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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6.22 20:57
연재수 :
20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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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79,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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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5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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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8화 뒤풀이

DUMMY

28화 <뒤풀이>



한바탕의 다락방 소동이 끝나고. 캣니스와 일행은 2층 방에 모였다.

그들은 한 자리씩 차지한 채 바솔루트의 악행에 대한 궁금증을 종결시켜줄 인물을 마주했다.

상대는 조금 전까지 애걸복걸하던 붉은 머리 여기사. 큰 고비를 넘긴 지금은 다소 거만해진 여기사이다.

그녀를 둘러싼 상황에서 이카루스가 입을 열었다.


“그래, 성기사. 이렇게 너를 만난 이유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기사가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이카루스는 입을 벌리고 있다가 관자놀이를 짚었다.


“있잖아 이런 태도는 조금 곤란한데? 질문에 잘 답해주면 본국으로 돌려보내 줄게, 그러니 서로 챙길 거만 챙기는 게 어때?”

“흥, 웃기는 소리!”


조심히 건넨 제안은 코웃음에 무시당했다.


“내 모든 것은 열한 번째 날개님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분이 명하지 않는 한 어떠한 말도 하지 않겠어!”

“열한 번째 날개라고···?”


이카루스는 얼굴을 찌푸렸다.

열한 번째 날개의 명성에 대해서 그도 익히 알고 있었다.

바솔루트 최연소 기사 단장이자 최초로 여신의 날개를 하사받은 자.

그 이름이 나오자 골머리를 앓았다.


‘설마 여신의 날개도 이번 일에 연루되었을 줄이야. 그렇다면···’


“오지 않아요.”

“네?”


이카루스는 눈을 깜빡였다.

캣니스가 침대 위에 걸터앉은 모습으로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열한 번째 날개는 오지 않아요. 바솔루트도 오지 못하고요. 그러니 지금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게 처우를 확실히 하세요.”

“그게 무슨···.”


덜컹, 의자가 흔들렸다.

여기사는 캣니스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의자에 묶여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망연자실했다.


“조금 전의 말 제대로 설명해야 할 거야.”

“더 설명할 것도 없어요. 말 그대로인걸요.”

“너···!”


여기사가 눈동자에 이채를 띤 채 빠드득 이를 갈았다.

분노를 고스란히 드러내다가, 이내 무언가를 떠올리고 입꼬리를 비죽였다.


“알겠어. 너, 나를 이간질하는 거구나?”


더러운 짓을 도맡는 발자취의 특성상 이간질은 떼놓을 수 없는 관계였다.

여기사는 얍삽한 속셈을 다 간파했다는 듯이. 의자에 기대앉아서 다리를 꼬았다.


“하지만 안 됐네. 나는 그런 말에 속아 넘어갈 정도로 어리숙하지 않거든.”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 작은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사가 여유 있는 태도로 캣니스를 본 그때였다.


“뭐야 그 표정은···.”


눈동자 안에 담긴 감정을 엿보게 되자 와락, 인상을 구겼다.

여기사는 의자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사제 너! 그 표정 무슨 의미야?”

“어허, 일어서지 말게. 본인의 입장을 기억하게 성기사여.”

“덩치! 네 놈한테 물은 기억 없어. 야, 사제 너.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똑바로 해. 남자들 뒤에 숨지 말라고!”


발버둥 치는 것을 따라서 의자가 흔들렸다.

이카루스는 작은 칼을 들이밀어서 그녀를 제압했다.

브레드는 등 뒤의 캣니스를 곁눈질했다.

캣니스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크흠. 성기사여 물론 자네는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네. 하지만 지금은 너무 흥분했군. 조금 진정하면 그때 이야기를 들려줌세.”

“흥분한 적 없어. 그냥 저 계집의 눈빛이 재수 없었을 뿐이야.”

“기사님께 불쾌감을 드렸다니 영광이네요.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너···!”


여기사가 다시 눈동자에 이채를 띠었다.

브레드가 곧바로 제지에 나섰다.


“얌전히 있게. 우리야 괜찮지만 저기 있는 그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일이니.”


브레드는 그녀를 가로질러서 방 한쪽을 가리켰다.

문 바로 옆에는 가더가 귀를 후벼파고 있었다.


“뭘 봐? 또 화장실 가고 싶어?”

“딸꾹···.”


여기사는 가더의 한마디에 눈을 내리깔았다.

전투 중에 여유를 부릴 정도의 실력자. 동시에 포로를 인간으로 취급도 해주지 않는 남자.

