라이 이놈아! 기사가 돼갖고 생각하는 꼴 하고는. 요새 기사놈들은 하나같이 파이팅이 없네.


“뭐야! 어떤 놈이야!”


미켈은 갑자기 들리는 귓속말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곁눈질 하는 행인들만 있을 뿐, 곁엔 아무도 없었다.


-어라? 이 자식 보게. 너 이게 들려?


“이런 씨... 어떤 놈이...”


미켈의 사나운 서슬에 행인들은 멀찍이서 수군대기 시작했다. 어깨뽕 만발한 구식 갑옷까지 두른 그의 모습은 꽤나 위협적이다.


“이봐, 젊은이. 그런 차림으로 이러면 사람들이 무서워하네.”


누군가 미켈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렸다. 금발인지 백발인지 모를 누르스름한 머릿결에 번쩍이는 장신구로 온몸을 휘감은, 좀 이상해 뵈는 노인.


“보아하니 저쪽 왕도 관리서에 근무하는 기사 같은데, 이러다 민원 먹는 수가 있어.”


안 그래도 계장 등쌀에 고역인데 꼬투리 잡혀 좋을 건 없지.


‘거 며칠 시달렸다고 환청까지 들리나?’


미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얼른 자리를 피했다.

노인은 멀어지는 미켈을 한동안 미심쩍은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는 서서히 미켈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



“알아보니 별 거 없던데요.”

“그런데 어떻게 여길 들어왔대?”

“글쎄요. 뭐 착오가 있었나 보죠.”

“그래... 가서 일 봐.”


점심시간 종료 직전 자리에 들어온 미켈을 보며, 플래터와 그라딕이 수군대고 있었다.

보통 환영식 자리에서 슬쩍 운을 띄우면 알아서 뭔가를 갖다 바치는 것이 신입의 바람직한 자세. 하지만 계장은 으레 그러듯이 미켈을 건들었다가 엉뚱한 주사만 된통 뒤집어썼던 것이다.

이튿날부터 신입 조련에 들어갔으나 사실 조금 켕기는 게 있었다. 저리 뻗대는 게 뭔가 상당한 뒷배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하지만 알고 보니 쥐뿔도 없는, 덜떨어진 촌놈이었다는 거다.


‘간만에 한 몫 잡나 했더니... 저 자리가 비어야 딴 놈이 오지. 내 기필코 저 놈을 여기서 내치고 만다!’


그라딕은 자리로 들어가는 미켈을 예의주시했다. 눈치를 보며 쭈뼛거리는 것이, 지금이야 말로 닦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미켈! 지금 몇 시야? 왜 이렇게 늦어?”

“아직 점심시간 안 끝났는데요...”

“어디 말대꾸야? 나 때는 말이야...”


그때 로비 가득히 울리는 민원인과 문지기의 실랑이가 그라딕의 라떼질을 덮어버린다.



“이런 거 데리고 건물 내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이런 거라니! 우리 찰스가 무슨 물건인 줄 알아?”

“공공장소 동물 반입 금지 모르십니까? 밖에다 묶어두시던지.”

“이 무더위에 어딜 밖에 내놔요!”


소란에 묻힌 그라딕이 로비 쪽을 한 번 째려보더니 덩달아 악을 쓰며 말을 이었다.


“나 때는 상관이 기라면 기고...”


-이 아줌마 또 이러네. 아... 쪽팔려...


그때 계장의 잔소리보다 더욱 선명하게 미켈의 귓속을 후비는 목소리!

미켈은 급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와 눈이 마주친 것은...

민원인에게 목줄이 잡힌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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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9화 +2 20.08.11 44 1 13쪽
19 18화 +2 20.08.10 42 1 12쪽
18 17화 +2 20.08.09 37 2 13쪽
17 16화 +2 20.08.08 45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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