무의식에 각인된 두려움이 이성을 넘어섰다.


“나의 우상이여. 겁을 주면 어떡하는가?”

“아니, 내가 뭔 겁을 줬다고···.”

“두 분. 그리고 캣니스 양과 성기사 분도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니 진정해주세요.”


이카루스가 험악해진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쓸데없는 감정 소모로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캣니스 양. 저도 조금 전의 말이 궁금했어요. 위대한 팔라딘이 다시 이곳에 오지 못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캣니스는 내키지 않는 모습으로 품에서 한 물건을 꺼내었다.

그것은 하얀색 장갑과 검은색 장갑.

두 장갑 위에는 셀레브리디 교단의 징표가 새겨져 있었다.


“돌아오지 못한다. 아니. 다시 볼 수 없다는 말이 맞겠네요.”

“설마 끝을 본 건가요?”


이카루스의 물음에 한순간 공기가 정체되었다.

캣니스와 가더를 제외한 모두가 충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 웃기지 마!”


그 말을 부정한 여기사가 의자와 함께 쓰러졌다.

바닥에 이마를 찧었음에도 목청을 높였다.


“웃기지도 않는 거짓말은 집어치워! 너희 같은 놈들에게 당할 단장님이 아니라고!”

“성기사에게 장갑은 결백의 상징이에요. 장갑이 원래의 주인으로 되돌아가지 못한 경우는-”

“그 입 닥쳐! 닥치라고! 그 이상 망발을 지껄이면 가만두지 않겠어!”


여기사는 더욱 악에 받쳐 외쳤다.

성기사의 장갑은 결백함의 상징이다.

결투를 신청하거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하지만, 이를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는 능력의 부족 또는 신성의 타락을 뜻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이리 내놔! 너 따위가 함부로 가질 물건이 아니라고! 당장 이리 내-!”


손목을 묶은 밧줄을 이빨로 물어뜯으며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발자취의 능력은 힘이 아니라 기술에 의존한 것이다.

밧줄을 풀 능력이 그녀에게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상황을 뒤집을 수 없었다.


“발버둥 친 대가로군.”


브레드가 한마디를 하였다.

여기사의 찢어진 이마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또 언젠가 입은 상처가 터졌는지 셔츠 옆구리가 붉은색으로 변해갔다.


“기존에 있던 상처가 터진 모양입니다. 제가 이야기가 가능한 수준까지 고쳐보도록·····.”

“그러실 필요 없어요.”


이카루스는 여기사에게 뻗었던 손을 멈췄다.

캣니스가 그를 지나쳐서 여기사의 상처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금빛 신성력이 비눗방울처럼 떠오르기 시작하자 이마에 찢어진 상처도, 셔츠를 적신 검붉은 액체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래요. 저는 캣니스 양의 선택을 존중하겠습니다.”


이카루스는 캣니스의 선택을 존중했다.

완치시킬 생각이 없던. 일방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했던 꼼수가 가로막혔음에도 말이다.


“집어치워 네 도움 같은 건·······.”

“전 당신 부하가 아니니 명령하지 마세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캣니스의 선택이 더 옳았을지 모른다.

여기사의 탁한 눈동자 색과 가녀리게 떨리는 어깨.

평생을 성기사로 살아왔던 삶이 무너졌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기사님. 서열 2위라는 분이 전해달라고 했어요. 기사단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라고요.”


캣니스는 일찍이 들었던 말을 그녀에게 전하였다.


“웃기는 소리! 칼이 그런 말을 할 리 없잖아?”

“그렇게 말할 거라고도 했어요. 그리고 이럴 때 이 말도 전해달라고 했죠.”


-스륵


손을 옥죄던 압박감이 풀리고.

여기사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제 손목을 보았다.

캣니스가 그녀를 구속하던 밧줄을 풀어준 것이다.


“너-!”

“캣니스 양!”


이유야 어떻든. 여기사는 잘된 일이라 여기며 캣니스를 덮쳤다.

바닥에 떨어진 나무 조각을 경동맥에 들이밀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당장 저리 비켜! 이 계집의 목이 뚫리는 걸 지켜보고 싶은 건 아니겠지?”


이카루스가 순순히 과일 깎는 칼을 떨어뜨리는 모습을 확인했다.

여기사는 캣니스를 더욱 단단히 붙잡으며 무사히 빠져나갈 궁리를 하였다.


‘이곳을 벗어날 때까지만 인질로 잡고, 그다음에 몸을 빼서 도망가면····.’


조금만 더 지나면 도주극이 벌어질 터였다.

캣니스의 이어진 말 한마디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셰인.”

“뭐···?”


여기사의 안색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보는 이조차 그녀가 정신적으로 막다른 길에 몰렸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여기사는 사제의 어깨를 붙잡았다.

인질로 삼을 거라는 생각도 그만두고 바닥에 넘어뜨린 뒤 나무 조각을 눈앞에 들이밀었다.


“다시 한번 말하라고!”


밑에 깔린 캣니스가 여전히 감정 없는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쿵, 여기사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 속에 몰아쳤다.


“셰인. 네가 있던 모든 날이 좋았어.”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너와 한 약속, 지키지 못할 거 같아.”

“하지 마, 이러지 마.”

“그래도 언젠가 내게 해주었던 소원은 꼭 이뤄졌으면 좋겠어.”

“하지 말라고!”

“아프지 말고 자유로워져야 해. 셰인.”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푹


캣니스의 고개 옆으로 나무 조각이 내리꽂혔다.

귓불이 베여서 피가 흐르고 옆 바닥에는 작은 흠이 생겼다.


“왜, 왜 어째서 네가·····.”


캣니스의 얼굴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여기사의 얼굴은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어째서 네가 그 말을 알고 있는 거야? 왜 나한테 이런 잔인한 짓을 하는 거지?”

“저는 제가 들은 말을 전달해 주었을 뿐이에요.”


여기사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동료의 유언에 꽤 충격이 컸는지. 날이 섰던 분위기가 단번에 깎여나갔다.


“칼을 돌려줘.”


그 말에 캣니스는 짧게 숨을 쉬었다.

품에 안긴 여기사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미안해요. 하지만 그분 또한 만만치 않은 상대였어요. 방심했다가는 저희 쪽이 위험했을 정도로요.”


여기사에게서 대답이 없자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의 적은 바솔루트가 아니에요. 기사님의 적도 우리가 아닐 수 있고요.”

“하지만 너희는 칼을 죽였어.”

“그분 또한 이번 일의 불합리함을 알고 있었죠. 그래서 제게 이런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한 거고요.”


여기사는 상체를 일으켰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바닥에 떨어진 검은 장갑을 보았다.


“네 말대로 칼이 정말로 그렇게 말했다면······.”


여기사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캣니스를 깔고 앉았던 몸을 비틀비틀 일으켜 세웠다.

검은 장갑을 주워서 이마에 갖다 댔다.


-셰인, 네가 무얼 원하든 함께 있어 줄게.


“그래, 너희들이 이겼어.”


여기사는 지친 듯이 팔을 늘어뜨렸다.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침대 매트리스에 기대어서 주저앉았다.


“좋을 대로 해. 어차피 구하러 올 거라는 기대도 안 했으니까.”


완강히 거부하던 전과 다르게 두 손을 들었다.

이카루스를 비롯한 모두가 한동안 침묵을 유지해 주었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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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2화 전야제 22.11.19 95 0 18쪽
22 21화 전야제 22.11.18 93 0 18쪽
21 20화 전야제 22.11.17 94 0 16쪽
20 19화 전야제 22.11.16 96 0 14쪽
19 18화 전야제 22.11.15 97 0 22쪽
18 17화 전야제 22.11.14 94 0 15쪽
17 16화 전야제 22.11.13 94 0 14쪽
16 15화 전야제 22.11.12 116 0 12쪽
15 14화 전야제 22.11.11 123 2 14쪽
14 13화 모험가의 활동 22.11.10 125 2 16쪽
13 12화 모험가의 활동 22.11.09 142 2 11쪽
12 11화 모험가의 활동 22.11.08 161 3 11쪽
11 10화 모험가의 활동 22.11.07 185 2 11쪽
10 9화 모험가 길드 + 외전 22.11.06 201 2 13쪽
9 8화. 모험가 길드 22.11.05 214 3 12쪽
8 7화. 모험가 길드. 22.11.04 231 4 13쪽
7 6화 모험가 길드 +1 22.11.04 264 4 14쪽
6 5화. 모험가 길드 22.11.03 308 5 18쪽
5 4화. 길 +1 22.11.02 398 7 13쪽
4 3화. 마왕성 문지기 22.11.02 578 6 24쪽
3 2화. 마왕성 문지기 +4 22.11.01 671 2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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